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시절을아십니까?
박노식,장동휘,허장강,김희라,챠리셸의이름을기억하는가?60년대말70년대초한국액션영화에서악역을전담했던그들은지금의우리들에게는그당시풍경과추억을떠올리게하는장본인들이다.왕우와이소룡같은유명스타들을첨병으로한홍콩액션영화들이우리의극장을점령하고있을때도이들은동네아이들에게‘토종’의자부심을잃지않게했던자존심의대명사였으며,신성일/최무룡같은미남배우들이빛을발할수있도록미운악역을도맡았던이들이었다.
용팔이박노식과「팔도사나이」의김효천감독
그당시의동네조무래기들은깡패영화를통해배신과복수로얽힌남자들의세계를어렴풋이알아갔다.깡패영화의인기가어느정도였는지말하자면,박노식이주연한‘용팔이시리즈’는장안의모든꼬마들이전라도사투리를흉내내도록했고홍콩영화「외팔이」(왕우주연)의인기를업고만들어진한국의‘외다리시리즈’는동네아이들을모두찐따로만들어절뚝거리며걷게만들기도했을정도였다.용팔이박노식은배우로만머물지않고감독으로서「인간사표를써라」「악인이여지옥행급행열차를타라」등다수의영화를만들어내기도했다.
깡패영화의대부격인김효천감독은전국뒷골목영웅호걸들을모아「팔도사나이」와「오사까의외로운별」그리고‘김두한시리즈’를만들어한국액션영화의흥행의최전선을달렸다.또한김효천감독은한국영화의쇠퇴기를증언하는감독이기도하다.특유의비장함과활력을잃고성공한영화들의복제품만을만들고홍콩영화의흉내내기에만급급하던한국영화는80년대에들어서면서외국영화들과그격차가더욱커지고결국관객들은등을돌리게되었다고이책의저자는말한다.
한국에서부극이있었다고?
미국에웨스턴이있었다면우리에게는그변종인만주웨스턴이있었다.즉,일제시대만주를무대로사나이들의피와땀그리고탐욕과배신이얼룩진독립군의활극이그것이다.저자는반공의깃발아래한치라도어긋남이없어야한다는제약과동족상잔의비극때문에부담이없고활력이넘치는액션영화의무대로는만주가안성맞춤이었다고한다.박노식,장동휘,이대엽,황해,허장강,김희라등선이굵직한배우들이나오는이영화들은군인들의철통같은검열앞에서한국액션영화가그나마명맥을유지할수있었던숨통이었다.그중재미있는영화가구봉서주연의코미디서부극「당나귀무법자」이다.서영춘,양석천/양훈콤비가함께나오는이영화는허리띠졸라매기절약정신에입각한세트와의상,촌스러운대사와실수등이보는이들을포복절도하게만든다.
서울서온비운의스타들
지금홍콩의배우와감독들이할리우드에입성하기위해치욕적인수모를견뎌냈던것처럼,홍콩진출이라는청운의꿈을품은‘서울서온사나이들’이있었다.「사망유희」의이소룡대역김태정을비롯해남석훈,황인식,황정리,왕호,권용문등한국의권격스타였던그들은홍콩에진출했지만비중없는악역에만족하거나아예잊혀진채고국으로돌아와야했다.그들의운명은홍콩영화의서투른모방으로인해관객으로부터외면당하고할리우드영화의폭격에자멸한한국액션영화의이면을떠올리게한다.
70년대풍경에대한기억
할리우드액션대작「매트릭스3-리볼루션」이장안의화재가되고있는지금,한국의젊은감독들은고전에기반한시나리오를현대적감각에맞춰각색하고현재의문제를과거에투영하는방식으로나름의길을모색하고또한좋은반응을얻고있다(「황산벌」「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TV사극「대장금」등).한국영화의르네상스라고해도과언이아니다.하지만역사에대한고증이나반성이없다면언제다시위기가다가올지모르는일이다.오늘의영광을가져온초기영화관계자들의피와땀,그들의열정과노력을살펴봐야하는이유도여기에있을것이다.이책은바로그러한숨은혹은잊혀진공헌자들에대한증언이며,그들과함께울고웃었던70년대의풍경들에대한기억이다.저자는지독하게삭막하고결핍했던시절의유일한탈출구였던영화를통해그당시의풍속도를그대로드러내고있는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