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scription
월파 서민호 선생을 아시나요?
한국 근현대사에서 깊게 조명해야 할 인물이 어찌 한두 분이겠는가 마는 역사의 장막으로 세월의 퇴적층에 속절없이 덮혀 잊혀져가는 것은 우리에게 크나큰 손실이 아닐수 없다. 그 가운데 한 분이 서민호 선생이다. 그는 일제 식민지 시대 3.1운동에 참가하여 옥살이를 했으며, 일본과 미국으로 유학하여 최고 학부를 거친 지식인으로서 조선어학회를 적극 지원, 역시 옥살이를 하였고, 미군정 아레서 광주시장. 전남지사 등을 지내고,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적극 가담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에 진출하여 내무분과위원장으로, 1951년 국민방위군사건. 거창 양민학살사건 등 이승만 정권의 비리를 적극 파헤치자 그의 정적으로 몰려 서대위 격살 사건으로 8년 남짓 옥살이를 하다가 4월 혁명으로 풀려났다.
그는 호남 부호의 아들로 해방 당시 좌익세력에 맞서 싸웠으나 그 많은 재산의 대부분을 교육사업에 기부했다. 민주화 투쟁에서 고난을 당하면서도 정치적 회유냐 협박에 흔들리지 않고 ‘겨레와 민주주의’라는 대의를 위헤 자기를 지켰다. 조봉암 사형 이후 금기시되었던 혁신정당의 맥을 잇고 민주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보수야 당도 유지하기 어려웠던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권으로부터 몇 차례나 방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기를 거듭하면서도 자신의 이념과 정책을 펼치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었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설치던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을 탄핵한다〉는 제목 아래 대 정부 정책질의를 한 용기 있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소신과 용기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내가 만약 대통령이라면〉 의 제목 아래 정책 비전을 제시하고 유엔을 통한 남북 총 선거를 실시하여 우리 겨레의 통일 자주 정부수립을 하자고 촉구하기도 했다.
온갖 시련과 탄압에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민주사회주의 라는 이념의 텃밭을 지키려 했던 의로운 분이었기에 김대중 대통령도 정치인 가운데서 존경하는 인물로 서민호 선생을 꼽은 것이리라. 폭력과 전쟁이 난무하는 지금, 월파 서민호 선생의 앞을 내다보는 안목과 경세관은 오늘 다시 되새겨야 할 나침반이라 할 것이다.
그는 호남 부호의 아들로 해방 당시 좌익세력에 맞서 싸웠으나 그 많은 재산의 대부분을 교육사업에 기부했다. 민주화 투쟁에서 고난을 당하면서도 정치적 회유냐 협박에 흔들리지 않고 ‘겨레와 민주주의’라는 대의를 위헤 자기를 지켰다. 조봉암 사형 이후 금기시되었던 혁신정당의 맥을 잇고 민주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보수야 당도 유지하기 어려웠던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권으로부터 몇 차례나 방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기를 거듭하면서도 자신의 이념과 정책을 펼치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었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설치던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을 탄핵한다〉는 제목 아래 대 정부 정책질의를 한 용기 있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소신과 용기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내가 만약 대통령이라면〉 의 제목 아래 정책 비전을 제시하고 유엔을 통한 남북 총 선거를 실시하여 우리 겨레의 통일 자주 정부수립을 하자고 촉구하기도 했다.
온갖 시련과 탄압에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민주사회주의 라는 이념의 텃밭을 지키려 했던 의로운 분이었기에 김대중 대통령도 정치인 가운데서 존경하는 인물로 서민호 선생을 꼽은 것이리라. 폭력과 전쟁이 난무하는 지금, 월파 서민호 선생의 앞을 내다보는 안목과 경세관은 오늘 다시 되새겨야 할 나침반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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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큰 정치인 서민호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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