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같던 청춘, 회문산 능선 따라 흩뿌려지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의 기록: 호남·제주 편)

꽃 같던 청춘, 회문산 능선 따라 흩뿌려지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의 기록: 호남·제주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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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기자가 발굴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사
그 첫 번째 기록, 호남·제주 편

‘창쟁이’라는 말이 있다. 1950년을 전후로 해 한반도 전역에서는 무수한 작은 전쟁이 벌어졌다. 총알이 부족했던 시기라 학살의 가해자들은 대나무를 뾰족하게 깎아 만든 창으로 민간인들을 찔러 죽였다. 사람들은 자신이 죽는 이유도 모른 채 컥컥거리며 쓰러졌다. ‘창쟁이’들은 그런 일을 하도 많이 겪었는지 무표정한 얼굴로 다음 학살지로 이동했다.

『꽃 같던 청춘, 회문산 능선 따라 흩뿌려지다』는 기자 정찬대가 호남과 제주 지역의 민간인 학살 사건 생존자와 희생자 유가족을 만나 60여 년 전 벌어진 민간인 학살사를 엮은 책이다. 호남·제주, 영남, 강원, 충청, 서울·경기를 아우르는 프로젝트 중 첫 번째 기획인 이 책은 영암·구례·화순·함평·순창·남원·임실·제주 등 호남과 제주 지역 여덟 곳에 골골이 밴 학살의 기록을 담았다. 그 이야기 속에는 불에 태워 죽이고 창으로 찔러 죽이고 일본도로 목을 쳐 죽인 폭력의 역사와 함께, 그럼에도 여전히 화해를 갈구하는 희생자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저자

정찬대

1976년전남영암에서출생했다.조선대학교신문방송학과를졸업한뒤시사월간지정치부기자로언론계에첫발을내디뎠다.이후다양한매체에서정치현장의기록자로지내왔다.2015년인터넷매체≪커버리지≫를창간했으며,≪프레시안≫을비롯한여러매체에기사와칼럼등을쓰고있다.“한국전쟁,민간인학살의기록”은저자의고향인영암에서발생한민간인학살사건에대한궁금점에서출발했다.이후2007년,여순사건과관련해전남구례지역민간인학살사건을취재하면서이문제에더욱천착하게됐다.현재전국을다니며관련사건을취재·발굴중이며,성공회대학교한홍구교수와함께『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작업에참여중이다.성공회대학교민주자료관객원연구원으로활동한바있는저자는‘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수집자료를정리·분석하는작업을도맡기도했

목차

추천의글_그의‘학살’,글이상의아픔과분노를담다(성공회대학교한홍구교수)
들어가며_‘한조각’역사,애달픈꽃처럼살다가다

1장영암:달밝은월출산은그렇게목놓아울어댔다
좌우익분풀이가불러온광분의‘집단학살’

2장구례:지리산품은구례의한,섬진강따라굽이치다
좌우대립정점에서‘학살의피’흘린사람들

3장화순:골골이서린상흔,어찌말로다하리오
인민군복장한국군,대량학살불러오다

4장함평:불갑산꽃무릇에배인선불의절규
5중대의인간사냥,그리고마지막살육‘대보름작전’

5장순창:꽃같던청춘,회문산능선따라흩뿌려지다
패잔의기록,빨치산투쟁과조선노동당전북도당

6장남원·임실:그들이겪은것은‘진짜전쟁’이었다
이데올로기사슬에순장이된사람들

7장제주:미안해서,그리고가엾어서나는울었다
이승만과미국의협잡,제주는‘붉은섬’이됐다

한국전쟁민간인학살연표:호남·제주편
참고한자료
구술자명단

출판사 서평

당사자구술로엮은
한국전쟁민간인학살사

“장개석총통이말한것처럼명주베에붉은물이들면빨아도빠지지않아.어린놈머리통에빨갱이물이들면별수없어,그냥죽여야해.”_162쪽,5장순창

지난2015년에시작하여얼마전에연재를마친동명의연재물을바탕으로,취재지역을추가하고문장을다듬어단행본으로출간한『꽃같던청춘,회문산능선따라흩뿌려지다:한국전쟁민간인학살의기록(호남·제주편)』은‘아무도기억하지않지만누군가는반드시남겨야할어떤기록’에대한문제의식에서시작된책이다.
전북임실군강진면호국로에위치한국립임실호국원에는한국전쟁에참전한군경은물론국가를위해목숨을바친호국지사의유해가안장되어있다.그러나이추모의공간옆에는,반대로국가에의해무참히살육된민간인들의넋도함께웅크리고있다.1951년3월14일,임실의한폐광굴에남산리마을주민700여명이갇힌채시커먼어둠속에서불안에떨고있었다.군경은양쪽에서입구를틀어막은뒤한쪽입구앞에서고춧대,솔잎등을태운연기를굴속으로들여보냈다.숨을참지못하고기어이바깥으로뛰쳐나온주민을기다리고있는것은군경의기관총이었다.이날700명이넘는민간인이굴안에서죽었다.국가는이들의죽음에대해어떤의견도내놓지않았다.바로오른편언덕위국립임실호국원에는태극기가위태롭게흔들리고있었다.

