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장석남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장석남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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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국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문학동네시인선」제15권『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자신만의 아름다운 시세계를 펼쳐온 장석남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이다. 3부로 나누어 '의미심장', '중년', '독강에서', '성', '기차 법문', '생활', '첫눈을 기다림', '안부' 등의 60편의 시를 수록하였다. 강박적이리만치 열과 행을 꽤나 조여서는 더는 뺄 것도, 더는 넣을 것도 없이 콤팩트한 시편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저자

장석남

저자장석남은1965년인천에서났다.1987년경향신문신춘문예로등단했다.시집몇권,산문집두어권냈다.

목차

시인의말

1부
의미심장(意味深長)
하문(下問)·1
하문(下問)·2
가난을모시고
담장
가을저녁의말
고대(古代)
호수
장마끝물
나의유산은
옛집에들어
오솔길을염려함

2부
중년
불임
큰눈
가라앉는발자국들
수로(水路)에서
무쇠솥
독강에서
탑(塔)
바람과더불어?하나
난롯가
저물녘?모과의일
초당에가서
해변의자화상
들판에서
고창선운사
다시,오래된정원
다랑이길
파도소리
성(城)
정자의주춧돌을세우며?이상에게
나의불빛
옥수수밭의살림
시월의석류?평창의김도연
아코디언
물미역씻던손
축소인쇄안견의<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펴놓고

3부
기차법문
냉이야냉이야
수월(水月)스님
낙법(落法)
발굴(發掘)
와운산방(臥雲山房)
노래가되기는멀었어라
빈방?남지암(南枝庵)을기록함
탱자향기
물과빛과집을짓는다
생활?벌치는사람
첫눈을기다림
어찌하여민들레노란꽃은이리많은가?
민화
동화(童話)
안부
망명
생일
술래3
물의여정(旅程)
입적(入寂)
시월(十月)
해설|호젓함을모시다
|엄경희(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나는어찌하여이,뵈지도않는길을택하여가는가?
-장석남시인의일곱번째시집『고요는도망가지말아라』


김종삼선생님이딸의소풍을따라갔다가어느무덤가에서가슴에돌을얹고누워있었다던,날아갈까봐그랬다던향기로운에피소드가문득,생각나는
-「하문(下問)·2」중에서

애초에시로태어난자를고르라할때,아주오래전사람이아닌근래다국적말의홍수속에서그허우적거림을실로맵게겪은이들가운데하나를택하라할때,단연코맨앞자리에앉고또앉혀야할그이라면일단은장석남시인이지않을까싶다.연탄에집게를꽂아연탄을갈고연탄불을살릴때의그조심스러움으로일상에서시를살릴때후후,그가일으키는불씨는제입김을통한것이대부분이니지금껏우리말의단련이란그로하여금얼마나달궈져왔겠는가.
1987년경향신문신춘문예로등단한이후스물다섯해,스물셋말갛던청년이마흔여덟‘어둡는’중년이되기까지시를모아집을삼은것이도합일곱번째니평균3년하고도절반마다그는시로분한저자신의분가를지켜봤으렷다.선하나를느끼는데서시작된시가곧선하나를느끼는데서마무리됨을일찌감치알아차린탓에흔하디흔한막대기조차쓰다버릴일이아니라쓰다심을일로몸을써온그,라는시의타고남을익히알아온까닭에나는그에게먼저고요와도망에대하여‘여쭙느니’,『고요는도망가지말아라』를앞에두고서다.

