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 경계 위의 방랑자 - 클래식 클라우드 31

말러 : 경계 위의 방랑자 - 클래식 클라우드 31

$23.00
Description
삶, 그 속되고 아름다운 것을 모두 포용한
구스타프 말러의 삶과 예술 공간
말러 음악의 음향적 원천이 된 이흘라바에서부터 음악 인생의 정점을 찍은 빈을 거쳐
마지막 예술혼을 사른 뉴욕에 이르기까지 말러의 삶과 예술 공간을 찾아가다.
만물을 품은 음악

“그는 만물 안에서 살았고, 만물은 그의 안에서 살았다.”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제자이자 동료로서 그의 교향곡 전곡을 녹음하기도 한 명지휘자 브루노 발터의 이 말처럼 말러는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것에서부터 가장 고귀한 것에 이르기까지 만물을 두루 포용한 음악 세계를 보여 주었다. 교향곡은 세계와 같아야 하고 모든 것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말러 자신의 말처럼 그가 만든 열 개의 교향곡은 분열되고 파편화된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베토벤의 그것과는 또 다른 맛의 웅장한 서사와 깊은 여운을 선사한다.

1860년, 체코의 칼리슈테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난 말러는 유년 시절 대부분을 체코 동쪽의 모라비아 지역과 서쪽의 보헤미아 지역 사이에 위치한 이흘라바에서 보냈다. 군사적 요충지였던 이흘라바에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군대가 1년 내내 주둔하고 있었기에 말러는 어린 시절부터 군사 문화를 일상적으로 접했다. 어린 말러는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군악대 소리를 비롯하여, 아버지가 운영하는 선술집에서 나는 취객들의 권주가와 남녀가 질펀하게 어울리는 소리, 동유랑 유랑 집시들의 노랫소리 등 세속의 다채로운 음향에 둘러싸여 자랐다. 이는 말러의 무의식에 깊이 각인되어 훗날 그의 교향곡에서 장송 행진곡, 스케르초 악장, 랜틀러, 왈츠로 용해되었다.

한편으로 어린 말러는 세속에서 멀리 떨어진 숲속에서 곧잘 몽상에 잠기고는 했는데, 자연은 그리 화목하지 않은 집안 분위기와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에게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는 내적 안식처가 되었다. 자연과 소통하는 이런 습관은 그의 평생에 걸쳐 이어졌다. 어릴 때는 이흘라바의 숲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성인이 되어 빈에서 활동할 때는 거의 출근 도장을 찍다시피 교외 지역인 그린칭의 숲을 찾았으며, 여름휴가 때는 인적 드문 알프스의 대자연 속에 파묻혀 부지런히 곡을 써 내려갔다. 그의 위대한 걸작은 사실상 자연과 소통하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그에게 자연이 선사한 선물과도 같다.
말러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는 ‘죽음’도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말러를 포함하여 열네 명의 형제자매들 중 절반은 어린 나이에 사망했을 만큼 죽음은 늘 그의 가족 가까이에서 어른거렸다. 아래층 선술집에서 흥겨운 유행가 가락이 들려올 때, 말러의 가족이 거처한 2층 침실에서는 병에 걸린 아이의 숨이 꺼져 가고 있었을 것이다. 훗날 그의 음악에 세속적인 소리와 자연의 소리가 풍부하게 용해되어 있고, 희극적인 요소와 비극적인 요소가 공존하게 된 것은 어린 시절의 이런 배경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는 평생 죽음이라는 주제에 강박적으로 매달렸다. 이에 생애 처음 작곡한 첫 번째 교향곡에 대해 “내 교향곡의 영웅은 무덤가에서 태어난다”라고 공언했으며, 말년에 작곡한 교향곡 9번에 대해서는 “죽음이 내게 들려준 것”이라 표현했다.

