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 헨더슨 평전 : 대한민국 현대사 목격 증인의 생생한 이야기

그레고리 헨더슨 평전 : 대한민국 현대사 목격 증인의 생생한 이야기

$33.00
Description
한국에 대한 애정 어린 그러나 냉철한 시선
이 책은 헨더슨의 삶과 사상을 조명하는 평전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현대사를 현장에서 목격한 증인의 생생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는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에서부터 1950년의 한국전쟁을 비롯해 1960년의 4·19 학생혁명, 이어 한국 민주주의를 역전시킨 5·16 박정희 군사쿠데타, 1979년 박정희 암살 이후 등장한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저지른 12·12 쿠데타, 마지막으로 1980년 전두환 신군부 정권이 자행한 5·18 광주만행까지 198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이 목격한 신생 대한민국이 겪은 고통을 깊은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저자는 단순한 길동무가 아니라 펠로 트래블러(fellow traveler)의 마음으로 그레고리 헨더슨의 이상, 사상, 철학을 함께 나누는 동조자로서 그의 영혼과 함께 한국과의 인연이 이끌어간 여정을 함께 했다고 말한다.
1부에서 헨더슨의 삶의 궤적과 한국 및 지은이와의 인연 그리고 한국 사회와 정치에 대한 비판과 한국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사랑을 담았고, 2부에서는 헨더슨이 본 한국 사회의 병리와 그 해법에 대해서 살펴보고 3부에서는 그의 학문, 사상, 이론, 그리고 한국을 위해 기고와 토론 증언과 고발의 실천을 그의 행적을 돌아보며 서술했다.

그레고리 헨더슨의 한국 여정을 담다

미 국무부 소속 20대의 젊은 외교관 그레고리 헨더슨(Gregory Henderson, 1922~1988)은 1948년 신생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목격한 이래 이승만 원시독제 체재 아래서 벌어진 일을 비롯해 이 나라가 겪은 중요한 사건들을 목격한 남다른 경험을 했다. 예컨대 그는 해방 정국에서 벌어진 김구 암살을 비롯한 주요 정치지도자 암살의 회오리를 온 몸으로 체험했는가 하면 반민특위·국회프락치사건을 목격했다.
특히 국회프락치사건의 경우 재판심리의 전 과정을 모두 기록해 미 국무부로 보내 귀중한 역사적 기록유산으로 남겼다. 그는 왜 그토록 이 사건을 중시했는가? 이 사건이 신생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향방을 가르는 분수령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헨더슨의 삶과 인물을 조명하는 평전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현대사의 목격 증인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다. 그가 목격한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이란 무엇보다도 1950년의 한국전쟁을 비롯해 1960년의 4·19 학생혁명, 이어 한국 민주주의를 역전시킨 5·16 박정희 군사쿠데타, 1979년 박정희 암살 이후 등장한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저지른 12·12 쿠데타, 마지막으로 1980년 전두환 신군부 정권이 자행한 5·18 광주만행 등이다.
이들 사건들은 그가 저술해 낸 『회오리의 한국정치(Korea: the Politics of the Vortex, 하버드대 출판부, 1968)』의 내용적 벽돌이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미 한국정치를 설명하는 세계적 고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여기서 내린 처방은 한국정치의 회오리 병리를 처방하는 유효한 약재라고 지은이는 보고 있다. ‘촌락과 제왕(village and throne)’으로 한국정치현상을 상징화하고 이러한 병리를 치유하자면 중간매개체의 양성이라는 처방을 내린다.
헨더슨이 저술한 영역은 정치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다산 정약용에 주목해 「정다산: 한국 지성사 연구(Chong Ta-san: A Study in Korea’s Intellectual History)」라는 출중한 논문을 1957년 써냈다. 이어 1958년 그는 미국 의회도서관의 전문사서 양기백 씨와 함께 「한국유교약사(An Outline of History of Korean Confucianism)」를 저술했다. 이 「정다산론」을 계기로 그는 다산 연구가인 이을호 교수와 각별한 교유를 트게 되었으며 그의 조선유교론이 동양사상가이자 재야 민주화 운동가인 기세춘에 지적 충격을 주어 그를 조선 고전에 눈을 돌리게 했다.

