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은어떻게기억해야할까?
한국전쟁은한국에서나미국에서나가물가물하다.미국은애초에한국전쟁을‘잊힌전쟁(forgottenwar)’으로‘기억’해왔다.공감가는표현이었기에‘잊힌전쟁’은한국전쟁을달리표현하는말이되었다.미국인들은제2차세계대전이나베트남전사이에어설프게샌드위치처럼낀한국전쟁에대해처음부터상대적으로무관심했다.한국전쟁은또한미국입장에서‘잘못이해된전쟁(misunderstoodwar)’‘현대사에서미국이승리하지못한최초의전쟁’,‘지난세기미국의전쟁사에서가장부당한취급을받은전쟁’그리고이책의제목이기도한‘가장추운전쟁(theColdestWar)’이기도하다.
한국전쟁은또미국인과미군병사들에게‘안개속같은전쟁’이었다.사기는저조했고,그누구도‘왜한국에서싸워야하는지’에대해속시원하게답을주지못했다.규모등중공군의정체에대해미국은너무나무지했다.일반국민은한국전쟁에대해알고싶어하지않았다.한국전쟁관련기사는‘10페이지에나나오는뉴스(pagetennews)’였다.언제끝날줄모르는전쟁에지친미군병사들에게한국전쟁은‘무승부를위해죽어야하는전쟁(awartodieforatie)’이었다.미국이이런원치않는결혼같은전쟁에참전한이유가있다.미국은중국내전이모택동의승리로끝나자‘민주당책임론’이거셌다.1932년부터백악관을차지하고있는민주당입장에서는중국을상실한책임을만회할계기를한국전쟁에서발견했다.
일본도중요한변수였다.‘봉쇄의아버지’로유명한조지케넌(1904~2005)이인민군의남침에미국이참전으로대응한것을찬성한이유도일본의중요성때문이었다.그는미국이개입하지않아한반도전체가공산화되면일본이불안감을느끼게될것이라고믿었다.
맥아더는영웅인가악당인가?
『콜디스트윈터』의주인공이라할수있는맥아더에대해역사학계일각에서는‘맥아더는영웅인가악당인가’라는논란이있다.
태평양전쟁승리의주역,통찰력있는전략,‘일본민주주의의아버지’라고불릴만한일본‘총독’으로서남긴정치적유산,카리스마,결단력,‘인천의마법사’라는별명을얻게된인천상륙작전의기적등등그가영웅이라는근거는많다.동시에독선,거만한성격,트루먼대통령에게경례도하지않는무례함등이‘악당’내러티브를만들어내고있다.이책저자에게도맥아더는‘악당’이다.맥아더는중국본토공격,대만군활용,필요하면핵무기사용까지주장했다.1951년4월그를해고한트루먼대통령의결단덕분에한국전쟁이제3차대전으로확전(擴戰)되지않았고우리가태어날수있었다고볼수도있다.만약미래에미중전쟁이실제로발발한다면,또그결과가미국의악몽같다면사람들은이렇게말할지모른다.“맥아더가옳았다.그때중국을제압했어야했다.”
미국정치사에서대략제2차세계대전까지는국제정치와전쟁만큼은초당파적으로임해야한다는것이원칙이었다.한국전쟁으로민주·공화양당의갈등은극에달했으며,보수주의성향의맥아더는미국내갈등을부채질하는역할을했다.맥아더는논쟁적인물이다.북한군침략저지와통일에관한한맥아더는확실한후원자였다.개전직후그는“한국전체를잃게됐다”고낙담했다.할일은미국인들을질서있게철수시키는것밖에없는듯했다.하지만미군의참전이결정되자그는자신의첫번째임무로인민군을쓰러뜨리는것,두번째임무로한반도를하나로통일시키는것으로삼았다.맥아더에게‘통일된민주국가한국’은하나의토템이었다.
맥아더는북한군저지와남북통일을대권도전을위한발판으로삼으려고했는지모른다.역사가들사이에논란이있지만,확실한증거는없다.이문제와관련해저자는이렇게썼다.“루스벨트는맥아더보다도맥아더를(대통령직에대한그의이글거리는야망을)더잘이해했던인물이다.”저자는맥아더에게박했지만,트루먼에대해서는후하다.미국의한국전참전을결정한트루먼은당시인기없는대통령이었다.하지만시간이흐를수록그는괜찮은대통령으로평가됐다.『콜디스트윈터』에나오는트루먼의모습은이렇다.
임전무퇴의싸움닭기질에결단력이뛰어났다.얼핏보기에는보잘것없었지만,겪어보고알면알수록실력있는사람이었다.대학을나오지않았지만,방대한독서량을자랑하는애서가였다.현실을외면하는일부트루먼의반대세력들은그가정말로실력있는정치가라는사실을그가백악관을떠날때까지도몰랐다.
