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안 되지만 - 트리플 27

말은 안 되지만 - 트리플 27

$13.00
Description
작가-작품-독자의 트리플을 꿈꾸다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 27
한국문학의 새로운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 스물일곱 번째 안내서. 2013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홍학의 자리』 『용의자들』 『유괴의 날』 등 강렬하고 몰입도 높은 스릴러 소설을 꾸준히 써오고 있는 정해연이 새로운 트리플을 제시한다. ‘미스터리 - 공포 - 환상’ 세 가지 장르 세계를 심상치 않게 풀어낸 『말은 안 되지만』은 우리의 새로운 감각을 열며 “현실의 새로운 공간감이자 낯선 질감”(성현아 평론가)을 느끼게 할 것이다. 누구나 아는 세계의 아무도 모르는 문을 열고 우리에게 조용히 손짓하는 작가를 따라, 이토록 현실적인 말 안 되는 세상으로 진입해보자.

저자

정해연

저자:정해연
2012년장편소설『더블』로데뷔했다.『악의』『봉명아파트꽃미남수사일지』『지금죽으러갑니다』『유괴의날』『내가죽였다』『너여야만해』『두번째거짓말』『패키지』『구원의날』『홍학의자리』『사실은,단한사람이면되었다』『못먹는남자』『선택의날』『누굴죽였을까』『용의자들』『2인조』등을펴냈다.2012년스토리공모대전우수상,2016년YES24e-연재공모전대상,2018년추미스소설공모전금상을수상했다.『유괴의날』이드라마로제작되어2023년ENA에서방영한바있다.사람의저열한속내나진심을가장한말뒤에도사린악의에대해상상하는것을좋아한다.

목차

소설
관심이필요해
드림카
말은안되지만

에세이
어떤작가

해설유동하는현실,온몸의방랑―성현아

출판사 서평

미스터리한얼굴의모성
‘누가아이를아프게하는가’

시작부터병원으로안내하는정해연은일곱살남자아이를예사롭지않게조명하며순식간에우리를불안섞인공간으로들인다.소설집의첫번째소설「관심이필요해」에등장하는아이의이름은영우.갖은병명으로한달에한두번은병원을찾는단골환자다.또다시이주만에폐렴으로입원한영우를보며의사중혁은불편함을느낀다.그의눈은아이가아닌아이의엄마를향해있다.

“얼마나지극정성인지몰라요.나도환자간호했다면한사람인데저렇게지극정성은또처음봐요.”
“엄마라도좀쉬기도하고먹기도하고그렇지.밤에잠도거의안자는것같더만.”
“대단하세요.볼때마다영우물수건갈아주러쉴틈없이다니시던걸요.”

영우엄마를극찬하는사람들과그것을들으면서쑥쓰러워하는그녀를보며중혁은기묘함을느낀다.그리고예전부터해오던의심을확신으로굳혀간다.영우엄마가,아픈사람을보살피며타인의관심과칭찬을받으려는정신질환‘대리뮌하우젠증후군’이라는의심말이다.환자가나으면더이상관심을받을수없으므로아이를계속아프게만드는잔인한엄마의모습은,중혁의어린시절경험한모성에기인한다.그렇게중혁은영우에이입하며아이를지키기위한노력을,지켜지지못했던자신을돌보는마음으로행한다.

그러던어느날,중혁은아동학대의정황을목격하고영우를지키기로마음먹는다.입원을간절히바라는아이의모습에울분을참지못한다.그래서악마같은영우엄마를경찰에신고하고살기어린눈으로바라본다.그러나그녀의반응은너무도예상밖이었다.

“선생님,저좀도와주세요.”

보편적희원에함유된과다한욕망
기체에가까운참혹한현실에대하여

두번째소설「드림카」는마이바흐의푹신한시트에앉은채시작된다.많은이가‘꿈의차’라일컫는마이바흐가껌값인인우.그는불과이년의투자로막대한부를이뤘다.성공과는거리가먼인생이던인우의사정이180도바뀌자그를둘러싼많은것―관계,대우,시선―이달라지고,인우는복수라도하듯그모든것을조소하며즐긴다.

뽑은지얼마되지않은마이바흐를타고인우가향하는곳은여자친구혜란의집앞.속물인그녀가차를보고얼마나흥분할지기대하며기세등등하게마이바흐의시동을건다.하지만얼마가지않아그는차를세울수밖에없었다.고속도로터널진입직전무언가가,아니누군가가있었다.

여자는흰원피스를입고서있었다.풀어헤친머리는사방으로흩날렸다.얼굴한구석이함몰되어있었고,그흉물스러운상처를따라피가줄줄흘러내리고있었다.피는여자의흰원피스를적시고가느다란다리를따라바닥까지흘러내렸다.여자는신발도신지않은채였다.

