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중국사 1: 중화의 성립 (당대 까지)

새 중국사 1: 중화의 성립 (당대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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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상전벽해의 중국 고대사
1000년 동안 지속된 오해부터의 해방!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기록된 3대(夏, 殷, 周)에 대하여 근대에 들어와 하(夏)는 물론 은(殷)까지도 실재한 나라가 아니라 전설상의 나라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20세기 초 은허(殷墟)가 발굴됨으로써 은(殷)의 실재에 대하여는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되었다. 은허의 발굴 이후 고고학과 인류학의 연구 성과에 의하여 중국 고대사는 상전벽해라고 할 정도로 그 면모를 일신했다. 일본 교토(京都)학파의 학자들이 집필한 시리즈 중국사(전 5권)의 제1권인 『중화의 성립』은 고고학과 인류학의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하여 새로 쓴 중국사이다. 그리하여 중화(中華)가 어떻게 성립하였는지를 새로운 시각에서 심도 깊게 논의한다.
이 책에서 비중 있게 다루는 이리두 문화(二里頭文化)는 하(夏)왕조와 시기 및 장소가 겹치기 때문에 하왕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최근에는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하왕조가 실재하는 나라였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또한 인류학의 인간 게놈(human genome) 연구에 의하면 한족(漢族)의 주류는 남방에서 북방으로 이동하였으며, 여기에 서쪽으로부터 동유럽계의 유입도 있었다고 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최근 일반 국민의 중국에 대한 정서가 악화되어 감정적인 혐중(嫌中) 담론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중국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 책의 의미가 각별하다고 하겠다.
저자

와타나베신이치로

(渡辺信一郞)
1949년출생
교토대학(京都大學)대학원문학연구과박사과정수료
교토부립대학(京都府立大學)교수,학장역임
교토시립예술대학(京都市立藝術大學)일본전통음악연구센터소장(2020~2022)
현재교토부립대학명예교수,교토시립예술대학고문(顧問)
[전문분야:중국고대사,중국악제사(樂制史)]

저서:『중국고대국가의사상구조:전제국가와이데올로기(中国古代国家の思想構造:専制国家とイデオロギー)』(1994),『천공의옥좌:중국고대제국의조정과의례(天空の玉座:中国古代帝国の朝政と儀礼)』(1996),『중국고대의왕권과천하질서:중일비교사의시각에서(中国古代の王権と天下秩序:日中比較史の視点から)』(2003),『중국고대의재정과국가(中国古代の財政と国家)』(2010),『중국고대의악제와국가:일본아악의원류(中国古代の楽制と国家:日本雅楽の源流)』(2013),『중국의국가체제를어떻게볼것인가:전통과근대(中国の国家体制をどうみるか:伝統と近代)』(공편저,2017)외

목차

지금중국사를새로운시각으로보기위하여:‘새중국사’시리즈의목표·
머리말
제1장중원의형성:하,은,주3대
1.농경사회의형성:신석기시대
2.하,은,주3대
3.은,주시대의정치통합:공헌제에서봉건제로

제2장중국의형성:춘추·전국
1.춘추·전국의‘영웅시대’
2.소농민사회의형성:백생(百生)에서백성(百姓)으로
3.봉건제에서현제로
4.상앙의변법:기원전4세기중엽의체제개혁

제3장제국의형성:진한제국
1.군현제에서군국제로
2.무제의시대:제국의형성

제4장중국의고전국제:왕망의세기
1.선제의중흥
2.왕망의세기
3.왕망을낳은사회
4.후한의고전국제

제5장분열과재통합:위진남북조
1.한위혁명
2.화북지방사회의변모
3.서진:중원통일왕조의재건
4.5호16국과천하의분열
5.선비탁발부의화북통합

제6장
고전국제의재건:수당제국
1.수문제의천하재통일
2.천가한의대당제국
3.『대당육전』의당대국제

맺음말

출판사 서평

중국은어떻게해서중국이되었을까?

역사의세가지층차

이책에의하면역사를서술하는데세가지층차가있다고한다.첫째,정치사처럼10년·50년을단위로하여변화해가는층차가있다.둘째,500년·1000년의단위로관찰하지않으면변화가눈에들어오지않는,의식주및그생산의층차,환언하자면사회의생활권의층차가있다.1000년단위는파악하기어려운장기간에걸친변화이다.셋째,정치과정과생활권의중간에는100년단위로변화해가는정치및사회의조직·제도의층차가있다.역사는이세가지층차의상호작용을통해변화한다.‘새중국사’시리즈제1권은그중에서기초가되는사회생활권과정치·사회의조직을중심으로서술을전개한다.다시말해시간적·공간적인변화의모습속에서중국을파악한다는것이다.


이리두문화와하왕조

1959년에하남성의이리두유적이발굴되었는데,이로써기원전1800년경부터1500년경까지뒷날중국의중원이되는지역에이리두문화가있었다는것이알려졌다.중국에서는이이리두문화로부터청동기문명이시작되었다.또이리두유적에서는1만제곱미터규모의궁전터도발굴되었으며,그뜰에는1000명의사람을수용할수있었다고한다.이리두문화를형성했던사람들은스스로를하(夏)또는하인(夏人)으로불렀던것으로보인다.이리두문화유형에속하는하남성서부는후세의문헌에서‘유하지거(有夏之居)’라고불렸다.이것으로도알수있듯이이리두문화는하왕조와밀접한관계에있으며,최근중국은물론이고일본의학자중에서도이리두문화에근거해하왕조의실재를말하는사람이많아지고있다.


균전제,조용조제,부병제에대한비판적재검토

중국의당나라가균전제,조용조제,부병제를시행하였다는것은동서양을막론하고중국사학계의통설로되어왔다.이책은이러한통설을당대(唐代)의사료에입각해재검토한다.예컨대당대(唐代)사료에는균전제라는용어도조용조제라는용어도나오지않는다.저자에의하면당나라의균전조용조제라는용어는북송사마광의『자치통감』에최초로나온다.저자는지금까지의균전제와조용조제에대한이해를수정해야할때라고말한다.또구양수(歐陽脩)가집필한『당서(唐書)』‘병지(兵志)’간행이래로약1000년동안당나라의군제는부병제뿐이며부병이위사·방인·행군등모든군역을담당했던것으로오해되어왔지만,이제는과거약1000년동안계속되었던오해로부터해방되어야할때라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