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 (재생산을 둘러싼 감정의 정치사 | 양장본 Hardcover)

임신중지 (재생산을 둘러싼 감정의 정치사 | 양장본 Hardcover)

$24.00
Description
‘차악’, ‘필요악’이라는 임신중지에 관한 ‘상식’은
국가, 민족, 계급, 인종, 장애, 젠더를 둘러싼 ‘정치 역학의 산물’이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촉발된 임신중지 논의의 출발점은 ‘감정’이다!
임신중지 비범죄화로 이어질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은 사회가 여성을 결정과 선택의 주체로 공인한 사례이다. 하지만 『임신중지』의 저자 에리카 밀러는 임신중지에 ‘선택’이라는 수사가 따라붙고 여성이 ‘주체’의 자리에 앉은 듯 보일 때부터 ‘백래시’는 더 교묘하고 견고해진다고 말한다. 임신중지 관련법이 바뀌더라도 임신중지와 관련된 상식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임신중지가 여성에게 유해하고 끔찍하며 도덕성을 의심받을 일이라고 믿는다. ‘임신중지’가 입에 오르는 어디서나, ‘절박한, 끔찍한, 비극적인, 불행한, 후회되는, 소름 끼치는’ 같은 수사가 따라붙는다. ‘범죄’라는 누명을 벗고 ‘살인’과 나란히 놓이던 처지에서는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임신중지라는 ‘선택’을 늘 ‘차악’이나 ‘필요악’으로만 받아들인다. 임신중지는 처벌할 대상이 아니라고, 임신중지권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더라도 그 경험이 긍정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은 고려해 본 적도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리고 임신중지가 가진 부정적인 이미지를 ‘자연스러운’ ‘섭리’처럼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
에리카 밀러는 임신중지운동사를 연구하며 우리가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임신중지에 관한 생각과 이미지가 친임신중지와 반임신중지 운동의 부침 속에 만들어진 정치적 산물임을 발견한다. 『임신중지』에서 에리카 밀러는 1960년대 촉발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임신중지 운동사를 탐색하며 ‘사회경제적 여건이 여의치 않아서, 고통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임신중지를 하는 여성’을 ‘모성적 행복’, ‘애통함’, ‘수치’, ‘공포’라는 특정한 감정으로 점철시키는 획일적인 임신중지 서사를 조명한다. 그리고 그 안에 감춰진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계급, 인종, 장애에 대한 차별, 젠더권력과 성차별적 정치 역학을 파헤친다.
『임신중지』는 총 다섯 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까지 활발했던 임신중지 운동의 역사를 밝히며, 이 과정에서 ‘선택’이라는 수사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규명한다. 2장에서는 소위 ‘진보적’인 임신중지 관련법 제정과 개정의 과정에서 ‘모성’이라는 거대한 각본이 작동한 정치 공학을 들여다본다. 3장에서는 1980년대 중반 반임신중지 운동에서 펼친 ‘태어나지 않은 아이’로 표현된 ‘태아’ 이미지가 어떤 식으로 정치적, 규범적 효과를 발휘했는지를 살펴본다. 4장과 5장에서는 여성이 임신중지를 ‘수치스러운’ 경험으로 여기도록 만든 과정을 밝히고, 인종, 계급, 젠더에 따라 국가와 사회가 헤게모니 유지를 위해 임신을 계급화해 온 정치의 전모를 밝힌다.
재생산을 둘러싼 감정의 정치 속에서 평면적으로만 이해됐던 임신중지는 사실상 가족, 섹슈얼리티, 여성의 지위 등 여러 사회, 정치적 의미와 공명해 온 입체적인 문제다. 이 책은 임신중지를 둘러싼 감정의 정치를 해체하고, 이를 통해 임신중지라는 사안을 제 모습으로 복원하려는 시도다.
저자

에리카밀러

역사학·사회학·문화정치학을가로지르며재생산에관한학제간연구를진행하고있다.재생산문제가오늘날신자유주의시대의인구통제에어떻게문화적으로재현되며,인종·계급·젠더와관련된불평등구조를만들어내는지폭넓게연구했다.아울러재생산의생명정치와재생산가능한여성의신체를통제하고규범적으로구성하려는시도가‘국가건설’이라는큰계획과어떻게맞물리는지에관심이있다.오스트레일리아의여러대학에서젠더연구·사회학·역사학을가르쳤고,현재애들레이드대학교에서젠더학과사회학을강의한다.

