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 파도 (이서아 연작소설 | 양장본 Hardcover)

방랑, 파도 (이서아 연작소설 | 양장본 Hardcover)

$15.00
Description
신성과 세속, 숭고와 사랑
양극단에 놓인 두 초점 사이에서 포착되는
처연하고 아름다운 삶의 궤적
한국문학의 새로운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 서른다섯 번째 안내서. 2021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소설집 『어린 심장 훈련』, 장편소설 『키오스크 학교』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소설가 이서아의 연작소설집이다.

여기 천천히 소멸해가는 바닷가 마을, 신을 흉내 내는 사람들이 있다. 단짝 할머니 향자와 미자, 백반집을 운영하는 지애와 지환, 요양보호사 혜란 그리고 이 마을에 새로 온 '나'까지. 세 개의 연작 속 여섯 인물의 삶은 서서히 그러나 매우 깊이 얽혀들어 마을의 역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서사를 직조한다.

“생은 직선적이거나 선형적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으며, 확고하게 규정하기 어렵다”는 작가의 말처럼, 삶의 슬픔은 파도처럼 겹겹이 밀려온다. 거듭 포개어지는 실패와 낙담 사이, 우린 모두 언제나 풋내기 서퍼일 따름이다. 다만 이 이야기 속 사람들같이 따스한 온기를 지닌 이들이 곁에 있어준다면, 끝 모를 서핑 수업이 그리 절망적이지만은 않으리라.
저자

이서아

2021년『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어린심장훈련』,장편소설『키오스크학교』가있다.

목차

방랑,파도
빗금의논리
향자

에세이_슬픔에관한소회
해설_신을흉내내는아이들(안세진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마음없는신의형상앞에
사랑을되묻는“쓸쓸한심장”
첫번째소설「방랑,파도」는해변마을의도착한'나'의시점으로진행된다.식당을운영하는남매지애와지환(백과반)의집에서하숙하며요양원으로출근하는'나'는그곳에서향자할머니를만난다.그렇게점점가까워지던와중에할머니가그만세상을떠나고,'나'는자신과주변인들의슬픔을반추한다.그리고남매로부터서핑을배우면서파도와같이밀려오는세계의고통을감당코자한다.

그때였다.하늘에서거대한존재가절을하듯이두손을바다에댄채엎드려고개를돌렸다.어마어마하게거대한존재였다.나는볼품없이작았다.손톱만큼작았다.모래만큼작았다.신의앞에서,나는초등학생보다도작았고어렸으며슬픔에속수무책이었다.
그리고그건신성한일이아니었다.아름다운일도아니었다.그건단순한일이고,무심한일이며,초라한일이었다.
-「방랑,파도」177쪽

그렇게소설의말미에이르러'나'는마침내신을만나게된다.해변에강림한그거대한존재는두손을바닥에대고엎드린채고개를돌려누워있는'나'를무심히바라본다.고해(苦海)따위관심없는신의형상.하나차라리그것이야말로구원일지도모르겠다.숭고의체험속밀려오는체념과무력감,역설적이게도그것은종종우리가나아갈수있는조건이되기때문이다.


아홉번째파도를지나는
풋내기서퍼의상실과회복
두번째소설「빗금의논리」는「방랑,파도」의백반집남매지애와지환의이야기이다.어릴적아버지를여의고,성장하면서는어머니와자기자식을잃은지애가고향으로돌아와혜란을만난뒤,서핑을즐기며상실감으로부터점차마음을회복한다.

세상의모든서퍼는바다를정복하려하지도,파도를통제하려하지도않는다.자기몸의흐름을파도의흐름에기꺼이맞출뿐이다.혜란의눈에지애도그러했다.지애는파도를타고또타며무수히많은물결을가로지르고있었다.
-「빗금의논리」92쪽

무심한신을향해대답없는물음만이허공으로흩어지던어느밤,남매는짐짓신의시야를흉내내어세상을굽어보기시작한다.스스로의고통으로부터멀어지려고하는이들의안간힘은이윽고한장의연(鳶)이되어하늘로비약한다.창공으로날아오른연위에서세상의비극을내려다보는시야속,삶과죽음의경계를구분하는얼레를쥔듯한전능감으로인해흐느낌은곧잦아든다.반복되는비극을'운명'이라는낯설고또낯익은낱말로번역해내려는어설픈흉내,우리는그또한구원이라고부르지않나.


낙담과희망,멸시와존엄,삶그리고죽음
양극단을오가며생을유영하는순례자들
세번째소설「향자」는자신에게옷만드는법과음식짓는법을알려준친구미자가쓰러지자,홀로요양원에들어가게되는향자의삶을그린다.그둘이젊었을적나눴던우정과사랑그리고각자의비밀을다룬다.

모두가서로를의식해행복을가장하는세상속에서도불가사의한존재는늘태어나는법이다.타인을과도하게의식하지않고자기만의방식으로작은생을건축하는사람들.남이떠들거나말거나.내생이어떤시선속에서초라하거나말거나.나는나의작은정원을사랑해,라고말하는사람들.미자는그런여자였다.미자는이마을에이세상에이지상에흠결없는생을가진사람은없다는것을본능적으로알고있었고,사람들이자신을기이한여자취급할때그마음의근원이미자의생이아니라그들자신의생이라는것을알고있었다.
-「향자」107쪽

향자와미자를비롯해,세편의이야기에등장하는이들을결속하는아교는바로그들이저마다간직한모종의죄책감이다.그렇게소설은신성과세속,숭고와사랑,양극단으로놓인두개의초점사이에포착되는어떤아름다움을펼쳐보인다.그과정에서이서아작가는능숙하게작품의렌즈를조절한다.“무의미의바다위방랑하듯삶을살아가는방법을배워나가야하는,인간삶의근원적비극성과고귀함을향한아름답고도감동적인헌사”(강동호문학평론가)라는평처럼,『방랑,파도』는이러한숭고의체험을정확히현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