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세유표에 관한 연구 (양장본 Hardcover)

경세유표에 관한 연구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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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서울대 안병직 명예교수, 《경세유표》연구 결정판!
부강한 국가 만들려면 제도는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위기에 처한 나라 살리는 법, 다산 연구에 그 길 있다!
조선후기 실학의 경세학 체계를 밝히다!
조선후기 실학에서는 분야별로 종합적인 저술이 많으나, 유교적 경세학의 체계를 세우려고 한 대표 저서로서는 유형원의 《반계수록》과 정약용의 《경세유표》를 들 수 있다. 서울대 안병직 교수는 본디 다산에 관한 연구자이기 때문에 《경세유표》를 중심으로 조선후기 실학의 경세학 체계를 밝히는 데 20여 년간 노력을 집중해 왔으며 그 결과 조선후기 유교적 경세학 체계를 밝히는 데 성공했다.

다산은 《경세유표》를 저술하는 과정에서 《목민심서》의 저술을 매우 짧은 시일 내에 끝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경세유표》의 고적지법(考績之法)에서 수령이 수행해야 할 업무인 三紀(律己·奉公·愛民)와 六典(吏·戶·禮·兵·刑·工)에서 저술 체계를 쉽게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세유표》는 10여 년간 혼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끝내 저술을 마무리하지 못하여 초고 상태로 남겨질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미쳐 유교적 경세학의 체계에 따라 목차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병직 교수의 《경세유표에 관한 연구》는 거기에서 피력된 유교적 경세학의 체계를 파악하는 일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교적 경세학의 체계가 파악되면, 《경세유표》라는 저술의 체계도 잡힐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자

안병직

1936년경남함안출생.서울대학교경제학과,동대학원경제학과졸업.서울대학교명예교수.前東京大學經濟學部敎授.저서로서『대한민국歷史의岐路에서다』와『茶山經世學에관한硏究』가있다.

목차

개정판서문
서문

序章?연구의개요?…?7
저술경위?…?9
저술체계?…?10
개혁과제?…?11
정전제와魚鱗圖?…?13
정전제와토지소유?…?14
정전제와양전?…?16
정전제와井稅?…?18
四民九職과부공제?…?20
둔전과상비군?…?21
국정과제와관제개혁?…?23

제1장章節構成과體國經野…?27
머리말?…?29
제1절政法三集에서의『경세유표』의위치?…?32
제2절章節의構成과再分類?…?38
제3절硏究史의整理?…?50
제4절體國經野와設官分職?…?56
맺음말?…?71

제2장王政과官制改革?…?75
머리말?…?77
제1절王政과官制?…?82
제2절朝鮮後期의官制와官制改革?…?111
제3절改革課題와官制?…?129
맺음말?…?178

제3장井田法과王土…?183
머리말?…?185
제1절資料의檢討와硏究史의整理?…?188
제2절王土와時占?…?206
제3절國家的土地所有의實現方案?…?228
제4절「井田議」의分析?…?242
맺음말?…?261

제4장井田法과量田…?265
머리말?…?267
제1절結負制과井田制?…?275
제2절井田區劃과新田開發?…?311
제3절方田과魚鱗圖?…?346
맺음말?…?381

제5장井田法과井稅?…?387
머리말?…?389
제1절朝鮮後期의田政紊亂?…?393
제2절井田制와賦貢制?…?429
맺음말?…?478

제6장筆寫本에대한書誌的檢討…?485
머리말?…?487
제1절筆寫本目錄의作成?…?491
제2절著作과筆寫의經緯?…?499
제3절目次排列의檢討?…?509
제4절定本化事業을위한新朝鮮社本의修正?…?518
맺음말?…?520

終章?經田과결부제?…?553
정전제와결부제?…?553
결부제의역사?…?554
고려결부제의실상?…?556
貢法제정에대한논의?…?558
공법제정의문제점?…?561
결부제와측량?…?563
양전의인원과비용?…?565
조선후기사연구에대한시사점?…?568