목차

들어가며:감정적인선택7

1장선택의정치51
2장행복한선택87
3장선택의애통함129
4장수치스러운선택173
5장국가의선택205

맺음말:모성바깥의삶239

감사의말259
옮긴의말263

미주265
참고문헌315
찾아보기343

출판사 서평

‘금기’로서의임신중지가만든수치심과죄책감,그리고여성통제
사회에대한위협,부주의한실패자,무책임하고이기적인쾌락주의자…
임신중지여성을둘러싼주홍글씨들
임신중지라는화제는오랜금기였다.월경과여성섹슈얼리티를말하는것이상으로금기시되어왔다.이런금기로인해여성은임신중지자체에대한두려움과수치심을내면화하고임신중지경험에대해침묵하게된다.저자는이런‘침묵’이임신중지에대한공적논의에서가장중요한특징이라고말한다.당사자의‘침묵’을대신해기존에널리유통되었던임신중지를둘러싼이야기전부는당사자와는무관한것들이었다.도리어임신중지를경험해보지않은사람들이만든정의대로여성들은임신중지를경험하기를강요받았다.임신중지여성의목소리가없는이각본에서여성의삶은‘혼전순결’에서출발해결혼한후에는모성으로향하는여정으로표현되며,이‘정상적’각본이강화될수록혼전성관계를한여성,아이낳기를원치않는여성은수치와죄책감을떠안게된다.
기술이발전함에따라피임은“여성이스스로를원치않은임신으로부터보호해야한다”는수사속에서여성의책무이자섹슈얼리티를억압하는제약에가세하게됐다.이런수사는출산과양육,모성으로이어지지않는여성섹슈얼리티를부정하는동시에재생산과정에서남성을지우고,쾌락은오로지남성의특권이라는틀을강화했다.피임이란책임이여성에게지워지면서세계적으로약40퍼센트의임신이‘계획하지않은채’이루어지는현실은가려진채‘선택해서한임신’이라는이상ideal이만들어졌다.모든임신이출산으로이어져야한다는기대는임신중지에따르는수치심의주요한근원이되었다.원치않은임신과그로인한임신중지는곧피임에실패한패배자,무책임하고이기적인쾌락주의자에가해지는징벌로표상된다.
이렇게만들어진‘임신중지여성’이라는이미지는다른사회불안의근원들과연결되며‘국가적위기’마다사회자체에대한위협으로호명됐다.특히임신중지에접근성을높일법적인토대가마련된이후미국과오스트레일리아등서구권국가들에서는임신중지비율이출생률-생산력-인종구성과관련된주요한위협으로쟁점화됐다.정치인들은임신중지로일어나는인구손실때문에잠재적소비자가줄어들면서고용상황이점점더나빠질것이고,그결과부양할사람이없는노인들만양산될것이라는비관적전망을내놓는다.심지어는“임신중지로기혼여성이직장에남을수있게되어,젊은여성은고용기회를위협받는다”고까지주장한다.
중산층이상다수인종에속하는여성이행하는임신중지는‘국가적비극’이되고,이임신중지여성이사회만악의근원으로지목되는과정에서어떤임신은출산으로이어지든임신중지로이어지든,무책임하고문제적인것으로여겨진다.여기서국가가정의하는‘시민’의모습이드러나고거기서배제하려는존재들이드러난다.“임신중지여성은‘페미니스트’라는상과연결될때아이,남성,가족에반하는존재로,‘십대엄마’,‘복지의존자’,‘성적으로무책임한자’라는상과연결될때는‘부주의한실패자’로,‘이혼여성’,‘동성애자’,‘레즈비언양육자’,‘싱글맘’과연결될때는핵가족제도에대한위협으로호명된다.”

