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영혼을바친농민들의서사시
중국인의강한생활력은잡초의억세고질긴느낌에비유된다.잡초는아무땅에서나자라며,땅이주는자양을흡수하며생명을이어간다.대지에매달려있으면어떻게든살아갈수있기마련이다.바람이불면바람따라나부끼면된다.발로밟히는것도순간만참으면몸은본디대로일어선다.때로는들불이라는재난을만나모두불타버리더라도흙속에박힌뿌리는다시생명을이어낸다.
〈대지〉의주인공왕룽은부지런하고땅을사랑하는가난한농군이다.왕룽에게땅은단지재산이아니다.그를낳아주고길러주고고통을부드럽게감싸주는어머니이며,자신은물론자손들의생명을이어가게도와주는신의선물이다.
순종의여인오란을아내로맞이하고,몰락한지주황부자집토지를사들이며풍족한삶을살게되지만,하늘이내려준토지의풍요로움도잠시뿐,곧엄청난메뚜기떼가대지를휩쓰는가뭄으로일가족은생사의고비에놓인다.왕룽은가족을데리고남쪽도시로몸을피한다.그곳에서구걸과막노동의고된세월을보내지만,고향에두고온자신의논밭을떠올리며언젠가돌아갈희망의끈을놓지않는다.
‘대지는남쪽도시에서돌아왔을때그의마음의병을고쳐주었다.태양은머리위에빛나며그의괴로움을잊게했고,여름의더운바람은부드럽게그를감싸주었다.’
토지는왕룽에게행운을가져다주어,그는많은땅을가진대지주가된다.세월이흐른뒤늙고병든왕룽은자리에누워,자식들이땅을팔기위해의논하는소리를듣고이렇게띄엄띄엄말한다.“땅을팔기시작하면,집안은끝장이야.”“우리는땅에서태어났어.그리고다시땅으로돌아가야만한다.땅을갖고있으면살아갈수있다.땅은누구에게도뺏겨서는안된다…….”“만일땅을파는날,그것은세상의마지막이다.”
〈대지〉에는여러유형의여성이등장한다.오란은대지주인황부자집계집종이었으나팔려서왕룽의아내가된다.말수는적으나지혜가있다.남편을만나굶주림과갖은고생을견뎌내고,나이가들어외모가볼품없다고남편에게부당한대접을받는수모를겪으면서도,불평한마디하지않고묵묵히눈물을삼키며인종(忍從)의세월을보낸다.오란은착한성품과인내를미덕으로아는중국여인의모습을여실히보여준다.
렌화는가진거라곤오직자신의아름다움뿐인무능한여자로,성내찻집에있던그녀를왕룽이둘째부인으로맞아들인다.왕룽은한때렌화의미모에홀려재산이고가족이고다제쳐놓고그녀에게매달리지만,곧자신의어리석음을깨닫고본모습을찾는다.셋째부인리화는작가펄벅이가장많은애정을기울이고있는인물이다.그녀는인정많은여자이다.흉년이들었을때왕룽이불쌍히여겨사들인아름다운계집종으로뒷날왕룽의사랑을받는다.왕룽이죽은뒤엔그가남겨놓은백치딸과곱사등이인손자를끝까지잘보살핀다.
〈대지〉의시대적배경은신해혁명에서국민당이정권을잡기까지의시기이다.작가는시대적배경은거의언급하지않고주인공왕룽을중심으로이야기를진행시켜간다.왕룽의고향도그저중국북쪽어느시골이라고만밝히고있다.그러나우리는이이야기를읽어나가는동안중국의‘대지’그자체가주인공이라는확신을갖게된다.때와장소를초월하여중국이라는드넓은대지의이미지가선명하게부각되어있다.이것은펄벅이아니고는쓸수없는이야기이다.서양인으로서그녀만큼중국의내면과중국인의영혼그자체를깊이아는이는드물것이다
농민들은밭을일구고심고,땅에물을대어기름지게만드는일을하늘이주신평생업으로삼아순응하며살아간다.언제라도배가고프면일손을멈추고먹고마시고잠들기도하며,때로는아름다운일출이나석양을바라보거나달이뜨는것을본다.농민의마음은평화로가득차있다.농민이야말로땅의완전한주인이다.이것이야말로지상에서의기쁨이고,이땅에사는남녀는착한인간들이다.
물론마음씨나쁜이들도존재한다.그러나이들은참된농민이아니다.이작품에등장하는숙부일가가그예이다.이런인간들은땅을멀리하고무언가다른삶의방식에의지해서자기를엉망으로만드는인간들로참된농민이아니다.착한농민은이런악인들의행위에는될수있는한참고,최후에악인들은자멸의길을걸어간다.이런여러농민들의생활과농민들의인간애를펄벅은오랜중국생활로잘알고있었다.펄벅의머릿속에서떠오른온갖농민들의다채로운환영(幻影)은그녀의붓끝에서왕룽일가의이야기로태어났으며,마침내중국농민의운명을그리는웅혼한불후의서사시가되었다.
