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서광선의 정치신학 여정 | 양장본 Hardcover)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서광선의 정치신학 여정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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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그때, 거기에 있었던
한 신학자의 인생과 신학 여정

민주화, 평화, 사회진보에 평생을 바친
서광선 목사의 삶, 신앙, 정치신학

6.25전쟁 당시 북한, 특히 서북지역에서 피난하여 월남한 많은 목회자들과 기독교인들은 남한에서 보수 기독교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이들은 격렬한 반공 및 친미 정서를 기반으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체제를 묵인하거나 사실상 그에 협력하면서 대한민국 정치와 분단체제에 알게 모르게 깊숙이 개입했다. 서광선 목사는 이들처럼 월남한, 순교자 아버지를 두고 북한을 증오하며 미국을 선망하던 보수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인의 삶을 시작했으면서도 이들과는 완전히 다른 삶과 신앙의 궤적을 걸었다. 미국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에서 사회참여적인 신학을 공부하고 젊은 케네디 대통령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활동에 깊은 영향을 받은 서광선 목사는 순교자 아버지의 강직한 신앙을 이어받으면서도 동시에 신앙과 정치사회를 분리시키지 않는 ‘자유정신’의 세례를 받았다. 이것은 그가 귀국하여 교수, 신학자, 목회자로 활동하면서 언제나 우리 사회의 ‘그때’, ‘그곳’에 있도록 만든 원동력이자 바탕이 되었다. 한 노학자의 자전적 기록이자 우리 사회와 기독교를 바라보는 평생의 신학적 관점이 담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이분이 그때 거기에도 계셨구나” 하고 놀라는 경험들을 하면서, 신앙과 역사 앞에서 시대적 소명을 회피하지 않고 살아온 한 사람의 특별하고 놀라운 여정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저자

서광선

서광선은1931년평안북도강계에서태어났으며대한민국해군에서복무했다(1951~1956).미국에서철학으로학사와석사학위를받았고뉴욕유니언신학대학원에서신학석사(M.Div)를수료했으며밴더빌트대학교대학원에서철학박사(Ph.D)를받았다.귀국후이화여자대학교교수(1964~1996)로재직하며동대학교문리대학장,교목실장,대학원장등을역임했다.정치적이유로해직당했다가(1980~1984)그기간중에장로회신학대학에서수학하여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의목사로안수를받고압구정동현대교회를담임했다.세계YMCA회장(1994~1998)을역임했고미국뉴욕유니언신학대학원,미국드류대학교신학대학원및홍콩중문대학교의초빙교수로활동했으며홍콩주재아시아기독교고등교육연합재단(UnitedBoardforChristianHigherEducationinAsia)의이사및부회장을역임했다(2001~2006).저서로는『종교와인간』,『기독교신앙과신학의반성』,TheKoreanMinjunginChrist등다수가있다.현재이화여자대학교명예교수이며≪신학과교회≫편집위원장일을했다(2014~2016).

목차

책을열며

I.1905년에서1979년까지
제1장_일제강점기의가족사와한국교회의항일투쟁
제2장_공산치하의북한교회해방과분단과전쟁사이
제3장_남한의해방정국과전쟁,그리고4.19
제4장_4.19학생혁명과5.16군사쿠데타,그리고한국교회
제5장_군부독재에대항하는한국교회
제6장_유신시대의폭압정치와궁정동의총소리

II.1980년에서2017년까지
제7장_신군부에대한저항과1980년5월광주민중항쟁
제8장_1980년대신군부독재와해직교수시절
제9장_에큐메니컬평화통일운동그리고1987년6월항쟁에이르기까지
제10장_“우리의소원은통일”88선언
제11장_1990년대기독교의한반도통일운동
제12장_“햇볕정책”,북핵,그리고봉쇄
제13장_박근혜정부의침몰그리고촛불혁명

