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지지 않는 슬픔에 대하여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나눈 침묵의 인사)

길들여지지 않는 슬픔에 대하여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나눈 침묵의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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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사랑하는 것들과 끊임없이 이별하는 과정에서, ‘길들일 수 없는 슬픔’을 이야기하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인 죽음과 가장 가까이에서 살아가는 장의사.
그가 발견한 죽음이 주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하여 쓴 에세이.

“우리는 왜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할까?”

친가와 외가, 두 집안을 합쳐 9세대 동안 업을 이어온 장의사의 죽음에 대한 고찰
『길들여지지 않는 슬픔에 대하여』는 죽음과 가장 맞닥뜨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장의사의 고백을 담고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장의사가 만난 수많은 죽음과 그 죽음으로 얻은 깨달음과 통찰을 담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 죽음이 두려워 잠을 자지 못하거나, 죽음이 대체 무엇인지, 그 뒤에는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궁금증과 공포는 죽음에 대한 ‘무지’와 ‘고정관념’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죽음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고정관념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칼렙 와일드는 자신이 장례를 치르며 만난 수많은 고인과 그들의 가족으로부터 얻은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과정 안에서 죽음에 반드시 나쁜 것만 들어 있지 않고, 긍정적인 기운도 있다고 말한다. 장의사 칼렙 와일드, 그가 경험한 죽음의 진짜 모습을 기록했다. 두려워하던 죽음과 가장 가깝게 살게 되면서, 죽음 속에서 장의사로서의 자신과 삶의 의미를 찾게 되었다.
저자

칼렙와일드

두장의사집안사이에서태어났다.칼렙은총9세대에걸쳐펜실베이니아파크스버그의장의사가되었다.
처음에는죽음이두려워선교사의길을택하기도했고,마다가스카르에서구호활동을하기도했으나,자신이죽음에서도망치려할수록죽음이두려워질뿐이라는것을깨달았다.
그의이런고찰을담아,‘어느장의사의고백’이라는제목으로블로그를운영해지금에이르렀다.
얼마전에는영국윈체스터대학교에서대학원과정인‘죽음,종교,문화’를마쳤으며,「허핑턴포스트」,「아틀란틱」,「타임」,NPR,NBC,ABC등방송사의프로그램에도출연했으며그중<20/20>이제일유명하다.
지금도파크스버그에서장의사로일하고있으며,죽음에관한강연도하고있다.

목차

작가의말_장의사,가장개인적이고힘든순간을함께하다

1.죽음뒤에남는것이절망만은아니다
2.관옆의아이들
3.새롭게만들어주는것들
4.죽음의안식일
5.나는장의사가되기로했다
6.성스러운세상
7.죽음에아마추어는없다
8.죽음을그대로받아들이는것
9.침묵의목소리
10.죽음에설교는필요치않다
11.사라가남긴조각
12.사랑이있는곳이라면어디든
13.이상적인사랑
14.슬픔을끝내지않아도괜찮아
15.어떤말을해야할까
16.슬픔과기쁨이공존하는곳

어느장의사의열가지고백
감사의말_내가장의사로살아갈수있게해준사랑하는사람들에게

출판사 서평

장의사,죽음의공포에서벗어나다!
“죽음이란언제나숨겨야하는것이아니며,부정적인것도아니다.”
‘죽음’이라는단어를마주하면떠오르는것은슬픔·이별·두려움과같이너무나당연하다.여기서가장뚜렷한감정은두려움,즉‘공포’다.그러나죽음을공포라는단편적인감정으로만이해한다면,우리는중요한것들을너무많이놓치게된다.
마을의장의사로수많은사람들의장례를치러온칼렙와일드는죽음으로부터떠오르는공포자체가편견이라고설명한다.우리는아주오래전부터죽음과지옥을연결짓고,누군가의구원을통해서만천국으로갈수있다고들어왔다.
이는구원받지못하면당연히끔찍한지옥이기다리고있고,죽음이라는현상자체를정확히알지못하면서도끔찍하고두려운것으로인지하게만든다.미지의것이면서도공포스러운,이것이죽음에대한편견의핵심이다.
죽음을자연스러운과정으로이해하는것이아니라그이후의것을상상하게하고,종교적도구로사용하면서공포에잡아먹힌다.사랑하는사람들과이별하는과정으로서죽음은두렵다.그러나죽음을극도로무서워하는것은건강하게죽음을이해하는방법이아니다.
이죽음에대한극심한공포는‘이해’를통해완화시킬수있다.죽음은삶을반증하며,누군가가살아있었고그삶이가치가있었음을알려준다.죽음이있기에삶을소중히여길기회가있는지도모른다.
누구에게나시간이유한하고끝이찾아온다는것을알려주며,죽음은우리에게사랑하는사람의소중함을깨닫게한다.누군가의죽음을통해상처가치유되기도한다.어쩌면죽음은지옥이아니라누군가의안식일지도모른다.
장의사칼렙와일드는죽음이슬프고두려운것이라는것을그대로받아들이고,공포를넘어죽음에서삶을찾고자한다.또한우리의공포자체를인지시키고이해시키며오히려삶의충만함을전해줄것이다.