茶山學術賞受賞所感?…?571

事項索引?…?575
人名索引?…?583

출판사 서평

유교경세학의체계‘체국경야,설관분직’
《경세유표》는《방례초본邦禮艸本》이라고도부른다.즉《경세유표》는周나라의제도를정리해놓은《周禮》에따라저술했다는것이다.그내용을살펴보면,殷나라이전의국가제도를정리해놓은《書經》즉《尙書》도기본참고문헌으로들고있음을알수있다.따라서《경세유표》는《주례》에따라서일단육전즉,六官으로그저술체계를잡아보았지만,경세학체계에는관제만이아니라토지제도를비롯한국가의기본제도가포괄되는것이므로,관직체계만으로써는경세학체계를드러내기가어려웠다.그래서저자는《주례》육관의首章으로제시되어있는‘體國經野,設官分職’이혹시경세학의체계가아닐까생각하고그체계로《경세유표》의章들을재분류해보았는데,그러한재분류가가능하다는것을알았다.
다산스스로도말년에는유교적경세학의체계가‘체국경야,설관분직’이라는것을알았다.그가경세학체계를그렇게이해할수있었던것은농업이지배적인산업인중세이전의사회에있어서는토지제도의기초인經田이곧왕정의기초라는것을이해했기때문이다.이른바經田이곧仁政이라는맹자의가설을확실히이해할수있었던것이다.그래서그는,1820년무렵에저술한《量田議》에서처음으로‘체국경야,설관분직’을언급하면서전지를井田이나方田으로구획해야양전이가능하다고주장하고,그리고1834년의《상서》에관한새로운연구인《尙書古訓》에서는洪範九疇를井田形으로圖解하면서,禹임금이홍수를막고전지를정전으로구획함으로써국가경영의헌장인홍범을실천하는일이上帝가천지를창조·運化하는일(造化)에동참하는것이라설명했다.다시말하면,정전제가단순히토지제도중의하나가아니라왕정의기본제도라이해했던것이다.

국가개혁위한정약용의처방《경세유표》
그러면어떻게정전제가토지제도이면서동시에왕정의기본제도로될수있었던것인가.정전제가왕정의기초가될수있는4가지기본요소를갖추고있었기때문이다.정전은,첫째私田8?가公田1부를둘러싸고있는王土이요,둘째經田을위한‘田家의黃鐘’이요,셋째‘9분의1稅의模楷’이요,넷째‘農家의陣法’이라는것이다.정전제는국유지를정전으로구획하여제왕으로하여금그것을자유자재로농민들에게분배하고회수할수있게함으로써국가경영의기본조건인재정과상비군을확보할수있게하는제도라는것이다.조선이,2,000년동안이나토지제도로서고정불변하는토지의절대면적이아니라비옥도와풍흉에따라수시로변동하는전세를직접파악할것을목표로하는結負制를고집함으로써전지의실태를파악하지못하여,재정과상비군을확보하지못함으로써국가가항상반신불수의상태에있었다는점을감안하면,정전제로의개혁이가지는역사적의미가얼마나큰것인지는쉽게이해할수있다.
그러나정전제가중앙집권의동양적중세사회에서아무리중요하다고하더라도,그것은농민과농업에관한제도에불과하다.《주례》에따르면,인민은三農,園圃,虞衡,藪牧,百工,商賈,嬪婦,臣妾및閒民의9職으로분업하고,산업으로서는농업뿐만이아니라園圃,임업,어업,광업및수공업이존재하므로이러한산업들을진흥하여,그들간에通功易事가이루어지도록해야나라의경제가정상적으로발전할수있는것이다.그래서그는〈賦貢制〉7편을저술하여원포,임업,어업,광업및수공업을진흥하는한편상업을발전시킴으로써,농업이외의산업으로부터도부세를징수하여농민들이전적으로짊어지고있던賦稅부담을덜어주는동시에국가의재정수입을풍부하게하려고했다.조선후기는기본적으로자급자족사회였기때문에위와같은상공업의진흥이가지는역사적의미는엄청난것이었다.

