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우리나라 중・근세의 성곽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해보다
중근세 성곽은 크게 5번의 중요 축성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첫 번째는, 후삼국시대를 거치며 고려 개국 전후 고려, 거란 전쟁기를 전후한 시점에 전국적인 축성이 이루어진다. 특히 목종, 현종대 읍성류 및 농보류의 축성이 동여진과 왜에 대한 관방시설로서 축조를 보았던 기록이 보이고 있다.
두 번째는 13세기 중엽 대몽항쟁기에 전국에 걸친 청야입보를 위한 다수의 산성 개수축 및 신축이 이루어졌다.
세 번째는 14세기 고려말 주로 왜구에 대비한 연해 지역의 축성에서부터 시작하여 왜구의 침입이 있었거나 침입의 우려가 있는 내륙지역에 대한 축성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高麗史』 기사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견고함을 추구하기 보다는 속성위주의 축성공사였다.
네 번째는 고려말 이후 조선 개국 이후에도 기승을 부리는 왜구에 대한 방어책으로 우선적으로 이루어진 산성 수축이었다. 이러한 태종 13년에 시행한 비변책備邊策은 대체로 세종 16년을 고비로 산성이 잠차 혁폐된 것으로 파악된다. 즉 외적에 대한 적극적인 방어책을 강구하여 실행에 옮기는 것이 산성에서 읍성 신축으로 바뀌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양란 전후를 한 시기로 임진왜란 발발 직전에 전국 성곽보수 및 신축령에 따라 대대적인 수개축이 이루어졌다. 이때 전쟁 발발 이후 남해안지역에 축성된 왜성 구조 및 축조수법 등이 참조되기도 하였다. 임란 이후 국방력 강화를 목적으로 각 지역별 거점성곽에 대한 수개축이 이루어졌다. 특히 경상, 전라 2지역에 산성 수개축이 이루어졌다. 이때 성곽수개축 및 운영은 기존 읍성 중심이 아닌 대규모 침입에 입보농성이 가능한 성곽을 지정하여 주변 고을 주민들이 유사시 입보하여 장기전을 치를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두 번째는 13세기 중엽 대몽항쟁기에 전국에 걸친 청야입보를 위한 다수의 산성 개수축 및 신축이 이루어졌다.
세 번째는 14세기 고려말 주로 왜구에 대비한 연해 지역의 축성에서부터 시작하여 왜구의 침입이 있었거나 침입의 우려가 있는 내륙지역에 대한 축성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高麗史』 기사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견고함을 추구하기 보다는 속성위주의 축성공사였다.
네 번째는 고려말 이후 조선 개국 이후에도 기승을 부리는 왜구에 대한 방어책으로 우선적으로 이루어진 산성 수축이었다. 이러한 태종 13년에 시행한 비변책備邊策은 대체로 세종 16년을 고비로 산성이 잠차 혁폐된 것으로 파악된다. 즉 외적에 대한 적극적인 방어책을 강구하여 실행에 옮기는 것이 산성에서 읍성 신축으로 바뀌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양란 전후를 한 시기로 임진왜란 발발 직전에 전국 성곽보수 및 신축령에 따라 대대적인 수개축이 이루어졌다. 이때 전쟁 발발 이후 남해안지역에 축성된 왜성 구조 및 축조수법 등이 참조되기도 하였다. 임란 이후 국방력 강화를 목적으로 각 지역별 거점성곽에 대한 수개축이 이루어졌다. 특히 경상, 전라 2지역에 산성 수개축이 이루어졌다. 이때 성곽수개축 및 운영은 기존 읍성 중심이 아닌 대규모 침입에 입보농성이 가능한 성곽을 지정하여 주변 고을 주민들이 유사시 입보하여 장기전을 치를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한국 중근세 성곽의 이해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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