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는무슨이야기를쓰셨어요?”
“우리에겐밥이될이야기,누군가에겐동무가될이야기,
그리고또나중에우리부자에게손바닥만한책방을열어줄이야기를썼지.”
대개문제적인역사시기를다룰때작가는그시대문제를더전면으로드러내고싶은유혹에끊임없이시달리기마련이고일정정도는그유혹에넘어가기도한다.그러나이작품의작가는그러한유혹에서냉정하게느껴질정도로벗어나있다.장이라는어린아이가보고이해할수있는범위에서정확하게그시대삶을그리고있다.상당한문학적훈련의결과라여겨졌다._심사평중에서
천주교탄압,그리고필사쟁이의굴곡많은삶
조선시대에중요한사건가운데하나가서학(천주학)금단이다.서학은명나라에서들여온『천주실의』라는책이전파되면서나중에는신앙으로까지받아들여졌으며상민,부녀자,기생,양반등신분에상관없이퍼져나갔다.서학에서는세상모든사람의평등을주장하고제사의식등을금지하며기존성리학중심의사회를부정했다.이때나라에서는서학,천주교를쫓는건기존질서를무너뜨리고잘못된문화를전파하는거라여겨가혹한탄압을일삼게되었다.
『책과노니는집』은이러한시대적상황을중심으로이야기가전개된다.주인공장이의아버지는필사쟁이로,밤낮가리지않고언문(한글)이야기책을비롯해수많은한자책을베껴쓰며생활을이어나간다.그런데어느날,천주학책을필사했다는이유로천주학쟁이라는오명을쓰고관아에끌려간다.천주학책을사간사람들에대한신의를끝까지지키며장이의아버지는장독이오를만큼매를맞고나와산송장처럼누워사경을헤맨다.이처럼아버지와장이에게‘필사’라는일은꿈과시련을동시에안겨주는것이다.손이펴지지않을정도로밤새필사를하며꿈을잃지않았던아버지.한순간에불어닥친태풍앞에서가진것없는장이네부자는속수무책일수밖에없다.
책방심부름꾼장이,세상밖에발을내딛다
장이는책방주인최서쾌의말에따라책방심부름꾼생활을시작한다.새로들어온이야기책을정리하고,주문받은책들을배달하며장이는바쁜나날을보낸다.외롭고고된생활속에서도늘호기심가득한눈으로세상을보며영특하고의젓하게성장해나간다.
장이는최서쾌의심부름으로홍교리를찾아가게된다.홍교리는조선에서알아주는수재로일찍이높은벼슬을받은,장이같은사람이쉽게만날수없는대단한사람인것이다.홍교리의서고를찾아사랑으로간장이는‘책과노니는집’이라는뜻을가진‘서유당’이라는현판에마음을빼앗긴다.소문난장서가이자애서가인홍교리는듣던대로책에대한애정이매우특별한사람이다.그런홍교리와의만남은장이에게많은변화를불러일으킨다.그러던어느날,천주교탄압이라는태풍이또다시불어닥친다.그순간장이의머릿속에는자신을인정하고다독여준홍교리와얄밉지만자꾸생각나는기생집‘도리원’의낙심이가떠오른다.몸을피하라는최서쾌의말을뒤로하고장이는이끌리듯어딘가로향하는데…….
탄탄한이야기구조,살아있는캐릭터,마음을움직이는그림
역사적사실을바탕으로탄탄한구성력을발휘해깔끔한문장과세련된묘사로이야기를구성해나가는건결코쉬운일이아니다.주인공장이의캐릭터를비롯해인물하나하나의특성이눈앞에그려지듯생생하게다가온다.이작품을더욱매력적으로빛내주는것가운데하나가바로김동성의그림이다.한국적정서가진하게묻어나는그림이어우러지면서글의깊은맛이더해진다.소박하면서도화려한멋이담긴김동성의그림에는보는이로하여금그시대,그사건속으로빠져들게하는마법과도같은힘이존재한다.
이처럼『책과노니는집』은최고의글과그림으로공들여빚은전혀새로운역사동화이다.2009년새해,『책과노니는집』과함께하며‘책’의의미와깊이를음미해보면더욱값진책읽기시간이되지않을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