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지역적 전개

3·1 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지역적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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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19년은 3ㆍ1운동 1백주년을 맞는 해이다. 이에 2018년 12월 7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는 대통령직속 3ㆍ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주최, 한국사연구회 주관으로 “3ㆍ1운동은 어떻게 전국으로 확산되었나”라는 주제의 학술심포지움이 열렸다. 이 심포지움에서는 모두 8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이 책은 심포지움 이후에 발표원고를 수정 보완하여 한국사연구회에서 연구회총서로 발간한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논문들은 3ㆍ1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다시 짚어보고,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과정과 만세시위 양상이 지역별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주로 밝혔다. 3ㆍ1운동은 일원화, 대중화, 비폭력 원칙을 내건 운동이었다. 따라서 만세운동은 평화적인 운동으로 대부분 진행되었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서는 일제 군경이 시위 주동자를 체포해간 경우, 이를 탈환하기 위해 헌병분견소나 순사주재소를 습격한 경우도 있고, 평소 원성이 자자했던 면사무소를 습격하여 장부를 찢거나 뽕나무묘목을 불태워버리는 경우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논문들은 일부 지역이지만 초기부터 공세적인 시위를 전개한 경우도 있었고, 또 전국적 확산과정에서 후기로 갈수록 시위양상이 더욱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방향으로 바뀌어갔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농촌 지역에서 이와 같은 공세적 시위가 일어난 원인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만세시위가 독립운동이라는 성격 외에도 ‘'민란’적 성격을 함께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저자

한국사연구회

목차

서문

제1부3.1운동의역사적의의

100주년을맞는‘3.1운동’의역사성과현재성∥윤경로

제2부초기의만세시위

만세시위의기폭제가된서울시위∥박찬승

북한지역의선구적독립선언과만세시위
-의주,평양,원산,함흥을중심으로-∥김승태

3.1운동과공세적만세시위의전개
-강서군.맹산군.수안군을중심으로-∥성주현

제3부중기의만세시위

경남중부지역만세시위의점이적성격
-창녕군영산및함안군함안읍시위를중심으로-∥이정은

경북지역의만세운동
-영덕,안동을중심으로-∥심상훈

종교계중심의전라도만세시위
-선행연구검토와향후과제제시를중심으로-∥한규무

제4부후기의만세시위

충남지방의횃불독립만세운동∥김진호

경기도남부지역의정면대결시위
-수원,안성지역을중심으로-∥박환

출판사 서평

이책은제1부에서3ㆍ1운동의역사적의의를짚어보고,제2부에서는초기의만세시위,제3부에서는중기의만세시위,제4부에서는후기의만세시위를짚어보는식으로구성되었다.전기,중기,후기에는주로각도별시위들을배치했고,각논문들은각도의시위가운데격렬했던2~4곳의시위들을다루었다.제2,3,4부에배치된각도별시위가시기적으로꼭초기,중기,후기의시위에맞는것은아닐수도있다.다만대체로각논문이다루고있는시위가어느시기를중심으로전개되었는가를기준으로하여,시기별로논문을나누어배치한것이다.
이하각논문의주요논지를살펴보자.제1부에실은윤경로의ㆍ100주년을맞는‘3ㆍ1운동’의역사성과현재성ㆍ이라는글은3ㆍ1운동의명칭을‘3ㆍ1혁명’으로바꾸어부를것을제안하고있다.그것은3ㆍ1운동의과정에서주권재민의민주공화국인대한민국이탄생했기때문이다.최근3ㆍ1운동을3ㆍ1혁명으로고쳐부르자는제안이학계안팎에서나오고있다.앞으로이와관련한논의가진행될때반드시참고해야할논문이라고생각된다.

제2부에는주로3월초순에전개된초기의3ㆍ1운동을다룬다.박찬승의ㆍ만세시위의기폭제가된서울시위ㆍ에서는서울의시위가1차시위(3월1일)은중등학교학생,2차시위(5일)는전문학교학생,3차시위(22~26일)은노동자등으로주체세력이바뀌어갔음을밝히고있다.그리고3월1일시위대가혼마치2정목(현재의충무로2가)으로모여든것은시위대의최종행진목표가남산에있던조선총독부였기때문이었으며,따라서총독은급히조선군사령부에요청하여군대를동원해서이를막았음을밝혔다.
두번째와세번째논문은북한지역의3ㆍ1운동에관한글들이다.김승태의ㆍ북한지역의선구적독립선언과만세시위ㆍ에서는1919년3월1일독립선언식과만세시위가일어난곳은경기도의서울과고양,평안북도의의주와선천,평안남도의평양,진남포,안주,함경남도의원산,그리고황해도의해주의9곳인데,서울과고양을제외한7곳이현재의북한지역이라는것을밝혔다.이글은그이유가그곳에기독교계인맥과교회,학교조직이있었기때문이라고보았다.성주현의ㆍ평안ㆍ황해지역의공세적만세시위ㆍ는평안도지역과황해도지역에서는3ㆍ1운동초기부터공세적만세시위를전개한곳이적지않았다는것을밝혔다.이들지역의만세시위는초기부터적극적으로,그리고공세적으로전개되었으며,그중에대표적인곳이강서군과맹산군,그리고수안군의만세시위로서,이지역에서는초기부터헌병분견소와면사무소등관공서를습격하고헌병을살해하는등격렬한공세적시위가전개되었음을밝혔다.맹산군시위의경우,현장에서54명이군의총에맞아즉사했는데,이는총독부경무국통계에서도전국에서가장큰희생자가발생한사건이었다.

