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주에서 (최수진 연작소설)

삼각주에서 (최수진 연작소설)

$15.00
Description
죽음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
상실의 범람 속 끝내 서로를 붙드는 목소리들의 공명
“어째서인지 우리는 우리를 연결시켜주는 연약한 이음매들을 때로는 빙 두르고 꼬아서라도 만들고 만다.
그 덕에 만나야 할 사람들은 서로를 생각하고 부르며 이윽고 만나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레비나스는 말한다. “타인의 죽음은 나에게 일어나는 가장 심오한 일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최수진 작가의 연작소설 『삼각주에서』는 바로 그 심연의 자리―타인의 부재를 목격한 자들이 다시 삶을 향해 나아가고자 감당해야 하는 윤리적 또는 감정적 감각의 지층―를 탐색하는 작품이다. 소설에서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한 여성을 중심으로, 그녀의 ‘사촌 동생’과 ‘친구’ 그리고 ‘친동생’이 각자의 시선에서 죽음 그 이후의 시간을 마주한다. 그들은 모두 상실의 그림자를 통과하며, 죽음이 ‘멈춤’이 아니라 ‘관계의 또 다른 형태’임을 깨닫는다. 삶은 단절되지 않으며, 존재의 끈은 여전히 미세한 숨결로 이어진다. 각자의 서사는 서로 다른 강줄기처럼 흘러와 하나의 삼각주에 모인다. 그곳에서 그들은 마침내 자신이 짊어져야 할 세계의 무게 그리고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이 부여하는 윤리적 의미를 배운다. 작품 속 인물들은 그 경계 위에 서서 상실의 언어를 다시 습득하고, 돌봄과 기억이야말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애도임을 깨우친다.
『삼각주에서』는 재난과 상실의 시대를 통과하는 우리가 여전히 감각해야 할 인간적 자리를 묻는다.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는 이러한 물음 속에서 애도의 윤리를, 부재 이후에도 계속되는 존재의 책임을 천착한다. 최수진 작가의 문장은 삶과 죽음, 고통과 연민, 존재와 소멸의 경계를 잇는 다리처럼 느리지만 단단하게 뻗어나간다. 재난과 예술의 경계를 들여다본 전작 『점거당한 집』으로 제4회 박지리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는 이번 신작을 통해 한층 깊어진 사유의 지평을 펼쳐 보인다. 『삼각주에서』는 상실 이후에도 멈추지 않는 감정의 파문 속에서, 여전히 서로를 기억하고자 하는 인간의 오래된 윤리를 복원한다. 그리고 그 복원의 순간,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의 언어가 시작되는 자리라는 것을.
저자

최수진

1991년울산바닷가에서태어나자랐다.문예창작을공부했고서울에서살며일하고있다.평생강보다는바다를좋아했지만가끔은강에정을붙일필요를느낀다.연작소설『점거당한집』으로사계절출판사가주관한제4회박지리문학상을수상하며등단했다.

목차

99
삼각주

에세이-이소설의주인공
해설-애도하는사람들

출판사 서평

타인의고통을더듬어삶의본질을관철하고
슬픔의회로를재감각하는이야기

첫번째소설「99」에서사촌동생은아홉살이나차이나는사촌언니를좋아했는데,그이유를명료하게나열할수는없었다.그래도생각해보면쌍둥이처럼닮은외모에친척들이자주둘의사진을나란히놓고정다운이야기를나눴기때문이고,예쁜외모를가진언니가좋기도했고,낯선북적거림속에서유일하게손잡아준사람이기때문일것이다.사촌언니네집은꾸준히개를키웠다.유기견을입양해사랑과정성을다해돌봤다.사촌언니네집에친척들이모일때면큰이모는개들을밖에묶어뒀고,가족들은그옆에서고기를구워먹으며담소를나눴다.사촌동생은탄고기를개에게주는사촌언니에게이런것을줘도되느냐고물었다.사촌언니는상관없지않을까,하고말하며상관하는건사람일뿐이라고답한다.그러다예전에사촌언니네부모님이개가죽는걸볼자신이없어아픈개를개장수에게팔아버렸다고고백한다.사촌동생은‘유기’에대해너무담담히말하는사촌언니의태도에당황한다.사촌언니는그러면서“그런식의사랑도있지않을까?”라고물었다.사촌동생에게그런식의사랑은있을수도,있어서도안되는것이었다.자신들이상처받기싫어개가더끔찍한죽음에내몰리도록선택한다니.사촌동생은그에대한대답으로평생자신의발목을잡을‘선언’을한다.

