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수상의용태는점점악화되어그날밤11시26분절명했다.이사건을5·15사건이라고부른다.
이사건을계기로1924년6월의가토타카아키(加藤高明)내각이래8년가까이지속되어온정당정치의토대가붕괴되었다.그리고약4년뒤인1936년2월육군을중심으로일어난쿠데타미수사건(2·26사건)을거치면서일본정치는혼돈의늪으로빠져든다.결국군부파쇼정권이등장하게되었고,그결과전쟁확대의길로접어들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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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상황에서후타바회는회합을열고육군으로서의대응과관동군고급참모고모토대좌에대한구제책을협의하였다.이것이육군내부에있어서하극상풍조의출발점이된다.다른의미에서1929년은후타바회의전성기이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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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키는이들과격의없이어울리며이들을자기세력화해보려는의도와이들을통제해보려는생각,어느쪽이었는지,두가지생각모두가지고있었는지모르겠으나,결국은이들에게자중할것을주문하였다.그결과이들로부터의인기도떨어지고,이들을통제하는데도실패하였다.이상황이되자아라키는육군대신을사임하고만것이다.수년후이들‘청년장교’들이2·26사건을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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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진압되고오카다내각은총사직하였다.앞으로의사태수습을담당할후임수상을찾기가쉽지않았다.정계에는‘군부에반항하면죽는다’는분위기가생겨수상을하려는사람이없었다.카리스마넘치고소신있는지도자는더욱위험하다.만일이러한지도자가군부와충돌한다면또다른비극을불러올것이뻔하기때문이다.괴물집단으로변해버린군부,특히주도권을잡고있는좌관급참모들의비위를맞춰가며정부관료들을이끌고갈능력을갖춘지도자는별로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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