갈전리에서만난류씨의팔은참혹했던당시의흔적이고스란히배어있었다.총상자국은깊게패어있었고,힘줄이끊겼는지손은불구가돼펴지지않았다.……그는“시체속에서아기가울더라고,그러더니‘이놈들봐라’하면서군인들이다시확인사살을하는거야,그통에다죽었지”라고말했다.당시상황을회고하는류씨의표정은무척이나힘들어보였다._95~96쪽,3장화순

병사들은이미죽은시체의머리통에콜트45구경권총을대고총질을했다.저자는한나아렌트의말을빌려한반도의군경들역시‘악의평범성’에매몰되어기계적으로학살에가담했다고설명한다.인간은원래이렇게악하고나약한존재였을까?그러나이런참혹한순간속에서도인간의용기는악을비집고튀어나왔다.

장년층을사살한기관총의가늠쇠는어느새여성쪽을향했다.그때였다.세살배기아이를등에업은나순례씨(당시29세)가갑자기뛰쳐나가더니총부리를틀어잡았다.방금전난사로총열은뜨거웠지만,나씨는아랑곳하지않았다.……“뭣땜시우리를죽인다요?아무죄없는우리를제발살려주시오.”공포감에떤채아무말없던몇몇주민과아이들이하나둘흐느끼기시작했다.냉혈한처럼보였던군인들도그모습에차츰동요하기시작했다.결국이날의학살은멈췄고,군인들은싸늘하게널브러진시체를방치한채급히철수했다._112~113쪽,3장화순

여전히역사와화해하지못한사람들

영암구림마을에는‘지와목사건순절비’가있다.1950년10월7일,빨치산인민유격대는야간에마을을기습해기독교신자와경찰가족등이포함된우익인사28명을지와목에있는주막에가두고불을질렀다.건물안에있던사람들은모두죽었고,며칠뒤군경토벌대에의해마을이수복되자보복학살이단행되었다.지와목에서죽은우익인사들을추모하기위해1976년한국반공연맹이주축이되어이곳에순절비를세웠다.그것이지와목사건순절비다.물론좌익으로몰려억울한보복학살을당한주민들을위한애도는없었다.“그래도좌익한테죽어서순절비도세우고그랬지,군경한테죽으면뭔말도못하고그랬다.”구림에서만난한주민의육성이다.그런데지난2006년왕인박사유적지맞은편에위령탑하나가더세워졌다.보복학살의피해자들을위한비석이었다.‘용서와화해의위령탑’이라는이름의이비문에는“가해자와피해자너와나낡은구별은영원히사라지고아름다운사람들의향기만가득하리오”라는문구가적혀있다.이렇게영암구림에는두개의서로다른추모가공존하게되었다.
순창에서만난서길동씨는낮에는태극기가,밤에는인민기가나부끼던시절마을뒷산굴밭등에서숨어목숨을건졌다.그는좌도우도아니었다.전북순창군순창읍에는수십년간이어진피의역사를묵묵히지켜본고택이있다.‘한정당(閒靜堂)’이라는편액이붙은이고택에는1950년겨울부터터를잡고살던문옥례씨가족이지내고있다.한국전쟁당시그녀는빨치산유격대원들에게밥을해줬는데,그녀가퍼준밥알에는물론한톨의이념도없었다.그녀의밥상에둘러앉은이들은그저평범한사람들이었고문씨는그런그들이가여워서넉넉하게밥을퍼줬다.책을읽다보면이데올로기의거대한각축장으로알았던한국전쟁이무척이나낯설게느껴진다.그곳에는이념도주의도사상도없었다.

70년세월을거슬러올라간문씨는“밥해주면그거먹으면서동무,동무그랬는데…….다들죽었을것”이라며안타까워했다.이는빨치산에대한연민도,동정도아니었다.격변과혼란의시대를함께관통해온이들에대한동질감같은것이었다._194쪽,5장순창

한국전쟁은느닷없이끝났다.무책임하게선포된평화는여전히‘작은전쟁’이벌어지고있던마을과는아무런상관없는문서속의단어일뿐이었다.“전쟁이그렇게대충끝났다.”일가족이몰살당한뒤산중생활을했던장재수씨가꺼낸말이다.2015년1월에화순군맹리에서만난임봉림씨는군경이길섶에사람들을?혀놓고총질을해댄당시를회상하며이런말을했다.“우리아부지들이그런시상(세상)을살았어.그런거생각하면짠해…….”희생자들은지나간폭력의시간을‘그런시상’이었노라고담담히눌러삼키고있다.희생자들은화해의손을내밀고있지만정작가해자인국가는외면하고있다.반쪽짜리화해다.2005년발족한‘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의해적지않은미규명피해사례가진실로규명됐지만,‘진실규명결정통지서’를받은후3년이내에소송을통해배상을받아야한다는규정을몰라신청기간을넘긴수많은희생자가어떠한배상도받지못하고있다.