살면서오싹하게나쁜일들을맞닥뜨릴때마다사촌동생은탄먹이를주워먹는개들을떠올렸다.그풍경의일부가되어때묻고주름지고실금간채자라는스스로를보았다.고통과죽음을외면하는행위는사랑일수없다는선언,그선언이세상을보는시야에음영을더해사촌언니의죽음을어떻게받아들일지생각하게했고외면할수없게하였다.(「99」17쪽)

사촌언니는스물여섯살에스스로생을마감했다.사촌언니의죽음이후큰이모는사촌동생과전화를하고싶어했다.그러나사촌동생의양친은이를꺼려했다.“장례사흘간함께밤을새며큰언니를껴안고내내울었던”어머니는사촌언니의죽음으로인해사촌동생의마음이흔들리지않기를바랐기때문이다.사촌동생이나서서전화를할수있다며받았을때,막상큰이모에게할수있는말이별로없다는것을깨달았다.그리고그‘비밀’을털어놓았다.사촌언니가죽기전,큰집에들른다던사촌동생에게봉투를건네주며이것을제책상서랍에넣어달라고한것이다.사촌동생은봉투안을봤지만,그것까지이모에게말하지는않았다.그걸말하면봉투안에들어있던건현금100만원이고,자신이거기에서만원을빼갔다는사실까지털어놔야했기때문이다.별이유없이가져간만원은비밀이되어사촌동생을내내따라다녔다.
사촌언니에게미안함을느끼면서도자신이왜이렇게까지그죽음을놓지못하는지를생각하다가,텅빈학교에서홀로새끼를낳은애꾸고양이를입양하기로결심한다.삶의기쁨을누려도되는지의문을가지면서,그럼에도자신만의방식으로슬픔을나누고사랑을주고받기로한다.사촌언니를보러납골당에갔을때,사촌동생은언니의영정앞에웅크려있는여성을발견한다.그리고처음으로100만원과사라진만원의행방에대해털어놓게된다.사촌동생이만원과함께가져온마음의짐은무엇이었을까.사촌언니의죽음과사촌동생,납골당에서마주한여성은어떠한‘죽음그이후’를맞닥뜨리게될까.

돌봄과책임으로직조된죽음이후의풍경
생과사의경계를넘어선감각적서사

두번째소설「삼각주」는사촌언니의친구인‘나’의시점으로전개된다.여행길에오른‘나’는낮에열차에서보았던맹인안내견이식당에서밥을먹고나온자신을따라오는꿈을꾼다.꿈에서‘나’는횟집에서나왔고,휠체어를타고있었으며,주머니엔친구가남긴편지를가진채였다.‘나’는자신이다리를다치긴했으나휠체어를탈정도까진아닌데도어째서꿈이이렇게흘러가는지의문을가졌지만,그보다자신을쫓아오는개에게편지를빼앗길까열심히숙소로돌아간다.중식당을운영하는엄마밑에서,매일엄마의화를들으며살았던‘나’는친구의집에가면느꼈던다정한분위기와개들,친구의다정하고섬세한손길을자주부러워했다.그반면자신은그냥놔둬도잘자라는식물을죽이는가하면세심하지도못해서집은너저분하고냉장고에는썩은반찬이가득했다.그래서‘나’는자기자신보다자신을더잘알고있는친구가남긴편지를꼭읽어봐야한다고생각했다.
하지만꿈은생각하는대로흘러간다고했던가.개가자신에게달려들면어떡하지,하고생각하자마자개가휠체어로달려들어‘나’의다친다리에얼굴을무자비하게비벼댔다.개를쫓으려고주머니에서돌을꺼내던진‘나’는편지까지같이던져버렸다는걸깨닫는다.차라리개에게편지를빼앗기는편이더욱나았겠다고,어떻게자기가그편지를던져버릴수있는건지죄책감에시달리며황급히숙소로향하는데점차잠이깨며현실감각이느껴졌다.꿈속‘나’는더는거리가아닌숙소천장을응시했다가,갑자기욕실로이동했다.그러나‘나’가욕실화장실에서본건수염이난낯선남자였다.잠에서깬‘나’는핸드폰을확인했는데,각자여행을떠난친구들로부터연락이와있었다.‘나’와친구들은각자다른곳으로여행을떠났다.죽은친구네부모님한테서연락이왔는데,친구들의이름이쓰인종이와현금이든봉투를발견했다며이걸친구들에게주고싶다는것이었다.부모님을뵈러친구들과모인장소에서,‘나’는너무나수척해진친구네부모님을마주한다.그러나그들이친구의죽음을멋대로해석하고애도하는것을참을수없었던‘나’는결국친구들과싸우게되었다.

