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중국현대미술 (찬란한 도전을 선택한 중국 예술가 12인의 이야기)

이슈 중국현대미술 (찬란한 도전을 선택한 중국 예술가 12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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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슈, 중국 현대미술』. 세계 주요 미술품 옥션 시장에서 중국 현대 미술 작품을 보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다. 새로운 시각과 도전적인 정신이 깃든 이들 작품들은 세계인들의 마음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으며, 130여 곳의 갤러리와 200여 개의 작업실이 몰려 있는 베이징의 따산즈 789 예술구역은 외국화랑들이 속속 자리 잡으면서 전 세계 작가들이 교류하는 장이 되었다.

전 세계의 미술은 지금 중국 미술을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일반인들이 중국의 현ㆍ당대 미술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중국 현대 예술사 중 가장 각광받는 12인을 선정, 중국 예술가들을 통해 중국 현대 미술을 이해해보고자 한다. 예술가들과 관련된 간단한 에피소드와 그들의 삶과 예술을 전기식으로 풀어낸 글로 구성되어 있다.

20세기 동서양 문화와 이념의 갈등, 민주와 독재, 문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미술 제도권과 시장의 권력 문제 등 갖가지 모순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살아남은 중국 당대 예술가들. 이 만남을 통해 중국 현ㆍ당대 미술계의 큰 이슈를 이해해 본다. 부록 정보에서는 중국 현대 미술의 흐름과 예술가들의 경향, 다양한 중국 미술계의 정보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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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뉴욕 등 세계 최대의 미술 경매 시장에서 고가 미술품으로 취급받는 중국 현대 미술 작품. 중국 현대 미술의 이슈는 세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경매 시장을 넘어서 우리나라 현대 미술의 흐름에도 큰 자극이 되고 있다. 특히 중국 현대 미술은 사회주의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그 의미는 더욱 크게 차지하는 듯하다. 다소 두툼한 편이나 현대 미술과 관련이 있거나 중국 미술 시장에 관심이 있는 투자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진행된다. 현대 중국 미술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

이보연

이보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는 중국 칭화대학교(??大?校) 미술대학에서 중국 근현대미술사 전공 박사 과정 중이다. 2004년부터 중국 당대 예술에 관심을 갖고 중국 미술계 관련인사들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목차

여는 글

그림으로 죽으리라 - 우관중
마오쩌둥 초상화

영원한 재양의 별 - 황루이
베이징의 예술 명소1

온화와 폭력의 미학 - 조우춘야
베이징의 예술 명소2

찬란한 여혼의 절규 - 마오쉬휘
중국의 대표 컬렉터

새가 된 예술가 - 예용칭
상하이의 예술 명소1

선악과를 따먹은 예술가 - 왕광이
상하이의 예술 명소2

역사와 삶과 기억의 향수 - 장샤오깡
영화 속의 20세기 중국 미술

건달의 물음 - 팡라쥔
션쩐, 광조우, 홍콩의 예술 명소1

웃음 속에 숨겨진 칼 - 위에민쥔
션쩐, 광조우, 홍콩의 예술 명소2

마음속 이야기 - 정판즐
위엔밍위엔과 송주앙예술촌

매혹적인 고통 - 펑정지에
쿤밍, 따리의 예술 명소

영원한 달콤함 - 손국연
평론가와 큐레이터

부록-시대배경
마오쩌둥 시대 1949~1976
개혁 개방 시대 1976~1989
글로벌 시대 1989~현재

감사의 글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출간 의의]

이슈의 중심에 선 중국 현?당대 예술가들과 그들을 향한 객관적 시선

최근 전 세계 주요 미술품 옥션 시장에는 중국 현?당대 미술의 열풍이 불어 닥치고 있다. 국내 사정도 별반 다를 것이 없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들의 전시들이 심심찮게 대중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반인들이 중국 현?당대 미술을 쉽고 간단하게 이해하기에 틀림없이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적인 측면에서 중국 현?당대 미술은 다양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기에 미술 시장이나 대중매체가 제공하는 정보만으로 그들을 평가하기에는 위험이 따를 수 있다.
이 책은 간단한 에피소드와 전기식으로 풀어낸 흥미로운 글을 통해 20세기 동서양 문화와 이념의 갈등, 민주와 독재, 문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미술 제도권과 시장의 권력 문제 등 갖가지 모순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투쟁, 영합, 조작, 타협, 화해 등의 방법으로 살아남은 중국 당대 예술가 12인을 소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중국 미술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되고 더 나아가 중국 현?당대 미술계에 일어난 큰 이슈들을 이해하며, 가장 투쟁적이자 대항적이며, 학술적이자 전략적인 중국 예술가들과 만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부록의 시대 배경과 중국 미술을 경험할 수 있는 여러 지역의 미술관 소개 및 평론가, 큐레이터, 컬렉터들의 정보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 중국 현?당대 미술의 흐름, 각 시대와 사조의 변화에 맞게 변화하는 예술가들의 경향, 다양한 중국 미술계의 정보까지 한눈에 아우를 수 있다. 특히 앞으로 북한 미술을 이해해야 하는 한국인에게 사회주의를 배경으로 한 중국 미술은 좋은 경험이 될 것이며, 그 남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미 있는 탐색전이 될 것이다.

