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국가, 복지국가를 넘어
이제는 녹색 국가로 나아가야 할 때
코로나19라는 전염성 질병의 유행으로 전 세계가 공통의 두려움을 안은 채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고통의 끝은 어디인지 모르며, 이후의 삶은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코로나19는 자연 상태에서 진화한 신종 바이러스가 숙주인 야생동물을 통해 인체로 옮겨온 것이다. 이렇게 인간에까지 옮겨오게 된 이유는 자연 파괴와 환경오염으로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급속히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야생동물이 인간과 접촉할 기회가 늘어난 것이 1차 원인이다. 이번 사태를 겪으며 우리는 의료 기술 및 인프라의 혁신과 더불어 일상생활에서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새로운 행동 양식의 준수가 중요하다는 점을 절실히 깨달았으며, 무엇보다 장기적으로 지구적 생태환경 문제에 대처할 수 있도록 기존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혁신하여 새로운 생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어떤 거시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과거 인류가 산업혁명으로 산업적 전환을 이루었다면, 이제는 또 다른 혁명, 즉 “녹색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녹색전환은, 자원·환경의 문제를 해결할 주체가 국가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녹색 가치’가 정치, 경제, 산업, 문화, 과학기술, 교육 등 국가의 모든 정책 부문과 시민사회의 전 영역에서 주류화·내면화될 때 이루어지며, 녹색전환을 통해 새롭게 등장할 사회가 바로 ‘녹색 사회’이다. 녹색 가치는 인간의 생존을 존중하면서 자연과의 상생 관계 속에서 지키고자 하는 생태적 가치, 즉 생명 가치를 의미한다. 녹색 가치는 아직 제대로 정형화되지 않았으며 앞으로 우리가 자연·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가야 할 가치이며, 녹색 사회는 어떤 고정된 상을 상정하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혁신과 발상의 전환으로 끊임없이 진화해 가는 변증법적 사유와 실천 속에서 생성하고 발전해 나가는 사회이다. 녹색전환은 바로 이러한 녹색 가치를 전제로 녹색 사회를 추동하는 이념이자 전략적 수단이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녹색 가치가 우리 사회의 주류 가치로 자리매김하게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녹색 가치에 기반하여 자연과 공진화하면서 지속 가능하게 발전하는 녹색 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환경부 지원으로, 인문사회과학·정책학·공학 등 각계 전문가 17명이 모여 지난 1여 년간 워크숍을 통해 주제와 내용을 선정하고 조율하여, 대한민국이 녹색 국가로서 선 위치와 녹색전환을 통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각자의 분야에서 풀어 이 책에 제시했다. 전체 4부, 17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부에서는 주로 녹색전환의 개념과 이론을 다루었으며, 그중에서도 1장은 이 책의 전체적인 지향점을 확인할 수 있는 글로, 저자는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새로운 지질시대의 맥락에서 녹색전환을 이론적·거시적 수준에서 검토하고 있다. 인류세 논의에 따르면, 인류가 자연에 필적할 만한 ‘지질학적 힘’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지구환경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류세 담론은 현재 인류가 지구 규모의 생태 위기에 처해 있으며 그로 인해 인류 문명이 한계에 놓여 있음을 분명히 한다. 저자는 인류세를 맞이하는 대안으로 녹색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녹색전환의 방향으로 사회-자연 관계에 대한 이원론적 인식을 넘어서는 것과 함께 사회경제체제의 혁신적 재구성을 주장한다.
2장에서는 녹색전환과 유사한 개념을 검토하여 우리 사회의 녹색전환 가치와 방향을 제안한다. 저자는 지속 가능한 발전, 생태적 현대화, 지속 가능성 전환, 정의로운 전환, 전환마을 등과 같은 서구의 논의뿐만 아니라 1980년대 국내에 출현하여 발전한 생명평화 담론까지 검토한다. 그러면서 기계문명, 산업자본주의, 인간 중심의 지배적인 사회 패러다임을 비판하고 성찰하며, 녹색전환을 생태적 한계 안에서 지역의 살림살이를 살리는 대안 체제를 만들어가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과정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녹색전환의 방향으로는 생태 민주주의, 생태 평화, 생태 사회적 발전 등을 제안한다.
3장에서는 환경 국가라는 개념을 활용하여 국가 간 비교 연구를 하는 동시에 우리나라의 위치를 확인한다. 환경 국가는 환경 관련 규제나 조직을 갖추고 환경 공공재를 공급하는 국가를 의미하는데, 오스트리아, 영국, 스웨덴, 프랑스, 독일, 핀란드, 네덜란드, 덴마크 등이 확립된 환경 국가 영역에 속하며 한국은 신생 환경 국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합의적 정치 문화와 성숙된 복지국가의 환경 성과가 높다는 점을 강조한다.
4장에서는 논의의 초점을 한국 사회로 한정한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국가적 특징을 신자유주의적 개발 국가로 규정하고, 이를 넘어설 수 있는 녹색전환 전략을 제안한다. 저자가 제안한 녹색전환 전략은 그린 뉴딜, 보편적 기본 소득 제도, 미래 세대를 고려한 정치 시스템, 토지의 공유 자원적 성격 확대, 생태계 용량을 고려한 개발, 개발 패러다임에서의 도시 편향성 시정 등이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개발 국가에 의한 이중의 수탈, 즉 자연과 사람에 대한 수탈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2부에서는 우리나라 사회 발전의 주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 경제, 정책 형성 문화, 과학기술, 국토 계획, 남북한 환경 협력 등에서 녹색전환을 위한 전략을 제안한다.
