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푸레디가이매혹적이고쉽게읽을수있는
―그리고혼란스럽게만드는―책에서분명하게밝히듯이,치료요법은실제로새로운‘인민의아편’이다.
_버지니아아이언사이드(virginiaIronside),《인디펜던트》
『치료요법문화』는영미권사회에서치료요법적정명이미치는강력한영향력을탐구한다.최근몇십년간실제로삶의모든영역이새로운감정문화에예속되어왔다.푸레디는최근의이러한감정영역으로의문화적전환이인간임을근본적으로재정의하는것과함께일어나고있다고말한다.점점더취약성이사람들의심리를규정하는특징으로제시되고있으며,‘위험에처한’,‘상처받은삶’또는‘감정적손상’같은용어들이사람들에게유례없는무력감을불러일으키고있다.푸레디는치료요법적전환을감정으로의문명화된전환으로바라보는,오늘날널리받아들여지고있는테제에의문을제기한다.그에따르면,치료요법문화는감정의관리라는새로운방식으로우리에게순응을강요한다.치료요법문화는감정프리즘을통해일상생활의문제를틀지음으로써사람들로하여금무력하고병들었다고느끼게한다.푸레디는대중문화,정치,사회적삶에서진전되고있는치료요법적전환에대해개척자적분석을하고있다.
역자의변,therapy라는용어를우리말로어떻게옮길것인가
어쩌면독자들은이책을마주하자마자책의제목에생소해하거나어색한느낌을가질지도모른다.이책을번역한옮긴이에따르면,책제목에포함되어있는therapy라는용어를우리말로어떻게옮길것인가를두고고심을거듭했다고한다.기존번역서에서는‘치료’,‘치료법’,‘치유’,‘치유법’등으로옮기거나,복합명사로사용될경우‘요법’―심리요법,식이요법등―으로번역하거나,아니면아예영어를그대로읽어‘테라피’로표기하기도한다.
앞의우리말용어들은therapy와유사한의미로사용되기도한다.하지만그러한용어들로는논자에따라서는therapy와의도적으로구분하여사용하기도하는용어들인treatment,cure,healing과구분할수없다.이책에서저자푸레디는therapy는치료법(treatment)으로장려되기도하지만치료법이아니라는입장을견지하고있다.또한therapeutist들은therapy를치유(healing)의하나의방법,즉전문가들에의해수행되는치유로파악한다는점에서therapy와healing은이책에서동일한의미로사용할수없다.따라서치료또는치유라는용어는이책에서사용하는therapy의의미에부합하지않는다.요법이라는용어는앞서의예와같은복합명사로사용할경우그의미를잘전달하지만,독립적인단어로사용할경우그의미가잘다가오지않는다.더군다나이책의제목처럼‘요법’이라는단어와‘문화’라는단어가결합할경우매우어색하다.
따라서대안이있다고한다면,그것은therapy를우리말로번역하지않고그냥테라피라고표기하는것이다.하지만이책에서는therapeutic,therapeutist,therapeutics등therapy의파생어들을함께사용하고있어,테라피라는용어들을사용할경우그러한용어들을우리말로표기하는데서더더욱어색함을초래한다.그리하여궁리끝에중복언어임에도불구하고역자가새로선택한것이‘치료요법’이라는말이다.논란의여지가있는용어이지만,아직은더좋은표현을만들지못함을양해해달라는역자의전언이있었다.
그렇다면이책에서치료요법이란무엇을의미하는가?이책의저자푸레디도치료요법에토스가아직형성과정중에있다는점을이유로들며,그것을정의하기를망설인다.다만그는로버트벨라의정의를인용하여,치료요법은“심적장애를치료하는하나의방법이라기보다는하나의사유방식”이라고언급한다.푸레디에따르면,“이러한사유방식이개인과치료요법사간의관계를인도하는것에서다양한이슈들에관한공중의인식들을틀짓는것으로확대될때,그문화는치료요법적이된다.그지점에서그것은임상기법이기를중단하고주체성의관리를위한하나의도구가된다.”이러한논의에분명하게암시되어있듯이,이책에서푸레디가관심을가지고있는것은“임상기법으로서보다는하나의문화적현상으로서의치료요법”이다.