책을덮으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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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민주화운동과기독교사회운동의산증인서광선목사의삶과신학
신학자이자교수,목회자로서한평생민주화운동과통일운동,기독교사회운동에헌신해온서광선목사가아흔의고개를앞두고자신의삶과신학을돌아보는자서전을출간했다.기독교계의존경받는원로인서광선목사는일제강점기에만주에서,해방후에는북한에서사역하던목사아버지가순교한뒤월남하여미해군에입대,통신병으로복무한뒤유학길에올라뉴욕유니언신학대학에서신학을공부했으며,귀국후이화여자대학교교수로민주화운동에관여하다가1980년신군부에의해해직당한뒤다양한경로로민주화운동,평화통일운동,기독교사회운동에헌신해왔다.1930년대부터2017년박근혜대통령탄핵에이르기까지80여년의세월을아우르고있는이책은서광선목사자신의발자취와함께대한민국현대사의발자취를오롯이따르며,중대한역사적국면마다서목사자신과대한민국기독교계가맞닥뜨렸던도전과응답을보여주고있다.

구한말의병할아버지,순교한목사아버지의뒤를따라민족과신앙을위해살다
서광선목사의신앙의뿌리는부모님,특히일제강점기에목회자로서불굴의의지를가지고사역한아버지서용문목사라할수있다.의병활동을한할아버지의이야기를들으며투철한애국심과민족의식을키운아버지는거기에순교를불사하는신앙심을더하여서광선목사에게물려주었다.일제의탄압과북한정권의핍박에굴하지않고복음을전파하고민족의앞날에대한희망을교인들에게심어주던아버지서용문목사는6.25전쟁당시“양떼”를버리고피난하는것을주저하다가인민군에의해순교하고말았고,민족과신앙이라는대의를위해목숨을던진할아버지와아버지의삶은이후서광선목사의인생을이끄는가장중요한푯대가된다.이책은서광선목사의어린시절이야기를통해일제의압제를피해만주지역에서삶을꾸려가던수많은조선인들의모습,일제와북한정권의종교탄압에고뇌하고저항했던당시기독교인들의모습을생생하게그리고있다.

피난민소년,미해군통신병이되고미국유학길에오르다
아버지의순교후피난행렬의물결속에서가족들과도떨어져홀로월남해야했던소년서광선은우연찮은기회로진해에서미해군에입대하여통신병으로복무하게되고가족과도극적으로재회하게된다.군복무중미국을처음방문하여미해군종합학교에서공부한경험을가진서목사는군제대후미국유학길에올라철학과신학을공부한다.이책은이러한서목사의청년시절을서술하면서청년서광선의눈으로본당시의한국사회와한국기독교의모습을함께묘사하고있으며,미국에체류하던기간직접체험하지못하던국내상황에대해서도각종자료를통해분석하고있다.6.25전쟁이후대한민국의불안한정치상황,보수기독교세력이이승만독재정권과결탁하던모습,주요교파가분화한과정,그리고한일협정,4.19혁명,5.16군사쿠데타같은중요한정치적국면에서한국기독교가보인반응과갈등이압축적으로서술된다.

교수와신학자로서펼친민주화운동과기독교사회운동
서광선목사가귀국하여이화여자대학교교수로강의를시작한때는박정희정권의3선개헌움직임이노골화되던시기였다.한국기독교는박정희의독재에반대하는에큐메니컬진영과군사정권을사실상지지하던보수진영으로양분되어있었고,서광선목사는동료교수,목회자들과함께긴세월민주화운동에직간접적으로관여하게된다.이책은서목사가직접경험했던1970년대의암울한시대적상황과함께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목요기도회”등을위시한기독교반독재투쟁진영의치열한활동들을상세히기술한다.또한전태일열사의분신사건을기점으로확산된도시빈민운동과도시산업선교의과정,엄혹한세월속에서민중신학등의꽃을피운한국기독교신학의발전과흐름에대해서도주의깊게고찰하고있다.

해직교수,목사안수를받다
궁정동의총소리와함께박정희대통령이숨지면서잠시도래했던서울의봄은신군부의쿠데타에의해무참하게짓밟혔다.서광선목사는1980년7월신군부합동수사본부의형사들에게연행되어서대문경찰서에구금된채조사를받았고형사들의강요에의해사직서를쓴뒤해직당한다(당시함께해직된기독자교수로는김동길,문동환,서남동,안병무,한완상등이있다).그런데이해직경험은순교한아버지의뒤를이어목회를하겠다는결심으로이어지면서서광선목사의삶에서중요한분기점이된다.압구정동현대교회에설교자로초빙되어설교하던서목사는예수교장로회에서정식으로목사안수를받고“전두환에게,그리고하나님에게떠밀려서”목회자로서의삶을시작한다.

