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달궁 비트 (빨치산대장 최정범 일대기)

지리산 달궁 비트 (빨치산대장 최정범 일대기)

$16.77
Description
“나는 세상과 타협한 빨치산입니다.”
아무도 기록하지 않고 기억하려고 하지 않은 기록
된소리와 거센소리로 이루어진 투박하고 거친 단어 ‘빨치산’. 한국 현대사에서 이 단어는 왠지 그 발음처럼 부자연스럽고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그들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일상의 언어에 편입하는 것조차 약간의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책 제목의 ‘비트’는 비밀아지트의 줄임말이다. 당시 빨치산 대원들이 흔히 썼던 은어다. 이 달궁 비트를 거점으로 활동했던 수기의 주인공 최정범은 한때 ‘빨치산대장’으로 불리며 국가를 상대로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혁명은 몇 년 뒤 허무하게 중단되었다. 군경에 붙잡힌 그가 택한 길은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격렬하게 싸웠던 세상과 타협해 자신을 지우며 그 세상의 일부가 되는 일. 이제 그들은 산이 아닌 세상에 스며들어 갔다.
수기는 전북도당 남원군당 유격대가 몰락하기 전 2년 남짓의 짧은 투쟁기를 그리고 있다. 그들은 왜 산에 들어갔고 어떻게 세상에 끌려 나왔는가? 아무도 기록해주지 않고 기억하려고 하지 않은 이 기록이 그 질문에 답해 줄 것이다.
저자

강동원

1953년전북남원시덕과면사율리602번지에서출생했다.덕과초등학교,남원용성중학교,전주상업고등학교(현전주제일고)를졸업하고경기대학교에서정치학박사학위를받았다.1985년민주화추진협의회김대중공동의장비서,1987년평화민주당재정국장,1991년전북도의회의원,1998년새정치국민회의후원회사무총장,2001년노무현대통령후보조직특보겸전북본부장,2003년개혁당전북도당상임대표,2010년국민참여당종로지역위원장을지냈다.2007년농수산물유통공사상임감사시절‘전자감사시스템’을개발하고발명특허를출원해참여정부의공공기관혁신을주도했다.2008년러시아우수리스크에서한국의인탑스(주)가투자한‘아로-프리모리에’초대사장으로2년간해외농업에종사했다.2011년통일부신진학자,상지대학교북방농업연구소책임연구원으로통일한국의식량문제를연구했다.제19대국회의원을지냈다(전북남원·순창).
논문으로「남북이상생하는농업협력방안연구」(2007),「러시아연해주에서의남·북·러농업협력방안연구」(2011)등다수가있다.지은책으로?제가바로무능한낙하산입니다?(2007),?통일농업해법찾기?(2008,공저),?공기업판도라의상자1·2?(2009),?철밥통공기업?(2011),?연해주농업진출의전략적접근?(2015)이있다.

목차

구술자의글:만인이차별없이평등한세상
엮은이의글:왜지금최정범인가

1.일제강점기,난이렇게살았다
소작인의아들,세상을간평하다/열네살,징용,평안도/징용영장,이번에는홋카이도로

2.어지러운해방정국
내가꿈꿨던세상/포고령위반,소년원에수감되다/좌익인줄모르고속아서시집왔다?

3.6·25전쟁,그격랑속으로
나는인공기를들었다/인민재판에선사람들을구명하다/9·28후퇴,결국빨치산의길로

4.우리의아지트지리산달궁
회문산에서지리산으로/보급투쟁,정령치를넘고넘어/아무도우리에게빨치산이되라고말하지않았다

5.남조선해방의꿈은멀어져가고
수력발전용제너레이터를확보하라/산내해방투쟁/토벌군의추격을피해운장산으로/돌고돌아다시지리산으로

6.필사의도주
가족상봉,그러나다시산으로/치명적인부상을입다/피체(被逮):안녕,지리산!

