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2014년 6월 7일 봉오동전투 94주년.
‘봉오동전투’, ‘청산리대첩’ 하면 김좌진 장군만 떠오르십니까?
‘봉오동전투’, ‘청산리대첩’ 하면 김좌진 장군만 떠오르십니까?
홍범도는 청일전쟁 이후인 1890년대 후반 항일의병투쟁에 나선 이래 3·1운동 이후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로 대표되는 항일무장투쟁을 줄기차게 전개했을 뿐만 아니라 독립군의 실력양성 및 교육에도 힘썼던 항일운동지도자이다. 홍범도는 ‘불패의 전설’로 기록되고 있는 저명한 항일투사로서, 투쟁의 역사는 투쟁기간의 장구함에서 뿐만 아니라 투쟁의 치열함에서 단연 돋보이는 역사를 남겼다.
부하들이 애정과 존경을 담아 부르던 “홍 대장”
진정한 일반 민중의 영웅으로 기억하라
홍범도는 ‘군벌적 계급의식’이나 ‘특권의식’이 있었던 양반이나 지주 출신의 독립운동가들과 분명하게 구별되는 전형적인 평민 출신의 의병장이자 독립군 지도자였다. 부하들은 함께 노동하고 고난을 나누며 투쟁했던 지도자에 대한 깊은 존경과 사랑을 담아 홍범도를 ‘홍 대장’이라고 불렀다.
러시아(소련)으로 망명한 이후,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정책으로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떠나온 홍범도 장군은 1943년 10월 25일 75세를 일기로 서거하기 전까지 고려인들의 크나큰 존경을 받은 민족의 영웅이었다. 홍범도를 기리는 연극 [홍범도]가 여러 차례 공연되었고, 말년에 거주하던 집은 크즐오르다의 역사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집 근처에는 ‘홍범도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지금도 그를 추모하는 기념사업이 이어지며 홍범도 장군의 업적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고 있다.
부하들이 애정과 존경을 담아 부르던 “홍 대장”
진정한 일반 민중의 영웅으로 기억하라
홍범도는 ‘군벌적 계급의식’이나 ‘특권의식’이 있었던 양반이나 지주 출신의 독립운동가들과 분명하게 구별되는 전형적인 평민 출신의 의병장이자 독립군 지도자였다. 부하들은 함께 노동하고 고난을 나누며 투쟁했던 지도자에 대한 깊은 존경과 사랑을 담아 홍범도를 ‘홍 대장’이라고 불렀다.
러시아(소련)으로 망명한 이후,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정책으로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떠나온 홍범도 장군은 1943년 10월 25일 75세를 일기로 서거하기 전까지 고려인들의 크나큰 존경을 받은 민족의 영웅이었다. 홍범도를 기리는 연극 [홍범도]가 여러 차례 공연되었고, 말년에 거주하던 집은 크즐오르다의 역사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집 근처에는 ‘홍범도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지금도 그를 추모하는 기념사업이 이어지며 홍범도 장군의 업적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고 있다.
홍범도 장군 (자서전 홍범도 일지와 항일무장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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