5장에서는 한국 사회의 녹색전환을 위해서는 의회정치의 녹색화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저자는 기후변화 등 환경 문제에 다수대표제(소선거구제)보다 비례대표제를 선택한 나라가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들어, 한국 정치를 녹색화하는 수단으로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한다. 즉, 각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회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대표제가 녹색 의제를 중심으로 한 정당의 의회 진출에서 유리하다는 것이다. 비례대표제에서는 새로운 정책을 중심으로 정당 투표를 모을 수 있으며 젊은 세대, 여성, 녹색 가치를 추구하는 집단의 의회 진출 가능성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6장에서는 녹색전환의 전략으로 경제 영역의 녹색화를 주장한다. 저자는 환경을 파괴하면서 성장하는 경제에서 환경을 보전하면서 풍요로움을 실현하는 경제로 녹색 경제의 방향을 설정한다. 그리고 경제의 녹색화를 위해서는 녹색 삶의 원칙을 내면화하고 실천할 것을 강조한다. 또한 저탄소 대안 경제의 실현을 위해서는 탄소 포인트 적극 도입, 기본 소득 도입, 탄소 배출권 거래제와 탄소 금융의 활성화, 환경세(탄소세) 도입, 독일에서 적용된 재생 가능 에너지법 도입 등을 주장한다.
7장에서는 국가의 주요 정책이 형성되는 과정에서의 녹색화를 강조한다. 이는 정책 형성 문화의 녹색화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저자는 먼저 개발하고 사후에 환경 문제에 대응하는 개발 중심 문화, 정책 수용자와의 소통 문화의 부재 등이 환경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정책 형성의 문화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참여와 협업을 통한 신중한 정책 형성 문화, 투명하고 책임성 높은 정책 형성 문화, 개발·환경·사람이 조화로운 정책 문화 형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8장에서 저자는 과학기술의 녹색전환을 제안하기 위해 그간 진행된 녹색 화학과 과학기술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를 검토한다. 특히 안전한 화학물질 디자인, 재생 가능한 물질을 사용하는 제품 개발, 에너지 최소화 화학물질 디자인 등을 강조하는 녹색 화학 사례를 통해 과학 분야가 환경 위기 속에서 어떻게 연구 내용을 전환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러한 전환이 다른 과학 분야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또한 기후 위기, 에너지 고갈 등 지구촌이 직면한 위기는 전통적인 과학과 기술 지식, 전문가 지식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전문가와 관료 중심의 과학기술 정부로부터 전문가, 비전문가와 정부 관료 등으로 구성되는 과학기술 거버넌스로의 전환이 과학기술의 녹색화를 실현하기 위한 주요한 전략적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9장에서는 기존의 개발 및 토건 중심의 국토 발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국토 계획 또는 공간 환경의 녹색전환을 강조한다. 1972년부터 수립되어 추진된 국토종합계획이 국민소득 증가, 국가 기간망 및 사회간접자본 확충 등에 기여했지만 동시에 지역 간 격차, 환경오염 및 난개발 등 다른 국토 문제를 체계적으로 생산해 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이러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새로운 국토 발전 패러다임을 제안하는데, 패러다임의 핵심 요소로 국민의 삶의 질 개선과 행복의 증진, 생태적 지속 가능성, 지역 균형 발전, 국토 계획과 환경 계획의 연동, 토지 윤리를 반영한 토지 이용 등을 강조한다.
10장에서는 녹색전환의 범위를 한민족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북한이 당면한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 중심의 경제정책을 수립한다면 북한의 환경 문제는 더욱 악화될 것이며, 이로 인해 남한 지역의 환경에 미치는 잠재적 위험성은 증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북한 환경 협력을 통해 북한 환경의 지속 가능성과 회복력을 높이고, 북한 주민 또한 안전하며 쾌적한 환경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녹색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3부에서는 법, 거버넌스, 토의(숙의) 민주주의, 지역사회 조직화라는 수단을 어떻게 녹색전환을 위해 활용할 수 있을까를 논의한다.
11장은 법을 통한 녹색전환을 논의한다. 저자는 녹색 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다양한 수단 중에서 법이 매우 유용하면서도 중요한 수단임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헌법의 녹색화를 주장한다. 즉, 기존의 인간중심주의적 헌법이 생태주의적 관점과 타협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논의한다. 또한 녹색전환기본법의 제정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 기본법이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환경, 문화, 교육, 노동 등 제반 영역에서의 녹색전환을 위한 기본 방향을 규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12장에서는 거버넌스 기구의 녹색화와 녹색 거버넌스의 주류화를 통한 녹색 사회로의 이행 방안을 제안한다. 저자는 녹색 거버넌스의 주요 운영 원리로 생태적 정의와 숙의를 특징으로 하는 생태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그러면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운영되고 있는 녹색 거버넌스인 녹색성장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