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무지개

과잉 무지개

$16.00
Description
제12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
“흥미로운 설정, 섬세한 감정 묘사,
문학적 잠재력이 기대되는 작품!”

카카오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 브런치스토리에서 개최한 제12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소설 부문 대상작 『과잉 무지개』가 출간된다. 1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대상을 차지한 『과잉 무지개』는 “흥미로운 설정과 섬세한 감정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작가의 독창성과 문학적 잠재력이 기대된다”고 평가해 자음과모음이 선택한 소설이다. 인생을 걸고 모종의 계약을 하는 소설 속 주인공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 서 있는 저마다의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인생의 험난한 지점을 겪고 있다면, 쉼 없이 달려오느라 번아웃이 찾아왔다면, 곁에 있는 누군가를 잃어봤다면, 긍정적인 에너지보다 부정적인 기운이 크게 느껴진다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장담하건대 이 소설의 끝에서 마주할 나는 작지만 분명한 미소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눈부신 건 늘 너무 멀었고
소중한 건 늘 먼저 떠났다

언제부터였을까. 삶의 반대편에 있는 그 서늘하고 음습한 단어가 가깝게 느껴진 게. 나와 상관없다 여긴, 스스로 선택하는 건 어리석고 한심한 일이라고 생각한 그것이 어쩌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게.
아침에 눈을 뜨는 게 지겨웠고, 창 안으로 햇빛이 드는 게 불편했으며, 집 밖으로 나가는 게 모험 같았다. 인터넷 검색창에 ‘자살’을 입력하자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라는 문구가 뜨는데, 그 당신이 내가 아닐 게 분명했다. 내가 소중할 리가, 설마 내가 매우 귀하고 중요할 리가 없으니까. 단연코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니까. 나 따위의 존재가 그런 대단한 의미에 부합할 리 없으니까.
존재의 이유보다 존재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더 많아졌을 때 조용히 그리고 자연히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살면서 겪어야 하는 것보다 죽어서 겪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더 달갑겠다 여길 즈음부터 그것을 선택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여느 날처럼 그 검고 시린 단어를 검색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사이트에 접속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삶을 포기하고 싶지만 그럴 용기조차 없는 분들에게.
당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도와드립니다. 비용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죽음 이후 벌어질 부담스러운 상황들도 완벽히 처리해드리겠습니다. 삶에서 당신의 흔적을 지우고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면, 아래의 사이트에 접속하세요.”

음주운전 차량에 아버지를 잃고, 야근하던 중 회사에 난 화재로 어머니마저 잃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가족 같은 친구에게 부모님 사망보험금을 투자했다가 몽땅 날리고 빈털터리가 된, 그 바람에 하염없이 채무만 쌓이고 있는 내게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까.


비밀스럽게 이루어진 계약
죽음을 향한 백 일의 카운트다운

운명에 이끌리듯 접속한 사이트를 통해 나는 한 단체를 만난다. 단체에서 나온 사람들은 내게 옥장판을 팔지도 않았고, 통장 비밀번호를 요구하지도 않았으며, 종교에 귀의하라고 설득하지 않았다.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바라마지 않는 죽음에 이르는 것을 도와준다고 했다. 조건은 백 일 동안만 살아 있기.

“백 일이 지나 약속한 날이 되면 우리는 의뢰인을 찾아가 조용히 삶을 마감시켜드릴 겁니다. 의뢰인의 장기들은, 의뢰인과 반대로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전달됩니다.”

나를 죽여준다는 끔찍한 제안에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이 끼얹어졌다. 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구할 수 있다니. 작은 두려움이 기대로 바뀌는 건, 이 이상한 조건이 달갑게 여겨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바랐던 죽음이 의미까지 갖게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다.

“빚을 갚아드리고 생활비도 지급합니다. 다만 백 일 후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도망가거나 숨는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삶은 지금보다 더 비참하게 변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단체의 당부는 흘려듣고 계약서에 서명했다. 백 일이 지난다고 해서 내 마음이 달라질 리 없으니, 이 선택에 대한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확신에 찬 결정 너머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그때는 알 수 없었다.