제3부에서는3월중순부터하순까지중기의3ㆍ1운동을다룬논문들을실었다.이시기에는운동의중심이중남부지역으로옮겨졌다.여기에실린첫번째논문은이정은의ㆍ경남중부지역만세시위의점이적성격ㆍ이다.남부지방에서가장격렬한시위가전개된곳은경상남도였다.이논문은그가운데에서도격렬했던경남창녕군영산과함안군함안면의시위를다루었다.3월13일창녕군영산면시위는서울에서민족대표33인이구성된것과유사하게청년들이24명의‘결사단’을조직하여시위를주도했다.3월19일경남함안군함안면시위는더욱공세적으로전개되었다.면내각지에서각시위들이한동리또는면의고립적인단독시위가아니라동리와동리,면과면이상호연대하여추진되었다.
두번째논문은심상훈의ㆍ경북지역의만세운동ㆍ으로영덕,안동의사례를다루고있다.학술심포지움에서는경북지방을다룬논문이따로발표되지않아,책을편집하는과정에서필자에게특별히원고를청탁하여실은논문이다.이글에서는영덕군의경우,남쪽지역은평화적인시위가전개되었으나,북쪽영해지역에서는지역소외에대한불만으로처음부터공세적인시위가전개되었다는것,안동지역에서는기독교측이운동을준비하는경우들이있긴했으나,운동을끌고간주역은주로유림과민중이었다는것등을밝혔다.
세번째논문은한규무의ㆍ종교계중심의호남지역만세시위ㆍ이다.호남지방은경남이나충남에비해상대적으로시위의규모도작고횟수도적었다.그것은1910년직전의병전쟁에서가장큰희생을치렀기때문이다.이글에서는호남지역만세시위를천도교와기독교계가주도했으며,전체적으로는기독교인의비중이천도교인의비중보다컸다고보았다.특히전라남도는기독교인이천도교인를압도했고,전라북도도기독교인이천도교인보다우세했다고보았다.그이유는기독교측이‘교회’조직외에도‘학교’나‘병원’과같은근대적기관을갖고있었기때문이라고설명한다.

제4부에서는후기의만세시위,특히충남과경기지역의만세시위를다루었다.첫번째논문은김진호의ㆍ충남지방의횃불독립만세운동ㆍ이다.다른지역과달리이지역에서는‘산상야간횃불시위’라는독특한시위양상이나타났다.이는일제의직접적인탄압을피하면서운동을전개하기위해서였던것으로보인다.3월23일연기군조치원북면,남면,서면면민에서시작하여4월17일보령주산면주렴산의횃불만세에이르기까지26일간에충청남도14개군가운데12개군에서64개면,216개마을에서238회이상의횃불만세시위에약1만명이참여하였다.이러한운동으로45명이재판에회부되어옥고를겪었으며,대부분의참여자는경찰서,헌병대에서즉결처분을통해태형(60도에서90도)을당했다.
두번째논문은박환의ㆍ경기도남부지역의정면대결시위ㆍ로,수원과안성지역의시위를다루었다.3월하순에서4월초순에걸쳐경기도지역에서는수원,화성,안성등지에서시위가거세게일어났다.이글은그가운데에서전국에서가장격렬했던시위현장인수원군우정면화수리항쟁에주목한다.화수리항쟁은그동안제암리희생지에묻혀주목을받지못했다.이글은일반적으로3ㆍ1운동의경우일반적으로평화적인만세시위를연상하는경우가많지만,화성지역의경우3월29일송산면에서노구찌순사를처단하였으며,화수리에서도역시가와바다순사를무력으로처단하는등격렬한모습을보였다는점에주목했다.

이상에서이책에실린논문들을간단히소개했다.앞서도언급했다시피이책에실린논문들은3ㆍ1운동을단순히평화적인만세시위운동으로만볼수없게한다.그렇다면왜그와같은공세적인시위,민란과유사한시위들이나타났는지추적해볼필요가있다고생각된다.앞으로이에대한보다깊이있는연구가진행되기를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