“여성의선택권,자기결정권”
“이기적선택으로자행되는살인”
“피치못할선택이자필요악”
‘선택’의함정에빠진임신중지
1960년대말부터1970년대까지급부상한임신중지운동은임신중지와관련한법과담론을극적으로바꾸었다.이시기등장한세관련단체RTL(RighttoLife,생명인권그룹),ALRA(AbortionLawReformAssociation,임신중지법개혁연합),WLM(Women’sLiberationMovement,여성해방운동)은저마다임신중지라는결정에서‘선택’이라는수사를활용했다.임신중지와관련된모든법률폐기를주장한WLM은임신중지권이여성의‘선택권’이자신체에대한‘통제권’,나아가‘자기결정권’임을주장했다.RTL은사람으로형상화된태아의이미지를적극활용하며임신중지가여성의‘이기적인’‘선택’으로자행되는‘살인’이라주장했다.ALRA는임신중지비범죄화에동의하는동시에‘선택’이라는글자앞에‘피치못할’이라는조건을달아임신중지를‘필요악’으로보는오늘날보편적인견해를형성했다.
이렇게임신중지서사에도입된‘선택’은오늘날까지끊임없이임신중지서사를왜곡하고,임신중지여성을괴롭혀왔다.2000년대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임신중지와관련된여성의선택권을확대하는법이제정되었다.관련법안지지자들조차여성이모든상황에서임신중지를할수있어야한다는건‘극단적’인접근이라면서,임신중지에대한‘합리적’이고‘이성적’인입장은태아의생명과여성의자율성을균형적으로고려하는것이라주장했다.임신중지비범죄화와의료화에찬성하는입법자들역시임신중지결정에서의사의조언은중요하고,임신중지가쉬운일이어서도안되며,당연히자기편의만을위해임신중지를결정하는여성은없고,아주난처한상황이아니라면여성은반드시모성을‘선택’하리라는,임신중지반대자들과정확히같은주장을한다.결국‘선택’이라는수사는임신중지라는결정마저태어날아이의복리를위한‘모성적’행위로못박았다.이는70년대만들어져확고하게유지되어온임신중지에대한인식이지금까지도얼마나강력한규범으로작동하는지를,그리고어떻게친임신중지권진영에까지영향을미치는지를보여준다.
반임신중지세력역시“여성의선택을금하기는커녕그선택을활용”하는방식으로정치를편다.2007년설립된반임신중지단체‘진정한선택RealChoices’은여성들에게임신중지결정에필요한정보를제공하고,‘진정한선택’을할수있도록돕기위한단체를자청한다.이들은그간여성들이내린임신중지선택은‘진정한선택’이아니라적절한정보가없었기에사회로부터‘강요’받아내린잘못된결정이라고주장한다.입법자와행정가들이이런논리에매혹되는것은당연했다.재생산권에대한통제라는결실을얻으면서도임신중지범죄화처럼여성을억압하는모습이아니라여성을‘돕는다’는이미지로비춰지는데는이같은‘모성적’‘프로초이스’의논리만한것이없었다.
반임신중지세력이펴는‘친여성’정치는벌써부터효과를발휘하는것처럼보인다.2017년7월,미국35개주에서임신중지전상담이의무화됐다.상담자는임신중지위험에대한부정확한정보를필수적인정보처럼전달하고,초음파영상을보며배아/태아를‘잠재적아이’로서묘사한다.이과정에서여성은‘후회할선택’을내리기쉬운,국가,의사등에의지해야만올바른결정을내릴수있는취약한존재가되고,결국임신중지여성에대한낙인은여성전체의인권을훼손하고탄압한다.
