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만드는 커뮤니케이션 (세계사회와 네트워크의 사회적 영향)

세계를 만드는 커뮤니케이션 (세계사회와 네트워크의 사회적 영향)

$17.33
Description
『세계를 만드는 커뮤니케이션』에서 우리는 뉴미디어 시대에 이루어지는 범세계적 커뮤니케이션을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지식사회의 문제점과 그 맹점, 인간과 철학, 미학과 종교의 주요 문제를 어떻게 ‘통섭적’으로 접근하여 인간과 사회의 자기이해를 위한 좌표를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노르베르트 볼츠

저자 노르베르트 볼츠(Norbert Bolz, 1953~ )는 독일학계에서 68세대 이후의 인문학을 대표하는 소장학자로, 특히 ‘트렌드 분석의 왕’이자 ‘미디어이론의 댄디’로 평가받고 있다. 독일 괴테인스티튜트가 선정한 ‘독일의 대표적 싱크탱크’에 철학자로서는 하버마스, 슬로터다이크 등과 나란히 선정되기도 했다.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과와 에센대학 디자인학과 교수를 거쳐 2002년 가을학기부터 베를린 공과대학 미디어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또한 독일 공영방송 ZDF의 <철학 4중주> 고정 출연자이기도 하다.
그동안 『탈마법화된 세계로부터의 탈주』ㆍ『뉴미디어이론』ㆍ『가상의 역사』ㆍ『의미를 추구하는 사회』ㆍ『다름의 타협주의자들』ㆍ『소비주의자 선언』ㆍ『가족의 영웅』ㆍ『미디어이론 강의』ㆍ『종교의 지식』ㆍ『인간 불평등에 대한 담론』 등 20여 권의 저서를 발표했으며, 『구텐베르크-은하계의 끝에서』ㆍ『컨트롤된 카오스』ㆍ『발터 벤야민』ㆍ『컬트-마케팅』ㆍ『보이지 않는 것의 경제』는 우리말로도 번역되어 있다.

목차

서문 이론적 배경과 주요 테제

1. 애프터 뉴미디어?비판이론 대신에 체계이론
이론의 계기 비행
애프터 미디어
세계커뮤니케이션의 시대
차이들의 보전

2. 지식사회에서 방향설정 문제들신뢰와 정보 그리고 지식
법과 신뢰
지식의 리스크
지식의 미래: 미래에 관한 지식

3. 역사의 행복한 종말복잡성에 대한 감수성과 미적 인식
유토피아의 패러독스
명명된 세계와 전시된 세계
‘뷰토피아(Beautopia)’

4. 삶의 인공성디자인 정신에서 철학의 부활
센스메이킹으로서의 디자인
‘우연에 방치된 존재’
육체의 복귀?
휴머니즘에서 인조인간 호문쿨루스로
신과의 커뮤니케이션 문제

독자의 이해를 위하여윤종석
1. ‘포스트-68세대’: 비판이론에서 체계이론으로
2. ‘세계커뮤니케이션’의 주요 테마
3. 네트워크의 사회적 영향
4. 맺음말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뉴미디어 시대, 세계커뮤니케이션의 모든 테마와 만나다!
- 뉴미디어의 시대에 사회와 인간의 새로운 자기이해를 모색하는 지침서 -

핵심요약
오늘날 세계화와 인터넷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화두이다. 이 두 테마는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경제와 정치, 미디어기술과 학문지식의 범세계적 네트워킹이 오늘날 동시에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근대의 ‘대항해 시대’ 이후 세계 구석구석을 물질적으로 연결하는 경제의 세계화에는 교통수단과 미디어의 발전이 필수적으로 동반된 ‘대발견의 시대’이기도 했으며, 이것은 근대 세계에서 지식혁명으로 나타났다. 특히 오늘날 지역과 관계없이 동시간적으로 진행되는 현재의 세계화 국면은 다양한 미디어들 속에서 일어나는 ‘세계커뮤니케이션’이다. 전 지구적인 데이터의 흐름과 금융자금의 흐름이 오늘날 더 이상 구별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뉴미디어가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정보사회, 그리고 최근에 지식사회라는 말을 할 때, 이 두 개념을 공통적으로 묶는 분모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다.
- 미디어는 미래의 전도유망한 사업영역이다.
- 커뮤니케이션이 생산성의 핵심으로 부상한다.
- 지식은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부존자원이다.