저물면아무도없는데로가자
가도고요는도망가지말아라

고요의눈망울속에묻어둔
보석의살들-이마눈코
깨물던어깨,
점이번진젖,따뜻한꽃까지다어루어서
잠시골라앉은바윗돌아좀무겁느냐?
그렇게청매빛으로다가저문다

결국모과는상해버렸다
-「저물녘-모과의일」전문

버릴수록가져지고지울수록선명해지는게세상살이의이치라면장석남의시는이미그일가를이루었을터,이번그의시집은작고더작아져야만들어갈수있는‘고요’라는구멍속에서홀로이노는한사내를만나게끔한다.무쇠솥을사몰고올때,그것을꽃처럼무겁다할때,그속에쌀과수수와보리를섞어안친밥을지어우리들을부를때,그를어찌시라아니할까.시로그리생겨먹은것을.
그가가진특유의섬세함과유연성을가장정점으로드러내고있다고감히자부하는60편의시가3부로나누어담긴이번시집에서시인은강박적이리만치열과행을꽤나조여서는더는뺄것도,더는넣을것도없이콤팩트한시를우리앞에선보이고있다.“하나둘셋넷다서여서일굽일굽일굽”하듯그만의특유한말법도살아있으려니와두줄할것을한줄로,한줄할것을한단어로찍어버리는데선수가되어버린그는말을지우는데더큰말의그림자가드리운다는것을알아버린연유로이렇게씨뿌리듯툭툭시를뱉는다.손으로쓰는시그너머에입으로부는시라니.“아무보는이없이피는꽃이더짙은까닭은아무보는이없기때문”(「물과빛과집을짓는다」)이란말인가.
이른바더,더,가아니라덜,덜,을향해가는비움과침묵속여백과공기의팽팽함,그로풍만해지는마음의빈자리에더욱이아무나앉히는것은결코아닌채로시인은빈의자를내놓는다.그일에한생을내걸정도로의자따위에작심을하기도한다.

어둡는데
의자를하나내놓으면
어둠속으로의자는가겠지
어둡는데
꽃핀화분도하나내놓으면
어둠속으로잠겨가겠지
발걸음도내놓으면가져가겠지
-「망명」부분

그래,의자따위라함은그가눈으로집고손으로들어올리는‘돌멕’과도같이흔하디흔한것,그만큼사사로운것.의자는따뜻하거나찰테고의자는단단하거나부서지겠지만의자만이가진의자만의예민함을감지하는시인은의자만이내는의자만의소리를받아낼수있는고도의청력으로세상만물의들숨과날숨을엿들을줄알게된터,예를들어“때까만메밀껍질베개의서걱임”(「가난을모시고」)을,“옥수수밭의수런거림과두런거리는살림을”(「옥수수밭의살림」),“한밤물미역씻는소리”(「물미역씻던손」)를,그리하여“흰돌멩이하나들어다가갓풀린개울물에넣어”두고“귀도하나는그곁에벗어”(「생일」)놓는일등을말이다.그러고보면세상에‘법문’아닌소리가또어디있으랴.세상모든소리가‘법문’이아니고또한무엇이랴.결국시인이말하고자함은아마도세상을맞닥뜨리는자의어떤자세란데있을것이다.

수로에외발로서서고개움츠리고비맞는왜가리
어떤기다림도잊고다만기다림의자세만으로생을채우려용맹정진하는왜가리
나는늦도록깊고습한터널을뚫는다
시큼하고외로운수로(水路)
-「수로(水路)에서」부분

무심이라는유심,그할수없음이라는할수있음에대하여줄기차게밀어붙이는부드러운완력틈틈이늘어진미주알처럼어쩔수없이들키고마는무언가가있다.어머니,늙은어머니이자아픈어머니와더불어늙어가는중년의그에게서언뜻언뜻비치는죽음의잔상.그러나그는이또한제손에서쥐었다놓는혼자만의놀이로다스릴것이다.그안에서충분히돌려빚은경단처럼말캉해진시인은그러려고이토록오래도록품을격으로삼은것이분명하므로.

●작가의말
마침몸살이와서발은만져보니차디찬데이마는뜨겁다.그사이몸뚱어리전체는속닥거린다.지치긴했어도아픈지경까진오래간만이어서찡그린채껌뻑거리며누워있으려니회고의길목이다.아픔은회고주의자로몰게마련이고병은때아닌종교를붙들게도하는게이치라면이치겠다.
뭐니뭐니해도내생에서시경(詩境)으로출타한것이인생의큰일이었구나하는생각을뭉뚱그려제쳐놓는다.하,그게스물다섯해가되었다니!뭐밥그릇수를밝혀서미담제조를하려는맘은추호도없으나그간건너온징검돌들의면모가떠오르는것도어쩔수가없다.간신히바닥에발붙인돌멕들이지금껏내걸음걸이의무게는겨우견뎠으나다시금되돌아가자면그만부스러지고말것만같다.천상저편으로나하나씩더놓으며가야하리.만해가한겨울널따란냇물을맨발로건너며중간에서이도저도할수없었다던고초이야기도생각난다.
다몸뚱어리가쑥떡거리는내용들이다.

나는아직어느경계안으로도들어서지못했다.
하긴,출타는들어서는게아니니까.
다행이다.아프다.

2.
이렇게,선(線)하나를
긋고,
나는……나를……느끼고싶다.

-인제만해마을서창(西窓)아래엎드려,
장석남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