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고객관적인여론조사없이는
민주주의도없다.”
대한민국정치민주화의초석이된
여론조사의대부,1%의승부사
한국갤럽박무익회장의생애와업적
우리나라를대표하는조사회사한국갤럽이창립50주년을맞는뜻깊은해에《박무익평전》이출간된다.박무익회장은한국갤럽의설립자다.누구도조사에관심을두지않던시절,군부독재의보이지않는압력속에서도그는오로지공정하고정확한여론조사를위해생의모든것을바쳤다.일제강점기인1943년경상북도경산에서태어나1974년국내최초의전문조사회사를설립하여성장시킨후2017년작고하기까지,대한민국현대사와궤를같이하는박무익한국갤럽회장의생애와업적을한권의책에담았다.
박무익회장은1987년국내최초로대통령선거결과를예측하고적중하면서한국인들을깜짝놀라게했다.1997년제15대대통령선거에서는1위와2위후보의득표율차이를불과1%포인트로예측하는강단을보였고,실제선거결과당선자기준오차0.4%포인트를기록해여론조사의정확성이화제가되기도했다.선거예측조사와정치지표조사등을통해대한민국정치민주화의초석이되었으며,이땅에여론조사의꽃을피우고발전시키는데크게이바지했다.지위고하를막론하고그누구에게도높임말을쓰지않던,소주를맥주잔에가득따라벌컥벌컥마시던박무익회장의여정이생생하게담긴이책을통해여론조사에대한그의철학과열정을알수있을뿐더러그가가진색다른매력을느낄수있을것이다.
“나는정치바람을일으키는사람이아니다.여론은한자리에머물러있지않고항상변한다.여론조사는여론의온도를측정하는온도계이자그변화의순간을스냅사진으로찍어서기록할뿐이다.매시점촬영한스냅사진을시간순으로연속배열하고멀리서보면그속의움직임이드러나는것이다.”(박무익한국갤럽회장)
“조사는결코화려하거나
스스로빛나는업(業)이아니다.”
이책은물(Aqua),불(Ignis),흙(Terra),바람(Ventus)네장으로나뉜다.물에서태어나불같이타오르며세상을향해맞섰고,과학적인여론조사야말로민주주의뿌리라며여론조사의주춧돌을놓고바람처럼사라진박무익의생애를물과불,흙,바람으로구성한것이다.1장부터3장까지는문헌연구의성격을띤다.직접현장을찾아보고느낀기록을제외하면한국갤럽의발간물과각종관련서적,참고자료,언론인터뷰등을입체적으로정리한것이다.4장은박무익회장을아는각계의다양한사람들을만나인간박무익을탐구한내용을정리한것이다.
1장‘Aqua큰바다로흐르다’는발품을팔아현장중심으로엮었다.박무익회장의생가탐방부터출신초중고,대학까지물리적인공간을망라했다.1943년에태어나유년시절을보낸경산북도경산시자인면과열살무렵이주하여중학교에다녔던포항구룡포,명문고등학교에진학하여거주했던대구를직접찾아갔다.대학입학을위해서울로올라온박무익회장은서울대철학과와동대학원경영학과를졸업했다.많은연못이둘러싸고있는작은마을에서태어나포항의동쪽끝마을에서넘실대는파도를타며꿈을키웠고,대구로또서울로물살을거슬러올라세상이라는큰바다에닿은것이다.
2장‘Ignis불꽃이튀다’는한국갤럽에대한이야기이다.각고의고생끝에어엿한대한민국최고의조사업체로성장한한국갤럽의성장기를담았다.박무익회장은1970년금성사(현LG전자)에입사하여카피라이터로인정받고한동안광고업계에종사하다가1974년국내최초의전문조사회사인KSP(KoreaSurveyPolls)를설립했다.조지갤럽박사의책을직접번역하면서갤럽과인연을맺었고1879년갤럽인터내셔널회원사가되면서사명을한국갤럽조사연구소로개칭했다.