열다섯 살에 고향을 떠나 빈음악원에 들어갔지만 학업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 말러는 중퇴 후 지휘자로 전향했다. 이후 라이바흐, 카셀, 프라하, 라이프치히에서 초년기를 보낸 그는 부다페스트와 함부르크에서 극장 최고의 자리에 오르면서 본격적으로 안정 궤도에 올랐다. 특히 빈 유학 시절부터 깊이 매료된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을 알리는 데 적극적이었다. 치밀하고 정확한 그의 바그너 연주는 매번 엄청난 화제를 뿌리며 바야흐로 그는 유럽 최고의 샛별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더 먼 곳을 바라보았다. 1897년, 마침내 그는 서른일곱 살의 나이로 음악의 도시 빈의 심장인 궁정오페라극장의 지휘자로 발탁되었고, 얼마 뒤에는 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지휘자까지 겸임하게 됨으로써 음악 인생의 최고 정점을 찍었다. 지휘자로서 완고한 완벽주의자였던 말러는 혹독한 조련 끝에 적당주의에 젖어 있던 악단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비시즌 때는 알프스의 대자연 속으로 들어가 많은 걸작을 탄생시켰다.

저자

노승림

이화여대독어독문학과를졸업한뒤영국워릭대학교에서문화정책학으로석사,박사학위를받았다.월간『객석』음악담당기자와대원문화재단사무국장을거쳐,현재숙명여자대학교정책대학원문화행정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또한음악칼럼니스트로서각종매체에고전음악에대한글을꾸준히집필해왔다.지은책으로는『예술의사생활:비참과우아』,『나와당신의베토벤』(공저)이있고,옮긴책으로는『바흐:천상의음악』,『음악이흐르는동안당신은음악이다』,『평행과역설』,『음악과권력』,『페기구겐하임』이있다.

목차

PROLOGUE_파우스트의고독한방랑길

01_그린칭묘지로가는길
02_유년기를찾아서
03_애증의도시빈
04_빈의이방인
05_제체시온의황금기사
06_알마,뮤즈인가악처인가
07_호수가내게말을걸어왔다
08_두번째오두막
09_세번째오두막
10_뉴요커말러

EPILOGUE_죽음,그이후
말러예술의키워드
말러생애의결정적장면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만물을품은음악

“그는만물안에서살았고,만물은그의안에서살았다.”구스타프말러(1860~1911)의제자이자동료로서그의교향곡전곡을녹음하기도한명지휘자브루노발터의이말처럼말러는세상에서가장비천한것에서부터가장고귀한것에이르기까지만물을두루포용한음악세계를보여주었다.교향곡은세계와같아야하고모든것을끌어안아야한다는말러자신의말처럼그가만든열개의교향곡은분열되고파편화된세계를살아가고있는지금여기의우리에게베토벤의그것과는또다른맛의웅장한서사와깊은여운을선사한다.
1860년,체코의칼리슈테에서유대인으로태어난말러는유년시절대부분을체코동쪽의모라비아지역과서쪽의보헤미아지역사이에위치한이흘라바에서보냈다.군사적요충지였던이흘라바에는합스부르크제국의군대가1년내내주둔하고있었기에말러는어린시절부터군사문화를일상적으로접했다.어린말러는길거리에서들려오는군악대소리를비롯하여,아버지가운영하는선술집에서나는취객들의권주가와남녀가질펀하게어울리는소리,동유랑유랑집시들의노랫소리등세속의다채로운음향에둘러싸여자랐다.이는말러의무의식에깊이각인되어훗날그의교향곡에서장송행진곡,스케르초악장,랜틀러,왈츠로용해되었다.
한편으로어린말러는세속에서멀리떨어진숲속에서곧잘몽상에잠기고는했는데,자연은그리화목하지않은집안분위기와권위적이고폭력적인아버지에게서벗어날수있게해주는내적안식처가되었다.자연과소통하는이런습관은그의평생에걸쳐이어졌다.어릴때는이흘라바의숲에서많은시간을보냈고,성인이되어빈에서활동할때는거의출근도장을찍다시피교외지역인그린칭의숲을찾았으며,여름휴가때는인적드문알프스의대자연속에파묻혀부지런히곡을써내려갔다.그의위대한걸작은사실상자연과소통하는특별한재능을가진그에게자연이선사한선물과도같다.
말러의음악을이야기할때는‘죽음’도빼놓을수없는키워드다.말러를포함하여열네명의형제자매들중절반은어린나이에사망했을만큼죽음은늘그의가족가까이에서어른거렸다.아래층선술집에서흥겨운유행가가락이들려올때,말러의가족이거처한2층침실에서는병에걸린아이의숨이꺼져가고있었을것이다.훗날그의음악에세속적인소리와자연의소리가풍부하게용해되어있고,희극적인요소와비극적인요소가공존하게된것은어린시절의이런배경과깊은연관이있다.그는평생죽음이라는주제에강박적으로매달렸다.이에생애처음작곡한첫번째교향곡에대해“내교향곡의영웅은무덤가에서태어난다”라고공언했으며,말년에작곡한교향곡9번에대해서는“죽음이내게들려준것”이라표현했다.
열다섯살에고향을떠나빈음악원에들어갔지만학업에큰흥미를느끼지못한말러는중퇴후지휘자로전향했다.이후라이바흐,카셀,프라하,라이프치히에서초년기를보낸그는부다페스트와함부르크에서극장최고의자리에오르면서본격적으로안정궤도에올랐다.특히빈유학시절부터깊이매료된리하르트바그너의음악을알리는데적극적이었다.치밀하고정확한그의바그너연주는매번엄청난화제를뿌리며바야흐로그는유럽최고의샛별로떠올랐다.그러나그는거기에안주하지않고더먼곳을바라보았다.1897년,마침내그는서른일곱살의나이로음악의도시빈의심장인궁정오페라극장의지휘자로발탁되었고,얼마뒤에는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지휘자까지겸임하게됨으로써음악인생의최고정점을찍었다.지휘자로서완고한완벽주의자였던말러는혹독한조련끝에적당주의에젖어있던악단을근본적으로바꾸어놓았다.그리고비시즌때는알프스의대자연속으로들어가많은걸작을탄생시켰다.

