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호칭 (이은규 시집)

다정한 호칭 (이은규 시집)

$12.00
Description
자연의 산물들이 만들어내는 장場!
한국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문학동네시인선」제18권『다정한 호칭』. 2006년 국제신문, 200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저자의 첫 번째 시집으로 나무, 바람, 구름 같은 것들이 나누는 친교의 밀어를 듣는 인내와 집중과 기다림의 시간 동안 깊어지고 넓어진 시편들을 오롯이 담아냈다. 저자는 자연을 주요 소재로 삼은 상상력을 운동과 관계를 중심으로 한 역동적 상상력으로 확장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사라진 것과 지나간 것에 대한 연민을 포착한 아름다운 파동을 유도하는 ‘바람의 지문’, ‘아름다운 약관’, ‘모란을 헛딛다’, ‘바늘구멍 사진기’,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역방향으로 흐르는 책’ 등의 시편을 모두 4부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이 책에 담긴 시 한 편!

아직 별들의 몸에선 운율이 내리고 중에서

엄마는 왜 가르쳤을까
자신에게 진실하면 너는 늘 옳다

불가능의 시대에 혁명을 부르짖는 것
혹은 별을 노래하는 것만큼, 허영을 채워주는 일도 드물다는 당신의 편지를 노려보았다
밤새 가는 실핏줄 터지는 소리

한 혁명가의 꿈을 꾸는 밤
다리를 저는 그녀와 보폭을 맞추기가 어려웠는데
기다리기만 하는 자에게 올바른 순간이란 없다는 목소리가 들려왔지
더 잘 실패한 후에 맞게 될 적기

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는 혁명을 과거사라고 믿는 당신에게 불과할 것이다
아직 별들의 몸에선 운율이 내리고
당신과 나의 정체는 우리 자신을 앞지르며 밝혀질 것

얼음이 떠다니는 운하 속으로
한 시대가 던져지기 직전, 오고갔다는 문답
저자

이은규

저자이은규는1978년서울에서태어났다.2006년국제신문,2008년동아일보신춘문예를통해등단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
점등(點燈)
나를발명해야할까
바람의지문
구름을집으로데리고가기
차갑게타오르는
아홉가지기분
미병(未病)
아름다운약관
누가나비의흰잠을까만돌로눌러놓았을까
추운바람을신으로모신자들의경전
애도의습관
구름의무늬
별무소용(別無所用)

2부
벚꽃의점괘를받아적다
어접린(魚接隣)
청진(聽診)의기억
꽃은나무의난청이다
미간(眉間)
나무의눈꺼풀
애콩
조각보를짓다
물위에찍힌새의발자국은누가지울까
허공에스민적없는날개는다스릴바람이
없다
별들의시차
별이름작명소
놓치다,봄날
모란을헛딛다

3부
속눈썹의효능
바늘구멍사진기
육첩방에든알약
아직별들의몸에선운율이내리고
꽃을주세요
숨막히는뒤태
발끝의고해성사
소금사막에뜨는별
심야발안부
손목의터널
기억의체증
죽은시인과의연애
달로와요

허밍,허밍

4부
살별
화살맞은새
꽃그늘에후둑,빗방울
고경(高景)
묵독(默讀)
오래된근황
꽃씨로찍는쉼표
견고한눈물
별의사운드트랙
구름의프레임
아침꽃을저녁에줍다
손목을견디다
역방향으로흐르는책

해설|사이를듣는귀와견딤의가설
|조강석(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문득있다가,문득없는것들을뭐라불러야하나”
불어오고머물고다시불어가는것들을향한
『다정한호칭』


1.

누군가
물수제비로새겨넣은문장을오래듣는귀가여기있다.
―「물위에찍힌새의발자국은누가지울까」에서

봄볕처럼잠시머물고그러면서오래도록잊히지않는시65편이여기있다.2006년국제신문,2008년동아일보를통해등단한시인이은규의첫시집『다정한호칭』.등단당시“활달한상상력덕분에요즘시에서보기힘든탁트인느낌과더불어세련된이미지와진술의어울림이주는감흥”을준다는평을받은그는,지난6년간고요했다.그사이시인은번잡함을멀리하고보이는것에즉각적으로반응하지않은채잠잠했다.그가몰입한것은‘듣는일’이었다.바람결을듣고,나무의소리를듣고,스러져가는기억을듣고,과거가되는너와나의관계를듣는,인내와집중과기다림의시간.그러면서그는깊어지고넓어졌다.

2.

문학평론가조강석은해설에서“이은규의첫시집의부제는‘21세기의서풍부(西風賦)’라고붙일법하다”고했다.“그야말로바람에부치는앨범”이란뜻이다.
바람을향한이은규의동경은등단작「추운바람을신으로모신자들의경전」에서이미감지된다.“바람은형상을거부하므로우상이아니다.”“동경하는것을닮아갈때/피는그쪽으로흐”를수밖에없는법.이은규에게바람은종교다.
그런그가바람있는곳에따르기마련인꽃과나무,구름으로‘시계(視界,詩界)’를풍성하게채우는것은당연한일이다.그는“구름을통과하지못한햇빛이/반사되어흩어지던시간”과“어둠을통과하지못한구름이/하늘너머로흩어질시간”을궁금해한다.“나무꼭대기에구름모자걸릴때구름의평균수명은얼마일까”알고싶어한다.(「구름을집으로데리고가기」)“물에관한나무의기억이란,내몸의수액이나이테를돌아당신에게가닿는이치”임을안다.(「나무의눈꺼풀」)
주목할점은그가자연물과자연현상을대하는태도이다.그에게자연은대상이나기능물이아니다.바람을종교삼은그아닌가.끝없이운동하고작용하는자연,밀교를나누는자연에대한새로운시선이이시집에담겨있다.