이승만대통령에대해서도비판적이다.저자에따르면,이승만박사가대한민국초대대통령인이유는미국의입맛이딱맞았기때문이다.이박사는기독교신자였고,영어를잘했고,워싱턴에알려진유일한한국인이었다.우드로윌슨대통령은제자인이승만을“미래한국의독립을위한구세주”로표현했다.하지만미국인들이보기에남한에들어선이승만정부는부패하고무능력했다.저자는이를“미국은제2차세계대전이끝나면한국에서뭘해야하지제대로생각해보지않았기때문”이라고설명했다.
한국전쟁은‘제1차미중전쟁’인가?
임진왜란(1592~1597),청일전쟁(1894~1895),중일전쟁(1937~1945)은모두‘중일전쟁’이라는통칭으로한데묶을수있다.제1차,2차,3차중일전쟁이라는시각을통해새로운것을발견할수있다.세전쟁모두동북아국제질서의방향에큰영향을주었다.한국전쟁을‘제1차미중전쟁’으로재해석할수있다.그런의미에서오늘의사활적군사적·국제정치적문제에필요한답을찾는모든이들에게단연『콜디스트윈터』가필독서다.한국전쟁은내전이나대리전으로분류되지만,미국과중국이직접맞붙은전쟁이기도하다.그때나지금이나중국의부상,대만문제와세계패권문제가걸려있다.『콜디스트윈터』도미국이마지못해패권국이된것으로서술하고있다.미국은결코패권국이라는‘감투’를바라지않았다는것.하지만미국은자신이제국을운영해야한다는데확신이없었던미국은한국전쟁을거치며서서히자신의새로운책임을받아들이기시작했다.
트럼프전대통령은미국이세계의경찰노릇을수행할이유가없다고생각한다.경제적열매만취하겠다는것이다.국제관계는이를허용하지않는다.경제패권과‘세계경찰노릇’은함께가야하는전형적인비트레이드오프상황이다.전통적으로고립주의를표방했던미국은제2차세계대전과한국전쟁을거치며경제패권과고립주의는양립할수없다는것을깨달았다.
한국전쟁에대해믿을만한책은없는가?
『콜디스트윈터』가믿을만하다.저자는하버드대학생신문인‘하버드크림슨’의편집인출신이다.준비와집필에10년걸린대작이다.이책은돈오버도퍼의『두개의한국(TheTwoKoreas)』와함께한국학(KoreanStudies)분야필독서톱3혹은톱5로손꼽힌다.『콜디스트윈터』를위해저자는100건이상의인터뷰를진행했다.참전용사중상당수는한국전쟁을전공하는아마추어사학자였다.『콜디스트윈터』를그들의목소리를집대성한책으로볼수도있다.저자데이비드핼버스탬은20여권이상의책을집필했는데그중『최고의인재들(TheBestandtheBrightest,1972)』은아이비리그출신의헛똑똑이들이미국의국익을해쳤는지그과정을보여줬다.거짓에맞서는핼버스탬의입바른보도때문에고생한케네디대통령은그를다른곳으로전출시키라고뉴욕타임스에압력을넣었다.1955년하버드를졸업한핼버스탬은유명매체에입사하지않고민권운동의태동을취재하기위해미시시피로갔다.당대최고의기자,작가,역사가로평가받은그는현장과분석이융합된저널리즘의스탠더드를정립했다.핼버스탬은미국인들이베트남전과미국정부를바라보는시각을바꾸었다.‘미국은베트남에서핼버스탬때문에졌다’는과장에는진실이담겼다.저명저널리스트인조지패커는핼버스탬을‘리버럴반공주의자’로분류했다.사회주의나반미주의와는거리가멀었다.
한국전쟁은해피엔딩으로끝난전쟁일까?
역사는바꿀수없지만,역사의의미는계속바뀐다.오늘이어제와내일의의미를바꿀수있다.저자는수많은한국전쟁참전용사를인터뷰했다.그들에게한국은가기싫었던나라였다.한국전쟁의기억도끔찍했다.하지만대한민국의발전으로참전용사들은젊은그시절자신들이한국의자유를지킨것에대해자부심을느끼게됐다.특히인용할만한뭉클한대목두개가있었다.
-“한국에서싸운미국인과다른나라사람들은대부분자국에서인정받지못했다.또그들은한국에있을때특별히한국을좋아하지않았지만,한국의국가적성공은그들과돌아오지못한전우들의희생에늦게나마가치를인정했다.한국이성공전까지는느끼지못했던정당성과명예를그들에게부여했다.”
-“참전당시에는끔찍하게도한국을싫어했던이들대다수는다시한국을찾은후로는새삼이나라에대한애정이샘솟는것을느꼈다.우선그들은남한이몰라보게큰발전을거듭하면서현대적인면모를갖춘것에큰감명을받았다.또한사람들이보여준감사의태도역시그들의마음속응어리를풀어주었다.그들이보여준태도는고국에서도경험하지못한따스한환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