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음악을 만드는 것은
기억되고 싶다는, 존재하고 싶다는, 나를 남기고 싶다는 근원적인 욕망 때문이다"
한대수부터 장기하까지,
걸 그룹부터 인디음악까지
고집 센 현장 비평가가 돌아본 대중음악의 오늘
초등학교 때 첫사랑은 늘 전학을 갔다. 운동장과 골목에서 뛰어놀다 이런저런 전집이 쌓인 건넛방과 마루를 뒹굴다 보면 올리비아 뉴튼 존과 ‘아바’의 테이프가 녹음기에 꽂혀 있었다. ‘퀸’과 ‘스콜피온스’, ‘사이먼 앤 가펑클’과 김현식과 ‘들국화’, ‘시인과 촌장’의 노래를 동시에 좋아했다. 내가 좋아하는 라디오 DJ가 진행하는 시간에 맞춰 테이프를 끼워놓고 대기하다가 노래를 녹음하는 재미도 만만치 않았다. 반마다, 혹은 교회에는 꼭 말이 통하는 친구가 있었다. 수업은 뒷전인 채, 자기가 좋아하는 곡들, 혹은 구하기 힘든 음반을 녹음해 교환하는 ‘불법복제’가 그 시절에도 이미 공공연히 행해졌다. 어느덧 아버지보다 키가 더 커질 무렵, DJ가 있는 카페를 찾아 헤비메탈을 듣거나 이탈리아에서 수입된 ‘아트 록’을 기웃거리고, ‘부활’과 ‘시나위’의 대결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카페를 나와 라면과 떡볶이를 후루룩 먹어치우며 어제 산 이문세의 테이프를 자랑하는 재미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음악’으로 한 시대를 살았다. 어른들이 ‘청춘’이라는 수식어가 붙여진 시절을 그렇게 보냈듯이 우리 역시 음악을 끼고 성장통을 겪어야 했다. 0과 1의 조합으로 비트의 리듬을 잔뜩 압축시켜 듣는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두 개의 테이프가 들어가는 대형 더블 테크를 어깨에 메고 낯선 이성과의 만남을 설레어 하며 ‘서태지’의 <난 알아요>를 ‘합창’하던 엠티(MT)를 갔던 때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한국의 대중음악은 무수한 변화와 성장, 그리고 성숙을 거치며 우리의 삶의 동반자로 자리 잡았다.
이렇듯 음악, 아니 대중음악은 단순히 유행의, 유행에 의한, 유행을 위한 노래의 지위를 벗어던진 지 오래다. 사람들은 대중음악을 통해 시대를 조망했고,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이들과의 공감대를 만들어갔다.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노래를 목 놓아 부르는 청춘이나 점점 무거워지는 삶의 무게를 버거워하는 중년이나, 지나온 세월을 흘러간 노래로 반추하는 나이 지긋한 노년이나, 누구나 ‘내 인생의 노래’가 있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대중음악은 결국 삶의 한 부분이다.
한국 대중음악에 관한 ‘재미’와 ‘의미’를 담은 소중한 기록
대중음악평론가 나도원은 이런 대중가요의 절실한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부박하기 그지없는 이 시대에 음악에 관해 글을 쓰는 만만치 않은 일을 평생의 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격조 높은 발라드로 1980년대의 공간을 풍미한 故 이영훈과 이문세의 만남을 시작으로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엄정화, 박선주, 장윤주, 박진영, 김사랑, 유희열, 이그나이트, 안치환, 이승철, 나윤선, 휘루, 루시드 폴 등을 응원하는 그의 글에는 음악(인)을 향한 애정이 물씬 담겨 있다. 하지만 ‘고집 센 평론가’라는 세간의 평가를 증명이라도 하듯 깐깐한 글쓰기야말로 단연 그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서태지’라는 신화의 탄생에 숨어 있는 몇 가지 오해들을 과감히 공개하는가 하면 ‘아이돌’의 화려한 부활이 한국 대중음악계에 독이 될지도 모른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는 대목은 그가 맷집 좋은 평론가라는 사실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결국, 음악』의 가치는 그동안 주류 대중음악에 밀려(?) 제대로 된 의미 찾기에 소홀했던 ‘인디’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는 데 있다. 저자는 이 땅의 ‘인디’를 199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이 거둔 소중한 열매라고 힘을 실어준다. 물론 인디도 인디 나름이다. 그는 대중의 귀에 쏙 들어오는 인디가 아닌, 여전히 그늘에 머물고 있는 ‘센’ 음악을 향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김민규(‘플라스틱 피플’), ‘비둘기 우유’, ‘아톰북’, ‘로로스’, 이기용(‘스왈로우’, ‘허클베리 핀’), ‘루네’, ‘네스티요나’, 오소영, ‘카프카’,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윈디시티’, ‘할로우 잰’, ‘49 몰핀즈’, ‘레이니 선’, ‘폐허’, ‘새드 레전드’ 등에 관한 그의 생기 넘치는 글은 긴 시간 공을 들인 인터뷰와 맞물려 2000년대 한국 펑크 씬과 인디 씬을 종합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결국, 음악』은 제목 그대로 우리네 삶이 ‘결국 음악’으로 귀결된다고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확신에 찬 어조로 말을 건넨다. ‘한국 모던포크의 시작’으로 일컫는 한대수를 기점으로 ‘서태지와 아이들’과 ‘장기하와 얼굴들’이 닮은 10가지 이유를 치밀하게 정리하는 대목까지… 이 책은 단 한 구절도 버릴 수 없을 정도로 ‘재미’와 ‘의미’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 『결국, 음악』은 대중음악에 관한 글이 한 시대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음을, 그리고 그 속에 깃든 우리의 삶을 찬찬히 돌아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의 삶은 결국, 음악이기에….
● 추천의 글
"지금 여기, 음악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불모의 시대에 음악에 관해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도원의 글은 이 물음에 대한 진지하고 성실한 답변이다. 그는 목소리를 높여 이 부박한 현실을 지탄하거나 새 세상을 향한 진군나팔을 독려하지 않는다. 그는 차라리 꼼꼼하고 우직한 시선으로 음악 그 자체를 이야기한다. 주류 무대를 주름 잡는 걸 그룹부터 홍대 앞에 출몰하는 인디밴드까지, 나름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음악과 음악인을 통해 우리가 발 딛고 선 세상을 읽어낸다. 그리하여 진정 중요한 것은, '결국, 음악'임을 알게 해준다.
- 김창남 ㅣ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장,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문화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