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사유, 지구적 안목으로 제국의 흥망과 대국의 치세철학을 읽다!
과학자인 저자가 역사·정치·경제·군사·경영의 경계를 종횡무진 관통해 써내려간 대작!
『용과 독수리의 제국』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 양쪽에 있는 진·한제국(기원전 771, 제후국 진秦… 기원전 221 천하통일… 기원후 419 동진 멸망)과 로마제국(기원전 509, 로마공화정… 기원전 27 로마제국… 기원후 476 서로마 멸망)의 발전 과정을 비교한 재미있는 책이다. 중국이 180년 빨랐지만 두 제국은 거의 450년간 존속했는데, 시작부터 멸망까지를 살피면 얼추 1200년에 달하는 장대한 역사를 가졌다. 여기서 용(龍)은 중국의 상징이자 황제의 권력을 의미하는 상상의 동물이며, 독수리는 로마제국의 상징이자 팍스 로마나(로마의 패권)를 의미한다.
저자 어우양잉즈(歐陽瑩之, Sunny Auyang)는 물리학을 전공한 미국의 중국계 여성 과학자다. 어려서부터 동양의 문학과 역사,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문·사·철과 사회과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년간의 통합학문적 연구 결과로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서문」에서 그는 “과학연구로 배양된 객관적 이성 덕분에 (…) 모든 일에 증거를 구하고 진실을 탐색”하며 썼다고 밝히고 있다. 흔히, 과학의 특징을 경험적인 실험을 통하여 자연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문학자는 가정(假定)과 이론적인 추측을 토대로 설명하는 반면, 과학자는 주로 논증을 통해 증명하는 방식을 택한다.
이 책의 「추천의 글」을 쓴 숴줘원(원로 역사학자)에 따르면, “역사를 전공하지 않고도 문화사의 문제에 대해 이처럼 주도면밀하면서도 독창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탄복했다. 그러나 수많은 역사학자 가운데 유럽 역사를 이런 수준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는 사실에 또 부끄러움을 느꼈다”(6쪽)는 대목이 나온다.
이처럼 『용과 독수리의 제국』은 여느 사학자가 쓴 글과는 결이 다르다. 저자 자신이 뛰어난 물리학자이면서 과학자의 이성적 사유가 몸에 배인 까닭이다. 이 책에는 저자의 세계화된 개방적인 시선과 함께 치밀하고 꼼꼼한 논리, 독특하고 창의적인 시각이 들어 있다. 비록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수백 권에 달하는 참고문헌(881~905쪽)은 놀랄 만큼 방대하여 그 내공에 존경심이 절로 간다. 두 제국을 다방면--지리적 지형, 지정학적 위치, 종족 구성, 정치체제, 문화 특색, 경제, 철학, 종교, 조세제도, 재정관리, 군사전략, 공동체 구성, 대외정책 등---으로 비교 분석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었다.
그는 이처럼 평이하고도 소박한 문장 서술과 치밀한 논리를 갖춘 논평 스타일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두 거대제국의 상대적인 우열을 저울질하여 낡은 전통 학설을 새롭게 검토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역사가 이제까지 소홀하게 취급된 역사의 의문점을 쉽게 풀어내고 있다.
##너무나 완벽해서 부러울 것이 없던 두 제국의 치명적 아이러니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로부터 무너지다!
진·한제국과 로마제국의 역사를 비교하다보면, 이들 사이에 매우 흥미로운 공통점이 드러난다. 로마와 진(秦)나라 초기에는 주변국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던 점, 그러다 권력과 부가 중앙으로 집중되고 관료제도가 발달되면서 북방 야만족의 압력을 받았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저자는 동·서 두 제국 사이의 차이점을 찾아낸다. 예를 들면, 법 원칙에 대한 상반된 태도(진나라는 엄격한 법률주의로 갈등을 겪었다), 개인의 자유(로마제국은 자유의 가치를 고양했지만 노예 비율은 가장 높았다), 철학, 국가 건설 등이다. 여기서 더 탐구해야 할 흥미로운 점은 중국의 왕조는 한나라 이후 3세기나 더 존속했지만, 로마 왕조는 결정적으로 끝이 났다는 점이다.
이러한 비교를 통하여 두 제국의 역사를 요약하여 풀어내면서 묻히고 버려진 지식을 새롭게 조명한다. 저자의 관점 설정은 말할 것도 없고, 역사를 때로는 단순화시키고 그림에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는다. 한 나라도 통치하기가 어려운데, 제국을 다스린다는 것은 참으로 지난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중국과 로마의 역사에서 국가 운영의 전략을 배울 수 있고, 반대로 약소국은 제국의 압박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문화 발달의 서로 다른 양상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요약하자면, 이 책은 방대한 분량(920쪽, 원고지 3600매, 유물 사진, 지도 18, 통계 산술 그래프, 연표 5, 참고문헌 702권---『사기(史記)』 『후한서(後漢書)』 25사(史), 사서삼경 등 동양 문헌과 최신 서양 문헌---등 관련 시각 자료 고증 철저)에 비해 읽기에 참 편하고, 동·서양의 역사적 사실을 대조하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즉, 학문성 엄밀성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가독성이 있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흔치 않은 대중 역사서다.
##진秦·한漢제국을 이은 중국, 로마제국을 계승한 미국.