여행 동반자

내가 헨더슨 평전을 쓴 것에는 한 인물의 전기를 객관적으로, 또는 연대기적으로 기술하는 것보다 더 높은 동기가 자리하고 있다. 그 인물이 추구한 이상, 사상, 철학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것으로는 충족시킬 수 없는 어떤 여백의 공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공간 안에 내가 그의 영혼과 함께 실존한다고 표현하고 싶다.
헨더슨은 살아생전 40여 년간 필생의 한국 탐방 여정을 수행하다 1988년 불의의 사고로 비교적 짧은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탐방한 여정은 바다와 같이 넓고 깊다. 나는 이제 40년간 그의 한국 여정을 함께하는 동반자의 마음으로 그의 평전을 쓰고자 한다. 영어의 펠로 트래블러(fellow traveler)는 단순한 길동무를 넘어 그가 품은 이상, 사상, 철학을 함께 나누는 동조자이다. 나는 이런 마음의 여행 동반자로서 그의 영혼과 함께 한국여행을 떠나는 마음으로 이 평전을 쓰려고 했다.

저자

김정기

저자:김정기
현재한국외국어대학교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명예교수이다.서울대학교법과대학(1963)을졸업하고,동대학행정대학원에서행정학석사학위(1966)를,미국컬럼비아대학에서정치학박사학위를취득(1992)했다.한국언론학회회장(1996~1997),한국외국어대학교서울캠퍼스부총장(1998.9~1999.9),방송위원회위원장(1999.9~2002.1),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회장(2003~2005)을지냈다.
주요저서:『국회프락치사건의증언』(2021),『미의나라조선:야나기,아사카와형제,헨더슨의도자이야기』(2010),『국회프락치사건의재발견』I·II(2008),『전후일본정치와매스미디어』(2006),『전환기의방송정책』(2003),『우리언론의숨겨진신화깨기』(1999),『분단국가의언론정책』(1995)외다수.

목차

책의구성

프롤로그7

제1부그레고리헨더슨,그는누구인가?
제1장삶의궤적18
제2장헨더슨이맺은한국인연63
제3장지은이가맺은헨더슨과의교유89
제4장헨더슨의도자기미학111

제2부한국정치의병리를진단하고처방하다
제5장헨더슨이만난한국전쟁150
제6장한국정치의중간지대상실161
제7장회오리정치와단극자장218
제8장중간지대의정치합작259

제3부헨더슨의사상,이론,그리고실천
제9장정다산론과조선유교론324
제10장헨더슨의상상,사색,그리고학예:고려청자·고려불교365
제11장군사정권에대한레지스탕스1:고발자헨더슨386
제12장군사정권에대한레지스탕스II:행동하는지성인헨더슨426