혁명격동기,인간의고뇌〈아들들〉
‘대지’에서태어나,‘대지’와함께죽은아버지왕룽의농민혼은대지에서끝난다.대지로부터태어난농민혼은자란환경의변화와저마다의인생관의차이때문에아들들에게그대로계승되지는않았다.
〈아들들〉은셋째아들왕후의파란만장한분투전이다.그는군벌의수령이되어중국제패의야망을꿈꾼다.〈아들들〉의배경은낡은중국하늘의한귀퉁이에서이미어렴풋하게새벽을알리는아시아근대문명빛이비치기시작할때이다.군웅할거군벌시대,그러나왕후는정의를무시하는극악무도한군벌의수령은아니다.무용(武勇)에서는견줄이가없는뛰어난검객이었고,약자를아군으로삼는정의의무인이다.
왕후는용맹무쌍하면서도모든부하를부들부들떨게할정도로엄격하다.그러면서도한편으로는사랑하는여자가자신을배신하자망설임없이한칼에베어죽이고,추모날밤에슬픔과고뇌로신음하는로맨티스트의모습을보이기도한다.그를이런극단적행동으로몰고간이유는〈대지〉의끝부분과〈아들들〉의시작부분에나온,죽은왕룽의세번째부인인가련한소녀리화를향한끊기힘든사랑이라고말할수있다.
그는형들의도움으로두부인을얻어,첫부인은딸을낳고둘째부인은아들을낳는다.〈아들들〉뒷부분은아들을향한맹목적인사랑으로이루어져있다.그것이군벌로서영원한영광을추구하려는꿈이기도했다.
군벌수령왕후는아들왕옌을서양출신젊은교관의조언에따라남부군사학교에입학시킨다.그곳의교육은신식전투와무기를다룰뿐아니라,그곳에모인청년들의시각도넓었다.그들은세상을향해사상적으로새롭게계발되어,위대한조국의재건에는혁명이필요하다는것을자각하게된다.아들왕옌도그영향을받는다.오랜만에돌아온아들왕옌은혁명군의옷을입고아버지앞에나타난다.이것은군벌수령왕후에게는하늘이무너지는듯한충격이었다.왕후는군도를뽑아들었으나이윽고맥이빠져,충직한늙은하인이들고있던따뜻한술잔을겹쳐가슴속눈물을억눌렀다.여기서작가는인간으로서의고뇌와함께,이제막눈뜨기시작한청년의고뇌를그렸다.
새시대를밝히는희망의빛〈분열된집안〉
〈분열된집안〉은왕후의외아들왕옌이주인공이다.장래의대장군으로기대를한몸에받았던옌은아버지왕후로부터엄격한교육을받지만,본인은군인생활을싫어한다.그의마음의고향은드넓은하늘아래상쾌한대지에서의생활이며,시인기질의그는평화로운땅에서영원한행복의경지를추구한다.
아버지의압력에견디지못한옌은말다툼끝에아버지의관저를뛰쳐나와남쪽해안의대도시로간다.그곳에는의붓어머니인아버지의본처가아름답게성장한이복여동생아이란과함께살고있다.친아들처럼맞아준의붓어머니는응석받이로자라진중하지못하고경솔한딸에대한기대를포기하고,성실한청년옌에게큰기대를건다.옌은외국에서6년동안농업을공부하면서,은사의딸메리와사랑을나누는관계가된다.그러나자신은오랜역사를지닌중국의아들임을떠올리고물보다피가진함을깨달으며메리를떠나마침내귀국한다.귀국을재촉한것은조국의격렬한배외운동과,새중국의탄생이었다.
의붓어머니의양녀메이린은의학을공부하며어머니를도와고아원일에전념한다.그부지런하고청순한모습에옌은깊은사랑을느끼지만,메이린은연구에만전념하며옌의사랑을물리친다.그런데마지막몸부림을치던군벌대항자들이성안으로들이닥친다.왕일가의저택은잿더미로돌아가고,왕후는그가태어나자라고큰성공의기초를다졌던흙집에서죽음을기다리는처지가된다.패배한군벌의모습그대로늙어버린왕후는임종의병상에눕고,옌은머리맡에서마지막효도를다한다.그자리에달려온사람은의붓어머니와메이린이었다.
여기서대작<대지>는흙집으로다시돌아감으로써,인간과역사의덧없는변전속에서도묵묵히영원을살아가는‘대지’를암시적으로그린다.영원한대지와농업기술을익힌옌,새의술을익힌새시대의여성메이린,새중국의탄생,구군벌의붕괴,사양의길을걷는옛특권계급,복잡한양상을보이는시대의흐름속에서―어렴풋이희미하게밝아오는새로운중국안에서도―대지의불멸을믿고,옌과메이린의미래를암시하며이거작은막을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