>아름다움을찾아떠도는방랑자

이렇듯지휘와작곡을넘나들며한시대를대표하는음악인으로자리매김했음에도“나는삼중으로고향이없는사람이다.오스트리아에서는보헤미아인으로,독일인들사이에서는오스트리아인으로,세계에서는유대인으로,어디에서나이방인이고환영받지못한다”라고한그의말처럼그에게는소외된자의고독이운명처럼따라다녔다.그러나바로그랬기때문에,즉평생어디에도온전히속하지도기울지도않은채어떤경계에서자기만의외길을걸어갔기에그만의독창적인세계를보여주면서현대음악으로가는새로운이정표가될수있었을것이다.오늘날그의음악은전세계적으로가장많이연주되고있으며,말러리안이라불리는수많은추종자를거느리고있다.
저자인음악칼럼니스트노승림은말러가묻혀있는그린칭묘지에서부터시작하여그가유소년기를보낸이흘라바,최고의전성기를보낸빈,그의첫번째작곡오두막이있는아테르제호수,두번째작곡오두막이있는마이에르니히,세번째작곡오두막이있는토블라흐,마지막예술혼을사른뉴욕에이르기까지거장의예술공간을따라가며삶과작품세계를들여다본다.그린칭묘지에서는말러가평생동안매달린죽음이라는주제를사색했고,빈에서는그가유럽음악계를대표하는최고의자리에서어떻게분투해갔는지를보여준다.또한세개의작곡오두막에서는자연이그의음악에어떻게용해되어들어갔는지를실감했으며,생의마지막을보낸뉴욕에서는유랑하는마에스트로말러에대해안타까움을느낀다.말러여행을마치며저자는이렇게말했다.
“내가바라본말러의인생은고난을이긴성공스토리와거리가멀며,그도의도하지않았다고생각한다.책이나음악이아닌현실세계에서내가만난말러는세상에서가장아름다운존재를확인하기위해떠돌던파우스트와같은방랑자다.부귀영화나세속적인명예는그의마음을채워줄수없었다.인간이저마다안고태어나는인생의고난은극복이아닌포용하고초월할대상임을삶은그에게가르쳐주었고,그의음악이우리에게알려주는바도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