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꿈 - 트리플 16 (양장)

말과 꿈 - 트리플 16 (양장)

$14.00
Description
틈새의 시간에서 만난 꿈과 환영의 이야기
찰나의 마음을 기록하는 순환의 여정

“그는 까막잡기를 하듯 양손을 더듬거린다.
그가 포옹하면 녀석은 생겨난다. 그런데 어디 있어.
너 어디 있어.”
시작되지 않았으나 어디선가 반복될,
잿빛 환영으로 그리는 세계에 대하여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는 한국문학의 새로운 작가들을 시차 없이 접할 수 있는 기획이다. 그 열여섯 번째 작품으로 양선형 작가의 『말과 꿈』이 출간되었다. 『말과 꿈』은 2014년 등단 이래 꾸준히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온 양선형의 세 번째 소설집이다. 스스로를 ‘불친절한 작가’라 말하는 양선형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수하고자 하는 소설에 대한 깊은 고집을 담았다.

“나는 달리는 말을 타고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달리는 말의 잔등 위가 소설 자체의 영원한 목적지가 되는
바로 그런 소설을 쓰게 될 거야”

저자

양선형

1990년광주에서태어났다.2014년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으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감상소설』,『클로이의무지개』등이있다.

목차

소설너구리외교관말과꿈「퇴거」와나중에함께묶인다른산문들

에세이「말과꿈」에관한소설

해설틈새의시간,되찾은현재―윤아랑

출판사 서평

표제작「말과꿈」은주인공‘그’가꿈에서만난말을찾아떠나는여정을그린다.어느날‘그’는텔레비전에서‘녀석’의모습을발견한다.‘녀석’은아주유명한경주마가되어있었다.스크린너머로‘녀석’을마주한순간.‘그’는신비로운일을경험한다.과거교통사고이후‘그’의“머릿속을떠다니던어슴푸레한환영”이‘녀석’의모습으로조각되기시작한것이다.‘그’가‘녀석’을처음만난것은환영인지모를꿈속에서였으므로,‘꿈속의말’과실종된말이같은존재라는사실은오직‘그’만의실제였다.그런데‘녀석’이사라졌다고했다.일전에는‘녀석’이‘그’를찾아왔으니이번에는‘그’가녀석을위해움직일차례였다.“약속을지켜야만한다는감각이”‘그’를에워쌌다.결국“그는하루쯤녀석을위해시간을허비하”기로결심하고,‘녀석’이사라진곳,활주로로가기위한여정을시작한다.

슬라이딩하던항공기가보름달을가렸다.비행장의등화관제에따라꺼졌다켜지는불빛속에서꿈틀거리는근골의음영이드러났고,이내흥분한말들이짙어지는어둠안쪽을향해신속하게미끄러져들어갔다.
(「말과꿈」,101쪽)

「너구리외교관」에도또다른‘그’가등장한다.어느날평화로운야산에낯선이가나타난다.‘그’는큰상처를입은채로힘겹게오솔길을걸어한산장앞에도착한다.문을두드리지만산장의주인은낯선이를환영하지않는다.생명이꺼져가는‘그’의주위로너구리들이몰려든다.사실이너구리들은온야산의사랑을받는유일무이한존재다.다람쥐나가시덤불,까마귀,심지어는산장의주인인‘촛불관리인’마저도너구리들을향해애정공세를퍼붓는다.결국너구리한마리가스스로‘전령’이되어‘촛불관리인’을설득하는데성공하고,‘그’는마침내산장안으로들어선다.

그러므로산장의잠긴대문앞에서기절할것같은통증을느끼고있는그와촛불관리인사이에다리를놓아줄수있는존재란오직너구리들인것이다.너구리만이그를산장안으로입장하게할수있고,촛불관리인의가능할지모를보호의손길을성사시킬수있다.
(「너구리외교관」,16쪽)

「「퇴거」와나중에함께묶인다른산문들」은조금특별한형태의소설이다.소설같은,또에세이같은세편의글이결합해있는데,정확히는‘소설같은것’사이에‘에세이같은것’이낀형태라고볼수있다.이러한호명의방식은각각의제목때문이기도,결과적으로이세편의글이하나의소설을구성하고있기때문이기도하다.소설의첫부분을맡은‘2018:「퇴거」’와마지막인‘2024:「퇴거」에관한소설’에는‘나’와‘친구’가등장한다.‘나’는‘친구’에대해맹목적이라할만한애정을보인다.‘친구’가자신의집을함부로쓴다고생각하면서도대가없이자신의집에머물게하고,먹이고,돌본다.한편으로는자신의삶을흐트러트리는‘친구’가자신의집에서‘퇴거’하기를원하는데,글이끝날때까지친구의퇴거는상상으로만이루어진다.하지만이는‘2022:지난계절의일기’를지나‘2024:「퇴거」에관한소설’에도달하면서“상상의형태로우회및지연시키던미래가현재를정말로엄습하고점령”(해설,윤아랑평론가)해버리고만다.
중요한점은각각의글이연속된하나의시간을공유하지않는다는것이다.양선형의소설에서시간이란“혼란스럽게순환하고뒤섞이고있는”(해설,윤아랑평론가)것이기때문이다.즉‘2024:「퇴거」에관한소설’은‘2018:「퇴거」’와별개의독립적인작품이기도하면서,‘2018:「퇴거」’의‘다시-쓰기’로서글쓰기에대한관점의변화를보여준다고할수있을것이고,‘2022지난계절의일기’는두‘소설같은것’사이의“틈새의시간”(해설,윤아랑평론가)임과동시에소설바깥의시간전체라고도할수있을것이다.