우리가 오늘날 뉴미디어와 만날 때 그것은 우리가 단순히 새로운 기술과 관계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가령 컴퓨터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그것이 우리가 하는 일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그리고 확실하게 하도록 하게 하는 그런 도구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컴퓨터가 하나의 문화테크닉이라는 점이다. 근세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로 문화적 혁명이 일어났듯이(아쉽게도 우리 선조들은 인쇄술을 문화혁명으로 결실을 보지 못했다), 오늘날 우리 문화는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문화테크닉들을 토대로 하나의 새로운 자기이해를 추구하고 있다. 이것은 도서문화의 종말을 의미하는 ?구텐베르크―은하계의 종말?에 관한 오늘날 문화비판적인 논쟁들에서도 핵심을 이룬다. 새로운 자기이해를 위해 분투하는 것은 단지 사회만이 아니며, 인간(그리고 지성) 역시 미래에 계속 살아남기 위해 컴퓨터라는 보편기계에 대해 먼저 스스로를 새롭게 규정해야만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사회가 섭렵했던 네오마르크스주의, 구조주의, 담론분석, (탈)구조주의와 같은 이론들은 뉴미디어의 변화된 상황에서 사회와 인간의 새로운 자기이해에 부적함이 드러났다. 그 이론들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탈주를 꿈꾸고 있다. 과거의 이론들의 안개를 걷어내고 인간 지성을 계속 보전하기 위해, 우리는 현재 인터넷과 지식사회에 필적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들과 무기들을 모색해야 한다.

‘세계커뮤니케이션’은 현재 경제학이 ‘세계화’라고 하고 정치학이 ‘초국가화’라고 부르는 현상을 가리키는 미디어이론 개념이다. 이미 200년 전부터, 포스트모던에서 비로소 스스로를 반성하고 확인했던 모던(현대)이 이미 세계커뮤니케이션의 시대이며, 이 시대는 더 이상 프로메테우스(생산)의 시대가 아니라 헤르메스(커뮤니케이션)의 시대다. 그 제1명제는 “나는 접속한다, 고로 존재한다”이다. 즉 커뮤니케이션이 실존을 보증하고 세계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커뮤니케이션에서 중요한 것은 전달하는 정보나 그 과정에 참가하는 주체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이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의 망, 특히 오늘날 인터넷의 조밀한 망에 접속하지 않는 자는 21세기에 사회적으로 배제된 존재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뉴미디어의 시대에 변화된 인간 존재와 사회를 설명하지 않는 이론 역시 도태될 것이다.

기획의도 및 출간의의
2009년 가을은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한 1989년으로부터 꼭 20년이 되는 해이다. 서유럽에서 이 ‘89’년이라는 연도는 그전 시대 20년을 특징지었던 1968년 혁명의 좌파 유토피아주의와 ‘68 세대’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한다(68을 물구나무 세우면 89가 된다).
이 책은 ‘68’ 시대정신의 아이콘인 하버마스의 사회비판이론을 그와 동시대를 살면서 치열하게 대결했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의 ‘사회적 체계이론’으로써 뒤집으려는 시도이다. 한국의 독자들은 이 책에서 한때 배타적으로 한국사회를 지배하던 하버마스와 비판이론이 ‘사회적 체계이론’에 의해 어떻게 해체되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사회적 문제들이 사회적 운동을 야기한다”(하버마스/비판이론)가 아니라 “사회적 운동들이 사회적 문제들을 야기한다”(루만/체계이론)는 정반대의 패러독스로 우리는 비판이론을 재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 책에서 우리는 뉴미디어 시대에 이루어지는 범세계적 커뮤니케이션을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지식사회의 문제점과 그 맹점, 인간과 철학, 미학과 종교의 주요 문제를 어떻게 ‘통섭적’으로 접근하여 인간과 사회의 자기이해를 위한 좌표를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은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뉴미디어의 세계와 트렌드들을 철학적 인문학의 정확한 개념과 잣대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용 소개
? 사회적 체계이론과 세계커뮤니케이션

