‘꽃’이 아니라 ‘몸’으로, ‘구경’이 아니라 ‘안부’로 금잔디의 첫 시집 『뛰고 싶은 사람아』는 오래 바라본 사람의 시집이다. 시인은 역사의 현장에서, 새벽 공장의 식당에서, 겨울 하우스와 장터와 텃밭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는 존재들을 놓치지 않는다. 해설을 쓴 김대철 시인은 이 시 세계를 심층적 이미지, 환원적 사유, 따뜻한 시선, 상상력이라는 네 갈래로 읽어 냈다. 그 네 갈래는 결국 하나의 물음으로 모인다. “괜찮니?”
몸으로 다시 읽는 역사와 노동 시인은 미화된 상징을 걷어 내고 그 아래 깔린 몸을 본다. 「낙화암 건너편에 서다」는 익숙한 부소산 길이 아니라 강 건너편에 서서 벼랑을 올려다보게 한다. 그 자리에서 낙화는 더 이상 꽃이 아니다. “꽃이 아니어라 사람 / 몸뚱이어라.” 천사백 년 전설이 한 행에서 무너지고, 떠밀린 사비성 사람들의 몸이 돌아온다. 이 시선은 오늘의 노동에도 그대로 닿는다. 「사금 캐는 일」의 남자에게 온스당 금값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의 쌀과 감자이고, 「처음 커피」의 소녀는 교대 시간 십오 분 동안 식판에 탄 커피믹스를 떠먹으며 어머니를 부른다. 「기숙사」는 새벽 청소에 쫓기던 여공들이 끝내 빛나는 복도를 걸어 학교로 가는 장면으로 맺는다. 고단함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그 안의 작은 명랑함까지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금잔디가 노동을 쓰는 방식이다.
경계 너머의 이웃들 이 시집의 안부는 국경과 종(種)의 경계를 넘는다. 「동백」은 네 시간 비행기를 타고 와 혼자 하우스 네 동을 돌보는 이주민을 “당신 동백이군요”라고 부르고, 「타예바의 눈물」은 아이들을 지키려 트럭에 염소와 거위를 싣고 떠나는 유목민 여성의 편에 서서 “당신은 아흔아홉이나 / 가졌나이다”라고 호소한다. 「저어새 떠나는 날」은 낯선 땅을 떠나는 이를 철새에 겹쳐 “말이 통하는 곳으로 날아가는 게 / 어디 철새뿐이겠어”라고 묻는다. 옥수수밭을 망쳐 놓은 짐승에게조차 시인은 “은촛대는 못 주었지만” 그 옥수수는 “내가 먹은 것으로” 하자고 말한다. 연민은 여기서 나눔이 된다.
일상을 비트는 경쾌한 상상력 금잔디의 시는 무겁기만 하지 않다. 도롱뇽을 손님으로 맞는 「모란 카페」, 장터 난전에서 동시를 봉지에 담아 파는 「오일장」, 냉이 캐기를 겨울 사냥으로 바꿔 놓은 「냉이」, 분식집을 천국의 식탁으로 옮겨 놓은 「김밥천국」은 익숙한 풍경을 한 번 비틀어 낯설고 즐겁게 만든다. 이 유머는 현실을 피하는 장치가 아니라, 현실을 다른 각도에서 다시 보게 하는 힘이다.
비워 두는 자리, 새로워지는 아침 시집은 “보리수나무 아래는 비워 두어요”라는 다짐으로 문을 연다. “욕심은 사절입니다.” 남을 위해 자리를 비워 두는 이 태도가 시집 전체의 품을 만든다. 그리고 시인은 떠나보낸 것들의 쓸쓸함을 지나 새벽으로 간다. 「마중」의 새벽은 “새로워져라 새로워져라” 하고 작은 소리로 기도하고, 표제작 「뛰고 싶은 사람아」는 산언덕을 오르고 싶은 고라니 새끼 같은 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이미 초록이다.” 아직 무엇이 되지 못한 사람에게 이미 충분하다고 말해 주는 것, 그것이 이 첫 시집이 독자에게 건네는 가장 다정한 안부다.
시인의 말
깊은 밤, 잠이 깨어 밖으로 나왔다 대문 밖에는 가로등이 불침번을 서고 있었다
팽나무와 장미, 무궁화, 범의 꼬리까지 두 팔로 끌어안고 긴 밤을 지나고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별이 보였다 별을 보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커피 탓이다
뛰고 싶은 사람아- 실천문학 시집선 323
$13.91
Choosing a selection results in a full page refre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