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환 평전 (되찾은 한국 근대미술사의 고리)

진환 평전 (되찾은 한국 근대미술사의 고리)

$25.00
Description
이쾌대가 사랑한 화가!
이중섭이 본받으려 한 화가!
전쟁이 앗아간 ‘비운의 화가’, 70년 만에 본격 재조명
‘향토색’ ‘소牛와 어린이의 화가’
진환(1913~1951) 최초 평전
‘망각의 화가’ 진환, 70년 만의 재조명… 다시 쓰는 근대미술사.
이쾌대·이중섭과 동인 활동, 한국 근대사의 ‘잃었던 고리’ 진환 평전.
1930~1940년대 한국 서양화단은 미술은 전통과 현대, 사실과 추상, 순수와 참여가 공존하는 장이었다. 일제하 이쾌대·이중섭과 동인으로 해방 후 홍익대 미대 창립 교수를 지내다 6·25전쟁 중 요절한 비운의 화가 진환(1913~1951). ‘향토성’과 ‘소와 어린이’의 화가 진환의 생애와 작품을 통해 한국 근대미술사의 ‘잃었던 고리’ 하나를 찾아 잇는다.
저자

진환

(陳?,본명진기용陳錤用)은1913년전북고창군무장(茂長)에서태어났다.고창고등보통학교졸업,보성전문(고려대전신)상과중퇴후미술에입문하여도쿄일본미술학교와미술공예학원을졸업했다.1941년도쿄에서이쾌대·이중섭등과‘조선신미술가협회’를창립하고,‘신미술가협회’로개칭하며1941~1944년경성(서울)에서동인활동을이어갔다.해방후부친이고향에설립한무장농업중학교(현영선중고등학교)초대교장,홍익대미대초대교수를지내다전쟁을맞아,1951년1·4후퇴때고향인근에서마을의용군의오인사격으로생애를마감했다(38세).진환의작업은한편으로전통수묵에서근대서양화(유화)로이행되고완결되는지점에걸쳐있으며,추상을배격하고소재에서‘사실성’,형식에서‘상징과표현성’을중시하는특징을보인다.월북전의이쾌대와각별히가깝게지냈으며,그의소(牛)와아이들그림은직·간접적으로이중섭에게영향을준것으로알려져있다.

목차

·‘망각의화가’아닌당당한한국근대미술가로우뚝서다_『진환평전』을펴내며전환기념사업회8

·잊혀졌던예술을찾아가는기적같은시간_『진환평전』발간에부쳐구보경11

·진환,되찾은한국근대미술사의퍼즐한조각황정수17
작가진환을재조명해야하는이유17
진환과이중섭23

·진환과1930~1940년대일본초현실주의미술안태연33
미술사의심연속에매몰되다시피한비운의작가33
모더니즘흐름에적극참여한화력(畵歷)36
소이미지,회상과염원이교차하는환상회화로재탄생시켜44
일본초현실주의미술과한국근현대미술의관계50

·화보53
작품
습작,스케치,삽화

·작가진환의삶99
무장(茂長)의화가진환윤주99
타고난예술적재능105
집안의기대를무릅쓰고108
일본에서의학업과작품활동112
뜻하지않은귀국,단절된열정120
소,민족의향토성125
전쟁이앗아간예술가의삶127
심연에서(defrofundis)131

·진환의작품세계:일곱가지키워드134
무장,그향토색134
한민족과소그리고아이들136
화가로교육자로148
다양한재능,타고난예술성151
청년진환의홀로서기157
뛰어난문학성163
창작의동인(動因)168

·진환의소-되기(BecominganOx)최재원175
생가에걸린〈바이올린이있는풍경〉176
〈자화상〉이아니라〈초상〉177
봉강집,1·4후퇴와진환의최후180
흥학구국(興學救國)185
원근법연습과기하학187
무장읍성과알레고리:무(無)장소(NON-PLACE)와현존(NOW-HERE)의간극189
무장의소-되기(Becomingonox)193

·작가진환의재조명,1981~198
진환을추모한다서정주201
東京시절의진환하야시다시게마사201
그림속의말김치수205

·부록217
진환(1913~1951)연보218
유품·자료221
찾아보기281

출판사 서평

##‘망각의화가’진환,사후70년만에본격재조명
1945년8월22일,아직해방의흥분이가시지않은화가이쾌대(1913~1965)는서울에서전북고창무장(茂長)에사는동갑내기화가앞으로이런편지를쓴다.

