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은 어디에나 - 트리플 20 (양장)

초록은 어디에나 - 트리플 20 (양장)

$13.00
Description
존재를 벗어나는 기적 같은 만남
저마다의 초록을 품은 따뜻한 슬픔의 모습들

“나는 심혈을 기울여 적당한 크기의 슬픔을 하나 골라냈다.
그것이 담긴 작은 유리병을 선인장과 함께 건네주었다.
돌을 밖으로 꺼내는 순간 슬퍼질 거야.”
작가-작품-독자의 트리플을 꿈꾸다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 20

차고 단단한 슬픔의 파랑, 다정한 한 줄기 빛 노랑
그렇게 완성된 따뜻한 슬픔의 색 초록

한국문학의 새로운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의 스무 번째 안내서. 2019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해 자신만의 소설 세계를 단정하게 그려가고 있는 임선우의 두 번째 소설집이 출간됐다. 엉뚱한 환상을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녹여내는 임선우만의 마법이 또다시 펼쳐지는 순간이다. 『초록은 어디에나』에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놓인 갖은 초록의 장면이 담겼다. 색도 온도도 모두 다른 저마다의 슬픔과 손길과 눈빛과 관계가 무심한 듯 조화를 이루며 ‘이상한 현실’에 안정을 부여한다. 별스러운 모든 것들이 자연스러워지는 임선우의 세계에서 우리는 그 어떤 모습과 감정도 이해받을 수 있으리란 믿음을 획득한다.
저자

임선우

1995년서울에서태어났다.2019년『문학사상』신인문학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유령의마음으로』를썼다.

목차

소설초록고래가있는방
사려깊은밤,푸른돌
오키나와에눈이내렸어

에세이초록은어디에나

해설이만남은꿈이아니다―박혜진

출판사 서평

비로소물을찾은고래와사막으로돌아온낙타,
상실과결핍을메우는만남과서로에의진입

「초록고래가있는방」은두드림과응답으로서로의넘나듦이이루어지는소설이다.만남과교감이란보편적키워드가떠오르겠지만이것이범상하게펼쳐질리없다.작가는아파트누수로인해윗집문을두드리는여자의앞에거대한낙타를등장시킨다.말도하고곤란해도하고협상도하는낙타를.조금은당황했지만누수공사를위해자연스럽게낙타를집에들이는여자처럼,독자는어느새단봉낙타한마리를마음속‘그럴수도있지’방에슬며시들이게된다.

“늑대인간이랑비슷하게낙타인간이라고생각해도될까요?(……)네,보름달이랑은상관없지만.(……)태어날때부터낙타인간이었나요?아니요.사년전에처음변신한뒤로가끔이래요.(……)처음에는덩치가워낙크고사족보행이라힘들었는데,이제는하고많은동물중낙타여서다행이라는생각이들어요.낙타는무엇이든잘버티는동물이니까.낙타가되면무엇이든잘버티게되나요?(……)그말이사실이라면낙타가되는것도나쁘지않을듯했다.”(21쪽)

슬픈사연으로모습이변한건낙타만이아니다.실패를겪고절망에빠져스스로를술독에빠트리고타인으로부터격리한여자는,자처해갇힌방에낙타를들이며희한한위로를받는다.자신을미워하던초록고래는그렇게낙타의부름으로느리게헤엄치기시작한다.누수가생긴틈은메워질것이고,고래는아니여자는비로소자유롭게유영할수있을것이다.

뜨겁게흐르지못해차고단단해진
어느슬픔이란물질에관하여

「사려깊은밤,푸른돌」에는슬프면눈물을흘리는대신돌을토하는여자가등장한다.여자의입에서나온점액질로둘러싸인동그랗고푸른돌멩이엔불안과아픔이응축돼있고,그것은전염성을지녀주위의사람을슬프게만든다.비유가아닌말그대로‘슬픔을토한’여자가할수있는최선은,돌멩이를병에넣어밀봉하는것.그러던어느날작은복수를위해전해진돌이예상치못한관계의점액질이된다.