퍼담지못한이야기가아직많다

정찬대가보고듣고기록한것은한국현대사의처참한살육의역사이지만,그안에는빛나는장면도담겨있다.일제로부터해방된이후군경요직에는여전히친일관료가즐비했다.당시정부는사회주의운동에참여한전력이있는주민들에게자발적으로‘좌익계자수서’를낼것을포고했는데,서북청년회등우익조직이중간에간여해자수서제출을강요했다.당시제주서귀포시모슬포지서장이었던문형순은서청의개입을막고자마을지서가직접‘좌익계자수서’를받도록지시했다.또공비협조자에대한밀고가있을경우‘그말에책임질수있느냐’며도리어제보자를겁줘억울한희생을막았다.

1950년8월30일성산포경찰서장시절에는제주해병대정보참모해군중령김두찬의‘예비검속자총살집행의뢰의건’공문을“不當(부당)함으로不履行(불이행)”이라고적어돌려보냈다.좌익에동조했다는혐의를덧씌워언제든총살될수있는상황이었지만문서장은괘념치않았다._297쪽,7장제주

하지만문형순서장의말년은불운했다.퇴직후보급소에서쌀배급업무를맡은그는제주대한극장매표원으로생계를이어나가다결국1966년6월20일제주도립병원에서홀로생을마감했다.그의무덤은현재제주시오등동평안도민공동묘지한구석에덩그러니놓여있다.아직까지그의죽음을,그가보여준용기를호명해준이는없다.
낙선동전략촌(제주4·3성)이야기도흥미롭다.제주4·3사건이후민심을수습한다는목적으로이승만정부는제주낙선동에대규모전략촌을육성한다.‘있지도않은적’을방비한다는명분으로주민을한곳에모아토성을쌓았다.물론축성은주민을효율적으로감시하고통제하기위한장치였다.아침6시에문이열리면밭에나가일을하고저녁6시가되면한사람도빠짐없이성안으로들어와야했다.식구중한명이라도못들어오면나머지가족이‘빨갱이’로몰려죽임을당했다.

낙선동‘전략촌’은사실상수용소나마찬가지였다.24시간성주변을감시했고,대창을든여성과노인,그리고어린학생들까지조를나눠번(보초)을섰다.여자는여자끼리,소년단은소년단끼리,노인은노인끼리조를짜는식이었다.모두9개초소에서5교대로운영됐으며,가장중요한정문보초는특공대가지켰다.물론남자들이대거희생된까닭에성을지키는일역시대부분부녀자와노인의몫이었다.성안은몇개부락이집단거주할수있는함바집과경찰지서·초소·통시(뒷간)등의시설물을갖추었고,심지어함덕초등학교선흘리분교까지마련됐다.새(억새)로엮은함바집은몸만겨우뉠수있는공간이다.비바람을막아주는게전부였다.통시의똥통이넘쳐풍기는악취는정말이지곤욕이었다.비오는날이면성벽주변(성벽따라15개가량통시가었었음)이온통똥물로질퍽거렸다.열악한환경탓에이질등전염병이돌았고,사망자가발생하기도했다._305~306쪽,7장제주

본문에서다룬민간인학살사건(호남·제주)을현대사의주요사건과함께시간의흐름대로살펴볼수있도록연표로정리해책말미에덧붙였다.또한각지역의학살사건과관련한주요공간을독자가한눈에조망할수있도록장마다지도를그려넣었다.책맨뒤에는취재에응해준피해유가족및학살생존자들의명단을출생연도·거주지와함께정리해넣었다.한국전쟁기구술사연구자들에게분명귀중한자료가될수있을것이다.
‘호국보훈’이니‘국가유공’이니하는이름으로박제된정사(正史)의시대속에서이책을읽는독자라면국군에의해온가족이몰살당했음에도국가로부터배상은커녕변변한사과한마디듣지못한피해유가족들의사연을읽으며,또는마을주민수백명이질식사한폐광굴옆에버젓이세워진어느국립호국원을바라보며역사의지독한모순에가슴이답답할것이다.편집말미저자는통화로아쉬운소리를했다.취재를하고도정리하지못한이야기가너무많다는것이었다.둘러보지못한지역도많다고했다.이런아쉬움때문일까,『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작업에참여중인저자는벌써다음지역취재를준비하고있다.앞으로이어질그의‘발굴’이기대된다.

성공회대학교한홍구교수추천사

역사(歷史)의‘사(史)’는역사를뜻하기이전에일어난일을기록하는사람,즉기사자(記事者)를의미했다.과거뿐만아니라오늘날의시대상까지담아내는자가사관(史官)이다.그날의학살을,지금의피해자를빗대문제의식을던져주고세상의변화를이끌어내는것.정찬대기자는그런점에서분명‘기사자’이다.누군가에게책을추천하는일은결코쉬운일이아니다.나에게좋은책이다른이에게좋으리란법도없다.또꼭그럴필요도없다.그럼에도나는정찬대가말하고자하는‘학살’에많은이들이주목해주길바란다.그것은우리의역사이며,아픔이자,상처이며,치유이기때문이다._‘추천의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