임신중지비범죄화와임신중지권보장을주장하는정치인과입법자들역시‘합법적이고,안전하고,드문’임신중지를목표로삼아왔다.하지만임신유지만을정규화하는반복적인정치논리는임신중지를‘올바르게’결정할권한을위임받고,실제임신중지시술을맡는의료인들에게도낙인을찍는다.지향점이안전하고,합법적이며‘드문’임신중지가될때,의료인의제일과제는임신중지를‘드물게’만드는것,임신중지를막는것이된다.실상임신중지가합법화된국가에서도이런낙인은여성건강전문의료인들의수가늘부족하게만드는결과를낳았다.낙인은연구자에게도인과관계가불분명한임신중지트라우마만을연구주제로삼도록무언의강요로작용했다.동시에원치않은임신이출산으로이어질경우생기는트라우마에대해서는연구할수없게만들었다.그리고이런낙인과좌절이불러온여파는다시프랑스와미국의사례에서도볼수있듯극우세력의반임신중지정책들을뒷받침하는데활용된다.
“임신중지는인간의건강과행복에관한문제”
입법을위한입체적이고실질적인임신중지논의는
금기와침묵을깨고,임신한주체의다양성을인정하는데서시작된다!
임신중지비범죄화를위한첫걸음인낙태죄헌법불합치판결을이끌어내기까지많은논의와노력이있었고,특히임신중지여성들이화자가되어임신중지에대한경험을나누는일이중요한역할을했다.그렇게우리주변에있던,드디어말해진임신중지경험들은임신중지가여전히범죄인상황에서임신중지라는결정을내린여성이제도적,문화적으로겪는어려움에대한것들이다수였다.
한국에서여성인권과재생산권의새로운전기를마련하는동안,미국에서는앨라배마주상원에서모든임신중지를중죄로처벌하는임신중지금지법이통과되었다.1973년에있었던임신후28주(6개월)까지임신중지를허용한로대웨이드판결을뒤집기위한보수세력의움직임이본격화된것이다.여기에대한반응으로트위터에서는많은여성이#ShoutYourAbortion와#YouKnowMe라는해시태그를달고임신중지경험을공유했다.배우이자토크쇼진행자인비지필립스를시작으로레이디가가,밀라요보비치같은유명인들을포함해여성수천명이공유한임신중지경험중많은수는‘구원받은듯한’,‘감사한’,‘후회없는’이라는표현이들어있었다.이역사적교차점에서우리는어떤미래를그려야하며,어떤청사진을그릴수있을까.
에리카밀러가『임신중지』를통해주장하는바는확실하다.임신중지를제한하는근원은실상법이아니다.“법은젠더,임신,모성규범을반영하고강화하는장치일뿐”이며“규범은법보다오래살아남는다.”이미임신중지비범죄화를이룬국가들에서보수정치세력을중심으로다시임신중지범죄화움직임이나타났다는사실은임신중지를둘러싼규범을바꾸어내지못한다면언제든우리가일군결과는언제든뒤집어질수있다는것을보여준다.판결이전으로의퇴보를미연에방지하고,올바른방향으로임신중지논의를전개해나가는데가장중요한것이‘수치’,‘애통함’,‘모성’으로얼룩진임신중지규범을바꾸는일임을일깨운다.
이책의원제에는임신중지를뜻하는‘abortion’앞에‘행복한’이라는수식어가붙어있다.우리는과연‘행복한’‘임신중지’를말할수있게될까.지난해5월한해먼저임신중지비범죄화를이룬아일랜드수정헌법8조폐지연합비서관시네이드케네디는‘행복한’임신중지가급진적인주장이아니라고말한다.오로지임신중지의권리가공격받는곳에서만그수식에서과도한급진성과불편함을찾는다고말한다.하지만이책의목적이‘끔찍한’을‘행복한’으로대체하는데있는것은아니다.삶의모든경험과결정들이그렇듯임신중지역시기쁨혹은슬픔이나정상이나비정상으로만이야기할수없다.『임신중지』는임신한주체의다양성을복원함으로써사회와법이그다양성을포괄하도록촉구한다.
한국에이책이소개되는지금,‘낙태죄’라는‘죄목’을법문에서지워내고,‘임신중지’라는말로이경험을표현하는데까지우리는와있다.이제부터해야할일은임신중지앞에여전히따라붙는‘수치스러운’,‘후회되는’,‘끔찍한’이라는수사를지워내는것이다.‘행복한’을비롯해‘구원받은듯한’,‘감사한’,‘후회없는’으로말해지는임신중지경험을주저하지않고나눌토대를만드는데에서임신중지에대한실질적이고,입체적인논의가시작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