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묻다 : 이길여 회고록 (양장)

길을 묻다 : 이길여 회고록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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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길여

일제강점기에전북군산의시골에서태어나,초등학교과정을일본어교과서로마쳐야했다.1945년해방후이리여고에서공부하고,서울대학교의과대학을졸업한후미국뉴욕의메리이머큘리트병원(MaryImmaculateHospital)과퀸스종합병원(Queen’sHospitalCenter)에서수련의과정을마치고일본니혼대학(日本大學)에서의학박사학위를받았다.

1958년‘이길여산부인과’를개원했고1978년국내여의사로는처음으로의료법인을설립했다.의료보험제도가없던시절‘보증금없는병원’을써붙이는등병원문턱을낮추고무의촌과낙도를대상으로무료진료에앞장섰다.의료취약지인백령도와철원,양평에서적자를감수하며의료수혜의폭을넓히는데헌신했으며,그공로를인정받아2003년민간인으로서는최고인국민훈장무궁화장을받았다.

인재양성을위해1998년가천의과학대학교를설립했으며,경원대학교를인수했다.2012년에는4개대학을통합해학생수기준으로수도권사립3위규모인‘가천대학교’를출범시켰다.사재를포함해1천6백억여원을들여뇌과학연구소와이길여암ㆍ당뇨연구원을설립하는등기초의과학발전에심혈을기울여2009년정부로부터최고등급의과학기술훈장을받았다.

한국여자의사회회장,UN여성대회정부대표,서울대의대동창회장,의사협회100주년위원회위원장등을역임했으며,2022년현재가천대학교총장으로재직중이며가천의대길병원,가천문화재단,가천박물관,새생명찾아주기운동본부,가천미추홀봉사단,경인일보에이르기까지,의료ㆍ교육ㆍ문화ㆍ봉사ㆍ언론분야를아우르는국내최대의공익재단인‘가천길재단’을이끌고있다.

목차


책을펴내며:‘발신’‘발휘’‘발산’,그에너지원을찾아/김충식
추천사:생명,제자사랑에모두바치다/김병종

1장미운오리새끼
2장왈가닥모범생
3장전쟁과가난,그리고의대생
4장봉사활동에눈을뜨다
5장낯선천국미국으로
6장이길여산부인과
7장종합병원을꿈꾸다
8장길병원의성장가도
9장성공시대
10장어미새의노래
11장가천의이름으로

출판사 서평

영화〈국제시장〉또는〈포레스트검프〉의‘이길여버전’

일본어만써야했던초등학생시절,이길여는무심코우리말을썼다는이유로교사에게뺨을맞는다.그것도같은조선인교사로부터.초등학교고학년이됐을무렵에는일본군‘정신대’징발로온동네에난리가난다.딸이‘정신대’에끌려가는것을피하기위해조혼바람이불었다.이길여의나이가서너살만많았다면진작시집을갔을것이고,지금의길병원설립자이길여,가천대학교총장이길여는없었을지도모른다.
해방이되고이리여중에입학했을때좌우익의갈등이극에달했다.어느날은좌익선배언니의강권으로,또어느날은우익언니의손에이끌려시위현장에나선다.전쟁이터진뒤,서울대의대에입학했다.한동네에살던‘차순이’,‘신순이’가징집됐고한사람은끝내살아돌아오지못했다.학도병으로나간또래학생들,서울대의대동기남학생들이전쟁터로부터영영돌아오지않아가슴이아팠다.
서울대의대와병원이‘도떼기시장’으로불리던부산국제시장부근에있던시절,이길여는영도다리를지나범일동‘하꼬방’자취집을오가며학교를다녔다.세명이비좁은방에누워잘수없어돌아가며한명은앉아서공부를해야했다.서울로환도했을때꽁꽁언잉크병에입김을호호,불어가며공부를했다.
6·25전쟁이휴전으로매듭지어진후영국등에서온퀘이커의료봉사단과함께군산도립병원에서수련의생활을했고,인천용동우물가에서‘이길여산부인과’를열었다.선진의료를배우고싶어미치도록미국에가고싶었다.비틀즈가미국을‘침공’(브리티시인베이전)하던그해(1964),미국에갔다.뉴욕맨해튼과브로드웨이를거니는날이없지는않았지만대부분은산더미같은병원일에파묻혀살았다.
타국에서의외로움과조국을향한그리움은〈미션임파서블〉같은미국드라마로달랬다.물론이때의〈미션임파서블〉에는톰크루즈가나오지않는다.킹목사가암살됐을때는워싱턴D.C.로가는버스안에서전쟁이라도난것같은총소리를들었고,로버트케네디가저격당했을때는뉴욕퀸스병원로비에서동료의사들과생중계를봤다.