“하도오랫동안소식이없기에진형하처재(陳兄何處在)오!야단들이엇습니다.예술을가장사랑하는사람으로형의그동안심경변화를동무들께전하겠습니다.그러나이때가어느때입니까?기어코고대하던우렁찬북소리와함께감격의날은오고야말았습니다.이곳(서울)화인(畵人)들도‘뭉치자,엉키자,다투지말자’‘내나라새역사(役事)에조약돌이되어도’이와같은고귀한표언(標言)밑에단결되어나라일에이바지하고있습니다.원컨대형이여!하루바삐상경하셔큰힘합쳐주소서.”(267쪽)

5년뒤1950년,이쾌대는창립2년차를맞은홍익대학교미술학부에강사로나가다6·25를맞는다.교수진에는학부장배운성(1901~1978)외에,5년전편지에서‘형’‘진형’이라깍듯이부른그사람도있다.9·28서울수복후배운성은북으로가고,월북하던이쾌대는체포되어포로수용소에수감됐다가휴전후북을택한다.서울에남은‘진형’은웬일인지함께망각의심연으로사라졌다.
함께활동한동료들이대거월북한탓도컸다.실제로남에서오랫동안금단의이름이었던배운성·이쾌대가1990년전후하여‘한국서양화의선구자’(배운성)‘조선향토색의거장’(이쾌대)으로화려하게부활하자비로소공개되는이들의1940년대사진에‘진형’도감초처럼함께얼굴을내밀수있었다.2000년대들어한국근대미술사를조명하는기획전시들에는그의작품한둘이어김없이포함되고있다.
서울에남은‘진형’은1951년1·4후퇴때고향무장을향하다가,고향마을을코앞에둔야산에서아군측의오인사격으로숨을거둔다.그것도몇년전고향학교에서가르친제자의총에!전쟁통인데다동료들도대부분월북한터라오랜세월잊혀있을수밖에없었던38세젊은화가의이름은진환이다.『진환평전』(진환기념사업회엮음,살림출판사발행,2020)은‘비운의화가’진환사후70년만에처음나오는,도록과자료집을겸한평전이다.

##생활인과예술인의경계에서
진환의본명은진기용(陳錤用),고창무장의유지집안외아들로태어났다.고향에서고등보통학교까지나오고,서울의보성전문(고려대전신)상과에입학했으나1년만에중퇴하고화업(畵業)을택한다.도쿄에유학해일본(니혼)미술학교를졸업하고작가겸미술학교교수를지내며1941년(28세)이쾌대·이중섭·김종찬·문학수등과조선신미술가협회(그해‘신미술가협회’로개칭)를창립하고도쿄와경성(서울)을오가며활동한다.
1943년(30세),도쿄의진환은‘외조모사망급귀향’이라는전보를받고급히고향으로돌아온다.외아들이‘환쟁이’의길을걷는것을걱정하는집안의거짓부고였다.진환은다시도쿄로돌아가지못한채고향에서결혼하고해방을맞는다.남아있는그의작품(습작·스케치·동시화童詩畵포함40여점)과자료가희소한이유다.아버지가설립한무장농업학원원장(개교직후‘무장초급중학교’로개칭,초대교장)을지내다홍익대미술학부창설준비를위해1948년서울로올라와활동을재개하며‘50년미술전’(전쟁으로무산)을준비하던중6·25가일어나고,이듬해비운의죽음을맞는다.
진환은늦어도일본미술학교재학중1936년(23세)작가로데뷔했다.이해도쿄에서열린‘신자연파협회’제1회전시에〈설청(雪晴)〉등2점을출품해입상하고,베를린올림픽부대행사로열리는‘예술경기전’에〈군상(群像)〉을응모하여입상했다.〈동아일보〉보도(1936.3.25)에따르면일본출품작30점에든작가중조선인은양화부의진환이유일했다.
이해부터사망할때까지16년동안진환은창작에만몰두할수는없었다.갑작스런귀향과결혼,학교교장재직까지5년의공백(1943~1948)탓에,1948년자필로기록한화력(畵歷)은1944년5월〈심우도(尋牛圖)〉(제4회신미술가협회전출품)가마지막으로돼있다.이해7월12일소인이찍인이쾌대의편지를보면진환의〈심우도〉가그에게도있었던듯한데,5월에출품한것을이쾌대가소유한것인지아니면〈심우도〉라는제목의연작또는습작이여러편제작된것인지는불명확하다.

