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사길이남을최고의종교서사시
《실낙원》은단테의<신곡>과더불어세계문학사에길이남을최고의종교서사시로꼽힌다.전체12편으로이루어졌고1만행이넘는방대한작품이다.구약성서사탄의반역과몰락,아담과하와의낙원추방을모티프로인간원죄와구원의가능성을이야기한다.존드라이든을비롯한그무렵이름난비평가들은이작품을호메로스나베르길리우스의서사시에견줄만한대작이라고극찬했다.
제1편부터4편까지는이시의주제를밝힌다.이어하늘과의싸움에크게져지옥의불바다에떨어진사탄은복수를다짐하고부하천사들의사기를북돋는다.새로창조된인간을이용하기로마음먹은사탄은홀로혼돈의심연을건너지상에내려온다.
제5편부터8편에서는라파엘이에덴에내려와,사탄의꾐에넘어가하나님을거역하지말라고아담에게경고한다.이어천지창조와,아담과하와의탄생에대한이야기가나온다.
제9편과10편에서아담과하와는사탄의꼬임에넘어가선악과를먹고타락한다.그결과사탄의자식들인죄와죽음과악따위가지상을휩쓸고온갖자연재해가일어난다.약육강식의법칙도생겨난다.
제11편과12편에서천사미가엘은아담에게이후그의자손들이겪게될혹독한운명을눈앞에펼쳐보인다.타락한뒤두려움과절망에빠져있던아담은하나님의말씀에기꺼이따라에덴을떠난다.비록낙원은잃었지만‘마음속낙원’을얻으리라는희망을품고서.
고전서사시전통과기독교정신이어우러진걸작
《실낙원》은고전서사시전통에따라,‘장엄체’라불리는격조높은문체로이야기를사건의중간부터시작하여다시처음으로돌아갔다가결말을향해나아간다.아담과하와의타락이야기가중심을이루는가운데,아담이전의아주먼과거부터아담이후그리스도가이땅에내려오기까지의시간흐름속에서,공간적으로는에덴을가운데두고천국과지옥까지아우른다.
밀턴은제1편첫머리에서,옛그리스시인들이다룬신화보다도더높고고상한주제를노래하겠다고말한다.《실낙원》은그의도에더없이걸맞은대작이다.사탄군과천사군의격렬한전투,하나님의천지창조,천국과지옥사이혼돈의심연,천체의화려한운동,환상적인에덴낙원등웅장하고화려하며세심한묘사는한순간도눈을뗄수없을만큼독자의마음을사로잡는다.특히사탄을추악한악마가아닌나무랄데없는영웅적인풍모를가진인물로묘사한점이무척인상적이다.한마디로동서양모든신화를바탕으로한뛰어난문학적상상력의소산이다.
밀턴은셰익스피어,벤존슨,보몬트,플레처등이름난문호들이다져놓은문학적바탕에서고전서사시전통을이어받고,그것을뛰어넘어인문주의적이며기독교적인가치와미덕을내세우는새로운서사시를완성해냈다.
인간의원죄와구원의가능성
밀턴은영국에대한장대한서사시를쓰는대신20여년동안새로운영국을추구하는혁명의소용돌이에스스로뛰어듦으로써마침내하나의서사시를쓸기회를얻었다.새로운영국,새로운예루살렘,새하늘과새땅,새로운낙원은끝내오지않았다.아니,잃었다.그러나그실망에서더욱새로운하늘과새로운땅,새로운낙원에대한희망이생겼다.
뜨겁게끓어올랐던그의마음이식어버린대신깊이가라앉아있던정열이떠올랐다.심연에서부르는목소리가들렸다.이제는새로운하늘과땅,새로운낙원을영국이라는현실의땅에서찾지않고,진지한신앙인과자신의마음속에서찾고자했다.
성스러운존재로서선택된아주특별한인간이아닌보통사람의신앙에완결(코스모스)이란없다.오직혼돈(카오스)이있을뿐이다.그사람에게주어진과제는내면의낙원이라는코스모스를추구하는끊임없는자기정화이다.
《실낙원》은단순한서사시가아니다.다양한의미의혼돈을내면에품고있는우리에게밀턴은가르치는입장에서서바른섭리를설파하는게아니라,우리를끌어들여함께스스로를정화하고참된‘내면의성숙’을추구하고자했다.따라서독자는시인이작품에펼쳐보인내적여정을추체험해야한다.
경건한종교적명상과빼어난문학적상상력의결합
아담과하와가범한원죄를우리는밀턴함께다시범하고,아담과하와가구원을믿고‘내면의성숙’을기도하며낙원을떠날때우리도함께떠난다.
우리가《실낙원》을읽고언제나감동을느끼는까닭은우리‘삶’의고뇌가추체험을절실히받아들이기때문이다.지옥을의식하고신음하는사탄에게우리가공감을느끼는것도그때문이다.따라서이서사시는과거의사건을서술한작품이아니라현재의우리에대해이야기하는살아있는고전이다.
《실낙원》제7편에서도알수있듯이,밀턴스스로도이방대한서사시가많은독자를얻으리라고생각하지못했다.그리고현대의많은비평가도그의신학사상은고루하다며경시해왔다.그럼에도이서사시는영국과서유럽문학문화의결정체로줄곧가장높은자리를지켜왔다.어떤혁명이일어나그리스도교적,종교적인간관이완전히사라지지않는한,밀턴의작품들,특히《실낙원》이서유럽사회에서사라지는일은없을것이다.
문화적,인간적으로다른밀턴의작품을읽기란쉬운일이아니다.그러나종교적문제의식아래죽음과사랑,자연을고뇌하고내면의지옥을성찰하는마음을갖는다면,이먼나라에서온이방인의작품이우리삶의근원적인문제에닿아있음을깨닫게될것이다.
이번역의텍스트는휴스(MerrittY.Hughes)가편집한ParadiseLost(TheOdysseyPress,1935;1962)를사용했다.
19세기프랑스미술을대표하는귀스타브도레(GustaveDore,1832~1883)의환상적인그림이감동을더한다.도레는누구도흉내낼수없는뛰어난상상력과천재적인솜씨로온유럽널리명성을얻었고,수많은낭만파화가들이그의작품을모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