분단을넘어,한반도를넘어
서광선목사의해직소식은역설적으로해외곳곳의신학자,교계인사들이서목사를주목하게하는계기가되었다.이후서광선목사는해외의각종학술모임,신학교,협의회에서초청을받고전두환정권의날선감시속에서도해외에나가강연하고연구하며사람들을접촉할기회를얻게된다.이책은1980년대서광선목사가활동영역을해외로넓혀가는과정과복직후의민주화투쟁과정,1987년6월항쟁의과정을촘촘하게밟아나간다.또한80년대후반부터본격적으로달아올랐고서목사가중요한일익을담당했던기독교에큐메니컬진영통일운동의과정과의의가상세히서술된다.이런국내외에서의활약상을인정받은서광선목사는1994년YMCA세계회장으로추대되어수년간전세계YMCA식구들과다양한활동을펼치게된다.

민주화이후의활동과기독교사회운동
1996년이화여자대학교교수로서정년퇴임한서목사는모교인뉴욕유니언신학대학원,드류대학교신학대학원등의초청을받아강의와교육활동을이어가다가2001년부터는홍콩에서아시아기독교고등교육연합재단의이사및부회장으로활동한다.이책은정년퇴임한이후에도정력적으로활동한서목사의여정과문민정부이후의남북관계및기독교에큐메니컬진영의주요활동들을상세하게되짚어본다.2010년대의세월호사건,개성공단폐쇄,한일위안부협상,최순실게이트와같은굵직한최근이슈들도다수소개되고있으며이에대한원로신학자의비판적인시각과활동또한함께기술되고있다.2017년촛불시위가한창일때“박근혜대통령퇴진촉구예장목회자시국기도회”의강사로연설하기도한서광선목사는새로이출범한문재인정부를향해,그리고전환점에서있는작금의한국기독교계를향해원대한비전과애정어린조언을함께전하고있다.

“내가여기있나이다”
격동의현대사속에서한사람의기독교신학자가신앙과역사에응답해온이야기!
이책은학술지≪신학과교회≫에매호연재된“한국기독교정치사”시리즈를바탕으로하고있다.이책의1부에해당하는일제강점기에서박정희사망에이르기까지의내용을연재한뒤마감하자이후연재를계속해달라는독자들의독촉이이어졌고,결국2부에해당하는1980년대에서2017년촛불시위에이르는내용을추가로집필하게되었다.100여년전서양에서들어온기독교가한국근현대사의소용돌이속에서어떻게살아남았으며,어떤기여를했고,정치와사회와어떤관계를맺으면서오늘에이르렀는가하는질문들과함께,이시대를살아온한사람의기독교신앙인이자신학자가무슨생각으로무슨일을하면서어떻게살아왔는가하는질문을가지고스스로를돌아본것이이책의내용이다.이책의제목은찬송가“거기너있었는가,그때에”에서따온것이다.한많은분단한민족의역사속에서“너는어디서무얼하고있었는가?”라는이무서운질문에대한한국교회의대답이자일평생거기에부끄럽지않은응답을하고자분투했던서광선목사의이야기가이책에담겨있다.

[책속으로추가]

억압당하는민중을말하고신학화하는한국의민중신학자들은노동현장과노동문제를외면할수없었다.당시민중신학을주도한서남동,안병무,현영학교수들은노동현장에서해고당하고“블랙리스트”에올라서다른공장에취직도못하고있는여자노동자들과대화의시간을마련했다.나도그자리에있었다.우리는모두해고노동자들이10대후반,집에서재롱을부리면서학교에다녀야할어린소녀들이라는데놀랐다.그러나그들의표정은밝기만했다.그들은씩씩하게열악한노동현장을고발하면서자기들의투쟁을진솔하게또박또박증언하고있었다.눈물을흘리고닦으면서…….민중신학을한다는어른들도함께눈물을흘리면서분노하고있었다.한어린소녀노동자는“예수믿고교회나가고장로라는공장사장이정말예수쟁이인가싶을정도로나빠요.장로인공장사장의부인이일요일아침화려한옷을차려입고우리가밤샘하며일하고있는공장에나타나서,‘여러분위해교회가서기도할게요.열심히일하세요’하고나가는모습,정말눈물나게미웠어요”라고말했다.(195쪽:제6장“유신시대의폭압정치와궁정동의총소리”中)

