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청학련 50주년에 다시 듣는 세상을 바꾼 목소리들 (양장본 Hardcover)

민청학련 50주년에 다시 듣는 세상을 바꾼 목소리들 (양장본 Hardcover)

$35.99
Description
반유신 저항운동의 신호탄 ‘민청학련’ 사건과
1974년 전후 선언문들에 담긴
‘역사적 오늘’을 들여다본다
민청학련 사건 50주년을 맞아 관련 자료를 모르고 해제를 덧붙여 책으로 엮었다. 이 책의 엮은이 김창희는 민청학련 사건 2년 뒤인 1976년 대학에 입학해 꼬박 긴급조치 제9호 시대에 대학 생활을 한 시대의 산증인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50년 전인 1974년, 유신독재가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암흑 속에서 희망의 단초를 찾아내고 새 시대를 열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절망과 희망이 담긴 기록을 엮은 이 책은 1974년 4월 민청학련 선언문을 포함해 1970년대에 발표된 각종 선언문, 성명서, 결의문, 호소문, 공개장, 양심선언, 실천선언 등의 문건들 가운데 유신시대를 넘어 새 시대로 나아가는 데에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소개하고 있다.
민청학련 사건을 포함해 1974년에 이루어진 각종 저항운동은 그 이전의 시위 등과 달리 유신체제를 직격하는 것이었다. 1974년의 각종 반유신 운동은 1970년대 초반의 유신체제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각 부문 운동 역량의 성장과 축적, 그리고 연대의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보여주었다. 그 뒤 유신과 신군부의 폭압 체제에 맞서는 한국 사회의 저항·변혁 운동은 이렇게 분출하고 합류해 연대 기구로 역량을 키워갔고, 그 흐름은 1974년 이후 오늘날까지 반세기 동안 이어지고 있다.
저자

김창희

민청학련사건2년뒤인1976년서울대학교에입학해꼬박긴급조치제9호시대에대학생활을하면서그때문학청년의꿈을접었다.대학을졸업할무렵,몇갈래길에서고민하다언론을선택했고,그뒤20여년동안≪동아일보≫와≪프레시안≫에서이런저런글들을써왔다.그사이에언론방식의글쓰기혹은르포르타주문학이모든글쓰기의기본이라는생각을갖게되었다.지금은필요하다고부르는곳에힘을보태고있으며,그렇게일하는가운데몇권의책을펴냈다.『아버지를찾아서』,『오래된서울』(공저),『우리손으로만든머내여지도』(공저),『지식인들의망명』(번역서)등이다.앞으로얼마나쓸수있을지모르겠지만조금더의미있는글들을쓰고싶은욕망이있다.

목차

■들어가는말:이한줄에꿰이는이야기들

■해제:반세기만에다시듣는자유와희망의목소리

1.민청학련
‘민청학련사건’을돌이켜살펴보는이유╻‘1974년’과‘민청학련사건’이갖는의미
2.가톨릭
기독교계로번진민청학련사건의파장╻이나라‘양심선언’의선구╻지학순주교가계기만들고,주교단이앞장서고╻한국가톨릭,한국역사와다시만나다
3.언론
언론인들,치욕과슬픔딛고언론자유의수호자로╻자유언론운동의비극적결말,새변혁운동의시발
4.문인
글쟁이들이길거리로나선뜻은?╻문인들,죽음의고비를넘어정치학습
5.개신교
한국개신교회,현실개입속에민중신학의길로╻일본체류3인조가뿌린씨앗:‘1973년한국그리스도인선언’╻국내외개신교인들의연대╻멀리독일땅에서꿈꾸는‘민생’과‘민족’과‘민권’
6.가족운동
‘어머니’와‘아내’에서‘투사’로!╻시대의비극을예언한구가협
7.1974년전후의학생운동
서울문리대10·2시위:‘패배주의’를넘어‘반유신의횃불’로!╻김상진,자신을바쳐‘피의심판’을예고하다╻긴조9호시대,‘유신정권대학생운동’의사생결단
8.전태일의분신
전태일,‘개발의피해자’에서‘역사의주체’로!
9.재야의공동전선
이나라재야의등장,‘민수협’╻재야의진화,‘민주회복’기치내걸고조직운동으로!╻재야의확신,‘연대’와‘항쟁’╻1970년대의정점에서
10.부문운동들
자유언론,민주·민족언론으로거듭나다╻민청협,어깨동무하고난세를넘다╻“오늘날교육의실패는어디에서오는가?”
11.10·26이후
‘새로운출발’은어떻게오는것일까?
12.에필로그:1974년을‘현재화’하기위하여