그의증언은‘기록유산’

지금우리사회에는일제강점기,해방과분단,6·25전쟁과휴전,전후의폐허와가난등시대를증언해줄수있는원로들이얼마남아있지않다.그런면에서역사적사건과현장속에있었던그의증언은‘기록유산’이라고할수있다.이를테면이런증언들을누구로부터들을것인가.

“일제강점기초등학교의모범생이었기는한데지금생각해보면먹먹한일입니다.(초등학교)급장이어서그랬던것같기는해도저는〈기미가요(일본국가)〉를열창했습니다.아이들이납작엎드리도록하는교육을받은거예요.”(p.63)

“저같은(중학교)1학년은그런것은모르고선배언니들이가자는대로따라나선것이전부였습니다.그러다보니웃지못할상황도꽤있었어요.어떤날은좌익쪽의선배가나가자니까찬탁쪽에서있고또어떤날은그반대(반탁)고…….”(p.69)

“(문)의대생3명의자취방이너비90센티미터,길이180센티미터더군요.그넓이에서어떻게세명이잘수있습니까?
(답)짐은벽장에두고,앉는책상은벽쪽에세워두고교대로잤습니다.어차피공부는해야하니까한명이앉아공부하면그뒤에두명이나란히자고,그러다가한사람깨워교대하고…….”(p.103)

“(1960년대)한국에서는일상적으로당연하게받아들였던것들이미국에가서보니모두다초라하고비참한수준이었습니다.인천의병원에서쓰던주사기,장갑,거즈,기저귀.이런것들은미국에비교하면,질이떨어지는정도가아니라애초부터비교대상이아니었습니다.한국에있을때거즈나기저귀같은것은누더기가될때까지삶아서다시썼고요.주사기는어머니랑언니가매일밤소독을했습니다.주사바늘은숫돌에갈아재사용했고요.그런데메리이머큘리트병원에서는한번사용한주사기는그냥버리더라고요.세상에.”(p.162)

한류콘텐츠의힘,디테일의재미

‘응답하라시리즈’는1997,1994,1988년으로시대를거슬러올라가면서시청자들의열광적인반응을이끌어냈다.무엇보다‘그때그시절’의추억과향수,그리고정서(情緖)와분위기를환기했기때문이다.
대담자김충식교수의의도가운데하나는이길여총장의삶의궤적과시대적상황과맥락을교차비교하는것이었다.김교수는애초부터“이길여총장의삶의궤적을아주세세하게,그러니까디테일하게기록으로남겨야겠다”(p.21)고다짐했다.그런데추천사를쓴김병종교수의표현을빌리면이길여총장은“놓치지않고챙기는섬세한디테일은사실보통사람은흉내조차내기어려울정도”(p.16)의인물이다.그러니이책은디테일의책이기도하다.
이길여총장은한국콘텐츠의디테일을어렸을때부터알고있었다.어머니가동네사람들에게읽어주었던『심청전』을어머니무릎에누워들었던그는“저만큼『심청전』에대해애착을가진사람도드물겁니다.다들『심청전』의역사적디테일을모를거예요.우리나라고전소설은줄거리와주제만갖고판단해서는안돼요.『심청전』의진정한묘미도디테일에있거든요.”(p.364-365)라고단언한다.그만큼그는한국콘텐츠의디테일을알고있었던것이다.

