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아침의 나라

고요한 아침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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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 책은 성 베네딕도 수도회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노르베르트 베버 아빠스가 1911년 2월 21일부터 6월 24일까지 125일 동안 이 땅 구석구석을 현미경적 시각으로 관찰하고 기록한 여행기다. 칭다오에서 출항하여 일본 고베와 오사카를 경유한 여정을 더하면, 기록은 정확히 2월 17일부터 시작한다. 책의 독일어 초판본은 1915년 헤르더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으나, 번역 대본으로 삼은 것은 1923년 상트 오틸리엔 선교 출판사에서 출간된 재판본再版本이다. 101년 전 이 땅의 자연과 사람과 문물을 글로 묘사하고 그림으로 표현하고 사진에도 담았다. 일제 강점기 초엽의 우리네 삶의 모습이 어제 일처럼 생생히 눈앞에 펼쳐진다.
저자

노르베르트베버

노르베르트베버P.NorbertWeberOSB
1870년,독일바이에른주랑바이트에서철도건널목지기의2남1녀중둘째로태어났다.딜링겐에서소신학교와대신학교를차례로졸업하고,1895년아우크스부르크교구의사제로서품되지만,선교를소명삼아서품한달만에성베네딕도회상트오틸리엔수도원에입회했다.‘노르베르트’는일년후수도서원을하며받은수도명이다.
1900년상트오틸리엔수도원의부원장으로임명되었고,1902년32세에초대아빠스로선출되었으며,1914년초대총아빠스로축복되었다.30년가까이수도회를이끌며스위스,오스트리아,한국,중국,베네수엘라,아르헨티나등11개국에12개수도원을설립했다.1931년총수도원장직을사임한이후에는탄자니아리템보로파견되어1952년아빠스축복금경축으로상트오틸리엔을한차례방문한것을빼고는모국땅을밟지않은채선교소명에헌신하다가1956년선종했다.
1911년에는칭다오와일본을거쳐서울·공주·안성·수원·해주·평양등을두루방문하고,1925년에는촬영기사와함께함경도·북간도·금강산등을여행하면서한국의문물와풍속과전통을글과영상으로기록하여『고요한아침의나라』ImLandederMorgenstille(1915/23)와『금강산』IndenDiamantenbergenKoreas(1927)등의저술을통해서양에소개했다.

목차

■서언/재판서언

제1장_일본내해를지나다
고베|오사카

제2장_해협을건너다
한국이보인다

제3장_서울에서의첫날
교외에서

제4장_산책
옛날과지금|왕비의능|궁궐과고물상

제5장_그리스도교발자취따라
용산|서울의그리스도교

제6장_예술과재능
음악학교|공예공방|군신의슬픔,버려진뮤즈의사원|동묘

제7장_수도원소묘
기도하고일하라

제8장_산속으로
박해시대의유물|주일정취|산속의동굴|들판을가로질러

제9장_수원
옛성벽그늘아래|수원농림학교|비오는날

제10장_숲의정적
조용한구경꾼|외로운무덤|피신|봄숲의아침|백동수도원

제11장_소풍
첫밥상을받다|도시와시골|꽃과색깔|고요한도량|금광|

제12장_남으로,남으로!
시골길| 공주공산성|물병자리운세|임종에서무덤까지|공주감옥

제13장_일본의국책사업
꽃피는과일나무| 공업학교

3

제14장_북으로!
해안을따라|뭍에오르다|흥겨운놀이|청계동

제15장_부군나무아래서
청계동에얽힌사연

제16장_청계동의일상
신나는사진촬영| 답사는계속되고|산행|카메라수리|혼례|사목활동|귀로

제17장_옛도읍지
곡창지대|누에치기|바닷가에서|운수사나운날|평양|교외|소풍|귀경

제18장_마지막여정
북한산에서|총독방문|제물포|대한만세!