하지만금세사라진여자,그리고아무렇지않게달리는다른차들.인우는자신이헛것을보았다고스스로를다독이며다시차에오르지만공포는끝나지않는다.오히려다른이로부터존재를확인받으며인우의두려움은증폭되어간다.마이바흐의속력을아무리높여봐도어딘가에들러붙어차안까지잠식해오는공포는인우를공격하고,끝내우리에게실체를드러낸다.소설이끝날무렵,숨겨진비밀이밝혀지고공포의정체가선명해지지만불안은소거되지않는다.해설을쓴성현아평론가의말처럼“공포스러운상황자체가종결되었음에도공포가이어”지고,“이때의참혹한현실”은마치“없는것으로여겨지기쉬운기체에가깝”게남겨진다.

녹은듯흘러내리는정당한분노
숨쉬듯행해지는가학의역사

엉뚱한상상이지독한현실을기반으로펼쳐진다면어떨까.예상못한상황들을신선해하고,유별난인물성에즐거워하고,뜻밖의전개에흥미로울수있을까.과연그렇게마냥즐거울까.

마지막소설「말은안되지만」은인간이라면누구나변화의시기를겪는세상을배경으로펼쳐진다.그리고소설의시작부터,어제까지인간이던나는하루아침에‘말’이된다.

이세계에서인간이비인간이된다는사실따위는중요하지않다.문제는돼지가아닌말이됐다는것.돼지로바뀌는게대다수인사회속에희귀한말이됐다는것.“말이되었군”이라는간소한소감으로담담히변화를받아들인‘나’와달리가족들은난리가난다.그들에게‘나’의변화는갑작스러운재앙이고해결해야할문제였다.해결이안된다면눈가리고아웅이라도해야했다.그냥이대로살고싶다는‘나’의외침은아무도들어주지않는다.털이밀리고주둥이가잘릴위기에처한말이할수있는선택은도망밖에없다.

아무리항거하고발버둥쳐도내부모는기어이나를성형외과침대위에눕혀잠재울터였다.이미나와내부모사이에는어떤소통도불가능한상태라는걸나는확신하고있었다.(……)그들은애초에내말을들을생각이없다.

‘나’는인면수심,아니마면수심이란꼬리표를감수하고서라도자기존엄을지키기위해정의구현을마음먹지만이사회의기준이,통념이자신을비껴간다는사실을깨닫고낙담한다.말에게허락되는상식이란없음을,차이는차별을묵과한다는냉혹한진실을마주한‘나’의다음선택은어쩌면가장말다운것,마사회진입이다.

‘나’는그곳에서아주잠시의안락을느낀다.쉴새없이달리기를강요당하는삶속에서생각할틈은점점밀폐된다.주어지는건당근과약물그리고세개의단어.‘최고.일등.승리.’피를토하고나서야‘나’는궁금해진다.대열을이탈하면,레이스를멈추면,승리하지못하면어떻게될까?

고기가되지.
정신이아찔했다.비틀거리는나를보고교관이히죽웃었다.
싫으면달려.최고가되라고.일등말이야.레이스에서승리할수있는.
최고.일등.승리.
다최고가되면뭐가남는겁니까?
고기가남지.

이세계의룰을알게된‘나’는이제어떤선택을하게될까.폭력의연쇄는도대체언제끝맺어질까.이소설은과연환상소설이맞을까.

흐르며떠다니는현실과의대면
도약으로말미암아만나는진짜현실

현실의공포를직조해가장낯선질감의현실을펼치는데일가견이있는작가는,이소설집을통해정해연다움을부수어진짜정해연다움에다가선다.소설을쓰지않으면자신은아무것도아니라는작가가,고통과불안에휩싸인삶이쓰지않는삶보다견딜만하다는작가(에세이「어떤작가」)가구축한세개의세계가비단소설로만다가오지않는이유다.성현아평론가가짚어낸“정해연의소설이검질기게응시하고있는”“부재의자리”에놓인우리를상상한다.정해연이새로이감각하게한현실의입자들에둘러싸인“우리가,웅크려응고되었다가서로의손을놓치며기화했다가징그럽게들러붙어우리안을흐르기도하는다채로운현실의물성과맞닿기를기대한다.”현실에서도약해“현실과의접촉면이늘어날수록”우리는소설이란외피를입은정해연과만나게될것이다.무한하게확장한현실을감각할것이다.

작가의말

나의생활은단순하다.그렇게단순하게살며모아온조각조각의기운과체력을글쓰기에쏟아붓는다.나는글을쓰기위해사는사람이고,그삶이나를지탱하고또한그렇기에먹고살수있다.
―에세이「어떤작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