버리려 할수록 고개 드는 삶의 의지
죽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란……

목숨을 건 백 일간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단체는 나의 몸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신경 썼고, 마음이 편안하고 풍요로울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겨운 삶을 버텨내던 나는, 하고 싶던 것을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며 유한한 삶을 알뜰하게 쓰기 시작했다. 곧 끝날 인생을 다시 얻은 인생처럼 사는 기분이 묘하고 또 묘했다.
단체는 내게 노인복지시설과 유기 동물 보호소에서의 봉사활동을 지시했다. 손길이 필요한 존재에게 물리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보탬이 되는 일이었다. 시켜서 하는 일임에도 나의 봉사에 한없이 고마움을 표하는 사람들에게, 야금야금 마음을 붙여오고 애정 어린 걱정을 해주는 사람들에게 나는 죄책감과 감사함을 느꼈다. 사는 게 고통스럽기만 한 게 아님을 확인할 때마다, 마음을 건네고 싶은 사람들이 나타날 때마다 고개 드는 삶에 대한 미련을 꾹꾹 누르고 밟았다. 다 순간적인 마음이고, 어리석은 착각이라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매일 밤 달력에 표시를 하고 남은 날짜를 손으로 세어보곤 했다.
죽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 나와 같은 처지가 아닌 이상 이런 말을 듣는 이가 있을까.
곱씹을수록 이상하다. ‘죽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에…….”


비가 그친 뒤 나타나는 행복의 굴절
울고 싶은 청춘에게 건네는 조심스러운 손길

대망의 마지막 날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살다 보면 언젠가 죽음이 찾아드는 것처럼 백 일째를 자연스럽게 맞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누구나 겪는 일을 조금 일찍 겪는 것뿐이라고 여기기 위해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시간을 보냈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의 등 뒤로 주사기가 꽂혔다. 흐릿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곧 만나게 될 부모님 생각을 했다. 너무 일찍 왔다고 나무라시지 않을까, 나쁜 선택을 했다고 저승에서도 만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어릴 적 하늘에 뜬 과잉 무지개를 가리키며 엄마는 말했었다.

“저건 행복한 사람에게 보이는 무지개란다. 네가 행복이 많아 무지개도 여러 개가 보이는 거야.”

하지만 삶은 내가 행복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그것도 잔인할 만큼 여러 번. 그래서 언제부턴가 생각, 아니 확신했다. 무지개가 행복의 증거라면 나는 영영 볼 수 없을 거라고.
과연 장담할 수 있을까. 갑자기 찾아드는 불행처럼 행복이 찾아오지 않으리란 법이 있을까. 삶의 변주 안에서 우리가 어떤 순간을 맞게 될지 늘 알 수 없다. 흐려진 의식이 되돌아와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진짜 놀랄 일은 어쩌면 그다음에 벌어질 수도 있다.
저자

김용재

저자:김용재
장편소설『에펠탑의불빛이반짝일때』,에세이『혼자서잘살아가기』『나의무인도,서울』을썼고,브런치북전자책출판프로젝트수상작『우리의민지』가밀리오리지널콘텐츠로출간되었다.『과잉무지개』로2024년브런치북출판프로젝트소설부문대상을수상했다.

목차


과잉무지개
마음과마음
보통의가치
이별의뒷면
아주긴여행
각자의방식
새로운시작
마지막선물
나를부르는이름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눈부신건늘너무멀었고
소중한건늘먼저떠났다

언제부터였을까.삶의반대편에있는그서늘하고음습한단어가가깝게느껴진게.나와상관없다여긴,스스로선택하는건어리석고한심한일이라고생각한그것이어쩌면그리나쁘지만은않을수있다고생각하기시작한게.
아침에눈을뜨는게지겨웠고,창안으로햇빛이드는게불편했으며,집밖으로나가는게모험같았다.인터넷검색창에‘자살’을입력하자“당신은소중한사람”이라는문구가뜨는데,그당신이내가아닐게분명했다.내가소중할리가,설마내가매우귀하고중요할리가없으니까.단연코나는그런존재가아니니까.나따위의존재가그런대단한의미에부합할리없으니까.
존재의이유보다존재하지않아도되는이유가더많아졌을때조용히그리고자연히‘죽음’에대해생각했다.살면서겪어야하는것보다죽어서겪지않아도되는것들이더달갑겠다여길즈음부터그것을선택하고싶어졌다.그래서여느날처럼그검고시린단어를검색하고있었다.예상치못한사이트에접속한건순전히우연이었다.

“삶을포기하고싶지만그럴용기조차없는분들에게.
당신의죽음이헛되지않도록도와드립니다.비용을요구하지않습니다.죽음이후벌어질부담스러운상황들도완벽히처리해드리겠습니다.삶에서당신의흔적을지우고조용히사라지고싶다면,아래의사이트에접속하세요.”

