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로 읽는 천재 물리학자들의 인간적인 고뇌
20세기로 접어들면서 물리학은 이전의 어떤 세기보다도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분야가 되었다. 과학이 그리고 물리학이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인식의 전환과 함께 기술의 진보, 노벨 물리학상을 포함한 노벨상 수상자에 대한 세계의 관심, 아인슈타인과 호킹이라는 걸출한 물리학자들의 등장 등은 20세기를 진정한 과학의 세기, 물리학의 세기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요인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난해함과 복잡함 등으로 인해 물리학은 여전히 보통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그리고 낯은 익지만 친숙하지는 않은 그런 영역으로 남아 있다. 이와 더불어 영화나 책에서 소개되는, 물리학자들의 천재적인 면은 보통 사람들에게 오히려 물리학은 어려운 학문이라는 인상을 더욱 확고히 심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물리학은 어려운 학문이며 물리학자들은 우리들과는 다르다’는 보편적인 관념들의 극복을 시도하고 있다. 저자는 이를 위해 열두 명의 물리학자들이 각자의 학문 연구와 일상, 혹은 동료 학자들과의 관계 등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활용한다. 동료들과의 장난을 즐긴 란다우, 이미 결혼한 동료 과학자와 사랑에 빠진 마리 퀴리, 내기를 좋아한 호킹, 공부가 너무 힘들어 자살의 충동을 느낀 도모나가, 복잡한 가정사로 힘들어했을 호킹의 모습 등을 통해 그들 역시 여느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임을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가장 큰 미덕은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과 함께, 란다우나 봄처럼 이데올로기에 저항하거나, 마리 퀴리나 갈릴레오처럼 사회적 관습과 차별에 항거하는, 그리고 호킹과 펜로즈, 아인슈타인과 보어처럼 학문적으로 갈등하는 천재 물리학자들의 모습들을 오롯이 담고 있다는 점이다. 서로 갈등하고 혹은 사회나 시대와 대립한 그들의 모습을 통해 현대물리학의 또 다른 얼굴을 독자들은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 편견, 그리고 이데올로기에 저항한 천재들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나 시대에 자유로운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사회나 시대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만은 아니다.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프랑스의 마리 퀴리는 외국인이라는 그리고 여성이라는 편견과 차별에 당당히 맞선다. “전사 마리 퀴리”라는 저자의 표현은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마리 퀴리가 편견과 차별에 저항했다면 소련의 이론물리학자인 레프 란다우와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양자역학의 권위자인 봄은 당시 자신들의 조국을 지배하고 있던 정치이데올로기와 대립했다. 봄은 대학생 시절 자본주의 국가 미국에서 공산당 활동을 했으며, 란다우는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에서 스탈린 독재에 저항한 것이다. 그 결과 봄과 란다우는 각각 추방과 투옥이라는 고초를 겪는다. 저자에게 이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물리학자들이기 이전에 체제에 영합하지 않고 시대와 맞선, 그리고 자신의 양심을 실천한 진정한 지식인이었던 셈이다.
* 학문의 동반자,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경쟁자
친구라 생각한 사람이, 그리고 학문의 동반자라 생각한 사람이 자신보다 한 걸음 더 앞서 갈 때 느끼게 되는 상실감과 경쟁심, 질투 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당연한 감정들이다. 당대의 물리학자들인 머리 겔만과 도모나가 신이치로 역시 그와 같은 감정들에서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겔만은 리처드 파인만에 비해 낮은 대중적 인지도 때문에, 그리고 도모나가 신이치로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함께 다닌 친구 유카와 히데키보다 10년 정도 늦게 업적을 인정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힘들어했다. 물론 저자는 겔만과 도모나가만의 어려움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아내의 죽음과 관련된 파인만의 이야기나 지질학자였던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해 힘들어했던 소년 유카와의 모습 등 화려한 명성의 이면에 감춰진 그들의 인간적인 고뇌들을 함께 소개한다.
*비즈니스 모델로서의 노벨상, 과학에 특화된 벤저민 프랭클린 메달
저자는 노벨상을 홍보와 마케팅에 의해 잘 만들어진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로 이야기한다. 세계인들이 가지고 있는 노벨상에 대한 인식은 ‘만들어진 일종의 이미지’ 혹은 그러한 ‘허상’에서 비롯된 것이 된다. 저자에게 노벨상은 세계의 여러 권위 있는 상 중 하나일 뿐이지 한 국가의 명운이나 과학의 수준을 나타내는 척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아가 노벨상 수상자의 선정 과정과 그 기준에 학문적 성과외의 또 다른 요소가 작용한다는 의문을 제기한다.
반면에 저자의 관점에서 벤저민 프랭클린 메달은 여러 가지 면에서 노벨상과 대비된다. 노벨상과는 달리 순수하게 과학 한 분야에만 특화된 상이며, 노벨상처럼 그 권위를 높이기 위한 특별한 홍보나 마케팅도 하지 않는 순수한 상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노벨상에는 있는 그래서 “관객몰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들이 벤저민 프랭클린 메달에는 그리고 다른 상들에도 존재하지 않음을 아쉬워한다. 저자의 언급처럼 “노벨상에 견줄 만한 비즈니스 모델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