이길여총장의‘응답’은‘응답하라시리즈’의1988년은물론,1978년,1968년,심지어일제강점기인1938년까지‘소환’할수있다.몇가지사례를들어본다.
1978년이길여총장은국내여성의사로서는최초로의료법인을설립한다.그런데이것은어떤맥락이숨어있을까.이에대해이길여총장은“의료법인이아니면‘병원’이라는이름을쓸수없었고한단계낮은‘의원(醫院)’이라는이름을써야했습니다.무엇보다의사들이의료법인설립을기피했던이유는모든재산을사회에내놓는다는의미가있었기때문입니다”(p.260)라고설명한다.
1968년이길여총장은미국에남으라는주변의강권한만류를물리치고귀국을결단한다.가난한한국보다,더가난한조국의환자들에게‘반드시돌아오겠다’고한약속을지키기위해서였다.그의귀국을미국동료는어떻게받아들였을까.이길여총장은이렇게말한다.

“(저를딸처럼아꼈던퀸스병원병리과주임과장)설리번박사도눈시울을붉혔고요.그분들에게한국은여전히가난한나라,언제전쟁이날지도모르는위험한나라였습니다.그래서더슬퍼했는지도몰라요.저의귀국은그분들에게그런의미였습니다.”(p.194)

1938년이길여총장은‘미취학아동’이었다.그는동네친구들과의사놀이를했다.그의회고다.

“그때는아프면귀신이붙어서그런거라고믿었습니다.내가머리가아프다고하면당골(무당)이와요.당골이광목에쌀한됫박을싸서이걸“쒜,쒜,쒜”하고흔든다음에머리에문지르면아픔이싹가셔요.차가운쌀을머리에대면일단시원하고머리가맑아지는것처럼느껴지잖아요.이방식을의사놀이에써먹은겁니다.
쌀한됫박은너무무거우니까저는그릇에담은쌀을헝겊에쌌습니다.당골흉내를내면서그걸아이들머리에문질러주고“이제귀신이물러갔다~”“너는다나았다~”선언하는겁니다.어떨때는“야,너는목이아프다고해”“너는손이아프다고그래”“너는배가아프다고그래”하면서환자를제가만들었습니다.”(p.88)

K무비와K드라마가세계를휩쓸고있다.한국콘텐츠가지닌디테일과섬세한감정표현이비결이라고들말한다.이책에는위에서소개한일화이외에도무수한디테일로가득차있다.예를하나만들면1964년가을이길여총장은30대초반의아리따운여성친구두명과함께난생처음카바레에들어가려다문전박대를당했다.이유는‘여자끼리와서’였는데과연MZ세대가그맥락을이해할수있을까.이책에는그에대한해답도있다.

이길여로부터무엇을‘읽을’수있을까

시인서정주가‘자화상’에서설파한것처럼사람은‘읽고’,‘읽히는’존재이기도하다.그렇다면현세대는이길여총장으로부터무엇을‘읽을’수있을까.우선‘애국심’이가장쉽게읽힌다.‘애국’은이길여총장이가장많이쓰는단어가운데하나다.두가지언급만옮겨본다.

“누차말씀드렸던것처럼봉사는의사로서의마음가짐이고,정신적모토였습니다.애국은6·25때남학생학우들학도병출전하고돌아오지못한이후로다짐했던것이었고요.”(p.266)

“해마다학생군사훈련단(ROTC)입영훈련장을찾는다.서울의대동기들이6·25전쟁에나가돌아오지못해항상미안한마음으로‘애국’을다짐한다.”(p.491사진캡션)

‘사랑’도쉽게‘읽을’수있는단어다.