“어언간형의학안(鶴顔)을접한지도일년이가까워옵니다.단지형의〈심우도(尋牛圖)〉만이조석(朝夕)으로낮에도늘만나고있습니다.긴박한시국에반영된무장의소를금년은아즉배안(拜顔)치못하였습니다.분뇨우차(糞尿牛車)의소는이골(경성)서도때때로만나봅니다만역시무장의소가어울리는소일겝니다.경성의우공(牛公)들은사역(使役)의것이고,무장의것은그골을떠나기싫어하고부자(父子)의모자(母子)의사랑도가지고그논두렁의이모저모가추억의장소일겝니다.형의우공(우리집에잇는〈심우도〉소품)은무장의소산(所産)임으로나는사랑합니다.”(265쪽)

그러나이때의공백기에도그는큰아들을위해손수동시를쓰고그림을그려『그림책』이라는수제본동시화집을만들었고,홍익대교수재직중에는동시집『쌍방울』을출간준비중이었으나전쟁으로일실되었다.진환의동시화는『그림책』에6편,낱장으로4편,모두10편이남아있다.진환의마지막공적자취인신문기고들이이번평전에서처음발굴돼공개되는데,소의작가답게‘소’라는제목의짧은에세이와소드로잉이다(『한성일보』,1950.4.1).

##첫관심은이중섭‘소’와‘어린이’의선구자
배운성과진환이교수로있고이쾌대가강사로출강하는1950년1학기의홍익대미대풍경은어땠을까?영영잊힐뻔한이름이처음다시주목받은것은1981년,당시갓서른의신예평론가윤범모(현국립현대미술관장)에의해서다.이해『계간미술』여름호기획기사와2년뒤그가기획한두차례유작전(서울신세계미술관,대구대백문화관)및일간지기고에서윤범모의눈길을끈것은‘소’와‘향토적서정’이었다.
남아있는진환작품과스케치의태반이소를그린것이다.각각여러장씩인〈소〉〈날개달린소〉〈날개달린소와소년〉〈소스케치〉에다,〈우기(牛記)〉시리즈(제8번만남음.이책의표지화),〈연기와소〉〈산속의연기와소〉〈혈(?)〉〈계절잡묘〉〈두마리의소〉〈물속의소들〉〈소(沼)〉〈기도하는소년과소〉…….심지어마지막신문기고까지.
진환의누이중한명에게초등학교때배우고담임선생님댁을드나들며‘마을선각자였던그댁죽은아들’의소그림을접했던문학평론가고김치수도‘이중섭리바이벌’을보며반사적으로어릴적소그림의기억을소환한다.

내가다시나의오랜기억의한모서리에있던그를생각하게된것은70년대초였다.화가이중섭에대한재평가가이루어지면서회고전이열리고또월간지에이중섭전기가연재되고있을때나는우연히이중섭의‘소’를보았다.그순간오랜망각속에묻혀있던유년시절의추억한자락이열리면서그때본‘소’와이중섭의‘소’가너무나흡사한것같았다.뒤에그두‘소’그림을대조한결과소의모양이나전체의구도는전혀다른반면에그림이표현하고있는소의느린동작과강력한힘은비슷한분위기를갖고있음을알수있었다.(207쪽)

진환의소그림뿐아니라어린이그림,특히〈천도(天桃)와아이들〉(1940경)은영락없이이중섭의도원(桃園)과과수원의아이들그림을떠올리게한다.소와아이들을그린이중섭의유화와은지화대부분이1950년대의것임을고려하면,재발굴초기진환에대한관심이‘이중섭에영향을준화가’에쏠리는것은자연스러웠다(「이중섭에영향준‘망각의화가’」,일간스포츠1982.12.14).
당시는월북작가이쾌대가해금되기전이었다.이쾌대는그로부터십여년뒤해금되며단숨에‘조선향토색’의총아로떠올랐다.그러나곧이어미술사학계에서는‘조선향토색’이일제의사주를받은것이라는논쟁이일어났다.

