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조선과 일본의 외교관계는 왜구문제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350년(충정왕 2)부터 격심해진 왜구의 침입은 홍건적의 침입과 함께 고려를 몰락하게 하는 주요한 요인의 하나였다. 따라서 왜구문제는 조선조정이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이에 이성계는 즉위하자마자 막부장군에게 사신을 파견하여 왜구의 禁制를 요청하였다. 이로써 조선과 일본의 교섭은 시작되었고, 막부장군을 비롯한 지방의 호족들이 왜구의 금제를 약속하고 피로인을 송환함으로써 급진전되었다.
왜구문제는 조선의 다양한 왜구대책과 동북아시아 국제정세의 안정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렇지만 일본으로부터 도항하는 왜인의 증가로 조선의 군사적, 경제적인 부담이 가중되었다. 따라서 조선에서는 왜인을 통제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을 강구하였다. 즉 조선에서는 書契와 文引에 의한 통제, 세견선의 정약, 포소의 제한 등 왜인에 대한 통제책을 실시하는 한편 수직제도와 수도서제도 등의 회유책도 병행하였다. 이를 통해서 조선에서는 일본의 통교자를 조선중심의 외교체제 속에 편입시키고, 특히 대마도주에게 통교상의 여러 가지 특권을 인정해주어 그로 하여금 일본으로부터의 통교자를 총괄하도록 하였다. 그 과정에서 조선의 대일 외교창구는 대마도주로 일원화되었고, 도주는 조일외교에 있어서 특수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 결과 조선전기의 대일외교는 室町幕府보다 대마도와의 관계가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대마도의 역할이 중요시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조선과 대마도와의 외교체제에 대한 연구는 조선전기 한일관계의 구조와 성격을 이해하는데 커다란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구문제는 조선의 다양한 왜구대책과 동북아시아 국제정세의 안정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렇지만 일본으로부터 도항하는 왜인의 증가로 조선의 군사적, 경제적인 부담이 가중되었다. 따라서 조선에서는 왜인을 통제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을 강구하였다. 즉 조선에서는 書契와 文引에 의한 통제, 세견선의 정약, 포소의 제한 등 왜인에 대한 통제책을 실시하는 한편 수직제도와 수도서제도 등의 회유책도 병행하였다. 이를 통해서 조선에서는 일본의 통교자를 조선중심의 외교체제 속에 편입시키고, 특히 대마도주에게 통교상의 여러 가지 특권을 인정해주어 그로 하여금 일본으로부터의 통교자를 총괄하도록 하였다. 그 과정에서 조선의 대일 외교창구는 대마도주로 일원화되었고, 도주는 조일외교에 있어서 특수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 결과 조선전기의 대일외교는 室町幕府보다 대마도와의 관계가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대마도의 역할이 중요시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조선과 대마도와의 외교체제에 대한 연구는 조선전기 한일관계의 구조와 성격을 이해하는데 커다란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전기 한일관계와 대마도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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