“때를놓쳤다기보다는너무깊숙이환자들에게빠져버렸기때문에움직이지못했던것같습니다.‘그때나는환자에미쳤었다’라는말을자주합니다만사실환자도저에게미쳤던시절이었습니다.저를정말아끼고사랑해주었고놓아주려하지않았습니다.제가아니면진찰을받지않으려고하는데어떻게합니까.그런환자를놔두고나만잘살려고미국으로다시떠난다?그럴수는없었습니다.”(p.224-225)

“무료검진이본업은아니었고,여력이있어서한것은아닙니다.마음으로한것이지요.외딴섬마을무료진료를하다가양평,철원같은취약지병원에앞장서게되었고,그러한환자사랑은나의철학일뿐만아니라길병원역사의자랑이라고생각합니다.”(p.287)

“사실저는공익경영이니윤리경영이니하는전문적인용어는잘모릅니다.다만사랑으로경영했을뿐이에요.무당벌레버스같은것도아이들에대한사랑이없었다면탄생하지않았을겁니다.”(p.505)

어떤이는이길여총장으로부터‘통찰’을읽을수도있다.가령그는일본의국력과기세가무섭게뻗어나가던1970년대수도도쿄에서일본의단점을간파하고있었다.

“어떻게보면일본의특성인데요.너무폐쇄적이었습니다.학술콘퍼런스에서느낀것인데일본학생들의수준은미국만큼은아니지만나름대로굉장히높아요.그런데원어로하지않고전부일본어로만하는거예요.의학용어도마찬가지였습니다.의학도세계를향해열리는것이아닌,일본식의학같았어요.한계가있겠구나,그런느낌을받았습니다.”(p.247-248)

이길여총장은한국이미국보다의료선진국일수도있겠다는생각을그어떤분야에서도우리나라가미국을앞선다고생각하지못했던2006년경에한적이있다.

“그때제가‘우리나라가미국보다의료선진국일수있겠구나’하고어렴풋이느꼈습니다.우리나라는그나이면2년마다무료건강보험검진을받잖아요.미국에는그런게없었습니다.”(p.469)

또어떤이는그로부터‘성공노하우’와‘보스기질’,또는‘카리스마’를읽으려할지도모른다.

“저는뭐든지대장이어야했어요.(웃음)어릴때부터이런게있었습니다.어머니는대장이야,할머니는부지런한분이야,그런기억이입력돼있었거든요.어머니는마을부녀회장을맡으셨는데집안어른이든,동네어른이든간에어머니가앞장서서‘하자’고하면그게곧동네의결정이되는거였습니다.”(p.39)

“제가그래서‘간절히꿈꾸고뜨겁게도전하면운도자기편’이라는말을하지않습니까.(p.395)
저는인생의각단계에서최고가되는꿈을꾸며살았고,그것을이루기위해밤잠을잊고노력했습니다.”(p.478)

“빈말이아니라저의성공비결중의하나가잘웃는거였습니다.웃음은거짓말을못합니다.진정으로마음을열지못하면다드러나요.진정으로사람을아끼고사랑하면서활짝웃으며다가가면상대방도나를좋아하게돼있어요.제가만난환자가그랬고,의료또는교육관계자,기자들이그랬습니다.직원들은말할것도없고요.그분들이저를좋아한다는걸제가느끼겠더라고요.”(p.483)

“한국으로떠나는마지막날저녁6시쯤에부동산업자로부터(가천대하와이연수원으로쓸)적당한매물이있다고전화가왔습니다.간부들에게함께가자니까다들지쳐서‘제발살려달라’고하더군요.(웃음)결국저혼자갔습니다.”(p.486)

이밖에도독자들은이책에서이길여총장에대해무엇이든읽을수있다.하지만단한가지그에대해온전히담지못한것이있다.그것은‘이길여라는사람’의매력이다.다만매력은느낌과같은것이어서그런느낌을받은독자가있다면“매력이있다는말이특히마음에드네요”(p.508)라고말했던이길여총장은그것이이책의가장큰성공이라고생각할수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