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서양문화를만든두가지기둥
고대그리스철학과그리스도교의만남
‘역사의시그니처’시리즈의세번째책인『신앞에선인간』은오늘날우리에게깊은유산을남긴중세초기의시대정신을살펴본다.한국중세철학회회장,한국가톨릭철학회화장,가톨릭대학교성심대학원원장,김수환추기경연구소소장을역임한동시에철학자로서중세철학원전에담긴보화를번역과연구를통해적극적으로소개해온박승찬교수(가톨릭대철학과)는여전히유구한가치를지니는중세의시대정신을다시조명하기위해이책을집필했다.
고대사상의유산을이어받은그리스-로마문화는제국의변방에서태동한그리스도교와의만남을통해완전히새로운국면을맞았다.『신앞에선인간』은로마제국의시작과끝,그리스철학과그리스도교라는두문화가마주한대격변의시대를살았던인물들의사유와삶을돌아본다.저자는“한시대가가고,또하나의다른시대가오는전환기”를겪은각각의인물이쌓아올린지성을통해다른시대와뚜렷이구별되는중세특유의시대정신과가치를길어낸다.
이책에서저자는사도바울로부터아우구스티누스에이르는인물들을통해그리스-로마문화와그리스도교가어떤방식으로결합하였는지친절하고세세하게살펴나간다.사도바울로를통해그리스도교가세계종교화가된과정을,마주하기시작한철학과종교가플로티노스와오리게네스의사유속에서점차결합하는과정을,그러한사유가아우구스티누스와보에티우스를통해화려하게꽃피는모습을돌아본다.
이성의고대에서중세로의대전환
철학적신앙을위한격동의지적실험
처음부터그리스-로마문화와그리스도교의만남이순탄했던것은아니다.서로다른고등문화의만남이그렇듯,두문화의만남은다양한갈등을겪었다.로마제국의변방에서탄생한그리스도교는이성중심의고대철학을이어받은그리스-로마의문화와인생관,자연관에서종교관까지상당히다른면모를보였다.그러나로마제국과유대교로부터동시에박해받던그리스도교는‘모든인간이동등한신의자녀’라는숭고한인류애를바탕으로로마제국전역에불길처럼빠르게퍼져나갔다.철학과종교의아슬아슬한동행이시작된것이다.
철저하게인간이성에바탕을두었던그리스철학은절대적유일신을인정하는그리스도교를만남으로써양립할수없는많은부분을설명해야했다.두문화는모두“진리추구와인간성함양이라는목표”를공유했지만,수단과방법의차이는많은갈등을낳았다.그러나오랜긴장관계에놓였던철학과종교는점차다양한단계를거쳐융합되었다.신앙의토대위에철학적방법론을결합하려는지성의실험이이루어졌고,초월적절대자아래세상의모든진리를얻고자하는야심이지성의새로운원동력이되었다.중세를거치며철학의헬레니즘과그리스도교의헤브라이즘은서양문화를지탱하는거대한두기둥이되었다.
그리스도교는어떻게세계종교가되었을까?
사도바울로부터아우구스티누스에이르는,지성의흐름
【종교의확산】-사도바울로의선교
사도바울로는그리스도교를세계종교로만든장본인이다.유대교에서시작한변방의작은종교였던그리스도교는사도바울로의선교여행을통해로마제국전역에퍼져나가기시작했다.열성적으로그리스도교인들을박해하던유대인사울은,예수의음성을직접듣는체험을겪은이후신실한그리스도교인사도바울로로회심한다.갖은박해에도굴하지않고감행한목숨을건그의선교여행은제국의전역에그리스도교가자리잡는중요한계기가되었다.그는직접그리스아테네에찾아가철학자들과토론을벌일만큼열정적이었다.
사도바울로는그리스도교의핵심을명확하게이해하고전파한‘이방인의사도’였다.그는특정한민족에국한되지않는그리스도교의보편적인인류애를설파했다.모든인류에게그리스도교의구원이열려있음을,사랑의힘으로공동체가지탱된다는것을,신은약자의편에있다는것을전파하며많은이방인에게그리스도교의가치를알렸다.사도바울로가나눈,모든인류를아우를수있는그리스도교사랑의힘으로그리스도교는그리스-로마문화전역에깊게뿌리내리기시작했다.
【철학과종교의결합】-플로티노스와오리게네스
고대철학자플라톤사상의유산은로마제국까지계속이어져오고있었다.플라톤의사상을받아들인플로티노스의신플라톤주의는플라톤사상을발전시킨것에더해그리스도교와의연결을강화하는계기를만들었다.그는그리스도교의존재를알았지만,철학의편에서자신의사유를발전시켰다.그는철학적개념인신과존재,선과악의문제를사유했다.철학을통해구축한그의사유체계는후에그리스도교의‘신’을설명하는선명한열쇠가되었다.지금까지도플로티노스의사유는훗날만개할철학과신학의중대한원천이된다.
