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1-1778. 그는 자가임서이며, 영서라고도 한다. '당시삼백수'에는 저자가 형당퇴사라고만 되어 있는데 후대인이 그가 손수(孫洙)임을 고증해내었다. 호는 형당, 만호는 퇴사인데, 일반적으로 형당퇴사라고 부른다. 강소성 무석 사람이다. 청 건륭 16년에 진사가 되어, 직례대성, 노륭, 그리고 산동추평지현을 역임했다. 건륭 27년, 산동향시동고관에 임용되었고, 후에 강녕부유학교수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집이 가난하여, '한겨울에 독서를 할 때 항상 나무 막대기를 손에 잡고 있었는데, 목생화 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추위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만년에 고향에 돌아왔다. 저서로 '형당만고'가 있다. 그는 자서에서, '전적으로 당시 가운데 인구에 회자되는 작품을 취하여 그 가운데 더욱 중요한 작품만을 취하였다'고 했으며, '아동들로 하여금 그것을 익히게 하고, 노인들로 하여금 또한 폐하지 않게 했다'고 했다. 곧 그가 선별한 당시는 뛰어난 작품 중의 뛰어난 작품이며, 어른에게나 아이에게나 모두 합당하고, 아속공상의 작품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