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한 역사학자의 삶에 관한 고백록
잔잔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이야기에 진심을 담다
잔잔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이야기에 진심을 담다
수필이 이렇게 재밌을 수 있을까. 중국중세사 연구의 거목 박한제 교수가 인생을 담담하게 되돌아보는 수필집을 선보인다. 까까머리 시절부터 연구 외길을 걸어온 여정은 한 편의 영화처럼 긴 여운을 남긴다.
유년의 추억
이 수상록의 화두는 ‘추억’이다. 경남 진주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란 저자는 고향의 풍경과 그에 얽힌 이야기보따리를 풍성하게 풀어 놓는다. 마을 앞 개울에 팬티도 벗고 뛰어들거나 밤송이 나무를 흔드는 악동 시절을 눈에 그리듯 묘사한다. 소년 시절엔 좋아하던 여학생에게 용기 내지 못한 소심함을 자책하기도 하고 신발 장수 아버지가 챙겨준 여아 장화가 부끄러워 쉬는 시간 내내 책상에 앉아 있기도 한다. 객쩍음, 애잔함, 아련함, 조급함, 안타까움, 쑥스러움, 아쉬움 등 갖가지 감정이 담긴 이야기들에 독자들은 이내 빠져들게 된다. 풍경은 진주를 벗어나 추풍령, 원주, 일영역, 통영, 고창, 몽골, 미국을 넘나들고, 웃픈 이야기는 〈선운사에서〉처럼 노년에 들어선 때에도 계속된다(매표소 아가씨와의 대화 대목에서 웃지 않을 이들은 없을 것). 어딘가 어설프지만 내 아버지 같아서 더 정이 가고 공감을 자아낸다.
드러냄의 미학
저자의 수필에 이렇게 끌리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모자람과 어리숙함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 있다. 그는 늦깎이로 대학에 들어가고, 키작남에 새가슴이며, 손으로 하는 운동을 못 하여 “손발이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자칭한다. 시골 촌놈이 최고 대학의 교수가 된 것을 “잘못 든 길”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그러나 그 솔직함은 오히려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든다.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비로소 글에 내면이 담기기 때문이다. 진솔함은 독자들에게 신뢰감을 준다. 무엇보다 주어진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착실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태도는 그 진정성을 더해준다.
인연
부족한 듯 어리숙한 이미지는 제2부인 〈인물과 풍경Ⅱ〉에서도 이어진다. 전공 선생님께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나거나 아내와 딸들에게 영어실력을 들킬까 조바심을 내고, 표현을 잘 안 하는 아들이자 노인 대우를 받는 것이 못내 서러운 시니어인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저자는 “9-9 작전”으로 진득하게 연구에 매진해 오고 있는 학자이면서 제자들 육성에 보람을 느끼고, 땀과 열정을 소중히 여긴다. 멈추지 않는 노력을 보여 주는 본보기로서 박찬호 등 메이저리거들을 응원한다. 아버지 이름으로 장학금을 만들어 곤궁 속에서도 7남매 학업에 매달린 선친의 뜻을 기린다. 특히 곳곳에 실려 있는 자기성찰의 글들은 어리숙함 속 사려 깊음, 삶을 관조하는 통찰력을 깨닫게 한다. 불가의 가르침에 귀의한 지 20년이 채 되지 않지만, 저자는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 역지사지하여 자신을 돌아보려고 노력한다(〈여지의 철학〉). 인생론에 가까운 몇 개의 수필에서는 그의 너그럽고 속 깊은 마음을 읽게 된다. 그런가 하면 〈누나〉와 같은 서정적인 글들은 한 편의 시 같다. 따라서 이 책은 한 역사학자의 회고인 동시에 성장기이며, 반전反轉의 수필이자 아름다운 성찰의 기록이다.
이 책에는 한 이야기들마다 인연이 나온다. 그는 놀랍게도 어릴 적 동경했던 소녀의 단정한 머리카락이나 5학년 시절 월사금을 대납해 주셨던 선생님의 간장버터밥, 자전거 타다가 발을 다치게 만든 할머니의 표정까지도 기억한다. 그리고 그 시선에는 따뜻한 아련함이 묻어난다. 수많은 인연의 기록이 곧 삶인바, 이 글들은 관계 맺은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의 표현들이다. 저자가 전작(《인생 -나의 오십자술》)에 이어 이 수필집을 펴내는 것도 그가 살면서 만난 이들과 이 책으로 연을 맺는 독자에게 마음의 인사를 건네는 뜻일 것이다.