[내용 소개]

그림으로 죽으리라-우관중

가난한 농부의 맏아들로 태어난 우관중은 항조우예전 졸업 후 꿈에 그리던 파리로 유학을 떠나 회화의 순수 형식과 언어 문제에 침착했다. 자신이 뿌리내려야 할 곳은 조국임을 깨달은 그는 유학 후 중국행을 선택했지만, 사회주의 사실주의를 격렬하게 외치며 모더니즘을 추구하는 그의 화풍과 당시 마오쩌둥의 문예 정책 노선은 서로 부합하지 않았다. 10년 문화대혁명 기간에 ‘우선 한쪽에 두고 보는’ 부류로 분류된 우관중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작품들을 훼손해야만 했다. 몇 년 후 혁명 분위기가 완화되자 그는 차라리 그림을 그리다 죽으리라 결심하고 분뇨 지게를 이젤 삼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분뇨 지게 화파’가 형성된 순간이었다. 이후 덩샤오핑이 집권하면서 우관중은 찬란한 빛을 보게 되었으며 자유 창작론, 형식 미론 등 정치에서 독립한 자유로운 예술의 가치를 주장한 그의 사상은 후대 예술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미술 시장이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던 1990년대부터 우관중은 시장의 간판스타가 되었고 지금도 그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영원한 재야의 별-황루이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몇 년간 대륙에 온풍이 불어왔다. 언더그라운드 문예지《오늘》의 표지 디자인 편집을 맡았던 황루이가 스스로 전시를 열어야겠다고 결심했던 것도 이 시기였다. 이렇게 시작된 미술과의 인연은 1979년 9월 27일, 중국 현대 예술사상 최초로 민간 예술 청년들이 조직한 노천 전시회 《싱싱미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싱싱미전》은 정부의 ‘취소 명령’으로 물의를 일으키더니 급기야 예술의 자유를 위한 시위로 번져갔다.《뉴스위크》를 비롯한 세계 각지의 언론마다 시위를 보도했고 이것이 압력이 되어 정부는 베이하이 공원의 황팡자이화랑에서 이들의 전시를 허락했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오늘》지는 강제 해산 되었고 멤버들은 세계 각지로 흩어지게 되었다. 일본과 세계 각지를 돌며 활동했던 황루이는 2002년에야 비로서 입국 허락을 받고 조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이후에도 그의 재야적 삶은 계속되었다. ‘국제 따샨즈 예술제’를 통해 철거 위기에 놓인 798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려 힘을 쏟았다. 현재 그는 베이징 외곽 가오베이디엔의 오래된 공장에 새 둥지를 틀고 ‘베이징 당대 국제 예술제’의 감독을 맡으며 예술가로서, 투쟁가로서 중국 당대 미술을 위해 여전히 분투하고 있다.

온화와 폭력의 미학-조우춘야
대학시절부터 제도권에서 인정받고 지금도 그 영역에서 중요한 위치에 서 있는 조우춘야. 지적이고 품위 있는 정신세계를 보여주다가 갑자기 색정적인 농담을 거침없이 퍼붓는 그는 풍요롭고 자유로운 사람이다. 귀티 나는 외모와 달리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이른바 스타 학번이라는 쓰촨미술학원 77학번으로 입학해 졸업 후 독일로 유학 길에 오른다. 1989년 1월 조국으로 돌아와 중국 전통 회화 연구에서 영감을 받은 〈돌〉 시리즈를 선보이며 문인들의 우아하고 조화로운 미감에 가차 없는 폭력을 행사했다. 이후 1994년 지인에게 선물 받은 헤이건(독일산 순종 양치기 개)을 작품 이곳저곳에 등장시키며 파괴와 해체를 통쾌함을 맛보았다. 50대에 접어들면서 조우춘야는 도화에 심취해 야외정사를 벌이는 뜨겁게 달아오른 남녀를 화폭에 담았다. 도덕과 죄악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진지하고도 본능적인 환상이 활개 치는 그림 속에는 그는 ‘온화하고도 폭력적인’ 천일합일의 순간을 선보이고 있다.