제19장_전망
고요한수도원|원산|북간도

■부록
초판제19장_기로에서서
선교의정치적의미

노르베르트베버총아빠스연보
여행경로와일람
인명색인
지명색인
사항색인
편집후기

출판사 서평

검은옷긴수염의독일선교사
백년전한국과사랑에빠지다

1911년2월17일부터6월24일까지
독일성베네딕도회상트오틸리엔수도원
노르베르트베버아빠스의한국여행
그129일간의기록

1911년2월초성베네딕도수도회상트오틸리엔수도원노르베르트베버아빠스는“극동에서의선교사업이몹시염려스러워”극동행증기선에올랐다.상트오틸리엔수도원이한국에선교사를파견한지일년반남짓지났을때였다.이새로운선교지는그때막일본의식민지가되어있었다.한반도주변에외세가파도처럼넘실거렸고,동아시아전체를향한일본의야욕을통제할힘은존재하지않았다.5천년역사의조선은제이름을잃고화살맞은짐승처럼가쁜숨을몰아쉬고있었다.베버가본것은그시절의‘코리아’였다.

칭다오에서출항하는장면에서기록은시작된다.1911년2월17일이다.한국을이야기하기전,베버는우선고베와오사카에서보낸며칠을기록하여극동의분위기를전한다.2월21일부산항에도착하자지체없이상경하여백동수도원에여장을풀고,서울을기점으로의왕(하우현)·수원(갓등이)·안성·천안·공주를둘러본후귀경했다.서울에서보름정도머물다가5월10일제물포에서뱃길로해주에당도하여,신천군청계동과안악군매화동,진남포와평양지역을답사하고귀경했다.여정의마지막을다시서울에서보내고대구를거쳐부산에서출국하니기록은6월24일자로끝난다.
수도원,순교지,본당,교우촌,신학교등을중심으로순방하며주요인사들을만나고주교성성식에도참석하는등,선교사로서의본분에합당한일정을꾸린건당연하다.그러나그사이사이에사찰과궁궐,왕릉과사당,성곽과마을,그리고이땅의자연과사람과풍물을보았다.그리고이낯선것들과금세사랑에빠졌다.

베버는이책을여행기로썼고,또그렇게읽히기를바랐다.그래서일기형식을취했다.전문학술서를쓸작정이아니었음에도그는“여기수집된자료대부분이다시는이정도규모로발견되거나입수되기어려우리라감히확신”했고“또일부는전혀찾지도못할것”(11쪽)이라내다보았다.한일강제병합직후한국고유의가치들이신속하고도무참하게파괴되는것이안타까워죽을지경이었다.그는사라져가는전통과문화사적가치들을악착같이추적하여붙잡아두고싶었다.이독일선교사가보기에한국문화는매우고귀했다.그는한국의숭고미를간파할줄아는안목을지니고있었다.이좋은것들을일본이파괴하기전에자신이할수있는방식으로잡아두어야했다.이책은이런염원과집념의산물이다.
그래서눈에보이고귀에들리는모든것을글과그림과사진에담았다.심지어맛과냄새와촉감까지놓치지않고묘사했다.이책은101년전한국의‘거의모든것’을보여준다:왕릉·궁궐·사당·사찰·교회·학교·병원등의건축물,혼례·장례·세시풍습·놀이·의식주·기호품·농기구·공예·기호품·산업·시장·농사등의각종풍속과문물제도,한국인의심성·습관·법도·일상,정치·외교사와교회사,불교와유교와민간신앙,한글과인쇄술,선교현황과그리스도교신앙,무엇보다한국의자연등,보고듣고느낀것은다썼다.물론,오늘날의눈으로보면사실적오류도없지않고역사인식의맹점도간간이눈에띈다.엄밀히말하면이책은‘한국에관한정확한정보’를담은책이아니라,‘101년전한독일선교사의눈에비친한국’을기록한책이다.번역하면서역자들은베버의오류를그대로살리되역주를통해사실관계를바로잡으려애썼다.