3장‘Terra민주주의의토양이되어’는한국갤럽이내놓은성과,결과물에초점을뒀다.한국인에게한국갤럽과여론조사의위대함을알린크고작은조사결과물,언론과한국사회의반응등을담았다.1987년국내최초로대통령선거예측에도전하여적중했으며,1997년제15대대통령선거에서는당선자기준오차0.4%포인트를기록하는성과를냈다.정치여론조사뿐아니라한국인의사회의식과라이프스타일을알아보는국제비교조사를해왔으며,장애인과일반인의식조사,한국의종교실태조사등을오랜기간수행하여단행본으로발간하기도했다.이외에도박무익회장이한국갤럽에서이룩한무수히많은업적이담겨있다.
4장‘Ventus세상을감싸다’는박무익회장을아는각계의다양한사람들로부터인간박무익을탐구하는작업으로엮었다.이과정에서는평전의객관성을담보하기위해박무익회장과대등한위치에있는인물들만골랐다.라종일주영·주일대사,마동훈고려대신방과교수,김명신명신특허법률사무소대표변리사,이명현전교육부장관,이한구성균관대철학과명예교수,강현구전롯데홈쇼핑대표이사,노익상한국리서치회장등많은분과인터뷰를통해들은박무익회장에대한회고를정리했다.
“박무익이야말로평전이필요한삶을살았다.난정치학자다.나는공정하고객관적인여론조사야말로자유민주주의의뿌리라는것을잘안다.그런점에서박무익의공은아무리강조해도지나치지않다.”(라종일전주영·주일대사)
이땅에여론조사의꽃을피우고나아가정치민주화에초석이된박무익회장은2017년4월지병이악화하여74세의나이로별세했다.그는“조사는결코화려하거나스스로빛나는업(業)이아니다”라고말했다.때로는관행과시류에맞서야하고비난과질시를묵묵히견뎌야하는어려운일이라는것이다.하지만누군가는반드시해야할일이라고,힘들지만그만큼보람된일이라고말한다.시대를앞서조사인으로서걸어간박무익의회장의치열했던삶을통해여론조사의의미를되새겨보는계기가될수있을것이다.
박무익
1943년경상북도경산에서태어나포항과대구에서청소년기를보냈다.경북대사대부고,서울대학교철학과,동대학원경영학과를졸업했다.1970년금성사(현LG전자)에입사해카피라이터로인정받았다.이후한동안광고업계프리랜서로활동하다가1974년6월국내최초의전문조사회사KSP(KoreaSurveyPolls)를설립했다.1979년갤럽인터내셔널(GallupInternationalAssociation)회원사가되면서사명을한국갤럽조사연구소(GallupKorea)로개칭해오늘에이른다.일찍이다국적기업프로젝트를주로하며국내마케팅조사분야의지평을넓혔고,AD-Score(광고테스트),POSStoreIndex,자체개발TV시청률측정시스템등을선보이며기술적진보도이끌었다.1987년국내최초로대통령선거결과를예측,적중하면서한국인들을경악게했다.특히1997년제15대대통령선거예측에서는당선자기준오차0.4%포인트를기록,당시여론조사의정확성이세계조사업계에화제가되기도했다.
시대상을반영하는여론조사결과가훗날여러분야를연구하는기초자료가된다는믿음하에1980년대부터자체조사결과로단행본,정기간행물등50여권의책을펴냈다.1990년대에는국내최초로조사결과전문데이터베이스를구축했고,2012년부터는‘한국갤럽데일리오피니언’이라는자체조사프로그램을통해매주새로운조사결과를발표하고누구나무료로활용할수있도록해왔다.조사업계와학계발전에도관심을기울였다.1992년8월한국조사협회설립에주축역할을했고1997~1998년3대회장을역임했다.2003년에는한국조사연구학회와함께한국갤럽논문상을,2006년에는한국통계학회와함께한국갤럽학술상을제정해매년시상하고있다.이러한노력을인정받아2013년통계의날동탑산업훈장을수훈했다.2017년2월병상에서마지막저서《조사인으로살다:박무익회고록》을탈고했고,그해4월19일작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