찬란한 영혼의 절규-마오쉬휘
‘비극적 죽음과 고통, 희생의 의미를 추구하는, 즉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를 믿는 예술가.’ 쟝샤오깡은 마오쉬휘를 이렇게 불렀다. 중학교 2학년 친구에게 선물 받은 책으로 그림과 인연을 맺은 그는 훗날 독일 표현주의에서 정신성과 형식 문제의 답을 찾았다. 낮에는 쇼윈도 배치, 간판 쓰기 같은 허드렛일로 조용히 지내지만 밤이 되면 장샤오깡, 판더하이 같은 예술 동지들과 광기 찬 시간들을 보냈던 마오쉬휘. 제도권의 전시와 끊임없이 저항하면서 진정한 예술가의 자존심을 잃지 않던 그는 텐안먼 사건으로 권력에 대한 사고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다. 어느 틈엔가 다른 예술가들이 거대한 정치적 기호를 가지고 해외 무대로 옮겨가는 동안 그는 자신이 바라보아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닌 자신이라 생각했다. 이때부터 정치나 경제만큼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주변의 평범하고 익숙한 사물들과 마주했다. 이후 그의 화면을 가득 채운 터치와 강렬한 선, 강력한 상징적 소재들은 한 쪽 날에 고요히 열정을 가득한 한 자루의 가루로 남게 되었다. 처절하고 고독하게 저항하는 자신의 모습을 담은 가위는 화폭 중앙에 오롯이 서서 열정, 충동, 절제, 묵상, 기도 등을 그리며 여전히 그 혹독한 수련의 과정을 견디고 있다.

새가 된 예술가-예용칭
주류 사회와 가까운 환경에서 성장한 예용칭. 그래서인지 그는 언제나 밝고 건강하다. 쓰촨미술학원 시절, 고갱을 좋아해 원시적인 풍경을 그리기 위해 열대 지역 시슈앙반나를 여덟 차례나 돌기도 했던 예용칭은 책에서 만난 고갱을 그리워하면서 한편으론 중국 전통 문인들처럼 어지러운 속세를 벗어나 이상적인 자연 속에서 현실을 비판하고자 했다. 전국적으로 ’85 미술 붐이 일어 복잡한 문화 충돌과 격렬한 논쟁이 오갈 때도 그는 오히려 자신만의 낭만을 쫒았다. 1990년대 초 중국 미술계에 팝아트가 유행처럼 퍼질 때 그는 드로잉과 회화성이 강조된 ‘시적인 팝아트’를 선보였다. 그러나 국제 사회에서 통용될 수 있는 전략적 부호로 무장하여 현실을 조소하는 선명한 중국식 아이콘을 제시하지 못한 예용칭은 베니스 비엔날레 초청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쿤민 상허회관 설립과 쿤밍 추앙쿠의 설립, 상허차칸 예술 행사 개최 등 대내외적인 부분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갔다. 이제 그는 젊어서부터 큰 친밀감과 만족감을 주던 수묵으로 환원해 새를 그리기 시작했다. 새와 함께 하루의 잡념을 떨쳐버리는 소중한 시간과 함께 그는 예술가로서 더욱 성숙해지고 있다.

선악과를 따먹은 예술가-왕광이
“예술가들은 공통적인 환상 속에 다 마찬가지인 사실들을 가지고 신화를 구축한다.” 왕광이는 이렇게 과장과 뻥튀기의 인문학적 처리를 거친 예술가들의 신화에 대해 터놓고 까발린다. 저지앙미술학원 시절 중세 철학과 사상을 흠모한 그는 고전주의에 대단한 집착을 보였다. 북방 문화와 남방 생활을 모두 경험한 그는 곰브리치의 책에서 ‘도식과 수정’에 관한 개념도를 이해하고 고전 도식에 대한 ‘수정’ 작업에 매달린다. 하지만 다다식의 반예술 사상에 대한 흥미는 ‘고전주의 콤플렉스’와 ‘수정’ 작업에 회의를 품게 했고, 결국 고전적이고 인문학적 가치와 사고를 거부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때마침 불어 닥친 ‘마오열’이라는 비이성적인 신화 재현에 왕광이는 비판을 가하기 시작했다. 해외 전시 초청이 이어지면서 예술사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은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확장, 오도되었다. 이후 그의 대표작인 〈대비판〉은 ‘중국 주류 정치 이념을 재치 있게 풍자한’ 그림으로 이해되고 인기리에 미술 시장과 국제 전시장을 점령해나갔다. 물론 이 모든 수순은 특별한 목적을 가진 예술가, 평론가, 그리고 큐레이터들의 암묵적인 규율에 의해 진행되었다. 199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대비판〉은 확실한 하나의 유행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고 그는 지속적으로 정치, 전쟁, 권력과 국제 문제, 글로벌 시대의 개인 신분 문제 등을 다루었다. 하지만 최근 그의 작품에서는 과거와는 분명 달라진 복잡 미묘한 심리를 느낄 수 있다. 여전히 자신의 감정과 괴로움을 직접 그려 넣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에게 의미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욕망이 꿈틀거린다.

역사와 삶과 기억의 향수-장샤오깡
천정부지의 그림 값으로 중국 미술 시장의 중심에 서 있는 장샤오깡. 그는 탄탄한 실력, 엄격한 자기 관리, 대중적 재치를 고루 갖춘 타고난 세계적 스타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이론가 못지않은 철학적 지식과 논리적 분석력을 지닌 그는 30대 중반부터 자신의 작업 시기 분류와 회고 정리를 시작한 실력파 화가다. 쓰촨미술학원 4학년 때 이미 고집스럽고 주관이 뚜렷한 ‘현대 예술가’가 된 장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