유년의 추억
이 수상록의 화두는 ‘추억’이다. 경남 진주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란 저자는 고향의 풍경과 그에 얽힌 이야기보따리를 풍성하게 풀어 놓는다. 마을 앞 개울에 팬티도 벗고 뛰어들거나 밤송이 나무를 흔드는 악동 시절을 눈에 그리듯 묘사한다. 소년 시절엔 좋아하던 여학생에게 용기 내지 못한 소심함을 자책하기도 하고 신발 장수 아버지가 챙겨준 여아 장화가 부끄러워 쉬는 시간 내내 책상에 앉아 있기도 한다. 객쩍음, 애잔함, 아련함, 조급함, 안타까움, 쑥스러움, 아쉬움 등 갖가지 감정이 담긴 이야기들에 독자들은 이내 빠져들게 된다. 풍경은 진주를 벗어나 추풍령, 원주, 일영역, 통영, 고창, 몽골, 미국을 넘나들고, 웃픈 이야기는 〈선운사에서〉처럼 노년에 들어선 때에도 계속된다(매표소 아가씨와의 대화 대목에서 웃지 않을 이들은 없을 것). 어딘가 어설프지만 내 아버지 같아서 더 정이 가고 공감을 자아낸다.
드러냄의 미학
저자의 수필에 이렇게 끌리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모자람과 어리숙함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 있다. 그는 늦깎이로 대학에 들어가고, 키작남에 새가슴이며, 손으로 하는 운동을 못 하여 “손발이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자칭한다. 시골 촌놈이 최고 대학의 교수가 된 것을 “잘못 든 길”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그러나 그 솔직함은 오히려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든다.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비로소 글에 내면이 담기기 때문이다. 진솔함은 독자들에게 신뢰감을 준다. 무엇보다 주어진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착실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태도는 그 진정성을 더해준다.
인연
부족한 듯 어리숙한 이미지는 제2부인 〈인물과 풍경Ⅱ〉에서도 이어진다. 전공 선생님께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나거나 아내와 딸들에게 영어실력을 들킬까 조바심을 내고, 표현을 잘 안 하는 아들이자 노인 대우를 받는 것이 못내 서러운 시니어인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저자는 “9-9 작전”으로 진득하게 연구에 매진해 오고 있는 학자이면서 제자들 육성에 보람을 느끼고, 땀과 열정을 소중히 여긴다. 멈추지 않는 노력을 보여 주는 본보기로서 박찬호 등 메이저리거들을 응원한다. 아버지 이름으로 장학금을 만들어 곤궁 속에서도 7남매 학업에 매달린 선친의 뜻을 기린다. 특히 곳곳에 실려 있는 자기성찰의 글들은 어리숙함 속 사려 깊음, 삶을 관조하는 통찰력을 깨닫게 한다. 불가의 가르침에 귀의한 지 20년이 채 되지 않지만, 저자는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 역지사지하여 자신을 돌아보려고 노력한다(〈여지의 철학〉). 인생론에 가까운 몇 개의 수필에서는 그의 너그럽고 속 깊은 마음을 읽게 된다. 그런가 하면 〈누나〉와 같은 서정적인 글들은 한 편의 시 같다. 따라서 이 책은 한 역사학자의 회고인 동시에 성장기이며, 반전反轉의 수필이자 아름다운 성찰의 기록이다.
이 책에는 한 이야기들마다 인연이 나온다. 그는 놀랍게도 어릴 적 동경했던 소녀의 단정한 머리카락이나 5학년 시절 월사금을 대납해 주셨던 선생님의 간장버터밥, 자전거 타다가 발을 다치게 만든 할머니의 표정까지도 기억한다. 그리고 그 시선에는 따뜻한 아련함이 묻어난다. 수많은 인연의 기록이 곧 삶인바, 이 글들은 관계 맺은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의 표현들이다. 저자가 전작(《인생 -나의 오십자술》)에 이어 이 수필집을 펴내는 것도 그가 살면서 만난 이들과 이 책으로 연을 맺는 독자에게 마음의 인사를 건네는 뜻일 것이다.
나의 칠십잡억 (세월과 풍경)
$3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