■자료편

□1974년이전
1-1.서울시내각대학학생회장등,‘공동결의문’(1970.11.20)
1-2.고전태일선생추도예배참례자일동,‘헌신고백문’(1970.11.25)
2.민주수호국민협의회,‘민주수호선언’(1971.4.19)
3.한국기독교유지교역자일동,‘1973년한국그리스도인선언’(1973.5.20)
4.서울대학교문리과대학학생회,‘선언문’(1973.10.2)
5.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인권문제협의회,‘인권선언’(1973.11.24)
6.한국그리스도인유지일동[독일],‘재독한국그리스도인의선언’[바일슈타인선언](1973.11.25)
7.장준하등,‘개헌청원운동취지문’(1973.12.24.)

□1974년
8.이희승등문인61명,‘민주회복을위한개헌운동은당연한권리’(1974.1.7)
9.민주사회건설협의회,‘민주사회건설을위한선언서’(1974.3.1)
10-1.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중·민족·민주선언’(1974.4.3)
10-2.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결의문’(1974.4.3)
10-3.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격문’(1974.4.3)
11-1.지학순주교,‘나의견해’(1974.7.15)
11-2.지학순주교,‘양심선언’(1974.7.23)
11-3.성직자일동,‘성명서’(1974.8.26)
11-4.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전국평신도협의회,‘결의문’(1974.9.11)
11-5.구속자를위한신구교연합기도회주관단체일동,‘우리의선언’과‘우리의결의’(1974.9.22)
11-6.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시국선언’(1974.9.26)
11-7.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제2차시국선언’(1974.11.6)
11-8.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사회정의실천선언’(1974.11.20)
11-9.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제3시국선언’(1975.2.6)
11-10.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민주·민생을위한복음운동을선포한다’(1975.3.10)
12-1.동아일보사기자일동,‘언론자유수호선언’(1971.4.15)
12-2.동아일보사기자일동,‘언론자유수호제2선언문’(1973.11.20)
12-3.동아일보사기자일동,‘언론자유수호제3선언문’(1973.12.3)
12-4.전국출판노동조합동아일보사지부발기위원회,‘발기문’(1974.3.6)
12-5.동아일보사기자일동,‘자유언론실천선언’(1974.10.24)
13-1.조선일보사기자일동,‘언론자유선언문’(1971.4.17)
13-2.조선일보사기자일동,‘언론자유회복을위한선언문’(1974.10.24)
14.자유실천문인협의회,‘자유실천문인협의회101인선언’(1974.11.18)
15.강문규등66명,‘한국그리스도인의신학적성명’(1974.11.18)
16.민주회복국민회의,‘국민선언’(1974.11.27)
17-1.구속자가족일동,‘둘째번결의문’(1974.11.21)
17-2.구속자가족협의회,‘이른바민청학련사건에관한호소문’(1975.1.28)
17-3.구속자가족협의회,‘성명서’(1975.2.19)

□1974년이후
18.김상진,‘양심선언문’(1975.4.11)과‘대통령께드리는공개장’(1975.4.10)
19.신현봉등신·구교성직자8인,‘원주선언’(1976.1.23)
20.함석헌윤보선김대중등,‘민주구국선언’(1976.3.1)
21.윤보선등10인,‘민주구국헌장’(1977.3.22)
22-1.동아·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민주·민족언론선언’(1977.12.30)
22-2.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진정한민주·민족언론의좌표’(1978.10.24)
23.민주청년인권협의회,‘창립선언’(1978.5.12)
24.해직교수협의회,‘동료교수들에게보내는글’(1978.4.13)
25.김두진등전남대교수11인,‘우리의교육지표’(1978.6.27)
26.민주주의국민연합,‘민주국민선언’(1978.7.5)
27.민주주의와민족통일을위한국민연합,‘민주구국선언’(1979.3.1)
28-1.민주주의와민족통일을위한국민연합,‘성명서’(1979.11.12)
28-2.자유실천문인협의회등,‘나라의민주화를위하여’(1979.11.13)
28-3.통대선출저지국민대회,‘통대저지를위한국민선언’(1979.11.24)