굴기하는 신중국은 ‘신로마’라 불리는 미국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
진·한제국과 서로마제국, 이 고대 유라시아 양대 제국은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정도를 통제 아래 두고 있었지만, 결국 북방에서 건너온 훨씬 규모가 작은 게르만족과 흉노족에 의해 각각 멸망의 길을 재촉했다. 양대 제국 모두가 외적을 물리칠 힘이 부족했던 게 아니라 제국 내부의 압제와 부패, 공공전략이 부재한 치국책으로 국력을 소진하다가 자멸했다. 즉, 내부 분열과 사리사욕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후 중국 대륙에서는 여러 제국이 나타났다 사라지면서 부활과 영토 확장을 거듭하며, 청나라 강희제·옹정제·건륭제 이후 지금의 마오쩌둥 판도(역사적으로 최대 영토)를 통일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반면 서양은 서로마제국과 동로마제국 멸망 이래로 분열된 채 다시 통일을 이루지 못했다. 물론 교황에 의한 명목정치와 신성로마제국, 나폴레옹의 통일 추진 등을 거쳐 지금의 유럽연합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통일의 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21세기 중국의 굴기, 그리고 팍스-아메리카나의 운명 앞에서 이 책은, 강대국의 정치와 문화 등이 어떠해야 장기 지속적인 번영을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즉, 처음 진(秦)과 로마제국을 열었을 때 펼쳤던 ‘포용정책’을 마지막까지 관철시켰더라면, 자멸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난민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는 지금의 유럽, 미국의 모습이 혹 서로마제국 멸망 당시를 재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오늘날 동양과 서양의 뿌리가 된 양대 세계(동양의 유교 인치人治 문명과 서양의 로마실용주의 법치法治 문명)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또한 왜 두 제국이 “21세기 국가 정세를 이해하는 데 거울 역할”을 하는지를 분석한다. 우리가 역사서를 통해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도모하는 도구로서 아주 유용한 책이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을 포함해, 미·중의 갈등의 기원이 된 세계사 전반에 관심 있는 모든 이에게 추천한다.
지금껏 이런 비교사史는 없었다!
‘두 세계’를 넘나드는 작가의 아홉 가지 통찰
중국계 미국인, 물리학 교수 출신으로 문사철·사회과학 겸비
‘실증’을 무기로 역사·정치외교·경제경영의 경계를 넘나들다
공통점 ①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흔히 진·한 제국은 기원전 221년 진시황의 천하통일부터 기원후 220년 후한 멸망까지 400여 년, 로마제국은 기원전 27년 제정(帝政) 성립부터 기원후 476년 서로마 멸망까지 500여 년 존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제국이 어느 날 갑자기 성립한 것은 아니다. 제후국 진은 춘추(春秋)시대 시작 한 해 앞선 기원전 771년에 책봉되었고, 진·한제국은 삼국시대(위·오·촉)를 거쳐 동진(東晉)이 멸망한 419년에 실질적으로 소멸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로마제국의 씨앗은 신화시대와 초기 왕정을 거쳐 기원전 509년 공화정 성립 때 뿌려졌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 있듯이 진·한과 로마, 두 제국은 동시대 유라시아 대륙의 동과 서를 나누어 호령한, 말 그대로 ‘천년제국’들이었다.
공통점 ②
내부로부터 무너졌다
제국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듯 하루아침에 무너지지도 않았다. 중국 중원의 북쪽에는 ‘오랑캐(夷狄)’가 있었고, 로마의 북쪽에는 ‘야만인(Barbar)’이 있었다. 이민족과의 간단없는 전쟁과 평화는 제국 성장의 자양분이 되었으나, 막상 제국을 무너뜨린 것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의 적이었다. 한나라와 로마가 인구와 물산 모두 빈약한 흉노와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한 것은 제국 내부의 압제와 부패, 전략 부재의 치국책으로 서서히 국력을 소진한 결과였다.
공통점 ③
제국은 사라져도 유산은 남았다
‘백가쟁명, 백화제방(百家爭鳴, 百花齊放)’의 전국(戰國)을 통일한 진·한은 유가(儒家) 사상과 통치철학을 만대에 유산으로 남겼다. 로마가 자체개발한 법치와 동방에서 받아들인 기독교는 지금까지도 서구 문명을 떠받치는 두 개 기둥으로 건재하고 있다. 진시황이 처음 만든 ‘황제’와, 제국의 결정적인 기틀을 놓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저)의 이름은 동서 양쪽에서 제국 통치자의 호칭에 아직도 흔적을 남기고 있다(시진핑 ‘시황제’, 카이저, 차르).
차이점 ①
국경이 긴 로마가 불리했다
진·한 이전부터 이후까지 중국 중원의 외적 방비는 육상경계선 방어만으로 충분했다. 하나의 땅덩어리인 진·한은 자연스럽게 강력한 중앙집권을 견지할 수 있었고, 중앙의 통제가 흔들릴 때마다 제국은 위기를 맞았다. 반면 지중해를 호수처럼 차지한 로마는 육지 사방은 물론 바다의 적들로부터도 자신을 방어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적의 근원을 제거하기 위한 잦은 원정은 국력을 고갈시켰고, 그에 따른 분할통치는 중앙의 통제력을 약화시키고 부패와 도덕적 해이를 부추겼다. 군사력을 위해 이민족 용병을 쓴 것은 로마에게 치명타가 되었다.
차이점 ②
인치(人治) 대 법치(法治),
지성 대 도그마
흔히 중국과 동아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