이 책은 독일 사회학계에서 하버마스와 쌍벽을 이루는 니클라스 루만(1927~1998)의 사회적 체계이론에서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먼저 루만은 사회가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고 본다. 그 때문에 사회를 인간 또는 주체의 의지나 행위로 설명하는 기존 철학과 사회학에 다른 입장이다. 그 대신에 루만은 사회를 커뮤니케이션의 체계로 규정하고, 커뮤니케이션의 자기생산(autopoiesis)을 인간 행위나 구조에 앞서는 사회의 작동과정으로 본다. 즉 사회는 인간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 또 커뮤니케이션은 인간이나 의식이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커뮤니케이션 자신이 한다는 것, 커뮤니케이션의 자기생산이라는 것이다(“커뮤니케이션이 커뮤니케이션한다”는 명제).
둘째, 루만의 관찰 결과에 따르면 현대사회는 흔히 우리가 생각하듯 국가나 영토로 나누어져 있거나 계급이나 계층으로 나누어져 있지 않고, 이런 양태는 주된 분화가 아니다. 현대사회는 경제·정치·법·학문·예술 등 각자 고유한 코드와 프로그램이 있는 기능적 부분체계에 의해 분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모든 종류의 사회적 경계는 커뮤니케이션의 자기 지시적 재생산에 의해 표시된다. 따라서 물리적 환경의 차이와 인격적 구별을 넘어선 매스미디어와 같은 확산매체의 발전이 낳은 사회구조의 변동은 이미 커뮤니케이션의 도달 범위를 영토나 인간 집단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게 했다. 그래서 기능적으로 분화된 단위로서의 현대사회는 유일 세계사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계사회는 흔히 세계화(글로벌화) 논의에서 말하는 초국적 기업이나 물류의 확산 같은 것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커뮤니케이션 체계의 자기진화에 따른 결과이고 인터넷은 그 정점에 있다.
셋째, 루만은 현대사회의 하위체계는 탈도덕적이라 보며, 사회(문제)를 다시 도덕에 근거를 두려는 것은 좋은 일이라 보지 않는다. 도덕적 커뮤니케이션과 도덕적 코드의 과잉이 오히려 화해할 수 없는 적대적 충돌과 파국을 낳는다고 본다. 따라서 루만은 도덕에 대해 사회학적 반성을 수행하고 윤리학을 도덕의 기초를 놓는 이론이 아니라 도덕에 대한 반성이론으로 간 주한다. 그 때문에 사회비판을 위한 규범적 척도를 강조하는 하버마스의 비판이론과 충돌하 는 것은 불가피했다.

이와 같이 볼 때 하버마스(비판이론)와 루만(체계이론)의 차이는 한마디로 하버마스가 사회 를 계몽하려는 ‘뜨거운 실천가’이고, 루만은 사회에서 배우고 사회를 관찰하려는 ‘차가운 이 론가’라는 점에서 부각된다. 루만 이전의 대부분의 근현대 철학들은 ‘주체’ 개념을 상정했다. 가령 하버마스는 근대적 주체의 ‘수정’에, 푸코는 주체의 ‘사망’에 초점을 맞추었던 반면, 루 만은 아예 주체를 배제하고 체계를 관찰하기만 했다. 이 ‘관찰하는 체계’가 체계이론의 근본 이다. 하버마스가 커뮤니케이션을 실행할 합리적인 주체를 설정했지만, 루만의 체계이론에서 는 커뮤니케이션을 실행하는 것은 주체가 아니고 커뮤니케이션 그 자체이다. 루만은 사회로 부터 그 주체라고 일컬어지는 인간을 추방함으로써 근대 철학의 유산과의 청산을 시도했을 뿐만 아니라, 그럼으로써 결국 인간을 구출하려 했다.
이 책에서 저자 볼츠 교수도 루만의 연장선에서 근대적 주체를 배제하기 때문에 비판이론 의 토대인 주체의 비판과 이성이라는 그 전제 자체를 의문시한다. 이 개념들로는 더 이상 오 늘날 참가 주체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커뮤니케이션과 그것이 구성하는 사회적 체계들과 세계 사회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세계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말은, 민족주의와 마르크스 주의 등 거대담론의 종말 이후 경제의 세계화, 국민국가의 종말과 정치의 초국가화, 디지털 네트워킹 등 트렌드를 지칭하는 미디어 이론적 개념이다. 그리고 이 세계란 이미 200년 전 현대의 시대정신으로부터 더 이상 생산(프로메테우스)이 아니라 전달(헤르메스)의 시대라는 것이 다. 오늘날 이 세계커뮤니케이션 망은 월드와이드웹(www)의 형태로 촘촘히 구현되어 있다.

이 책에서 바탕으로 깔고 있는 루만의 체계이론은 ①사회를 전적으로 커뮤니케이션 과정 들로 구성된 것으로 파악하고(커뮤니케이션에서 행위와 주체의 배제), ②커뮤니케이션에서는 인간을 배제하거나 인간을 ‘응고된 우연성’으로 기술한다(방법론적 반휴머니즘). ③사회는 커뮤니케이션 체계이고 커뮤니케이션의 자기생산이 구조나 행위에 앞선다. 즉 계속 연결되는 커뮤니케이션의 자기생산이 중요하다. ④ 공간이나 인간으로부터 독립 분화된 커뮤니케이션 체계의 진화에 따른 귀결이 모든 가능한 커뮤니케이션들의 전 지구적 전체로 이해되는 ‘세계사회’ 개념이고, 이 진화는 최근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진 전자미디어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 책의 주요내용

1) 국가, 법체계 그리고 정치 등 사회의 근간이 무너지는 시대에는 미디어가 사회에 대 한 근본 신뢰를 창출한다. 안전과 신뢰는 점차 사라지고, 그 대신 미디어와 미디어에 의한 지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