출판사 서평

“어떤강압과폭력으로도노도와같이소용돌이치며흐르는
이도도한물결을결코막지못하리라”
‘민청학련사건’을돌이켜살펴보는이유

“이러한농민수탈체제의수호신은바로1인독재체제와정보·폭압정치이다.5년전의3선개헌으로부터노골화된영구집권의야욕은국민의기본권을유린하는한편이에항의하는학생·지식인·종교인등수많은애국인사를체포·구금·고문·투옥하는만행을서슴지않고있다.소위유신이란해괴한쿠데타·국가비상사태와1·8조치등으로폭압체제를완비하여언론을탄압하고학원과교회에대한억압을더욱가중시킴으로써비판을원천적으로봉쇄하고있다.비판할수없는정치,이것은과연한국적민주주의인가?-‘민중·민족·민주선언’(1974.4.3)중에서”

1974년4월3일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으로약칭)명의로발표된‘민중·민족·민주선언’의일부이다.민청학련사건은이른바10월유신(1972.10.17)이후1년반동안의침묵을걷어낸‘본격적인반유신(反維新)저항운동의신호탄’인동시에‘유신체제몰락의시발점’이었다.실제로이선언의주역,곧민청학련세대의학생운동가들은상당수가그이후한국사회의민주화운동에자신을바쳤다.가깝게는박정희유신독재의철폐에,길게는이나라민주주의의회복과민족통일의대열에기꺼이투신했다.
이책이소개하는기록들을들여다보면1974년유신독재체제하의정치·사회현실이보이고,이에반대하고자유를수호하고자하는저항·변혁운동의생동감이느껴진다.당시의절실한마음,삶전체를거는결단,수난뒤에마침내맞게될새날의기대등이담긴기록들이다.이책이반세기전의기록을담고있지만,옛날이야기가아닌것은오늘에도여전히유효한메시지들이곳곳에숨어있기때문이다.반세기가지나는동안세상의어젠다도많이바뀌어이제평화와생명의가치가우리지향의가장윗자리를차지하는가싶더니근자에는민족의통일을염두에둔평화의가치마저갈곳몰라하는상황에이르렀다.그렇게푯대가흔들리는사이에민중들이모든짐을홀로지고가는양상이되고,양심과표현의자유는민주주의의가장취약한고리임이새삼분명해졌다.그러나세상이그렇게바뀐것처럼보일수록민족의재결합을향한간절한마음만은오히려우리정서의가장밑바닥에서더욱힘차게고동치고있음을새삼경험하는것도사실이다.이의미를돌이켜봄으로써시간을뛰어넘어오늘에까지살아있는가치를느낄수있을것이다.이책을통해우리는1970년대‘시대의목소리’를돌이켜다시듣고,거기서‘역사적현재’가만들어진내력을확인할수있을것이다.


유신체제저항에연대한모든이들,
세상을바꾼그들의목소리는현재에도메아리치고있다

“그리스도교사랑과관용의질서는그관용자체를파괴하려는위와같은독재체제나전체주의만은관용할수없는것이다”
종교계,학생들에게도움의손길을건네다

“우리는우리의기도에서이땅에인권회복민주회복을하느님의소명으로확인하였다.인권회복은정치권력의무한한횡포로부터우리의기본적인권을찾자는것이다.이땅의인간회복은인간다운삶을보장받자는것이며,이땅의민주회복은독재정치의굴레로부터해방되자는것이다.이것은정치적요구가아니라인간적요구이다.-‘제3시국선언’(1975.2.6)중에서”

민청학련학생들은가톨릭교회로부터도큰도움을받았다.이들은당시이른바서울대생내란음모사건으로1년반을복역하고나와있던서울대운동권의선배조영래(1947~1990)에게도움을요청했고,그는김지하(1941~2022)시인에게,김지하는다시가톨릭원주교구의지학순주교(1921~1993)에게요청해상당히큰액수의돈을받았으며,이돈은역시역순으로시위준비중인학생들에게전달되었다.돌이켜생각해보면,이런‘거물’정치인또는종교인들이학생들의시위에자금을보탠다는것은상상하기힘든일이었다.그러나이른바거사자금을준인사들이그런지원에주저한흔적은별로발견되지않는다.오히려당시학생들의행동이야말로정의롭고크리스천정신에합당하다는판단이있었다.그렇게하는것이1970년대중반의시대정신이자하느님의선교(MissioDei)라는확신이그들의손을잡아끌었던것으로보인다.


