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고종의 미관파천 시도를 통해 돌아보는 한미관계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미국과 가깝게 지냈을까? 이 책은 한미관계의 시초에 대한 연구를 담고 있다. 초대 주한미국공사를 맡은 루시우스 푸트(Lucius H. Foote)가 남긴 “미국은 조선과 가장 먼저 조약을 체결한 국가이며, 마지막까지 조선에 머무르는 나라가 될 것이다.”라는 기록을 통해 미국이 조선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를 볼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고종으로 하여금 친미의식을 불러일으켰으나, 푸트의 장담과 달리, 미국은 조건에서 가장 먼저 공사관을 철수시킨 국가가 되었다. 그럼에도 고종은 알렌과 헐버트를 비롯한 미국인에게 의지하며 조선의 독립을 요청하나 모두 실패로 끝난다.
고종이 이토록 미국에 의지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고종이 미국공사관으로의 피신을 계획하게 된 날짜를 전후하여 그의 군주권이 위협받거나, 국가 존립에 위태로운 상황이 발생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종은 왕위 정통성이 없었던 그를 후원해주던 조대비(신정왕후) 장례식을 치루며 위기감을 느끼자 미국 해병대를 통해 신변을 보호받기를 미국에 요청하였고, 1893년 선조의 환도 300주년을 기념하여 경운궁과 정동 주변 선교사들 주거지를 살피며 유사시 미국공사관으로의 피신을 생각해두었다. 또한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 세력이 득세하자 미국공사관 바로 옆에 왕실도서관을 짓고, 바로 윗길은 미국공사관이 소유하도록 매도하여 언제라도 미국공사관으로 대피할 수 있도록 사전적 조처를 해두었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환궁한 이후 러시아 세력이 고종의 군주권을 위협하자 결국 다시 미국공사관으로 피신하려고 한 점에서도 보이듯 고종에게 남겨진 최후의 보루는 러시아가 아닌 미국이었다. 하지만 이는 중립을 지키려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꽤 성가신 일이었기 때문에 고종의 시도는 번번이 거절당하였다. 몇 번을 거절당하면서도 미국공사관으로 피신하려고 하는 고종의 행위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자국의 이익을 최대한 가져가려고 하는 미국 외교관들의 외교술에 있었다. 고종이 미국공사관으로의 피신을 타진할 때 마다 미국공사관에서는 우회적 거절을 하면서도, 조선에 대한 우호적인 제스처를 잊지 않았다. 철도 부설, 수도, 금광 등 조선에서 가져갈 이익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알렌이 모스에게 보내는 편지에 “짜낼 스펀지가 아직 마르지 않았다.”라는 표현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게다가 일본은고종의 미국공사관 피신이 자칫 그들이 계획한 한일병탄에 장애가 될까 두려워 이를 방해하였다.
따라서 과거 고종의 미관파천 시도와 좌절은 현재 대한민국이 중국, 러시아, 그리고 일본 사이에서 어떻게 한미관계를 정립하고 나아가야 할지와 관련하여 중요한 시사점을 보여준다.
본서는 저자의 박사학위논문(?고종의 미관파천(美館播遷) 시도와 한미관계(1894~1905)?,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2018)을 가필한 것이다. 박사학위 논문 발표 후 학술지에 투고한 논문(3장, 4장, 5장)을 수록하였고, 일부는 최근 탈초 번역되어 공개된 ?알렌문서?를 추가하여 보충했다. 이 문서에서 미국공사관으로의 피신과 관련된 추가적 정황을 발견하지 못하지만, 고종의 상황을 옆에서 지켜본 알렌의 여러 서한 및 전문, 미국공사관 관련 사진 자료 및 기록 등을 보충한다.
고종이 이토록 미국에 의지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고종이 미국공사관으로의 피신을 계획하게 된 날짜를 전후하여 그의 군주권이 위협받거나, 국가 존립에 위태로운 상황이 발생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종은 왕위 정통성이 없었던 그를 후원해주던 조대비(신정왕후) 장례식을 치루며 위기감을 느끼자 미국 해병대를 통해 신변을 보호받기를 미국에 요청하였고, 1893년 선조의 환도 300주년을 기념하여 경운궁과 정동 주변 선교사들 주거지를 살피며 유사시 미국공사관으로의 피신을 생각해두었다. 또한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 세력이 득세하자 미국공사관 바로 옆에 왕실도서관을 짓고, 바로 윗길은 미국공사관이 소유하도록 매도하여 언제라도 미국공사관으로 대피할 수 있도록 사전적 조처를 해두었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환궁한 이후 러시아 세력이 고종의 군주권을 위협하자 결국 다시 미국공사관으로 피신하려고 한 점에서도 보이듯 고종에게 남겨진 최후의 보루는 러시아가 아닌 미국이었다. 하지만 이는 중립을 지키려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꽤 성가신 일이었기 때문에 고종의 시도는 번번이 거절당하였다. 몇 번을 거절당하면서도 미국공사관으로 피신하려고 하는 고종의 행위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자국의 이익을 최대한 가져가려고 하는 미국 외교관들의 외교술에 있었다. 고종이 미국공사관으로의 피신을 타진할 때 마다 미국공사관에서는 우회적 거절을 하면서도, 조선에 대한 우호적인 제스처를 잊지 않았다. 철도 부설, 수도, 금광 등 조선에서 가져갈 이익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알렌이 모스에게 보내는 편지에 “짜낼 스펀지가 아직 마르지 않았다.”라는 표현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게다가 일본은고종의 미국공사관 피신이 자칫 그들이 계획한 한일병탄에 장애가 될까 두려워 이를 방해하였다.
따라서 과거 고종의 미관파천 시도와 좌절은 현재 대한민국이 중국, 러시아, 그리고 일본 사이에서 어떻게 한미관계를 정립하고 나아가야 할지와 관련하여 중요한 시사점을 보여준다.
본서는 저자의 박사학위논문(?고종의 미관파천(美館播遷) 시도와 한미관계(1894~1905)?,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2018)을 가필한 것이다. 박사학위 논문 발표 후 학술지에 투고한 논문(3장, 4장, 5장)을 수록하였고, 일부는 최근 탈초 번역되어 공개된 ?알렌문서?를 추가하여 보충했다. 이 문서에서 미국공사관으로의 피신과 관련된 추가적 정황을 발견하지 못하지만, 고종의 상황을 옆에서 지켜본 알렌의 여러 서한 및 전문, 미국공사관 관련 사진 자료 및 기록 등을 보충한다.
고종의 미관파천 시도와 한미관계(1894~1905) (양장본 Hardcover)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