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광의 집 (조병옥 창작집)

발광의 집 (조병옥 창작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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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아픔을 살아내고서 비로소 부르는뜨거운 생명의 노래

수기 〈라인강변에 꽃상여 가네〉의 작가 조병옥이 10년 만에 창작집 〈발광의 집〉을 내놓았다.
작가는 첫 책 〈라인강변에…〉에서 박정희 정권이 조작한 세칭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전과자가 된 공광덕 박사를 사랑한 아내로서,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식민지와 전쟁을 온몸으로 겪어온 여성으로서,
분단 조국의 디아스포라로서 살아온 개인사이자 동시에 민족의 시대사를 드라마틱하게 증언하며 그 필력을 보여준 바 있다.
이번 창작집에 실린 글들은 작가 특유의 생동감 있고 편안한 문장으로 독자에게 가까이 다가선다. 고통을 고백할 때도 웃음을 잃지 않고, 절망을 앞에 두고서도 희망을 등지지 않는 진솔한 이야기가 읽는 이의 마음을 뜨겁게 울릴 것이다.
저자

조병옥

저자조병옥은이화여자대학교작곡과교수로10년근무하다독일로건너간다.
헤센주노동부장학금으로어린이조기교육을위한유리드믹스(Eurhythmics)과정을수료하고,5년간프랑크푸르트청소년음악학교에서리드믹스(Rhythmics)강사로일한다.
남편과사별하고로스앤젤레스로이주하지만미국을살아내지못하고1995년귀국한다.
이대유아교육학과,이대평생교육원,한국어린이육영회부속음악치료연구소등등으로강사봇짐싸들고전전긍긍하다가글을쓰기시작한다.
2006년체험수기『라인강변에꽃상여가네』를발표하면서‘글쓰기’에재미를붙인다.그렇게쓴글들로《한국산문》(구에세이플러스)가주는‘수필문학상대상’과《에세이스트》가주는‘올해의작품상’을수상했다.

목차

*여는글가을이좋거든가을에살거라ㆍ4

1부발광의집
꿈하나달랑들고ㆍ11
부자연습ㆍ18
발광,샌프란시스코ㆍ26
사막의대보름달ㆍ37
일곱난쟁이의방ㆍ44

2부생명의노래
느닷없는안부ㆍ71
연휴,귀를떼서물아래내려놓고ㆍ78
참아름다워라ㆍ82
엄마의일기장에서ㆍ93
그녀의킬리만자로ㆍ100
뿔ㆍ110
기억할수있어맑은날ㆍ114
남편의마지막여인ㆍ122

3부예수님은가끔버스도타나보다
립스틱과홍삼ㆍ157
강의실의옥수수ㆍ162
나는당신을알지못했습니다ㆍ167
연아가잔다ㆍ173
예수님은가끔버스도타나보다ㆍ178
기도당번ㆍ183
다섯글자안부ㆍ191
생일축하해!ㆍ196

4부초콜릿을나눈남자
초콜릿을나눈남자ㆍ203
똥구덩이첫사랑ㆍ211
식기전에한술떠먹은사랑ㆍ218
뮌헨의휴일ㆍ227
대학원나온귀신ㆍ245
우산을펴라ㆍ267

5부어무이,미안하다
대통령의월셋집ㆍ277
봉하마을에서베드로가쓴편지ㆍ285
나의슬픈꽃에게ㆍ291
어무이,미안하다ㆍ302
1951년달동네달순이ㆍ308

6부나는북이다
어린바이올린이야기ㆍ335
토스카니니의pppㆍ347
베토벤을만나다ㆍ351
그르누이의제물ㆍ356
한피아노가있었지요ㆍ363
내안에잠든음표들ㆍ369
나는북이다ㆍ378(≪에세이스트≫2010년올해의작품상수상작)

*해설(송하춘)멋쟁이스타일리스트의속사정ㆍ387
*책뒤에ㆍ402

출판사 서평

오롯이살아낸삶이풀어내는
반짝이는문장의타래!

“일초선생님의글에는억울함과분노,서러움과슬픔에도특유의산뜻함이있습니다.”_홍세화(언론인)

작가조병옥이써온에세이와소설을창작집〈발광의집〉으로묶어펴냈다.
박정희정권이조작한세칭‘동백림사건’에연루되어전과자가된공광덕박사를사랑한아내로서,두아이의어머니로서,식민지와전쟁을온몸으로겪어온여성으로서,분단조국의디아스포라로서살아온개인사이자동시에민족의시대사를증언한수기〈라인강변에꽃상여가네〉로작가는그생동감있는필력을보여준바있다.〈라인강변에…〉이후10년,초보작가였던그는어엿한에세이스트가되어때로뜨겁고,때로발랄하고,때로통렬하며,때로비통한문장을훌훌풀어낸다.