“우리는헌법이보장하고있는언론의자유가어떤구실로도침해되어서는안되며즉각적이고완전하게회복되어야한다고확신한다”
언론인들,치욕과슬픔을딛고언론자유의수호자로

“작게는뉴스원의봉쇄로부터기사의경중과보도여부에까지외부의손길이미쳤고,이른바정보기관원의‘상주’가빚어내는불합리한사태는일선언론인인우리들에게치욕과슬픔을안겨주었다.이에우리는헌법이보장하고있는언론의자유가어떤구실로도침해되어서는안되며즉각적이고완전하게회복되어야한다고확신한다.기관원의상주나출입은허용될수없으며신문및방송의제작판매의전과정은언론인의양식에따라자유롭게이루어져야한다.아울러우리는오늘의언론위기의책임을전적으로외부로만전가하려하지않으며권리위에잠잔스스로의게으름을반성하려한다.-‘언론자유수호선언’(1971.4.15)중에서”

1971년4월15일‘언론자유수호선언’[자료12-1]이‘동아일보사기자일동’의이름으로채택·공표되었다.이는일선언론인으로서의고해성사이기도했고,언론행위의기본선으로돌아가스스로언론자유를회복하겠다는다짐이기도했다.가장상징적인행위는기관원의사내상주또는출입에대한거부였다.동아일보사도기자들의이런뜻에힘입어정보기관원의철수를요청했고,그날로기관원은‘일단’사라졌다.이선언은전언론사에파장을미쳤다.4월16일한국일보기자들이,17일조선일보기자들을포함해대한일보,중앙일보기자들이비슷한취지의선언문을채택하며언론자유수호의의지를다졌다.그모든활동은제3공화국이후한국사회에새로출현한지식인운동의한양상이었다.굳이범주를나눠보자면,대학생과종교인에이어세번째로등장한지식인집단이었다.그선언의이름이‘수호’이건‘실천’이건그운동은일단헌법상규정된양심과표현의자유에기댄것이었다.다시말해,이들의자유언론운동은그기본성격에있어서조정과타협을전제로하는자유주의적(liberal)인것이었다.


“어떠한탄압속에서도계속될인간본연의진실한외침”
문인들,서울한복판에서외치다

“오늘날우리현실은민족사적으로일대위기를맞이하고있다.사회도처에서불신과불의,부정과부패가만연하여정직하고근면한사람은살기어렵고거짓과아첨에능한사람은살기편하게되어있으며,왜곡된근대화정책의무리한강행으로인하여권력과금력에서소외된대다수국민들은기초적인생존마저안심할수없는지경에이르고말았다.이러한모순과부조리는반드시극복되어야한다.-‘자유실천문인협의회101인선언’(1974.11.18.)중에서”

이선언문의제목은‘자유실천문인협의회101인선언’[자료14]이었다.100인이아니라거기에점하나더찍듯이굳이한명을보탠것도글의재미라고해야할지….그러나본문에이어지는결의의내용은결코간단치않았다.즉,△김지하시인등긴급조치구속자들의석방,△언론·출판·집회·결사및신앙·사상의자유제한불가,△서민대중의생존권보장및노동관련법개정,△유신헌법의개정등이그것이었다.헌법상절대적자유권의보장과노동권의확보는물론이고유신헌법의개정까지나아갔으면할수있는말은다한셈이었다.그것도아주쉬운말로!문인들의움직임에서이런앞선흐름들과조금다른점은,그것이출범의장소를일부러길거리,그것도서울한복판광화문네거리를선택했다는점이었다.

50년전의말과그말의뜻을오늘에현재화하기위해서는…

50년전의말과뜻을되살리는방법은끝까지희망을버리지않는일이다.우리는이미유신7년의암흑기와신군부8년의시련기동안많이들단련되었다.그런긴겨울을겪어본사람만의감각과자신감도나름대로갖추었다.1970년대에점점이또는무리지어우리의길을향도하던그모든선각자의별빛들을다시한번되새기면서2020년대의길을찾다보면판도라의상자속에갇혀있던희망이마침내어느날불쑥우리앞에현실이되어그모습을나타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