음주운전차량에아버지를잃고,야근하던중회사에난화재로어머니마저잃은,거기서멈추지않고가족같은친구에게부모님사망보험금을투자했다가몽땅날리고빈털터리가된,그바람에하염없이채무만쌓이고있는내게다른선택지가있었을까.

비밀스럽게이루어진계약
죽음을향한백일의카운트다운

운명에이끌리듯접속한사이트를통해나는한단체를만난다.단체에서나온사람들은내게옥장판을팔지도않았고,통장비밀번호를요구하지도않았으며,종교에귀의하라고설득하지않았다.그저처음부터끝까지,내가바라마지않는죽음에이르는것을도와준다고했다.조건은백일동안만살아있기.

“백일이지나약속한날이되면우리는의뢰인을찾아가조용히삶을마감시켜드릴겁니다.의뢰인의장기들은,의뢰인과반대로삶을계속해서살아가고자하는이들에게전달됩니다.”

나를죽여준다는끔찍한제안에누군가를살릴수있다는희망이끼얹어졌다.나의죽음으로말미암아생명을구할수있다니.작은두려움이기대로바뀌는건,이이상한조건이달갑게여겨진건당연한일이었다.그렇지않아도바랐던죽음이의미까지갖게된다면더할나위가없었다.

“빚을갚아드리고생활비도지급합니다.다만백일후반드시죽어야합니다.도망가거나숨는다면그에상응하는대가를치르게될겁니다.그렇다면삶은지금보다더비참하게변할수있다는걸명심하십시오.”

단체의당부는흘려듣고계약서에서명했다.백일이지난다고해서내마음이달라질리없으니,이선택에대한의심의여지는없었다.확신에찬결정너머에무엇이존재하는지그때는알수없었다.

버리려할수록고개드는삶의의지
죽기위해최선을다해사는것이란……

목숨을건백일간의여정이시작되었다.단체는나의몸을건강하게유지할수있도록신경썼고,마음이편안하고풍요로울수있도록만들어줬다.아무것도하고싶지않은채언제끝날지모르는지겨운삶을버텨내던나는,하고싶던것을하고먹고싶은것을먹으며유한한삶을알뜰하게쓰기시작했다.곧끝날인생을다시얻은인생처럼사는기분이묘하고또묘했다.
단체는내게노인복지시설과유기동물보호소에서의봉사활동을지시했다.손길이필요한존재에게물리적으로또정신적으로보탬이되는일이었다.시켜서하는일임에도나의봉사에한없이고마움을표하는사람들에게,야금야금마음을붙여오고애정어린걱정을해주는사람들에게나는죄책감과감사함을느꼈다.사는게고통스럽기만한게아님을확인할때마다,마음을건네고싶은사람들이나타날때마다고개드는삶에대한미련을꾹꾹누르고밟았다.다순간적인마음이고,어리석은착각이라고스스로를다잡았다.

“매일밤달력에표시를하고남은날짜를손으로세어보곤했다.
죽는일에최선을다한다는것.나와같은처지가아닌이상이런말을듣는이가있을까.
곱씹을수록이상하다.‘죽는일에최선을다한다.’
그러나나는최선을다할것이다.그게내가할수있는유일한것이기때문에…….”

비가그친뒤나타나는행복의굴절
울고싶은청춘에게건네는조심스러운손길

대망의마지막날은어김없이찾아왔다.살다보면언젠가죽음이찾아드는것처럼백일째를자연스럽게맞기위해부단히노력했다.누구나겪는일을조금일찍겪는것뿐이라고여기기위해여느날과다르지않게시간을보냈다.
산책을마치고집으로돌아왔을때,나의등뒤로주사기가꽂혔다.흐릿해져가는의식속에서곧만나게될부모님생각을했다.너무일찍왔다고나무라시지않을까,나쁜선택을했다고저승에서도만나지못하는건아닐까…….
어릴적하늘에뜬과잉무지개를가리키며엄마는말했었다.

“저건행복한사람에게보이는무지개란다.네가행복이많아무지개도여러개가보이는거야.”

하지만삶은내가행복하지도특별하지도않은사람이라는걸알려주었다.그것도잔인할만큼여러번.그래서언제부턴가생각,아니확신했다.무지개가행복의증거라면나는영영볼수없을거라고.
과연장담할수있을까.갑자기찾아드는불행처럼행복이찾아오지않으리란법이있을까.삶의변주안에서우리가어떤순간을맞게될지늘알수없다.흐려진의식이되돌아와도그리놀랄일이아닐것이다.진짜놀랄일은어쩌면그다음에벌어질수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