경험한다고해서줄어들지않는이별,죽음.
그로인한슬픔은길들일수없다.
우리는왜사랑하는사람과의영원한이별을오랫동안슬퍼할수없을까?
왜우리는,애도와죽음에대한마음을갈무리하고이겨내야한다고생각하는것일까?
고인의장례식이끝나면전과같은일상으로돌아간다.사랑하는고인을그리워하는일이허락되지않기라도하듯슬픔을절제하고,일상으로의복귀에애를쓴다.
흔히애도기간을짧게가지라하는이유는하는‘일상에서자신의감정을통제할수없는것’을꺼리기때문이다.상황과시간,고인에대한애정의척도를가늠하여슬픔의정도를계산한다.끝나지않을것같은슬픔을억누르며감정을통제할수있는인간이고싶기때문이다.
또한애도하는마음은치유가필요한상처이며,언젠가는마무리해야하는미완성의상태인것처럼받아들인다.이는‘슬픔을끝내지못하는사람’이모자란사람처럼느껴지게만든다.
그러나슬픔이란것은정리해야하는감정이아니다.고인을충분히사랑했다는증거이자,자연스러운감정이다.오히려슬픔을끝내지않고,고인을‘능동적’으로기억해그의죽음과이별을받아들이는것이가장안전하게일상으로돌아올수있는방법이다.
고인이좋아했던것과고인과함께했던것들을기억하며슬픔을당연한것으로여길때,슬픔은더이상괴로운것이아닌그리움의표현으로변한다.사회적으로고인을그리워하는행동을축소하기보다는그것을받아들이고감정을억지로끝맺지않는것.
그것이우리가건강하게고인과의이별하는방법이다.슬픔을끝내지않아도괜찮다.당신이고인을사랑했다는증거이며,고인또한당신을사랑했다는흔적이다.그리움과함께찾아오는슬픔이고인에게전할수있는마지막인사이기때문이다.

죽음에대한전문가란있을수없다.
이별을자연스럽게받아들이는연습.
사회적으로우리가죽음을다룰수없다는인식이있다.시신의처리를전문가손에맡겨죽음과격리시킴으로인해,죽음의공포와전문성이합쳐져우리스스로를아마추어로만들고있다.
죽음이마치정해진방법이있고,그방법대로죽음을잘처리하느냐,그렇지못하느냐에따라전문과비전문이갈리는것처럼들린다.이것은그렇기도하고그렇지않기도하다.
죽음과직결된장례절차에서장의사,의사,간호사는모두‘전문가’처럼보인다.때문에그들이죽음에대해전문가로여겨진다.그러나그들은장례에관한전문가이지죽음에대한전문가는아니다.
장의사도,의사도죽음을마주하면슬퍼하고고통스러워하는인간임이분명하기때문이다.그렇다면이기준에서죽음에대한전문가가존재하기는할까?죽음에전문적일수있는방법은뭐가있을까?
사실상죽음에대한전문가란있을수가없다.그러나죽음에아마추어또한없다.사랑하는사람의죽음을받아들이고,고인을사랑하는것.자신의방법으로그죽음을이해하는것만으로도우리는죽음에대해서는아마추어가아니다.
죽음은절대익숙해지는것이아니고,그렇기때문에그상황에서고인을사랑하는마음으로스스로이별을준비하는것이죽음을인정하는방법이다.
고인을사랑하는마음으로애도하고이별하는과정을인정한다면,우리는결코죽음의과정에서아마추어가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