“시간은레이어를만든다.그것들은격자처럼반듯하지않고연꽃모양의프릴이나수면위로퍼지는동심원처럼하늘거린다.때때로그것은왜곡된흔들림이다.그러나모든흔들림은확장되거나통과하거나침투하거나사라지면서새롭게반복되는흔들림의궤적일뿐어떤형상에대한왜곡으로읽힐수없다.”
(「「퇴거」와나중에함께묶인다른산문들」,209~210쪽)

「말과꿈」의‘그’는끝내‘말’을만나지못하지만,「너구리외교관」의‘그’는신비로운너구리들의도움을받아산장으로들어선다.「「퇴거」와나중에함께묶인다른산문들」에서는친구의퇴거가‘상상’과‘실제’라는두갈래로나뉜다.각기다른모양같지만,양선형의궤적은고집스러울정도로같은모양을그리는중이다.‘글쓰기’라는선형의궤도에서어디에서도시작되지않았고,모든곳에서시작된소설,“달리는말을타고목적지에도달하는것이아니라달리는말의잔등위가소설자체의영원한목적지가되는바로그런소설을쓰게될거”라는작가의말처럼『말과꿈』은‘소설쓰기’에대한양선형의집요한애정을담고있다.

작가의말
문학에있어서완전히사변적이돼도좋을것.내가그것을좋아할힘이있으니까.내가글을쓰는이곳에서만큼은확실하게적용될수있는약속과윤리를만들고그것을실천하기.
글쓰기는글쓰기속에분명하게도착할것이다.
_「「말과꿈」에관한소설」중에서

해설
양선형의소설은내일(혹은어제)을기피하고두려워하며,반대로“현재를잡”으려는데더없이열성적이다.그리고여기『말과꿈』에실린각각의소설들은현재에대한양선형의열정을이전의그어느때보다뚜렷하게육화하고있다.달리말하자면,『말과꿈』은현재의소설가가쓴현재를위한소설집인것이다.
―윤아랑(문학평론가)

책속에서

촛불관리인의입장에서너구리전령의외교술에넘어가는일은지금껏착실하게쌓아온고독의금자탑을무너뜨리라는거북한요구에가깝다.그가죽어도괜찮아.통증으로쓰러져사경을헤매고숨이끊어져도나는몰라.하지만너구리야,네애교를뿌리치는일은너무힘들구나.너구리전령이엉덩이를흔들며촛불관리인주위를얼쩡거린다.촛불관리인은그만너구리전령의모습에유혹되고만다.
_「너구리외교관」,16~17쪽
그는녀석처럼자신을둘러싼비자발적인흐름을기꺼이중단시킬수있는이들을사랑했다.녀석은공항의스케줄을마비시키는방식으로경마장바깥의세계를항해실질적인영향력을행사했던것이다.활주로는종마를방목할들판으로서는터무니없이광활한공간이었지만녀석은그곳을그렇게사용했다.
_「말과꿈」,24쪽

그순간,그는머릿속을떠다니던어슴푸레한환영이구체적인형상으로조각되는느낌을받았다.신비로운일이었다.그때부터녀석의이미지는그의기억한가운데새겨진공백의모양에들어맞는마지막퍼즐조각,그가망각으로부터돌려받은아주각별한퍼즐조각이되었다.
_「말과꿈」,27쪽

그는녀석을기다렸다.당직간호사가병실을살피러들어왔다.어머니는간이침대에몸을외로누인채로잠들어있었다.녀석이병실문틈사이로모가지를내밀었다.순박하고공허한눈망울이었다.그때녀석이바라봤던대상은그의육체와영혼중어느쪽이었을까.그는기억나지않았다.혹은녀석이한꺼번에둘모두를바라보았고,그는녀석의무감한응시속에서하나의대상으로포개져있었다.
_「말과꿈」,47쪽

짧게요동치던항공기가지상에서이탈하는순간이었다.활주로로나갈필요가없어졌고,그러나그는활주로를질주하는말한마리의영혼을본것같았으며,포털사이트화면이먹통이되었고,일직선으로뻗은금속날개가엿가락처럼구부러졌으며,미사일에격추된유선형동체의허리가찢어졌고,공중을유영하던새들이프로펠러속에서잔혹하게파쇄되었으나이모든일은환영일뿐이었다.절대로이런일들이벌어져서는안되었다.
_「말과꿈」,111~112쪽

그는말을찾는일에실패했으나실패했다고말할만큼의어떤일도하지않았다.집에서택시를타고공항에이르러예정에도없던항공기에탑승했다.아무것도하지않는동안녀석의일생이저물었고,그는애초부터약속일수없었던일방적인약속과결별했던것이다.긴장이누그러지며졸음이몰려왔다.그는꿈을꿨다.그가다른나라의지상에안착할때까지지속될꿈이었다.
_「말과꿈」,112쪽

나는최근에「쓰레기천사」라는제목의소설을다른사람에게읽히지않을목적으로써서내블로그에비공개로게시했다.타인에게읽히지않는것이목적이니벌써이소설은자신의목적을온전히달성한셈이다.이런글쓰기는거의유희에가깝지만나는시간이날때마다이러한유희를지속하는일이나의긍지에도움이되리라고생각한다.
_「「퇴거」와나중에함께묶인다른산문들」,154~155쪽

글쓰기란자신에게강제력을부여할공인될수없는조항들이빽빽하게적힌어떤문서를직접발명하는일인지도모르겠다.이렇게서술하면나의글쓰기가훗날의나에의해함부로부인되거나폐기되지못할어떤계약서를작성하는일과유사하게여겨진다.나는내집을내집이아니라내친구가실종된장소로인식하겠다는퇴거명령에사인하고,내집을점유한친구의환영에게주거할권리를보장하는등기서류를제작했는지도모르겠다.
_「「퇴거」와나중에함께묶인다른산문들」,1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