‘치료요법문화’란무엇인가?
그렇다면‘치료요법문화’란무엇인가?푸레디에따르면,‘감정주의로의전환’으로특징지어지는치료요법문화는감정에권위를부여하고,감정프리즘을통해세상을이해한다.푸레디는이러한치료요법적사유방식의작동을영미사회도처에서찾아낸다.먼저정치영역을보자.정치인들은특정한사건을어떻게‘인식’하는가가아니라어떻게‘느끼’는가에의해평가받는다.이를테면9·11직후미국공중은조지부시의눈에맺힌눈물을본후그에게지지를보냈다.정치인들역시대의와신념보다는감정표출―특히눈물―을통해유권자에호소한다.그리고유권자들또한그도우리와같은슬픔을가진사람이라고느끼고동정심을드러낸다.영국의경우산업세계에서도치료요법은“경영통제권을유지하는강력한도구”로작동한다.경영자들은피고용자들을해고하고그들의생존적불안을해소하는방법으로해고자들에게카운슬링을제공하는것으로그들의의무를마감한다.노동조합들은단체교섭을통해의미있는이득을만들어내는것보다스트레스로감정적고통을받는조합원들을위한보상을받아내는일에더집중한다.
이처럼감정은치료요법문화에서중심적지위를차지한다.그러나치료요법문화가그간사회인식에서무시되어온감정을문화적으로복원하고자하는것은아니다.푸레디에따르면,치료요법문화는감정그자체보다는‘감정적결함’에관심을가진다.치료요법적세계관에따르면,개인과사회가고통을받는것은감정적결함때문이다.이를테면어린시절의학대경험이낳은트라우마는‘평생의상처’로남아개인의삶전체를지배하고,또다른학대와범죄의원인이된다.이러한‘감정결정론’은현대사회가직면한문제중많은것이감정상태에서기인하는것으로파악하게한다.그결과처리되거나관리되지않은감정은사회를괴롭히는질병의원인으로간주되게된다.이러한감정적결함의담론은나쁜감정을‘병리화’하고,치료요법의대상이되게한다.
치료요법적자아,‘축소된자아’
이러한감정에대한관심은치료요법문화에서자아,특히‘감정적자아’에주목하게한다.치료요법학의관점에서볼때,자아는내적인감정적삶의경험을통해의미를획득한다.윙클의표현으로“나의감정이나에게말하고있는것이나이다.”이렇듯치료요법문화는감정영역을‘진정한자아’를발견할수있는장소로인식한다.따라서치료요법은“감정적자기발견을통한자아재구성프로젝트”로자신을채색하기도한다.하지만푸레디에따르면,치료요법문화는자아를유례없이취약하고무력한것으로인식하게하는데일조할뿐이다.왜냐하면감정적결함을통한자아의식은불확실성의시대에실존적불안감을강화하고,자신의행동을문제있는것으로느끼게하고,스스로움츠러들게만들기때문이다.
이렇게구성된치료요법적자아,즉‘축소된자아’는자신들의문제를스스로극복할수없는‘취약한주체’가되고,그러한시도를하는개인은‘완벽주의자콤플렉스’에빠진사람,다시말해치료요법적개입이필요로하는사람이된다.반면자신의감정적결함을세세히드러내고치료요법전문가에게도움을요구하는사람은치료요법의세계에서‘용감하고’‘솔직하고’‘강한’사람으로칭찬받는다.푸레디에따르면,치료요법문화는결국끝없이자기계발을강조함에도불구하고적극적이고자율적개인이아닌수동적이고의존적개인을만들어낸다.
치료요법적전환이초래한문제들
푸레디는계속해서이러한치료요법적전환이초래한문제들을사회학적으로명쾌하게분석한다.그중하나가사적영역의병리화내지해체이다.전통적으로사적영역은친밀성과자기표현그리고자기탐색이이루어지는장소이자,감정형성의핵심적장으로인식되어왔다.반면치료요법적세계관에따르면,사적영역은(특히여성과아동에게)내밀한폭행과학대가가해지는장소이자감추어져있는공간이다.이렇듯사적영역이병리화되고범죄의공간으로상정됨에따라이제사적영역은‘공적감시’내지치료요법적관리의대상으로바뀌게된다.또한사적영역의친밀한관계가감정적고통의원천으로간주됨에따라비공식적관계는자아를증진시키기보다는위험을내재한관계로인식되고,친밀한관계에서까지불신의분위기가지배하게한다.따라서자아를지키기위해서는타인과거리를두어야만한다.타인으로부터의자기소외는이제근대인의감정적손상의원인이아니라자기생존의원리가된다.이렇듯치료요법에토스는연대의해체를넘어인간불신의문화를조장한다.