에필로그446
헨더슨부처연보451

출판사 서평

그레고리헨더슨의한국여정을담다
내용구성

이책은3부12장으로구성된다.제1부는모두넉장으로제1장은그의삶의궤적과인물됨을추적하고1948년한국땅을처음밟은이후부영사재직시절까지의이야기를엮었다.이시기그는‘이영희사건’이라는악연도만났다.이사건을빌미로버거대사와의불화끝에추방당하는신세가된것이다.그러나한국과의인연은그가살아생전미처생각지도못한곳에서결실을맺었다.그것이‘반민특위·국회프락치사건기억연대’의결성이다.이단체는반민특위및국회프락치사건후손들의명예회복과진실규명을위해지속적으로활동하고있다.이어헨더슨이작성한박정희공산주의전력보고서가지닌가치와의미를분석해보았다.여기서보고서에언급된황태성과황용주가남북한관계에서의미하는바를되돌아보았다.
제2장은헨더슨이어떻게한국과인연을맺었는지이야기체로엮어보고그이후40년간이어진한국역사기행을시기별로풀어냈다.여기에는그가어린시절한국도자기를만난경위를포함해특히국무부로들어가외교관의길을시작할즈음당시한국문화·역사전문가조지매큔박사를만나한국역사와함께한국어를배운이야기를실었고그가만난한국전쟁과전쟁의뒷이야기를엮었다.
이어제3장은지은이가맺은헨더슨과의인연을되돌아보았다.이인연으로지은이는헨더슨부인에게국회프락치사건자료등을넘겨받아이평전을쓸기회를얻게된것이다.마지막으로제4장은그가한국도자기의애호가를넘어도자기미학의경지를개척한이야기를다룬다.
제2부는헨더슨이한국사회의병리를진단하고처방한이야기를담았다.모두석장으로구성되는데,제5장은그가만난한국전쟁이파생한서사를살핀다.제6장은전쟁이남긴,치유하기힘든상처로정치의중간지대상실을다룬다.헨더슨은한국정치의온건파또는중도파가대거납북되거나전쟁의분진속으로사라진것을개탄하면서그것을‘서울의비극’이라불렀다.
다음제7장은1948년그가부영사시절만난국회프락치사건을다루면서이사건이신생대한민국의민주주의향방에끼친영향을되돌아본다.이어제8장은헨더슨이한국사회의병리에대한처방으로내놓은‘중간지대의정치합작’을살핀다.그실행으로서이승만체제의대안으로서김규식-안재홍의리더십을제안한것이그의안목이다.
마지막으로제3부는‘헨더슨의학문,사상,이론,그리고실천’으로제목그대로그가천착한학문,통찰한사상과이론을살피고,이어창백한서생이아니라그가품은이상을실천으로옮기는데주저하지않는,행동하는지성인으로서그가펼친행적을되돌아본다.
제9장은그가학문적으로천착과애정을기울인정다산론을살펴본다.이와함께고려청자와관련해그가구성한고려불교서사를주목했다.그는특히정다산이조선지성사에자리한위치에대해영문으로「정다산:한국지성사연구」를썼으며,그번역본「정다산론」은≪사상계≫1958년4월호에실렸다.나는자료수집과정에서≪사상계≫에실린글을발견했는데그가쓴영어논문이한국사회의지적호기심을불러일으킨것을짐작할수있었다.실제그논문을매개로다산연구가인이을호교수와헨더슨은각별한교유를맺게되었다.
이어제10장에서는헨더슨이고려청자와고려불교와의관계에주목하여「검은계곡이야기(ATaleoftheBlackValley)」라는에세이를쓰는가하면이를가설로삼아연구논문을제시해검증한다.마지막으로헨더슨이박정희에이어전두환군사정권에맞선레지스탕스운동을다룬다.제11장에서는그의실천행동중에서무엇보다도그가고발하고폭로한‘고발자헨더슨’의면모를살폈다.마지막으로제12장은창백한서생으로남는것을거부하고행동하는지성인으로서한국의민주화운동에동참한행동을되돌아보았다.
결론적으로저자는그레고리헨더슨이미국의한국전문가로서그의학문,사상,철학,인물과인품,그가이룬업적으로서한국정치에대한통찰,특히미국국무부의젊은외교관으로서국회프락치사건의재판기록전체를남긴그의업적,이어행동하는지성인으로서용기있는그의실천등에주목하여책을펴내그의영전에헌정하였다.

