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란의 계절

춘란의 계절

$13.00
Description
봄이 매년 돌아오듯
춘란과 춘란을 닮은 모든 이들에게
반드시 따뜻한 계절은 찾아온다!
사계절문학상ㆍ살림YA문학상 수상작가 김선희 신작

김선희 작가의 신작 『춘란의 계절』은 제목처럼 춘란의 삶에서 가장 따뜻한 순간과 시린 순간을 모두 보여주는 이야기다.
춘란은 남들은 알지 못하는 출생의 비밀을 안고 태어났다. 아빠와 단둘이 지내는 유년시절은 춘란에게 가장 따뜻했던 순간 중 하나였다. 그러나 아빠의 재혼을 시작으로 춘란의 삶에는 이전과 다른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친엄마가 없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한 춘란은 집으로 돌아와도 자신은 마치 이방인이 된 것만 같다. 외로움이 커지다 못해 익숙해질 무렵 춘란에게 특별한 친구 태승이 찾아오는데, 그것 역시 찰나의 행복이었을 뿐. 학교 폭력을 견디지 못해 사라진 태승의 빈자리는 더욱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그렇게 외로운 고등학교 생활을 지속하던 어느 날, 춘란은 자신과 외모도 성격도 다른 신비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사랑을 경험하게 된 춘란은 용기를 내어 신비에게 고백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신비와의 연애는 점점 춘란이 꿈꾸던 것과는 멀어져만 가는데…….
소설 속에는 춘란과 태승을 포함한 다양한 인물들의 다채로운 이야기가 들어 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뿐이기에 계속해서 용기를 내는 이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눈보라 같은 시련 속에 웅크리고 있을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와 연대의 손길을 내밀어 줄 것이다.
저자

김선희

1964년경기도안성에서태어나서울예술대학문예창작학과를졸업했다.몇해전부터자연이좋아무작정시골로내려가살고있다.꽃밭과텃밭을일구는것이글농사와닮았다는것을뒤늦게깨달으면서,노인이되어서도오늘처럼살고싶어밝고즐겁게잡초를뽑고글을쓴다.

장편동화『흐린후차차갬』으로2001년제7회황금도깨비상을수상했다.2013년『더빨강』으로사계절문학상을,같은해...

목차

춘란의계절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다른이름,다른사랑,다른용기
사계절처럼시리고도따스한‘춘란의계절’

“앞으로또누군가를그렇게뜨겁게사랑할수있을까?”

『춘란의계절』은눈보라같은세상의시련에서도‘나’라는존재를사랑하기위해노력하는사람의이야기다.
세상은다름을쉽게이해해주지않는다.소설속에서도가족구성원의수,이름,외모,사랑하는사람의성별이다르다는이유로너무나쉽게주인공을공동체밖으로밀어내고,언어및신체폭력을거리낌없이행사한다.춘란의이름에서느껴지는봄의향기는한파처럼찾아온시련에계속해서묻히고,그러한날이길어질수록춘란은스스로에게의문을품는다.내겐행복할자격이없는것같다고.
소설은춘란을중심으로전개되지만,춘란의서사뿐만아니라다양한인물의다채로운이야기를통해우리사회와학교공동체의차가운현실을보여주고있다.세상에는수많은춘란과태승이있음에도불구하고사회에서소수라는이유로끊임없이나라는존재를해명하고,변명하다결국도망친다.소설은그런이들에게위로와연대의목소리를건넨다.시린겨울이영원할것같지만,거짓말처럼봄은찾아오기마련이라고,춘란의삶과태승의삶이그러했듯우리는숨지않아도될권리가있다고.그들이해야하는것은세상을향한해명과도피가아닌‘나’를사랑하는것뿐이다.
춘란은지독한열병같은시간을보내고새로운이름,열꽃과함께비로소진정한봄을맞이한다.그것은이전의나를버리기위함이아니라인정하고사랑하기위함이다.세상모든춘란이이소설을읽고따뜻한양지에서단단한뿌리와함께나라는싹을틔울수있기를빌어본다.그자리엔서리와그늘대신꽃잎과볕이내려앉기를.


