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에게책을읽어줄때주의할점
하나,귀신이원하는책을읽어줄것
둘,감정을넣지말고읽어줄것
셋,귀신의얼굴빛을잘살필것.
“뭐라고?”
구오는지겨운만권책방을잠시벗어나고싶었을뿐이다.책방단골손님을믿고덜컥따라나섰는데,귀신소굴에불려와밤마다귀신에게책을읽어주어야할줄은!
굳게닫힌귀서각문을열려면흩어진처용의얼굴을모아야해.하지만명심해.도끼로나무를팰수는있어도물을가를수는없다는걸.
귀신들의눈을피해처용의코와귀와입을하나하나모아갈수록바짝죄어오는으스스한그림자,누린내를훅끼치며짐짓부드러운목소리로구오를홀리는그림자는누구일까?처용의힘으로도물리칠수없다면?
책속에길이있다.글자로만들어진그길은마음의안과밖을잇고,생각과생각을잇고,세계와세계를잇는다.
말이떨어지자마자책등에서실이풀려나오고책장이좌르르흔들리는가싶더니척펼쳐졌다.구오가이야기를시작하자희한한일이벌어졌다.바닥에누운글자들이오똑오똑일어나문장을만드는가싶더니,눈깜짝할새바스러졌다다시뭉쳐한사람이되었다.
재담의재간꾼이‘비늘깁듯써내려간’귀신이곡할이야기,
아찔한감동의곡예를맛보다!
창귀,호랑이에게잡아먹힌사람의영혼.
「청우기담」과「호질」,민간설화에등장하는호랑이귀신‘창귀’,그창귀가누런종이속,옛날이야기에서뛰쳐나와,어깻죽지를물결치며동네도서관을어슬렁거린다.시뻘건혓바닥이노리는먹잇감은어린책선생구오.책을끔찍이도싫어하는데다말더듬이에겁쟁이인구오가귀신들의도서관에서책선생을지내며하룻밤을보내게되는이모험담은,설화속의갖가지캐릭터와모티브를차용하고새로이덧입힌데다,긴장감있는인물의배치,복선과암시와반전,이야기를구성하는한겹한겹의세포들을단단히엮는플롯,작가의세계관이힘의균형을이루며,‘유희이상의이야기란무엇인가’를이야기자체로보여준다.
“겁이많아귀신이야기를그리좋아하지않아요.하지만영화에서보던일본이나서구의귀신과는달리,우리귀신은재미난구석이많아요.그래서우리귀신들을등장시켜나같은겁쟁이도재미나게읽을수있는이야기를만들수있지않을까생각했어요.마침우연히우리귀신에대해공부할기회가있었고,그일을계기로이야기를쓰게되었어요.귀서각을읽고난뒤무언가마음에남는다면,그게무엇이든,무척기쁠것같아요.그저끝까지재미나게읽어주었으면하는바람이에요.”_보린
삼국시대의비형랑이라는소재를재해석한「도가비전」으로제1회NHN게임문학상대상을거머쥔필력있는이야기꾼보린(기울보[補],비늘린[鱗])은‘비늘깁듯글을쓰다’라는이름에걸맞게,낯선소재,특화된캐릭터,기초공사를탄탄히다져놓은골격위에‘귀서각’이라는에너지가꿈틀대는이야기집을지었다.활자를읽는것이아니라곁에있는누군가로부터듣고있다는착각을불러일으키는듯한이이야기는‘귀신에홀린듯’앉은자리에서후딱먹어치우게된다.덮고나면여남은권을읽은듯배가부르다.발라먹을살이많아새로읽을때마다색다른맛을발견하게되고울림은길다.함부로다뤄지는캐릭터란없다.제몫의짐을부여받고정곡에서서독자들을깨운다.대목대목가지를쳐놓은의미또한만만치않다.
캐릭터들이긍지를찾아가는성장과정,이야기가지닌힘과가치,잃어버리거나혹은잊어버린세계의감동이주는소용돌이에휩쓸려보자.
“귀,귀신이야기책이요?”