플로티노스가철학의입장에서사유를구축했다면,비슷한시기를살았던오리게네스는누구보다독실한신앙인이었다.순교까지꿈꿀정도로독실하고,평범한주교가질투할만큼천재적이었던청년오리게네스는그리스도교의논리를설명하기위해플라톤의철학을적극적으로받아들였다.그는플라톤의철학을기반으로그리스도교를설명해나갔고,그리스도교에대한비방을합리적으로논박했다.성경을해석하는완벽한토대까지구축하면서,철학과그리스도교의결합은점차단단해졌다.
【철학적신앙의탄생】-아우구스티누스와보에티우스
오늘날까지도그리스도교역사에서가장위대한스승으로칭송받는아우구스티누스에이르러,철학과그리스도교는하나로결합해그위대한정신을발휘하기시작했다.그는그리스도교의관점에서신과영혼,선과악의존재라는철학적문제를지난사상가들의유산위에서정리해내었으며,인간의이성을바탕으로한사랑의신학을정립했다.신의세계를향한끊임없는탐구와사랑의의지속에서,아우구스티누스는그리스도교가철학을통해굳건히설수있도록만든위대한스승이되었다.
융성하고도혼란했던로마제국의끝,보에티우스는최후의로마인이었다.집정관으로일하면서도고대철학을라틴어로번역하며서로마의교사를자처했던그는,하루아침에모함에떠밀려사형수가되었다.그는죽음을기다리며‘철학의신’에게자신의답을구했다.고통받는인간의운명에관한보에티우스의질문은이성적이해를통해신의섭리로나아갔고,그는신실한신앙과철저한이성의결합을통해마음의안식을구할수있었다.“보에티우스가남긴신의섭리,자유의지,인격에대한정의등의문제는철학을매우풍부하게”만들었으며신앙을설명하기위해철학을이용한그의기획은훗날의사상에중요한모범이되었다.
시대정신으로읽는지성사,역사의시그니처
국내최고연구자들의입체적해설로만나는인문앤솔러지
이책은두문화의결합으로혼란했던고대말기부터중세초기400년가량의사상적흐름을조망할수있도록구성되어있다.그시대를직접살아낸인물들의육성을다양하게인용된고전의문장을통해접할수있다.딱딱하게만느껴졌던어려운고전의문장들이시대정신을통해너르게조망한인물의삶과사유를통해되살아난다.중요한고전의문장들을각장의앞에제시해놓은데다가,핵심적내용을담은주요키워드들을별도로구분해놓았기때문에중요한맥락을놓치지않고중세시대정신의흐름을따라갈수있다.
이책이다루는서적은『성경』,플로티노스의『엔네아데스』,오리게네스의『원리론』,아우구스티누스의『신국론』과보에티우스의『철학의위안』등에이르는,인류지성사에서빼놓을수없을만큼유명한고전들이다.저자는중세지성사를이해하기위해꼭필요한고전의문장들을엄선해다루어낸다.깊고방대한참고문헌을토대로중세시대정신의지형을구성하고,누구나쉽게읽을수있는친절한방식으로지성사의빛나는지점들을하나하나꿰어낸다.
가치상실의시대에서바라보는,
진정한행복과삶의가치를향한끈질긴투쟁
중세는인류의암흑기가아닌,과거의유산위에서점차미래로나아가는찬란한시대였다.인간의이성을바탕으로한고대그리스철학과실천적신앙을중심으로한그리스도교의만남은,근대이후세계역사를주도하고있는서양의독특한사상적기반을마련했다.초월적절대자인신을설명하기위해활용된철학적방법론은세계의모든진리를포괄하고자하는야심으로나아갔고,뒤이어등장할합리적탐구의정신을이미품고있었다.지금은다소동떨어져보이는학문과종교는,서로를강화하며점차발전해온것이다.
그런의미에서중세는고대와근현대사이에어둡게칠해진‘중간기’가아니라인류지성의과거와미래를연결하는중추에가깝다.우리가중세를다시주목해야하는이유다.중세는여전히우리의현재에닿아있다.어쩌면그시대를살았던인물들의삶은지금우리가겪을수있는생생한현재일지도모른다.저자는“진정한행복과삶의가치를찾기위하여끈질기게노력했던”인물들을바라보며,“가치의상실로방황하는현대”를돌아보기를주문한다.
중세의사상가들은현대사회에도적용할만한값진원리와원칙들을풍성하게제공하고있다.무엇보다그들은혼란했던격변기에자기소명을다하고자노력한지성인이었고,여러고난에도좌절하거나체념하지않고삶의행복을찾아나갔던삶의교본이었다.시대가변해도지혜를향한인간의의지와사랑은결코변할수없다.‘인류’의역사의깊은지문을남긴신앞에선‘인간’을통해,우리의오늘날을나란히비춰본다.중세의시대정신은아직끝나지않았으며,결코낡을수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