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 책은 제1부에서 제8부로 나뉘는데 제1부 〈근대 왜곡의 뿌리〉에서는 일제 식민주의 역사관의 뿌리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을 소개하고, 그의 주변국 ‘선점론’을 본격 비판한다.
제2부 〈근대의 여명〉에서는 〈심청전〉 〈춘향전〉을 최초로 영조 정조 시대의 ‘소민(小民)보호’ 정치이래 등장한 자생적 ‘공화(共和)의식’으로 보고 신분타파의 근대를 지향하고 평등의식의 시발로 본다.
제3부 〈고종즉위, 세도정치부터 없앴다〉에서는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을 왕위 계승자로 지목한 신정왕후(조대비)의 개혁정치가 대원군의 치적으로 둔갑한 배경을 밝히고, 고종의 왕정은 조대비의 개혁정치에 근원한 것을 밝힌다.
제4부 〈개국 개방에 드리운 암운과 서광〉에서는 강화도 조약을 마치 일본이 우리나라에 시혜를 베푼 듯이 주장하는 것은 허위임을 밝히고 역사의 진실을 드러냈다.
제5부 〈청일 전쟁과 왕비 시해 사건〉에서는 동학농민군의 항일 전쟁과 이에 대한 고종의 화답으로 1895년 2월 새로운 국민창출을 위해 내린 ‘교육조칙’을 주목한다.
제6부 〈‘국민’ 창출과 대한제국 수립〉에서는 ‘교육칙어’가 담은 덕 기르기[德養]·몸 기르기[體養]·지혜 기르기[智養] 의 3양을 국민 실용교육 심화를 위한 학교설립 등의 원칙을 밝힌 것이며, 〈독립신문〉은 서재필의 개인 창간이 아니라, 고종 정부가 ’국민‘창출을 위해 서양의 신지식의 공급을 위한 매체(미디어)로 창간한 것임을 밝혔다.
제7부 〈침략자에 대한 규탄과 시위〉에서는 고종이 일본의 침략정책으로 입은 국가적 손상 앞에 터뜨린 세 차례의 통곡을 소개한다. 갑신정변 때 일본 공사관 수비대가 거짓 어명으로 다섯 명의 중신(重臣)을 목을 쳐 죽이는 광경을 보고, 고종이 “죽이지 말라”고 외치면서 통곡했고, 을미사변 때 왕비(민씨)가 시해된 뒤 국장을 치를 때 그 행록에서 “내가 궁 안에서 왕비를 지키지 못했다.”고 자책한 애통, 1909년 3월 국권이 일제에게 다 넘어간 시점에서 황제로서 일본의 침략을 막지 못한 책임을 스스로 질책하면서 “그래도 망했다고 하지 말라. 여러분 만성(萬姓)이 광복(光復)을 가져올 날이 있을 것이다.”라면서 터뜨린 애통을 소개한다.
제8부 〈근대가 있는 현대사를 항하여〉에서는 근대와 현대가 연결되지 못한 역사는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것으로, 이는 우리 근대사에 대한 심한 부정적 인식의 산물로서 ‘근대’가 없는 현대사는 있을 수 없는 속히 청산해야 할 과제임을 지적하고 있다.
제2부 〈근대의 여명〉에서는 〈심청전〉 〈춘향전〉을 최초로 영조 정조 시대의 ‘소민(小民)보호’ 정치이래 등장한 자생적 ‘공화(共和)의식’으로 보고 신분타파의 근대를 지향하고 평등의식의 시발로 본다.
제3부 〈고종즉위, 세도정치부터 없앴다〉에서는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을 왕위 계승자로 지목한 신정왕후(조대비)의 개혁정치가 대원군의 치적으로 둔갑한 배경을 밝히고, 고종의 왕정은 조대비의 개혁정치에 근원한 것을 밝힌다.
제4부 〈개국 개방에 드리운 암운과 서광〉에서는 강화도 조약을 마치 일본이 우리나라에 시혜를 베푼 듯이 주장하는 것은 허위임을 밝히고 역사의 진실을 드러냈다.
제5부 〈청일 전쟁과 왕비 시해 사건〉에서는 동학농민군의 항일 전쟁과 이에 대한 고종의 화답으로 1895년 2월 새로운 국민창출을 위해 내린 ‘교육조칙’을 주목한다.
제6부 〈‘국민’ 창출과 대한제국 수립〉에서는 ‘교육칙어’가 담은 덕 기르기[德養]·몸 기르기[體養]·지혜 기르기[智養] 의 3양을 국민 실용교육 심화를 위한 학교설립 등의 원칙을 밝힌 것이며, 〈독립신문〉은 서재필의 개인 창간이 아니라, 고종 정부가 ’국민‘창출을 위해 서양의 신지식의 공급을 위한 매체(미디어)로 창간한 것임을 밝혔다.
제7부 〈침략자에 대한 규탄과 시위〉에서는 고종이 일본의 침략정책으로 입은 국가적 손상 앞에 터뜨린 세 차례의 통곡을 소개한다. 갑신정변 때 일본 공사관 수비대가 거짓 어명으로 다섯 명의 중신(重臣)을 목을 쳐 죽이는 광경을 보고, 고종이 “죽이지 말라”고 외치면서 통곡했고, 을미사변 때 왕비(민씨)가 시해된 뒤 국장을 치를 때 그 행록에서 “내가 궁 안에서 왕비를 지키지 못했다.”고 자책한 애통, 1909년 3월 국권이 일제에게 다 넘어간 시점에서 황제로서 일본의 침략을 막지 못한 책임을 스스로 질책하면서 “그래도 망했다고 하지 말라. 여러분 만성(萬姓)이 광복(光復)을 가져올 날이 있을 것이다.”라면서 터뜨린 애통을 소개한다.
제8부 〈근대가 있는 현대사를 항하여〉에서는 근대와 현대가 연결되지 못한 역사는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것으로, 이는 우리 근대사에 대한 심한 부정적 인식의 산물로서 ‘근대’가 없는 현대사는 있을 수 없는 속히 청산해야 할 과제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태진 교수의 한국 근현대사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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