우울과가난과죽음을껴안은
망명객의위트와패러독스
“좌절조차도살아있는생생함으로너를일으켜세울터이니,걱정마”

천진하고맹랑한소녀는일제강점기와한국전쟁을살아남아어른이되었고,가난속에서기어이음악가가되었고,온힘으로사랑할남자를만나그와함께독일로망명했고,그를독일에묻고미국으로향했고,종내다시한국으로돌아와글을쓰기시작했다.어린시절가슴속깊숙이뿌리박힌고향과,젊은시절치열했던독일망명과,외로움과고달픔이뒤섞인가난한로스앤젤레스,그것들은혼자오지않는다.삶이고달프고외로울때마다그들은한꺼번에달려와오버랩된다.그러나결코하나될수없는그정서적괴리감이글의중요한모티프다.
망명은조국을떠나서만망명이아니다.돌아와서도정신적안착을하지못하고방황하면그것이망명이다.몸은헐고,나이는먹었고,기력은떨어지고,그의문학은떠돌기를계속했다.이점에서그의귀국은어쩌면문학의망명인지도모른다.그래서인지그의글은늙고병든망명객의자술서로읽힌다.그러나이자술서는아픔을호소하는신세타령이아니라,재치와지혜가넘치는생명의노래다.늙고병든환자의병증과그의반짝이는언어들사이에서생기는이질감의간극에서우리는각자의삶이품은어두움과찬란함을곱씹어보게된다.

“햇빛찬란한겨울날아침이다.맑고화사한햇살이좋아밖으로나가보지만,아직도칼칼한추위는살아있구나.그맑고투명한추위가조병옥의소설이다.그의언어는한없이밝고환하지만독소처럼제거하고싶은겨울추위가그안에있음을알아야한다.그것이그의소설의존재이유이다.”_401쪽,해설:멋쟁이스타일리스트의속사정_송하춘(소설가)

[책속으로추가]

‘나는키스한다.고로나는생각하지않는다’로그지없이그윽하기만했던그시절나는꿈만먹고도살지않았던가.‘나는키스할일이없다.고로나는생각하고또생각한다’로바뀌어버린지금,어쩌면나는애써움켜쥐고있던한줌의긍정을영원히떠내버려야될지도모른다는두려움때문에홍삼대신립스틱을바람막이로집어들었는지모른다.나이를먹어도늙지않으려불로초를찾는다는광고를낸진시황처럼나도광고를내걸까?‘아직도홍삼제쳐놓고립스틱을집는내게최고의변호를해줄유능한변호사를찾습니다!’라고써서?…
“이글쓴사람몇살이냐고묻고싶거든그전에립스틱한개를더사서택배로보내다오.그것만이그고약한‘젊음’이란놈에게서추방된내불뚝거리는심기를생기로돌변시켜줄마력의도구라는것을눈치챘다면.”_160~161쪽,립스틱과홍삼

바다도아플수있고바다도이렇게비참하게죽을수있다는것을그날처음알게된나는기실지금무슨엄청난일이일어났는지조차도알지못하고있었습니다.당신의죽어가는살갗을만지며싸늘해져가는가슴을마른헝겊으로닦아주고있는그들속에서나는설자리를찾지못하고있었습니다.나는주춤주춤뒷걸음질을하다가물속으로첨벙!빠져버렸습니다.바보물고기‘몰라몰라’처럼말입니다.느닷없이목격한당신의죽어감이몸서리치게무서워져나는있는힘을다해등지느러미를움직여도망치고있었습니다.가다가낙지,전복,굴,가리비등을만나면나는본능적으로저쪽,당신이고통받고있는곳을돌아다보았습니다.아직도멀리군데군데서는당신의은밀한숨소리가떨림으로반짝이는데기름과눈물로범벅이된당신은스스로의무게로깊이깊이가라앉고있었습니다._170~171쪽,나는당신을알지못했습니다

사방에노을이지고있다.비둘기두마리가깃을치며어디론가돌아가고있다.나도집을향해걷는다.그냥지나가도괜찮을바람이목에두른앵두색수건을흔들어대며제발살아있으라고외쳐댄다.그리고이내작은소리로속삭인다.
“너희들이온갖것으로도이바람한점보다더하지못하리라.”_195쪽,다섯글자안부