그레고리헨더슨의주요업적과유산

*1949년5월18일이승만정부성립반년만에일어난국회프락치사건을목격하고재판심리전과정을기록해역사적기록유산을남기다.
헨더슨은1948년8월15일대한민국정부선포를현장에서지켜본뒤일년도못되어터진국회프락치사건을목격했다.그해5·10총선에서정당하게선출된국회의원15명을‘남로당프락치’라고마구잡이로구속하고가혹한고문을자행한전형적인후진독재국가의사건이었다.
1949년5월18일제2회국회가열리기직전이문원(李文源)을비롯한세명의의원이구속되면서사건의서막이오르기시작한다.약한달뒤6월20일제3회국회가폐회된직후김약수(金若水)국회부의장등일곱명이구속되고,8월에는다섯명의의원이더구속되었다.이로써구속된국회의원이무려15명에이르렀다.
이들국회의원들은헌병대에서가혹한고문수사를받은뒤검찰에이첩되었는데,오제도(吳制度)검사는국회의원13명을포함해15명을국가보안법위반죄로기소했다.주심재판관인사광욱(史光旭)판사는1950년3월14일이들전원에게유죄판결을내리고최고10년에서최하3년까지징역형을선고했다.그러나국회의원피고들이이에불복하여항소심이계류된가운데한국전쟁이터졌고,북한군이서울을석권한뒤이들은서대문형무소에서풀려났다.이들중서용길(徐容吉)의원한사람을제외하고전원이1950년9월28일서울이수목되기전북한으로끌려간뒤,이사건은역사의망각속으로사라졌다.
헨더슨은이사건을이승만정권이저지른‘쿠데타’이자국회에대한‘테러’라고보았다.이제는테러를저지른장본인들도,이테러의희생자들도역사의분진속으로사라졌다.이사건의희생자들인13명의국회의원들은헨더슨이표현하듯이‘사건아닌사건(non-event)’‘역사아닌역사(non-history)’에연루되어‘역사적무명인간(historicalun-persons)’으로사라진것이다.
이사건을헨더슨이주목한것은이사건을신생대한민국이택한민주주의를가르는분수령으로보았기때문이다.그렇기에그는이중대한사건에숨겨진진실을밝히고자재판심리의전과정을기록해미국무부로보내귀중한기록유산으로남겼다.

반민특위·국회프락치사건기억연대
한편그가남긴국회프락치사건재판기록은전혀예상치못한곳에서결실을맺었다.그것은‘반민특위·국회프락치사건기억연대’(이하‘기억연대’)의결성이다.이단체는1948년설치된반민특위의위원장등을비롯해특경요원들의후손들과‘남로당프락치’라는주홍글씨로낙인찍힌제헌의원들후손들을주축으로2021년4월19일창립되었다.이들은소장파제헌의원이자선조인프락치의원들의명예회복과진실규명을위해지속적으로활동을벌이고있다.이단체가2022년4월25일광복회관에서주최한학술회의에서김정육회장은인사말에서다음과같이말했다.
“우리가이만큼진실규명과명예회복을이룬데에는두분의은인이있습니다.한분은그레고리헨더슨이라는미국외교관,다른한분은한국외대김정기교수입니다.헨더슨은프락치사건재판기록을남긴분이며,김교수는이기록을세상에알린분입니다.”
기억연대는금년2023년헨더슨영면35주년을맞아헨더슨추모기념학술대회를연다고하니헨더슨은저세상에서흐뭇해할것이라고상상해본다.