7.좌절,그러나세상속으로당당히
나는전쟁포로였다/4년만에신행길에오른아내/세상과타협하다

부록:최정범연보

출판사 서평

자신을지워가는노병들

“최정범씨,세상이달라진것몰라요?”1961년5월의어느날,일단의사복경찰이들이닥쳐최정범을잡아갔다.일개제방공사현장감독으로있던그는영문을모른채묵묵히경찰의뒤를따라나섰다.쿠데타에성공한군부는혹시모를내란을방지하기위해전국각지의주요인물들을위험인물로재분류했다.그리고그들을모조리잡아들여내란초기며칠동안구치소에유폐시켰다.이른바‘예비검속’이었다.예비검속대상자명단에는최정범도포함되어있었고그의이름비고란에는‘전직빨치산간부’라는단어가적혀있었다.
한때빨치산은호시탐탐국가전복을시도하던위협적인존재였다.쿠데타당시빨치산은이미사라진상태였지만이제막권력을손에쥔군부에게과거빨치산활동을한‘불순분자’들은여전히두려운‘적’이었다.그가밤중에끌려간구치소라디오에서는박정희군부의‘혁명공약’이반복적으로흘러나왔다.본격적인반공의시대가시작되었고,이제다시한번빨치산전사들은피의자신분으로군부에의해핍박을당해야했다.

‘빨갱이’라는낙인이찍힌최정범을비롯한수많은빨치산노병들은자신들의역사를지우기위해여당후보의선거를돕거나삐라를돌려야했다.그들은그렇게세상에녹아들어가그토록타도하려고했던그세상의일부가되었다.정치인들의선거운동에동원되어삐라를돌리던그들은어떤생각을하고있었을까.최정범의술회는생각보다담담하다.

전선에서총성이사라지고공식적으로종전이선언된직후나는‘대한민국’이라는,그동안내가인정하기싫어투쟁했던질서속으로온전하게유입되었다._230쪽

흥미롭게도당시내가선거운동을하고돌아다녀야했던곳은주천,산내,아영,운봉,동면,이백,산동,보절등빨치산활동을하던시절에보급투쟁을다녔던지역들이었다.그동안그토록타도하려고투쟁했던남쪽정가의보수정치인에게표를달라고떠들면서그런지역들을누비고다녔으니완전한자기모순이었다._245쪽

그래도그때는죽창이라도있었다

최정범의삶은한국근현대사의축소판이자자화상이다.간평일이되면마름앞에서아무말도하지못하고굽실거리던부모의표정이그가만난세상의첫얼굴이었다.그시절열에아홉은굶주리고헐벗은소작농이었다.그나마머리가잘돌아가고눈치가빠른이들은재빨리지주에게붙어중간에서착취자구실을하며지주의손발이되었다.가진것도없고눈치도없던절대다수의사람들은1년간의소출이결정되는간평일이되면손발을모으고머리를조아려야했다.어린최정범의눈에비친어른들의세계는엉망이었다.
이런극심한빈부격차가조선반도천지에널린수많은어린‘최정범들’의일상세계를지배했던사회경제적조건이었다면,친일파의경제적·사회적·정치적지위를그대로인정하며집권한이승만정권은최정범이속한정치세계의본질이었다.이승만과그의추종자들은여러가지정략적인이유로독립운동가들을탄압하고오히려친일파를우대했다.일제의경시서는경찰서라는이름으로명칭만바뀌었을뿐,그곳에는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들을투옥하고구타했던경찰관들이그대로앉아있었다.이제그들의곤봉과수갑은가난한평민들을향해무소불위의권력을휘두르게될터였다.친일을했던이들은다시기용되어경찰이되었고세상은아무것도변하지않았다.

이백면에도경찰지서가생겼다.그런데더기가막힌것은일제강점기에일본군에빌붙어경찰노릇을하던자들을대부분그대로다시기용해각지서에파견했다는사실이다.인민위원회가지하로숨어들자대한독촉을포함한우익단체의행동대원들은미군정의비호아래거침없이활보하면서공포분위기를조성했다.경찰에서도인민위원회에가담해활동했던사람들을포고령위반명목으로잡으러다니느라혈안이었다._61쪽

최정범에게,아니그시절빨치산으로입산한수많은공산주의자에게그모습은견딜수없이역겹고슬픈현실이었다.그들은이승만을피해,자유당을피해,제국주의를피해지리산에들어갔다.지리산의거대한생태계안에서그들은자율적인질서를구축해수년간연명했다.춥고배고팠지만그들에겐만인이차별없이평등한세상이도래할것이라는확신이있었다.그리고그들의손엔누가쥐어준것이아닌,스스로깎아만든죽창이들려있었다.