“우는동안에는이상하리만치속이시원했다고했다.곪았던게다터져나오는느낌이랄까.(……)희조의슬픔은희조내면어딘가에고여있다가뜻밖의방식으로분출된듯했다.그런식으로돌이누군가에게도움이되기도하는건가,하고생각하던중희조가나에게물었다.그러면내가지금느끼는슬픔은내것이아닌가?네가슬퍼지는순간부터는네슬픔이지.내가대답했다.”(72쪽)

사실여자가돌을토하게된건,곁에있던이의상실때문이었다.현실을부정하고헛된희망을품던마음이,그고통이어느새차고단단한돌이된것.그것을토하면슬픔은멀끔하게사라져차라리잘됐다고생각했는데,여자가돌을토하고싶지않은순간이찾아온다.

“희조의얘기를듣다가돌을뱉었던날,나는희조의슬픔에조금도가닿을수없었다.희조의얘기를들으며차올랐던감정은돌을토하는것과동시에차게식어버렸다.(……)따뜻함이나눈물,헤아림같은것은산사람들의몫으로남겨두고돌처럼차갑게굳어버린것일지도.이제와서그것을바로잡는일이가능할까?”(90쪽)

슬픔에가닿고싶은마음.그것을사랑이라이름할수있지않을까.어쩌면그것은차갑게굳어버린돌을아니여자를녹일수있는유일한수단일것이다.녹아흘러내리는푸른돌을기다리는우리의소망이과연이루어질수있을까?

한여름,쪽지에적힌하얀기적
갑자기목도한비현실적인현실

「오키나와에눈이내렸어」는무려금괴를밀수하는담합에서시작한다.썩은밀하지도그리음험하지도않다.싱겁게성공하는것까지,완벽하게이상한불법행위가순식간에우리를오사카한복판으로이끈다.사실두여자는밀수만을위해일본으로온건아니었다.각자찾고싶은게있었다.물론찾지못한채,찾을수없음을확인한채발길을돌리지만그들에겐서로가있다.“남을미워하지않는사람들은스스로를미워하게된”다며누군가를저주하라고부추기는영하언니가,“삶에서좋은것은전부끝났다고생각했을때내게말을걸어준”유일한그녀를너무나좋아하는주영이.
둘은과거의자신과화해하지못한채,스스로로부터벗어나지못한채상처와단념을품고한국으로돌아올뻔하지만공항에서짧은기적이펼쳐지며이들의새로운게이트를암시한다.아무것도설명하지않지만어쩐지행복한엔딩임을믿게한다.

“정말로이상한일이일어났다.수많은사람속에서나는영하언니와나를발견했다.움직이는사람들사이에서그둘은멈춰서있었다.멍하니바라보던중그들이이틀전의나와영하언니라는사실을깨달았다.(……)나는지금이야말로오키나와에서눈이내리고있다고생각했다.다시돌아오지않을우리들의짧은기적.”(133~134쪽)

다정한슬픔들과무심한다독임
그속에서피어날작은기적을꿈꾸며

『초록은어디에나』의해설을쓴박혜진평론가는세편의소설을통해“만남의의미와가능성에대한새로운믿음을갖게되었”다고말한다.단순하거나관습화된만남이아닌,“편협한의미로서의만남”이아닌현실의벽과개연성이란논리에가로막히지않는만남.“우리의잠긴생각을열어젖”히는이새로운형태의만남을통해우리는변화에의연해지며다른세계를경험할수있다.임선우가주관하는만남을연결짓는지점마다기적이펼쳐질게이트가기다리고있을지모른다.어디에나있는초록처럼,기적역시어디에나있을지도모르니까.

■■■작가의말

세편의소설을쓰는동안에는유독슬픔의여러모습에대해생각했다.찬장속위스키와말랑말랑한혹,흐드러지게핀능소화와보조개,추위로얼룩진이파리들,사마귀무덤,깃털모자,배를향해손을흔들어주던다리위사람들.저마다나름의초록을품고있는장면들.

―「초록은어디에나」중에서

■■■해설

만남은우리삶의통로이자출구다.여기수록된소설들을읽으며나는만남의의미와가능성에대한새로운믿음을갖게되었을뿐만아니라,만남의예술이자만남의철학,그에앞서이야기로서의만남을주관하는임선우가사람과사람사이에놓고있는이수많은연결이우리삶의새로운통로이자출구가되어줄거라는믿음또한갖게되었다.
―박혜진(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