푸레디의분석에따르면,이러한취약하고소원해진자아가취하는치료요법적생존전략이‘감정적순응’과‘인정의정치’이다.먼저치료요법적사유방식을따를때,취약한자아의이면에는개인들이조절하거나다스리지못한부정적감정이자리하고있다.따라서감정관리는자기계발의중요한기제가된다.그러나무력한주체는자기계발의주체가될수없다.왜냐하면그러한개인은부정적감정을스스로극복할수없고,그러한감정을유발한사회적조건을개선할수는더더욱없기때문이다.그렇기에취약한자아는공적제도와치료요법의대상이될수밖에없고,그것들에도움을구해야만한다.그리고치료요법은감정교양의함양이라는이름하에그리고자존감고취라는명분아래개인들에게사회에감정적으로순응할것을강요한다.그리하여결국치료요법의자기발견프로젝트는사회에대한감정적순응의강요로귀착되고만다.
다른한편취약한주체가느끼는실존적불안은자아로하여금계속해서긍정받고싶어하게한다.하지만특정한성과와공적행동이없는취약한주체의경우공적으로인정받을수있는그들만의독특한자산이존재하지않는다.그들에게인정받을수있는자원이있다면,그것은감정적상처이다.왜냐하면무력한그들은어찌할수없는상황의희생자들이기때문이다.따라서그들의지위를인정받을수있게해주는유일한것은자신들이고통받는희생자내지피해자또는환자라는것이다.푸레디는이것이바로치료요법문화에서‘희생자정체성’이중요한무기가되고,또희생자옹호자들이그무기를전략적으로개발하는이유라고설명한다.
치료요법은잠시고통을잊게하는,“새로운‘인민의아편’이다”
푸레디에따르면,이러한치료요법의세계에서정부의일역시변화한다.국민들의엄청난감정적상처가유발하는사건에대해정부는그사건의진상을규명하고그것의재발을방지하는조치를취하기보다는그사건에의해상처받은사람들에게피해자의지위를부여하고피해자들의트라우마를치유하는것을돕는일에서그것의존재이유를발견한다.또한경제영역에서도정부는새로운일자리를창출하는것보다실업자들이‘실업이라는곤경’에대처할수있도록돕는쪽에훨씬더많은에너지를투여한다.
이러한분석을통해푸레디는오늘날의치료요법은“계몽을이룰수있는수단이라기보다는생존의도구”라고결론짓는다.치료요법은오늘날의허약한자아를만들어낸조건을고치고개선하는것이아니라고통받는개인들에게“긍정과인정이라는모호한축복”을제공할뿐이다.푸레디가직접표현하고있지는않지만,이책에대한한논평자의말을인용하면,치료요법은잠시고통을잊게하는것,다시말해“새로운‘인민의아편’이다.”
치료요법문화를통한현대문명비평
지금까지푸레디의논의는앞서도언급했듯이영국과미국의경우에근거한것이다.그럼에도불구하고이책을통해고통과힐링사이를헤매는수많은한국인들,끝없는자기계발의노력을경주함에도항상허전함에빠져있는청년들,세월호이후의대통령눈물논쟁과그원인은애써외면하며생존자트라우마치유에허둥대던정부와심리전문가들이거듭교차하는것은왜일까?한국사회도지금치료요법문화의지배를받고있는것일까?한국정부도치료요법정치를하고있는것인가?치료요법문화를통한현대문명비평이라고할수있는이책은우리와같은관심을공유한연구자들에게중요한단서를제공할수있을것으로기대된다.그리고자기계발서를통해자아찾기에전력을다하면서도무력함과허무함을느꼈던수많은사람들에게는이책이그러한‘노오력’이왜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