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큰 정치인 서민호 평전

통 큰 정치인 서민호 평전

$20.00
Description
월파 서민호 선생을 아시나요?
한국 근현대사에서 깊게 조명해야 할 인물이 어찌 한두 분이겠는가 마는 역사의 장막으로 세월의 퇴적층에 속절없이 덮혀 잊혀져가는 것은 우리에게 크나큰 손실이 아닐수 없다. 그 가운데 한 분이 서민호 선생이다. 그는 일제 식민지 시대 3.1운동에 참가하여 옥살이를 했으며, 일본과 미국으로 유학하여 최고 학부를 거친 지식인으로서 조선어학회를 적극 지원, 역시 옥살이를 하였고, 미군정 아레서 광주시장. 전남지사 등을 지내고,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적극 가담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에 진출하여 내무분과위원장으로, 1951년 국민방위군사건. 거창 양민학살사건 등 이승만 정권의 비리를 적극 파헤치자 그의 정적으로 몰려 서대위 격살 사건으로 8년 남짓 옥살이를 하다가 4월 혁명으로 풀려났다.
그는 호남 부호의 아들로 해방 당시 좌익세력에 맞서 싸웠으나 그 많은 재산의 대부분을 교육사업에 기부했다. 민주화 투쟁에서 고난을 당하면서도 정치적 회유냐 협박에 흔들리지 않고 ‘겨레와 민주주의’라는 대의를 위헤 자기를 지켰다. 조봉암 사형 이후 금기시되었던 혁신정당의 맥을 잇고 민주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보수야 당도 유지하기 어려웠던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권으로부터 몇 차례나 방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기를 거듭하면서도 자신의 이념과 정책을 펼치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었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설치던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을 탄핵한다〉는 제목 아래 대 정부 정책질의를 한 용기 있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소신과 용기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내가 만약 대통령이라면〉 의 제목 아래 정책 비전을 제시하고 유엔을 통한 남북 총 선거를 실시하여 우리 겨레의 통일 자주 정부수립을 하자고 촉구하기도 했다.
온갖 시련과 탄압에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민주사회주의 라는 이념의 텃밭을 지키려 했던 의로운 분이었기에 김대중 대통령도 정치인 가운데서 존경하는 인물로 서민호 선생을 꼽은 것이리라. 폭력과 전쟁이 난무하는 지금, 월파 서민호 선생의 앞을 내다보는 안목과 경세관은 오늘 다시 되새겨야 할 나침반이라 할 것이다.

저자

김삼웅

저자:김삼웅
독립운동사와친일반민족사연구가로,현재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공동대표를맡고있다.[대한매일신보](지금의[서울신문])주필을거쳐성균관대학교에서정치문화론을가르쳤으며,4년여동안독립기념관장을지냈다.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위원,제주4·3사건희생자진상규명및명예회복위원회위원,백범학술원운영위원등을역임하고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위원,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자문위원,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위원회위원,3·1운동·임시정부수립100주년기념사업회위원등을맡아바른역사찾기에부단히노력하고있다.역사·언론바로잡기와민주화·통일운동에큰관심을두고,독립운동가와민주화운동에헌신한인물의평전등이분야의책을많이집필했다.주요저서로《한국필화사》,《조지훈평전》,《백범김구평전》,《을사늑약1905그끝나지않은백년》,《단재신채호평전》,《만해한용운평전》,《안중근평전》등이있다.

목차


들어가면서12

1.어린시절나라는망하고20
전남고흥부잣집아들로태어났으나20
11세에일본유학,민족차별겪고귀국23

2.학업과성장기27
3.1혁명참여,일경에소금·고춧가루뿌려27
와세다대학진학,3.1절행사장에태극기게양했다가30
미국웨슬리안대학과콜롬비아대학원수학32

3.조선어학회사건으로투옥37
송명학교이어유랑극단좌절,조선어학회참여37
조선어학회사건7개월간옥고40

4.해방을맞아45
해방,벌교건준위원장엉뚱한봉변도45
초대광주시장·전남지사,조선대설립앞장48
정실인사충고했더니‘네가나를충고해?’51

5.2대국회의원의정활동54
제2대국회의원,곧일어난6.25전쟁54
6.서대위살해사건59
살인이냐정당방위냐59
국회석방결의,계엄령선포로재수감62
거창민간인학살사건폭로암살위기겪기도64
이승만의독주에맞서다67
생명위협느끼며4통의유언을쓰다71
손자이름치이(治李)·치승(治承)·치만(治晩)짓도록76