“뭐그렇다고할수있지.겁쟁이가아니라니어디한번해볼테냐?”
구오가고개를끄덕이자송영감이뜻밖이라는듯눈을크게떴다.
“혼자귀신책을정리해야하는데,그래도한다고?”
“예.”
“일이끝나기전에는집에못가는데,그래도…….”
“해요.하,한다니까요!”
“알겠다.알겠어.아무리귀신책이라한들설마책이사람잡아먹을까.하룻밤이니별일없을게다.”
예사롭지않은시작은예사롭지않은전개를예고한다.책에미친잔소리꾼할아버지눈을피해잠시만권책방을벗어나고싶었을뿐인구오.단골손님인송영감의꾐에빠져‘귀서각’의대문빗장을들어올릴때만해도구오는고생값을받아뭘할까하는고민에만빠져있었다.그러나계속되는기이한일들과시간이되어도열리지않는도서관의대문앞에서구오는알아차리게된다.귀서각의‘귀’는귀신의‘귀’!‘오래도록손을지나치게타거나한서린피가묻어귀신이된책들을모아놓은곳’이라는것을진작알아채지못했던자신을책망하기엔이미늦었다.손각시가머리를풀어헤치고정체모를얼룩으로덮인책을구오앞에들이밀며읽어달라고버티고섰으니말이다.이야기는폭주하기시작한다.
얼마전부터바깥세상에어둠이없어졌다나뭐라나,밤이되어도시끄럽고너무환하다고귀신들이야단이야.그냥저희끼리그러고말면될텐데,하나둘이리로몰려들더니손쓸틈도없이불어났지뭐야!
인간에게쫓겨난귀신들의피난처가된귀서각.그곳에서맞닥뜨린낡아빠진책『책선생길잡이』와맨발의계집아이는구오에게귀서각에서해야할일과해서는안될일을조목조목일러준다.
“마,말더듬이에책이라면지긋지긋한나더러귀,귀신들의책선생을하라고?”
“우,웃기지마!귀신주제에책은무슨책이야?시,시험을치는것도아니고일을해야먹고사는것도아닌데왜귀서각가,같은걸만들어서사람을가둬놓느냐고.”
“재미있잖아.넌책이재미없어?우리귀신들은말이야,살아있을때신나게하던일을못잊거든.죽어서도매일같이하고또하고또하고자꾸자꾸해.책을좋아하는사람은귀신이되어서도만날읽고또읽고또읽고자꾸자꾸…….”
세상에책같은건다없어졌으면좋겠다고생각했던구오다.귀서각에꼼짝없이갇혀버린것도,날마다헌책방을지켜야하는것도,엄마가떠난것도,아빠가밖으로나도는것도,빵집을열지못한것도모두책때문이라고생각했다.그러나어쩔수없이귀신들의책선생이되면서저도모르는새규칙을어기고감정을담아책에적힌이야기를들려주게된다.이시도는후에구오에게놀라운기적을일으키게된다.진심을담아읽는이야기가해낼수있는최고의도달점을목격하게되는것이다.
무심코읽던책을진심을담아읽는순간기적이일어난다!
“책을깨운다고?”
“책들은말이지.실은잠들어있는거야.방법을몰라그렇지깨우기만하면엄청난걸할수있어.궁금한걸물으면책이스스로다가와책장을펼치고,내용을읽으면책속으로그냥빨려들어가고,책속에들어가면새로운이야기를만들어낼수도있다고.딱한번이라도책속에들어갈수있으면얼마나좋을까?”
할아버지같은사람,책이라면죽고못사는맨발계집아이제이와의만남은구오에게자신의숨겨진면,진짜자신을발견하게되는기폭제가된다.엄마아빠가없다는것을들키기싫어거짓말을하고혼자되는게두려워주먹을휘두르고주먹보다더센것은없다고생각했던,실은누구보다겁쟁이였던구오는주먹보다더센힘이어디에서오는가를깨닫게된다.
창귀의깊숙한곳에눌러놓은한과귀서각곳곳에서린비밀을풀고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