##진환과이쾌대가함께추구한‘향토색’
향토색을정당하기자리매김하기위해1940년도쿄로되돌아가보자.
1913년생김환기·이쾌대·진환,1916년생유영국·이중섭.엇비슷한나이지만고향은제각각,일본에서도각기다른미대를나와,20대중·후반나이에도쿄에서활동중이던조선인화가들이다.해방과6·25전쟁을거치며이들의삶과커리어는극명하게두갈래로나뉘어전개된다.
일찌감치추상에눈뜬김환기(~1974)와유영국(~2002)은대한민국에서중견·원로화가로입지를다졌다.‘소재의
신미술학회제3회전(1943)기념촬영.뒷줄왼쪽부터이성화,김학준,손웅성,진환,이쾌대,윤자선,홍일표,앞줄왼쪽
두번째부터배운성,이여성,김종찬등
사실성’을고수한다른셋은화재(畵才)를한껏펼치지못했다.이쾌대는3년의포로수용소생활후북을택했다가급사했고(1965,52세),이중섭은가난으로고통받았고더단명했다(1956,40세),진환이그중가장허망하고단명했다(38세).
신문의전시회평은으레화가들이품앗이처럼서로써주곤할때다.바다건너도쿄에서열린전시라면말할것도없다.이해김만형(1916~1984,월북)은제10회‘독립미술협회’전에출품한조선인작가평을『조선일보』에기고하며진환·석희만·홍일표·김해·안기풍·곽인식·승동표를거론한다(1940.3.29,석간3면).6월,이번에는진환이제14회‘자유미술가협회’전에출품한조선인작가평을『조선일보』에두차례에나누어기고하며(6월19일·6월21일,석간3면)김환기·문학수·유영국·이중섭·조우식·안기풍을언급한다.독립미술협회와자유미술가협회모두일본에서탈(脫)관전(官展)의젊은미술가들이주축인단체였다.

“‘독립미술’이라는이름은프랑스의미술단체에서딴이름으로정치적인의미는전혀없는데도불구하고,당시조선에있던일본인관리는독립이란단어를매우싫어하여조선에서는‘독립미술협회전’을개최할수없었고,‘독립미술협회’의회원은조선에서개인전도개최할수없었습니다.”(하야시다시게마사林田重正회고,201쪽)

독립전과자유전출품작가중김환기(6월19일자도판)와유영국(6월21일자도판)은그때이미추상으로나아간것이확인된다(239,241쪽).나머지화가중진환·김만형·홍일표·문학수·이중섭은바로1941년(조선)신미술가협회창립의주역들이다.‘예술은현실과의연결을놓지말아야한다’는믿음으로소재의사실성을견지한대표적인그룹이신미술가협회고,진환과이쾌대는그중에서도최애절친이었다.윤범모가일찍이‘향토적서정’이라는말로간파했듯,진환작품의태반을차지하는소그림들을꿰뚫는색조는‘무장의황토색’이다.1940년대‘조선황토색’은진환과이쾌대를나란히놓고보아야정당한자리매김이가능하다.이쾌대가좀더빨리해금됐더라면진환은‘소와어린이’를넘어‘조선향토색의한갈래인황토색’으로조명될수있었겠고,진환이좀더빨리재발굴되었더라면이쾌대의조선향토색은‘일제관제(官製)’혐의없이당대의시대정신으로당당하게인정받을수있었을것이다.

##근대미술사의또한장면,초현실주의
그러나똑같이사실성,더러는향토성까지함께추구한1940년대화가들의작품이저마다내뿜는독특한화풍,즉개성과독자성은어디서나오는걸까?『진환평전』은여러군데서조심스럽게,‘1930년대일본화단을통한유럽미술사조와의간접접촉’가능성을제기한다.
신화적환상성과상징성이짙게밴진환의소그림에서는막스에른스트(MaxErnst)등의유럽초현실주의(Surrealism)가읽힌다.구체적으로일본화가난바타다쓰오키(難波田龍起,1905~1997)(191쪽)와후쿠자와이치로(福澤一郞,1898~1992)(43~46쪽)를통한간접영향이다.진환은일본미술학교졸업후‘미술공예학원’이라는사설미술학교를다시다녀졸업하고곧바로이학교강사로3년간재직하다귀국했는데,후쿠자와는이학교공동창립자중한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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