7.8월혁명의시기79
이승만파멸의무덤3.15부정선거와4월혁명79

8.다시의정단상에서다84
제5대국회의원전국제1위득표,부의장84
유엔총회한국대표단으로참석87
퇴행적보수에실망혁신에기대했으나90

9.5.16쿠데타시기96
군사쿠데타,새로운고난과투쟁96
박정희의굴욕적인한일협정격렬반대98
‘박정희대통령하야권고결의안’제출102
굴욕회담반대의원직던져106

10.혁신정치에나서다110
혁신정책꺾이지만비전은남아110
‘민주사회주의’제창하다115
대중당을발기하는우리의뜻118
11.혁신정당대중당창당122
대중당창당을주도122

12.혁신계의지도자130
혐의풀리자‘조총련계자금’엮어130
대중당대선후보에지명되고132
정권교체위해후보사퇴용단135

13.거듭된시련속에재기139
7대국회의원옥중당선139
단독등원,독불장군등비아냥따라142

14.3선개헌반대앞장146
박정희의권력야욕3선개헌반대투쟁146
개헌안국민투표신랄히비판150

15.이념·원칙형정치인의길154
단식농성으로졸도,철저한습벽154
<요구되는지도자의자세>시론156
박정희·유진오·서민호의69년연두회견비교158

16.두권의저서162
저서‘이래서되겠는가’162
‘나의옥중기’집필164


17.최후의결전맞았으나169
정권교체대의위해후보사퇴169
혼신다해DJ지원했으나173

18.정계은퇴,통일문제연구177
총선낙선정계은퇴통일문제연구협회창설177
민족주의바탕한통일되도록180
유신쿠데타에도강연·세미나·회보발행182

마무리글:타계와추도185
71세에타계,민주화·통일못보고185
통일로변에안장,애족장추서188

부록:《나의옥중기》(부분)193
1장.폭풍전야195
2장.운명의사건259

출판사 서평


월파서민호선생을아시나요?

한국근현대사에서깊게조명해야할인물이어찌한두분이겠는가마는역사의장막으로세월의퇴적층에속절없이덮혀잊혀져가는것은우리에게크나큰손실이아닐수없다.그가운데한분이서민호선생이다.그는일제식민지시대3.1운동에참가하여옥살이를했으며,일본과미국으로유학하여최고학부를거친지식인으로서조선어학회를적극지원,역시옥살이를하였고,미군정아레서광주시장.전남지사등을지내고,대한민국정부수립에적극가담하였다..1950년제2대국회에진출하여내무분과위원장으로,1951년국민방위군사건.거창양민학살사건등이승만정권의비리를적극파헤치자그의정적으로몰려서대위격살사건으로8년남짓옥살이를하다가4월혁명으로풀려났다.
그는호남부호의아들로해방당시좌익세력에맞서싸웠으나그많은재산의대부분을교육사업에기부했다.민주화투쟁에서고난을당하면서도정치적회유냐협박에흔들리지않고‘겨레와민주주의’라는대의를위헤자기를지켰다.조봉암사형이후금기시되었던혁신정당의맥을잇고민주사회주의를표방하면서,보수야당도유지하기어려웠던이승만박정희독재정권으로부터몇차례나방공법위반혐의로구속되기를거듭하면서도자신의이념과정책을펼치는몇안되는정치인이었다.군사쿠데타로정권을잡고설치던박정희대통령을향해<대통령을탄핵한다>는제목아래대정부정책질의를한용기있는정치인이었다.그는소신과용기만있었던것이아니고,<내가만약대통령이라면>의제목아래정책비전을제시하고유엔을통한남북총선거를실시하여우리겨레의통일자주정부수립을하자고촉구하기도했다.
온갖시련과탄압에도우리가가야할길은민주사회주의라는이념의텃밭을지키려했던의로운분이었기에김대중대통령도정치인가운데서존경하는인물로서민호선생을꼽은것이리라.폭력과전쟁이난무하는지금,월파서민호선생의앞을내다보는안목과경세관은오늘다시되새겨야할나침반이라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