내자술서쓰기가거의끝나갈무렵,형사가헐레벌떡내방으로뛰어들어오는것이었다.손에는학장실에서압수해온내일기장을들고있었다.1980년4월어느날,내가목포에가있었고,김대중이란사람과점심약속이되어있는것을보여주는업무용일기장이었다.왜,무슨일로,목포에가서1박2일을했냐는것이었다.당시나는한국아메리카학회의회장으로서울에있는미대사관미문화원과긴밀한관계를가지고미국을공부하고연구하는학회를이끌고있었다.지금기억으로는당시목포에있는미문화원에서개최한“미국민주주의의역사와정신”비슷한강연회에강사로갔던것같다.그런데그김대중이란이름은재야정치인김대중이아니라,당시≪조선일보≫기자로주미특파원으로오래근무하다가귀국한“미국통”기자였다.서울의아메리카학회에서미국민주주의에대한강연회연사로그를초청하기위해서만나게되어있었던것이다.내가국보위의합동수사본부에끌려와서조사받는것은“김대중내란음모사건”의참고인으로인데,몇달전4월엔가그거물급김대중과점심까지같이했다는기록은대단한것이었다.결국내말이진실인지확인하느라고며칠더그방신세를지고있어야했다.(227쪽:제7장“신군부에대한저항과1980년5월광주민중항쟁”中)

에큐메니컬민주화운동세력은전두환정권의폭력적인탄압을계속받았다.민주화운동을이끌어온에큐메니컬진영의지도자들을회유하려고노력했으나끝내순화하지않은인물,가령박형규목사같은교회지도자를회유하는일에실패한정보당국은박형규목사를그의근거지인서울제일교회로부터폭력으로축출하는음모를자행했다.1983년8월28일,그동안박목사의민주화운동과전두환정권을비판하는설교등에반대해오던장로한사람이예배후교회안에서박목사를구타한일로박목사축출이시작되었다.장로라는사람이박목사의멱살을잡고안면을구타하여어금니한개를부러뜨리는폭행을감행했던것이다.1984년한국개신교선교100주년이되는해에새해벽두부터시작하여제일교회예배를방해하는행위는계속되었다.제일교회당회의대응조치에불복한폭력배들은가을까지폭력행위를지속했다.1984년9월23일오후2시박형규목사가교회평화를위한기도회를마치고교회계단을내려오는찰나,폭력배들이박목사를구타하고넘어지게한다음복부를무참하게발로차고짓밟기시작했다.저지하는교인들까지도폭력배의구타를당하는참사가발생했다.(269쪽:제9장“에큐메니컬평화통일운동그리고1987년6월항쟁에이르기까지”中)

1987년6월의숨가쁜어느날,NCC선교교육원원장이나를불러냈다.새문안교회에서범교단목사들이반정부집회를열고예배를드릴터이니와서설교를하라는것이었다.시국집회예배자들도마구잡아가는판에설교자는물론각오를해야했다.아내와아이들에게각오를하게하고새문안교회를향했다.천명에가까운젊은목사들이모여들었다.나는차분한목소리로전두환정권의폭력과5.18학살,그리고정당한시위를하는대학생들을무차별고문하고죽이는정부는하나님이인정하지않을것이다,우리는하나님의정의를지키기위해서나서야한다고말했다.그리고나는전두환이호헌의지를철회할것을요구하고조속한시일에민주헌법으로개헌하고새정부를수립하도록해야한다고역설했다.……예배끝에축도를하면서나는감격의눈물을흘리며떨리는목소리로이나라와민족을위해간절한기도를올렸다.오재식원장은경찰이달려와잡아갈지도모른다고,나를교회뒷문으로빼내어택시에태워집으로보냈다.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