베버는서정성과사실성을겸비했다.사찰같은건축물의구조나디딜방아같은낯선구조물의얼개와작동원리등을매우정밀하고사실적으로기술했다.그는독일인다운과학성과엄밀성으로철두철미한사실성을추구했다.한편으로자연과심성을묘사할때는놀라운서정성을발휘했다.색채묘사에있어서사실성과서정성은별개가아니었다.그는매우섬세하고정확하며예술적감성이뛰어난사람이었다.
무엇보다베버의심장을뛰게만든것은한국의자연이었다.베버의한국은‘빛과선과색채의왕국’이었다.그는노을과초목과아이들의옷과불당의벽화가빚어내는모든색깔과선을묘사하는데무서운집착을보였다.자신의감성에호소하는것이면지칠줄모르고몇번이고반복하여묘사했다.
베버의혼을빼앗은또하나의요소는바로한국사람그자체였다.그에게한국인은선하고여유롭고꿈꾸고자연을관조할줄아는기품의소유자였다.그는이렇게썼다.“한국인은생각깊은자연주의자다.자연의신비를관조하고경청하면서,그들은아마고유의노랫가락을특징짓는떨림음을바로종달새의울음에서취했을지도모른다”(267쪽).한국인은이런심성으로뛰어난전통과예술을창조해낸문화민족이었으나‘부패한관료와오도된정치체제’로말미암아몰락의길을걷게되었으니,이점베버는통탄해마지않았다.베버는한국의자연과한국인의심성을무한히사랑하였으나이를지켜주지못한위정자들은고운눈으로보지않았다.
때는일제강점기초엽이었고베버는독일인이라,결국이런시각은구태정치를뒤집어엎을‘새로운질서’를은근히기대하게만들었고,군데군데일본과일본의식민지정책에대해상당히우호적인발언을하게한빌미를제공했다.이역서는베버의생각과진술을있는그대로전달할뿐,오늘날한국인의잣대로재단하려하지않았다.

베버는이책을개인의기행문으로썼으나,그가보고겪고기록한내용들은오늘날민속학적연구자료로읽히기에손색이없다.역사와풍속을기록하면서베버가범한사실적오류조차오늘날의눈으로볼때하나의귀중한연구자료가될수있을것이다.
“사실길위에서쓴적도많았다.때로는조랑말위에서,때로는가파르고험준한산마루에서도썼다.당연히글이거칠고서툴다”(11쪽)라고,베버는서언에서고백한다.그래서그런지때로는두서없고계통없고체계없고중언부언도많다.이번역본은그것들을그대로살리려고노력했다.그럼에도베버는자신이가슴에품고돌아온한국과그백성에대한사랑이이책에서읽혀지기를바랐으며그바람은충분히이루어지리라믿는다.

이책의독일어초판본은1915년헤르더출판사에서출간되었으나,번역대본으로삼은것은1923년상트오틸리엔선교출판사에서출간된재판본再版本이다.초판본19장은재판본에서전혀다른내용으로대치되었는데,이번역본에서는그것을부록으로실었다.선교와제국주의의관계에대한당시의시각을생생히엿보는데도움될것이다.
원서초판본에는329매,재판본에는345매의그림과사진이수록되어있다(지도포함).재판본에더추가한것도있고더러뺀것도있는데,이역서는두판본의그림과사진들을구분없이망라하여텍스트와최대한가까운자리에실었다.초판본과재판본을망라하여본문내용과별관계없는여분의그림이나사진도많다.그런것들은각장말미에앉혀두었다.

베버이전에도한국을방문한외국인들은있었고그들역시저마다의관심사에따라기록물을남겼다.그러나베버만큼깊은통찰력과폭넓은시각으로한국의전반적속살을들여다본사람은없었다.이역서가근대한국의동서교섭사와민속학연구에작은밀알이되기를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