인적없는길이어두웠는데도,천국에서환히웃는네모습을보았노라고아주머니손을쥐고말했던친구가이를악문채숨을깊이들이쉬고내쉬려애쓰는모습이보였다.그애도나를제정신이아니라고생각하고있었다.사후세계가존재하며네가그곳에서마침내평안을찾고우리를지켜보리라믿고살아야만하는자신이미쳐간다고느끼고있었다.(「삼각주」63쪽)

‘나’를포함한친구들의결정은친구와의추억이깃든장소에서여행하며친구가남긴돈을즐겁고행복하게쓰자는것이었다.그래서‘나’는부산으로여행을왔다.나는사후세계가존재해죽은사람이그곳에서는편안해진다는것을믿지도않고그런말을싫어했다.그렇게멋대로애도를하고그사람을잊어가는과정이싫었기때문이다.친구를너무많이생각해서였을까,이젠꿈을꾸지않아도친구가늘옆에있는느낌이었고,‘나’는자주혼잣말을하며친구와의대화를이어나간다.‘나’는부산에서제주도를떠올리고,인천을떠올리고,부산에서의추억을생각하며친구와의기억을하나씩되짚어본다.여러곳에서흘러든물줄기가삼각주에서만나결국바다로이어지듯이,‘나’의추억들은모두다른줄기를가졌지만결국현재로모여친구의죽음을받아들이고친구를기억하는과정으로귀결된다.

우연한죽음과윤리의필연을되짚는
세사람의가장고요한저항

세번째소설「구」는앞서몇번등장했던개나고양이가아닌,거북을찾는초등학생의이야기로시작된다.초등학생이찾는거북은사실그가키우던거북이아니었다.그건초등학생의소중한친구가키우던거북이었는데,어느날가족모두가불법이민관리소에구금됐다는소식을전해듣고집에가보니난장판이된집에서거북이사라졌다는걸알고찾으러나간것이다.친구가거북을잃었다는것을알게되면슬퍼할게뻔했다.소중한무언가를잃었을때의상실감과슬픔을초등학생은이미알고있었다.누나가죽었기때문이고,비록어렸을때누나가죽어기억이또렷하지는않지만슬픔을떨쳐내지못하는부모님을통해,죽음을맞이하는강아지를떠나보내는것을통해그것이감당하기에는꽤슬프고벅찬일이라는사실을알고있기때문이다.

구할구求자의뜻은필요한것을찾아청하고바라다가끝내원망하고탓하게된다는뜻으로이어진다.이뤄지지못하는마음은구하다못해비틀리고꺾이면서스스로를옥죈다.지금구조가필요한쪽은거북이아니라초등학생이다.어딘가에서죽어버렸을작은거북에게필요한것은구원이다.거북이어딘가에서죽어버렸다해도,죽은거북이실제로는아무것도느낄수없다고해도,소중한친구를대신해제대로애도해야하니까.(「구」122쪽)

초등학생은거북을찾으면친구가돌아올거라믿으면서,자신만의모험을떠난다.그거북은근처샛강으로학급소풍을갔을때친구가건진것이었다.친구들에게괴롭힘을당하고선생마저그사실을모른척하지만,초등학생에겐누구보다소중한친구였다.유일하게자신의곁을지켜주는친구였다.무엇보다괜찮지않은데괜찮은척,자꾸만초등학생의부모님같은연기를하는친구가계속해서신경쓰였다.그런친구가사라진것이다.하천에서거북을찾아뒤지고있는데저편에서휠체어를탄누군가가말을걸었다.
남자가있던곳은함께밤샘준비를하며부당한차별대우에맞서투쟁을결의하는장애인과비장애인이여럿모인자리였고,거기에는초등학생의사촌누나가있었다.사촌누나는위험하게밤늦게혼자돌아다니는초등학생을나무라면서도누군가에게초등학생을소개했는데,죽은친누나의절친한친구라고했다.결국거북을찾지못한초등학생은그를찾아온부모님의품에안겨돌아갔다.과연,이야기끝에서이루어지는세사람의만남에는어떤우연과필연이존재하는것일까?

이렇듯최수진작가의『삼각주에서』는‘사촌동생’‘친구’‘친동생’이한사람의죽음이후에도멈추지않는관계의파동을그려낸연작소설이다.삼각주는각기다른지류가흘러와만나퇴적되는곳,즉상실의기억이쌓이는장소이자새로운삶의가능성이움트는자리다.이곳에서인물들은고통을나누고돌봄을배운다.그렇게이작품은죽음을하나의종착점이아닌관계의또다른시작점으로바라보며,윤리와연대의감각으로다시살아가려는인간의오래된의지를문학적으로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