무대왼쪽에서지휘봉을든장교가걸어나오고있었다.사위가잠시죽은듯이조용하더니그의양손이부드러우면서도박력있게아래로떨어졌다.첼로와비올라의저음유니슨선율이조용히밑그림을그리고있었다.지치고지친전선의안갯속,깊은시름을뚫고무엇인가가서서히그머리를내밀었다.그것은이제갓태어난작은새의머리같았다.이윽고피콜로의작은구멍에서새한마리가포르르날즈음,‘텅!’팀파니가팽팽한뱃가죽을내려쳤다.란이의가슴에구멍이뻥뚫렸다._317쪽,1951년달동네달순이

이상한세상이아닌가.어린바이올린은생각했다.악기(樂器)로세상에태어나악소리한번제대로내본적이없는데도사람들은아랑곳하지않았다.‘무대엔못올릴망정목을끈으로묶어기둥에매달아놓다니.’게다가나는미성년자다.4분의1사이즈바이올린이란말이다.어른들이쓰기위해서만들어진것이아니라,말하자면아이들용바이올린이란말이다._335쪽,어린바이올린이야기

작년봄부터인가사람들은이해하지못할언어로나를괴롭히기시작했다.그들은내게단어나문장으로얘기하지않고흐름이전혀없는‘점’으로말을하는것같았다.마치피아노건반위로고양이가걸어가는듯한소리를냈다가때로는입만움직이고소리는전혀없는무성영화배우로연기를했다.오른쪽귀에서는시도때도없이사기그릇,유리그릇깨지는소리가났고왼쪽귓속에서는종일수십마리의오리새끼들이꽉꽉꽉울기시작했다.‘오리고기요리를너무좋아해서인가요?’하고의사에게농을할때만해도나에겐아직기다릴봄이있었던것같다.심한난청에다악성청각장애가왔다고의사는말했다._352쪽,베토벤을만나다

네‘좌절의체험’을위해우리축배를들자.그체험이설사비극성을지닌다하더라도그비극성이너에겐절대로‘낡은것’으로다가올리가없어.살아있는생생함으로너를일으켜세울터이니걱정마.네귀가들을수없게떠드는사람들을향해우선문을닫는작업부터해.‘음악’도예외는될수없어.들으려고애쓰지마.고통의한복판,무풍지대로들어가는거야.요즘같이이렇게자극없고무의미한세상이글쓰기엔얼마나괜찮은거니.이땅의여자로,어머니로70년살았으면네속에얼마나많은영혼의거지들이살고있겠어.그들의얘기를듣는데는귀따위는필요없어,가슴만있으면돼._354~355쪽,베토벤을만나다

나요?보시다시피피아노죠.아무쓸모도없게된―.
뭐,제대로된피아니스트가아니더라도나같이이렇게낡고여기저기문제가많은물건은진즉에폐기처분할것입니다.‘피아노’라는중후한이름자체만으로도그향기와특권을누리면서번듯한삶을살았을테지생각하시겠지만그건오해입니다.내경우,제대로된피아니스트한번만나보지도못했지요._363쪽,한피아노가있었지요

오늘하루도아무런변화없이갔지요.저어기보세요.조립공서씨가퇴근을서두르고있잖아요.입에줄창물고있던담배꽁초,이제야땅에던져발로끄네요.조금있으면창고문이닫힐거예요.
그때귀를기울여보세요.무겁디무거운철문을온몸으로밀어철컥!하고잠글때보시면창고속우리들은제각각의음피치(pitch)에서생기는야릇한울림으로우우~신음하지요.에스에프영화속에서우주인이라도나올것같은분위기속에서서씨는떠나고우리만남습니다.겹겹이거미줄이걸려있는저어쪽높은창가로종일먼지에시달린햇살마저고개를묻으면우리는우리들만의침묵으로가라앉지요…._364쪽,한피아노가있었지요

만원버스에서내리자마자나는가슴안주머니를만져보았다.가불해서받아온지폐가무사한것이확인되자내발걸음은빨라졌다.고개를한껏숙여야대문을들어설수있는야트막한집들이게딱지처럼엎드려있는동리골목길로들어섰다.여기저기길고짧은굴뚝그림자가달빛에무늬져있었다.서너걸음앞서뒤뚱거리며걷는남자의반신이이따금씩달빛조명을받았다가사라졌다.아버지다._369쪽,내안에잠든음표들

이제나는나이가들만큼들었다.나는아무런부담감없이심포니오케스트라연주회관중석에앉아있다.문득스스로에게묻는다.‘나는인생오케스트라속에어떤악기였을까?’하고.
북이다.사람들은나를팀파니라고불렀다.오케스트라에서내자리는관중석에서보면마주보이는벽쪽맨뒷자리,월급차이야말할수없이크지만적어도무대위에서연주할때지휘자의눈높이와나를치는팀파니스트의높이는같다.외관으로보기엔팀파니는언제나비교적높은자리에있다.세상속의나처럼._381쪽,나는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