다산의목표는부국강병!
사회발전을가능하게하는시장기구가정비되지못한전근대사회에서는사회발전에서정부가담당하는역할이막중했다.그래서《주례》에따라《경세유표》에서도관제를경세학체계의중심축에두었다.조선에서는관제로서고려말에이미의정부와六曹의체제가도입되었지만,왜구와女眞의騷擾와같은사소한소동에도제대로대처할능력이없어서,정부는일찍부터비변사체제로구차하게운영되고있었다.다산은,정부를의정부와육조의체제로재정비하고,정전제와부공제의실시를위한육조의屬衙門을설치하려고했다.다산의관제개혁에서주목할점은,재정과상비군을확보하여부국강병을달성하는것이그기본목표였는데,이러한일은정전제와부공제를실시하기위한속아문들을설치함으로써가능하다고생각했다.
정전제를실시하기위해서는版籍司와經田司를설치하여經田과양전의업무를담당하게했으며,司圃署,山虞寺·林衡寺,澤虞寺·川衡寺,司?署및織染局를설치하여원포,임업,어업,광업및수공업을각각장려하려고했다.그리고다산은,산업장려에서는通功易事즉분업과상업장려가필수라생각했는데,이를위해서는도로건설과항로개설,도량형기정비,가치가안정적인화폐공급및신용을보장할수있는계약제도정비가필요하다고생각하고,이러한업무를담당할典軌司,典艦司,量衡司,典?署및券契司를각각설치하려고했다.마지막으로뒤떨어진조선의산업을장려하기위해서는당시의선진국인중국으로부터의기술도입이무엇보다도중요하다고생각하고,이러한업무를담당할利用監을두려고했다.

토지개혁없이부국강병없다!
정약용은왜경전을자기시대의최대의과제로삼으려고했을까.그것은조선의경전제도인결부제를가지고서는정확한경전이불가능하다고생각했기때문이다.이러한견해는반계와풍석(楓石)을비롯한실학자들뿐만아니라그무렵식자들의일반적인견해였다.결부제로써정확한양전이불가능한이유는기본적으로두가지였다.첫째는결부가풍흉과토지의비옥도에따라서수시로변동하는수확량(즉田稅)의단위이기때문에,그것으로는전지의실태를제대로파악하기가어렵다는것이요,둘째는결부제에서는측량방법으로5가지의전형(田形)을제시하기는하지만,실제로5가지전형으로토지를구획하는것이아니기때문에,그것들은쓸모없는방법이라는것이다.이러한결부제의결함이가져오는결과는참담했다.
호적과양안이왕정을위한기본자료인데,결부제아래에서는전지의실태가정확하게파악되지못하기때문에,양전을기반으로작성되는이들장부가모두허부(虛簿)에가까웠다.그결과백성들은정부의자의적인수탈로빈곤속에서허덕일수밖에없었고,국가는빈약한재정수입때문에관리의절반에게그빈약한녹봉마저도지급할수없었을뿐만아니라상비군도확보할수없었다.국가가국가로서갖추어야할재정과군사라는기초적조건을제대로갖추지못했던것이다.

한국실학연구결정본!《경세유표에관한연구》
정전제에따른경전이앞서보는바와같은그이론적정합성,학설사적계승성및현실적중요성을가지고있다고하더라도,정전법자체는근대학문에속하는것이아니다.경세학이주로의리를추구하는경학(經學)에종속되어있기때문에,정전법도의리추구를그구성요소로한다.《시경》의“우리공전에비와서드디어우리사전에미치는(雨我公田,遂及我私)”시혜적관계라든가“공전에씨를뿌리기전에감히사전에씨를뿌려서는안되는(公田不播,不敢播其私)”선공후사적관계가바로그런따위들이다.그런데이러한시혜적또는선공후사적관계에는평등한인간관계를전제로하는근대사회에서는용납할수없는신분관계가숨어있다.그러므로근대학문의방법론에입각해정전제를분석하는우리들은이러한의리관계를맹목적으로추구하거나추수(追隨)해서는안되며,비록그것을연구의대상으로하지않을수없다고하더라도,그윤리학적또는정치경제학적함의를냉철하게분석함으로써그의리라는찌꺼기를걸러내야한다.이렇게함으로써이책에서는오늘날한국실학의연구가빠져있는의리추구적경향을극복하려고노력했다.또한조선후기에관한자료와연구를통해《경세유표》에서주장하는가설들의현실적타당성을확인한다.경전제도와부세제도가문란함으로써백성들은도탄속에서헤매고부정부패가창궐하여나라가멸망할지경에이르렀다는것이조선후기에대한《경세유표》의진단이다.다산의이러한날카로운진단은우리에게조선왕조국가의실상을구체적으로파악할수있는귀중한자료를제공해줄뿐만아니라,오늘날국가위기의타개책까지제시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