입산:지리산달궁비트

그러나최정범은공산주의이론가는아니었다.단단한사상무장과바위같은이론이그에겐없었다.남들보다좀더오래걷고빠르게숲을오갈수있는튼튼한심장과두다리를지녔을뿐이다.그에게사회주의는‘만인이차별없이평등한세상’이었다.누구나열심히일하고그소득을모두가공평하게나눠갖는사회.이단순한명제를실현할사상은사회주의말고는없었다.당시평범한절대다수의생각과동일했다.최정범이산에들어간이유도평범했다.
이런그가지리산에입산해활동한시기는6·25전쟁직후몇년간이었다.한반도남부의거의모든빨치산이그시기에처음등장했고사라졌다.한때우파정권의존립을위협했던가장불온한세력이었던빨치산은그들의치명성만큼이나빠르고신속하게소멸했다.남원과하동군사이를비집고들어앉아있는지리산은그격렬한몇년동안빨치산들의든든한보금자리였다.최정범은이지리산에서빨치산유격대를이끌고2년남짓‘보투’를지휘했다.

“갑시다.”“어디로요?”“어디든일단왔던길로다시갑시다!”우리는다시뱀사골쪽으로향했다.또다시고단한행군이시작되었다.의미도목표도희망도찾을수없이,그저떠밀려가는행군이었다.우리가당면한과제는죽지않는것이었다._180쪽

그는그투쟁동안세번의총상을입었으며그중한발은그의발목복숭아뼈를산산조각냈다.그들의혁명역시조각난복숭아뼈처럼흔적도없이뭉개졌다.빨치산의역사는혁명의역사상가장처절하게실패한역사가되었다.

하찮고쓸모없는수기

전후미소양국의대립속에서한반도에는어느한쪽의완전한승리를뜻하는통일보다는두세력이힘의균형을맞출수있는긴장감이강요되었다.그렇게남한의역사가시작되었다.아무것도청산하지못한채대한민국의현대사가요란스럽게출범했다.빨치산들은스스로를세상에억지로끼워맞추며삶을이어갔다.우리에게빨치산의역사는극렬하고광신적이었던이교도의모습을한박물관의전시물이거나그런것이존재했는지조차가물거리는‘없는존재’일뿐이다.된소리와거센소리로이루어진투박하고거친‘빨치산’이라는단어처럼그들의역사는왠지한국현대사에서부자연스럽고이질적인존재로여겨진다.그들을입에올리는것조차,일상의언어에편입하는것조차약간의결단과용기가필요하다.
자유와평등.촌스럽고빛바랜두단어가이책의주제다.우리에게이두단어는두가지의미로식상하다.첫째는우리가평등하고자유롭게살고있다는거대한착각속에빠져있기때문이고,둘째는이제어느누구도평등과자유라는가치가현실에존재할것이라고믿지않기때문이다.반세기전,익명의빨치산유격대원들은‘차별없이만인이평등한세상’을꿈꿨다.하지만2016년지금달라진것은아무것도없다.야권의주요정치인이종북프레임에걸려출마권을박탈당하거나시민단체의건실한청년이빨갱이라는별명을얻고쓸쓸히퇴장하는모습은21세기의대한민국에서도여전히발견되는일상이다.
‘오른쪽’의세상에서최정범을읽는다는것은,어느빨치산노병의삶을복기한다는것은,어쩌면백해무익한쓸데없는짓일지도모른다.하지만우리는최정범의수기를읽음으로써갈무리되지않은한국사의민낯을바라볼수있을것이다.그리고지금살고있는시대와사회가과거에비해한발자국도나아가지못했음을,아니오히려더평등하지못한세상으로차갑게얼어붙었음을확인할것이다.그것이독자에게이하찮고쓸모없는수기를권하는이유다.

※지리산달궁비트
지리산은6·25전쟁을전후로해전라도지역의빨치산들이머무르며투쟁을벌였던역사적인공간이다.그중에서도달궁은김지회(金智會)와홍순석(洪淳錫)이토벌군에쫓겨숨어든은신처였고,전후에는지리산빨치산남원군당이은거한아지트였다.지리산달궁비트에서‘비트’는비밀아지트를줄인말이다.당시빨치산유격대원들은지명뒤에‘트’자를붙여‘뱀사골트’,‘달궁트’라고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