책속에서

강게이의본명은강태승.강태승도나처럼외톨이였다.우리반에여자외톨이는내가맡고있었고남자외톨이는강태승이맡고있었다.우리는둘다같은처지이면서한번도말을나누거나눈빛조차마주친적이없었다.강태승이나하고다른점은그는폭력과괴롭힘도당한다는거였다.괴롭힘을당하는이유는단하나,강태승은화장을하고다녔다.
_16쪽

신비는밥을다먹고내가옆에있는것도의식하지못한채,앞자리에앉아있던아이와수다를떨며식당에서나갔다.그날나는내가살던세상에서신비가사는세상으로건너뛰었다.내가살던세상이어둠과그늘과온갖우중충한것으로덮여있었다면신비가사는세상은밝음과환희와온갖상쾌한것으로둘러싸여있었다._60쪽

아빠는들떴고새엄마는화사했다.아빠는접시에음식을가득담아먹고또먹었다.“우리춘란이많이먹어.여기있는거다먹어도돼.”
그럴필요가전혀없는데도아빠는틈틈이나를챙겼다.
여름방학때새엄마가싸준도시락덕분에나는새엄마와한층가까워졌다.딱히싫어할이유가없었다.동화에나오는나쁜계모도아니고유담이와나이차이가많이났기때문에콩쥐팥쥐같은갈등요소도없었다.오히려좋은점이많았다.매일맛있는음식을먹을수있었고아빠와분담해서하던집안일에서해방될수있었다.물론아빠는새엄마와집안일을함께했지만나는집안일에서제외되었다.
불편한점도있었다.가족이라는이름으로원하지않는자리에함께있어야했다.이번에도신비와의약속을미루고생일파티에참석해야했다.가족사이에는공유되는분위기라는게있다.‘나’는최대한배제되고‘우리’가유별나게강조되는게가족공동체라는것을아빠의결혼을통해알게됐다.
_86쪽

가족은행복한금요일을보내고있었다.현관문을열었을때,안에서아빠와새엄마웃음소리가터져나왔다.유담이가재롱을떨고있었고그앞에아빠와새엄마가웃는얼굴로앉아있었다.
유담이가나를보자뛰어왔다.
“언니.”
유담이를손으로밀쳤다.나는유담이에게나를언니라고부르도록허락한적이없다.즐겁고행복한감정을공유하도록강요당하는이런가족도결코허락한적이없다.새엄마도,유담이도,새엄마배속에들어있는내두번째동생도,심지어는아빠마저도내가원한관계는아니었다.모든관계가내가원한게아니다.학교도,이지구도,저우주도.
_116쪽

부드러운햇살이집안풍경을더따스하게비추고있었다.너무평화로워서오히려낯설었다.이곳은내가있으면안되는곳인데.아빠와새엄마와유담이의스위트홈인데.내가유령이돼서화목하고단란한어느가정을엿보는기분이었다.
식탁위에상보가덮여있었다.상보를젖히니음식이차려져있었다.밥그릇과국그릇,달걀말이와멸치볶음,깍두기반찬이작은접시에담겨놓여있었다.국그릇옆에는메모지도있었다.
―일어나면밥챙겨먹어.냉장고에사과있으니까밥먹고꼭먹고.밥심만있으면어떤힘든일도버틸수있으니까든든히먹어.담임선생님한테는내가연락했으니까걱정하지말고.네가좋아졌으면좋겠다.
‘새엄마가’라고쓴글씨를지운뒤에‘엄마가’라고적혀있었다.
처음보는새엄마글씨였다.네모반듯하고딴딴해보이는글씨체였다.
_140~141쪽

“사랑도결국상대를위해서하는게아니라자기자신을위해하는거야.부모가자식을사랑하는것도마찬가지야.희생이니뭐니남을위해봉사하는것도결국자신의만족을위해서지.그러니까세상의모든중심은바로나자신이야.그래서나자신이세상에서가장소중한존재이기도하고.용서는상대를위해서하는게아니라나를위해서하는거잖아.아무리주위에서용서하라고강요해도내마음이용서를허락하지않는데어떻게용서를해?난영원히서지우를용서하지않을거야.”
우리는말없이차를마셨다.카페분위기는더할나위없이평화로웠다.온몸에두드러기가올라온다는건그동안속에서곪고곪은게터진거라며태승이가말했다.그러니뭐가됐든이제끝이라고.나에게그말이무엇보다위로가됐다.곪아서터졌다는건곧회복될일만남았다는증거니까.
창밖으로굵은먼지같은것들이휘날렸다.먼지덩어리는허공에서어지럽게빙그르돌기도하고춤추듯너울거리기도하면서바닥으로떨어졌다.그런먼지덩어리가점점더많아졌다.
“어,눈이네!”
창밖을무심코보던태승이가감탄사처럼내뱉었다.나는창가쪽으로달려가밖을내다봤다.눈발이어지럽게흩날리고있었다.11월에내리는첫눈이었다.-1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