**한국사회는단극자장이며그결과나타난한국의회오리정치는응집력이결여한모래성이다.그유일한처방은정치중간지대로의정치합작이다.
헨더슨은주저1968년「회오리의한국정치」[이어그가1987~1988년간쓴전정수정판]에서한국정치를‘회오리(tornado)’라는메타포를사용해설명한다.그는한국이정치발전을위해반드시넘어야할험준한산이있다고봤는데,그것을‘회오리정치(vortexpolitics)’에비유한것이다.그것이미국에서일어나는회오리폭풍,곧‘토네이도’에한국정치를대입시킨그의이론적모델이다.
헨더슨이토네이도에대입시킨한국정치는정당이든개인이든모든정치개체들이원자사회의모래알이되어권력의정상을향해빨려들어간다는것이다.이러한거대한흡인력은이성적인성찰도,여야간의타협도,정책을위한진지한토론도마비시킨다고보았다.이런회오리정치상황에서는정치발전에필수적인요건,곧정치개체간에또는구성원간에조직의응집력을배양할수없다는것이다.
그렇다면문제는회오리정치를어떻게극복하느냐에있다.헨더슨은회오리정치의정형이‘유전병(ahereditarydisease)’일수있지만그것은“사회의유전병이지혈통의유전병은아니다(theoneofthesociety,nottheblood)”라면서,따라서“투병을할수도,더욱이고칠수도있다”(Henderson,1968a:367)고진단한다.
그가내놓은처방전은무엇인가?지은이는그것을한마디로중간지대의정치합작이라고생각한다.이는남한국내정치의역학속에,또는지역정치의대립각속에,그리고남북한간에,한국정치가풀어야할영원한숙제이다.헨더슨이먼저애초한국은이승만의극우파가지배해서도안되고,김일성의극좌전체주의가휩쓸어서도안되는데도현실은극우또는극좌의극한지대로뜀박질해가버린것이한국정치의비극이라고진단한다.따라서그의생각은어쩌면아주단순하고명쾌하다.곧한국은극한지대의대결정치로부터중간지대의관용정치로옮겨와야한다는것이다.

**1950년터진한국전쟁을개탄하여이는한국정치의중간지대의상실을가져온회오리정치의참화이며,‘서울의비극’이다.
헨더슨은무엇보다도무고한한국인들이죽어갔고특히중도파들이사라진것을‘서울비극의가장주목을끄는부분(themostabsorbingpartofthetragedyofSeoul)’이라고말하면서이어그는사라진‘명사(prominentmen)’들의숫자들에놀란다.몇명의정치인과국회의원들의이름을거명하는데여기에김규식,안재홍,조소앙,윤기섭,원세훈,조훈영,엄상섭,김용무,백상규와그의아들등,헨더슨은이것이정치중간지대의절멸을가져온‘서울의비극’이라고개탄했다.헨더슨은서울의비극을구사일생으로살아남은하경덕(河敬德,1897~1951)박사의이야기를통해자세히적고있다.
하경덕은전라북도익산출생으로,1913년전주신흥학교를거쳐1915년평양숭실중학을졸업,이듬해미국으로건너갔다.1925년하버드대학교사회학과를졸업,1928년철학박사학위를받고,1929년귀국했다.그뒤그는조선기독교청년회사회조사위원회총무를거쳐1931년연희전문학교교수가되었다.그뒤흥사단에가입하여후진양성과독립운동에힘쓰다가8·15광복을맞아≪코리아타임스≫를창간하여사장에취임하고,≪서울신문사≫및≪합동통신사≫의사장을역임했으며,잡지≪신천지(新天地)≫를창간했다.1947년과도정부입법의원의원이되었다.그는6·25전쟁이나자미처탈출하지못하여인민군에잡혀갖은역경을거치지만구사일생으로살아남는다.그러나그는그여파로건강이악화된나머지1951년죽고만다.

**다산정약용을흠모하면서그를놓쳐서는한국지성사는성립되지않는다.다산의유배지먼길강진을찾는가하면경기도광주그의묘지를찾아참배하다.
제10장은「정다산론」과함께「조선유교론」을다루는데,그레고리헨더슨은다산정약용을흠모하고그인물에천착했음을그가집필한논문과다산을향한그의행적에서엿볼수있다.간단히말해그는조선왕조말다산과그를둘러싼파당정치에드리워진그림자는조선왕조그자체에이어해방뒤태어난한국의어두움을상징화하고있다.「조선유교론」역시조선왕조의이념적족쇄의시각은뚜렷하지만유교의핵심적자기수행의가치를놓치지않았다.
그는「정다산론」에서다산이조선왕조말까지지배이데올로기로서누구나범치못할주자학에대해비판적실용적사상을견지했다고짚고있다.그러나정다산은파당정치에함몰되고만다.남인문중에서태어나자란정다산은대립하는파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