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천학비재(淺學{菲才)의자질로감히고려사공부에뛰어들게된것은46년전대학에입학하여『역주고려사』색인작업에참여한것이그계기가되었는가보다.지금이야색인작업이전산으로처리되어손쉬운일이되었지만,그때만하여도색인작업에는상당한시간과인력이소요되었다.수천수백장의하얀카드에색인항목이될만한인명,지명,관직명,사건등등을쪽수와함께하나하나또박또박손으로써넣었던기억이지금도생생하다.그덕분에어렴풋이라도고려의제도와벼슬,그리고사람들
을일찍만날수있었다.
이렇게고려사공부에일찍맛을들였지만,정작연구활동은조선전기연구에서부터시작하였다.민중의삶에다가서보려고농민으로구성된정병(正兵)의군역을찾아보기도하고,사화(士禍)의책임을따져보기위해중종때왕권의문제를재조명해보기도하였다.조광조의개혁사상을맛본것도그일환이었다.
고려사연구를본격적으로시작한것은1981년『고려사』「간신전」에올라있는21명의인물을분석하면서부터이다.간신으로지목된21명을시기별정치적사건과관련시켜조사해보았더니그절반이상인11명이충렬왕에서부터공민왕대까지100여년간에분포되어있었고,이들은충선왕왕위계승의저지,심왕옹립운동과입성책동,신돈집권등의정치적사건과연루된인물들이었다.
필자는고려사가운데서도13세기중엽에서14세기말에이르는‘원간섭기’정치사회사연구에특별한관심을가졌다.『고려사』「간신전」을분석하는과정에서원간섭기를살아간사람들에대한촘촘한연구가필요하다는것을절감한데에다,7,80년대에연구를시작한사람으로서외세와사회모순에대한현실인식이투영되어서였을것이다.유신시절과부마항쟁,광주항쟁을겪으면서외세와대면한현실사회의모습을원간섭기고려사회에서찾아보려고욕심부린()것이었으리라.
이후연구는주로이시기국왕의왕위계승과정치세력의동향,문벌인‘세족’가문분석에치중하였다.충렬왕과충선왕,충숙왕과충혜왕사이에왕위가넘나는이른바‘중조(重祚)’현상의배경을이해하기위해원나라정국동향을면밀히파악하고자하였다.고려국내정치상황을원나라정국동향과연관시켜이해하고자한시도는당시로서는평가받을만한것으로써,고려왕위계승이원정국동향에종속되어있었음을확인할수있었다.충선왕토번유배의배경을파악하기위해원나라무종,인종,영종대3대에걸친정치세력의갈래를추적하고이를통해토번유배의배경을새롭게해석할수있었던것은또하나의성과였다고자평한다.
왕위계승문제를논의하는과정에서원간섭기국왕권과정치운영방식을검토할수있는기회도가졌다.충렬·충혜왕대측근세력의분석을통해원간섭기정치운영방식의하나로측근정치를상정했으며,충숙왕대개혁교서의분석을통해개혁정치도정치운영방식의하나로채택되고있었음을확인할수있었다.원간섭기고려의국정운영방식을측근정치와개혁정치의틀로이해하려는시도는이때부터모색되었다고하겠다.그동안원간섭기측근정치와개혁정치를다룬연구들은다음과같다.
ㆍ.홍자번연구-충렬왕대정치와사회의일측면-.,..경남사학..1,1984.
ㆍ.고려충렬왕대정치세력의동향.,..창원대논문집..7-1,1985.
ㆍ.고려충선왕의현실인식과대원활동.,..역사와경계..11,1986.
ㆍ「고려충숙왕12년의개혁안과그성격」,『고고역사학지』56,1990.
ㆍ「충렬왕대측근세력의분화와그정치적귀결」,『고고역사학지』9,1993.
ㆍ「고려충혜왕의왕위계승」,『역사와경계』28,1995.
ㆍ「개혁정치의추진과신진사대부의성장」,『한국사』19,국사편찬위원회,1996.
ㆍ「고려충혜왕대측근정치의운영과그성격」,『국사관논총』71,1996.
ㆍ「고려후기도평의사사연구」,『한국중세사연구』5,1998.
ㆍ「공민왕12년의개혁과신돈집권기개혁정치」,『신돈과옥천사지』,창원대경남학센터,2014.
이책은이상의원간섭기측근정치와개혁정치관련10편의논문을대폭고쳐쓰고,보탤것은보태서12개의장으로새롭게엮은것이다.1991년『고려후기세족층연구』(동아대출판부)를출간한이후,이두번째연구서를세상에내놓기까지무려27년의세월이흘렀다.매사에게으른탓이지만,변명아닌변명을하자면,2000년부터『고려사』역주사업을시작하여2012년에『국역고려사』30책을완간하기까지,이일에매달리느라여력이없었던것인지모른다.
올해2월말로37년간의교단생활을마감하고정년을맞았다.제자들이마련한어느자리에서,교수의책무는연구와교육(강의),사회봉사셋으로,교육활동은정년이지만연구에는정년이없다고큰소리쳤는데,느즈막하게나마이책을내게돼서말값을한셈이되었다.앞으로도이미써놓은글들을꼼꼼히다듬어서몇권의책으로묶어내놓으리라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