꽃을잃어버린나무는서둘러푸른잎들을틔운다.
잎은꽃에게로열린나무의귀

(중략)

착란의봄이꽃을따라가면
남겨진나무의계절이란꽃진자리의허공을견디는일
귀는한목소리를가진말들로붐비고
나무의난청은꽃에게서와서꽃에게로가는중이다

(중략)

길을잃어버린그해꽃이다시들려올까
몇잎의귀를떨어뜨리며묻는나무에게
―「꽃은나무의난청이다」부분

꽃이지는것이상실과허무를나타낸다는데에우리는익숙하다.한데“남겨진나무”를궁금해한일이지금껏있었던가?“꽃진자리의허공을견디”며꽃에게로열린귀였던“잎”몇개를떨어뜨리는나무의안부를말이다.“꽃잎을살삼아바람에게말거는나무와/물의진동을비늘에새기는물고기/저만치물의허공에어리는꽃무리”(「어접린(魚接隣)」)는또어떠한가.

이은규의상상력은자연을주요소재로삼아전개되지만이처럼개별사물들에대한형태적상상력에그치는것이아니라사이와허공즉운동과관계를중심으로한역동적상상력에기반해있음을이제확인할수있다.
―조강석해설「사이를듣는귀와견딤의가설」에서

3.

펼쳐놓은책장에숨어있는길
문장보다즐겨읽는행간사이,그늘이고인다

(중략)

한목소리의부재가없는목소리로이어지고
길위를서성이는그림자한뼘씩길어진다
행간의그늘에물들어버린동공
이제동공은활자들의리듬에따라움직일것
―「묵독(?讀)」부분

눈썹과눈썹사이
미간이라부르는곳에눈이하나더있다면
나무와나무사이
고인그늘에햇빛한줄기허공의뼈로서있을것

(중략)

먼눈빛보다미간이좋아
바라보며서성이는동안모든꽃이오고간다

나무가편애하는건꽃이아니라허공
허공의뼈가흔들릴때나무는더이상직립이아니다
그늘마다떠도는발자국이길고
―「미간(眉間)」부분

불어오고머물고다시불어가는바람의속성을따라가는시인이은규.그가‘허공’과‘사이’에예민하리라는것은짐작할수있다.얼핏이들의공통점을‘비어있음’이라말할수있으나,그는이를끊임없이‘운동하는공동(空洞)’이자관계의공간으로본다.문장보다행간을즐겨읽으며,“행간사이를헤매는것으로길을찾고싶었”던이의영역,“허공의뼈가흔들”리는,“눈썹과눈썹사이”의영역.바로여기에서이은규의역동적상상력이태어난다.“없는새에게서심장소리”를듣고“없는봄에게서꽃의목소리”를듣는다.“새가되어보지못한저알의미지는바람일것”이며“허공에스민적없는날개는다스릴바람이없”으므로“새,바람이되지못한것들의배후는허공이알맞다”는것을그는안다.(「허공에스민적없는날개는다스릴바람이없다」)

4.

허공과사이에대한탐구는“문득있다가,문득없는것들”,즉부재와부재를둘러싼내밀한상처로깊어진다.

때로헤어진줄모르고헤어지는것들이있다

가는봄과
당신이라는호칭
가슴을여미던단추그리고속눈썹같은것들
―「속눈썹의효능」부분

왜향기는한순간절정인지
아침에떨어진꽃잎을저녁에함께줍는일
그러나우리는같은시간에머물지않고

(중략)

문득망설이던긴꼬리별
역일(曆日)의선을그으며떨어지는순간

때를달리한연인은
아침꽃을저녁에주울수없고
우리는너와나로파자(破字)되어단출할뿐이다
―「아침꽃을저녁에줍다」부분

이은규는“없는목소리”로“너라고쓰고나라고읽는다”.“불구의기억들이몸안의길을따라떠”도는것을용인하는일(「추운바람을신으로모신자들의경전」),“오래전들었던,그러나돌려보낼곳을잃은”,“들리는순간약속이되어버린말들”을잊지않는일(「꽃은나무의난청이다」),이러한“애도의습관”은그의과업이되었다.
이은규의시는따뜻함과애틋함의미학을지니고있다.따뜻함이머물다가는것의아픔과상처를끌어안는시선에서온다면,애틋함은사라진것과지나간것에대한연민을아름답게포착하고간직하는데서느껴진다.그무엇도허투루흘려보내지않고다정하게부르는일,그아름다운파동에귀를기울여본다.

●시인의말

옛날인간에게노래가없던시절

하늘에있는나무의씨앗을훔친죄로

여러가지어려움을겪은끝에

시를얻게되었다는한부족의신화

내안의신에게첫노래를전한다.